글라슈테 오리지날(Glashütte Original) 매뉴팩처 방문기
- 글라슈테 마을 조감도 ⓒ Glashütte Original
독일 작센주 남부 오르(Ore) 산맥 자락의 뮤글리츠(Müglitz) 계곡에 위치한 작은 마을 글라슈테(Glashütte)는 16~17세기 광산촌으로 유명했습니다.
하지만 19세기 초 지역의 주수입원이었던 은 채광이 급감하면서 실업률이 증가하고 지역경제가 엉망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드레스덴(Dresden) 출신의 시계제작자 페르디난드 아돌프 랑에(Ferdinand Adolph Lange, 1815~1875)는 시 의회에 시계제조업을 정식으로 제안합니다.
그는 이미 1845년 글라슈테에 자신의 이름을 딴 지역 최초의 시계회사(현 랑에 운트 죄네의 전신)를 설립한 터였고,
1848년 글라슈테 시장으로도 선출될 만큼 지역 사회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지요.
결국 페르디난드 아돌프 랑에의 주도 하에 글라슈테는 차츰 스위스 뇌샤텔에 비견될 만한 시계마을로 변모해갔고, 훗날 독일 시계산업의 성지로까지 불리게 되었습니다.
- 글라슈테 마을 중심가
사진 우측 건물이 바로 현 글라슈테 오리지날의 본사 및 매뉴팩처 건물임.
독일을 대표하는 시계브랜드 글라슈테 오리지날(Glashütte Original)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렇듯 우선 글라슈테 지방의 시계제조 전통을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습니다.
글라슈테 오리지날은 한 개인이나 가족에 의해 형성된 전통적인 개념의 시계회사가 아닌,
글라슈테의 170년 시계제조 노하우가 응집된 지역의 역사이자 총아에 다름 아니기 때문입니다.
페르디난드 아돌프 랑에는 정부로부터 융자를 받아 글라슈테의 광산노동자들을
시계제작자 혹은 정밀기기를 다루는 엔지니어로 교육시키는 사업을 추진해 터를 닦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시계를 한번도 만져본 적도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으나 트레이닝의 성과는 곧 가시적으로 드러났지요.
일련의 교육과정을 수료한 사람들은 각자의 집이나 창고를 수리해 자신의 장기에 맞는 부품 제조업을 시작했습니다.
가령 어떤 이는 밸런스휠만, 어떤 이는 핸즈와 다이얼만, 어떤 이는 무브먼트 플레이트만 제작하는 식으로 체계적인 분업화를 구축했고,
각 하우스서 제작된 부품들을 한데 모아 실력있는 시계제작자들로만 구성된 공방에 넘겨주면 하나의 시계가 완성되는 식이었습니다.
- 19세기 중후반 글라슈테에서 생산된 회중시계들.
현재는 글라슈테에 위치한 독일 시계 박물관에 전시돼 있습니다.
특히 아돌프 슈나이더(Adolf Schneider), 모리츠 그로스만(Moritz Grossmann), 율리우스 아스만(Julius Assmann) 등
당시 이미 유럽 전역에서 명성을 누리고 있던 지역 시계제작자들의 활약은 눈부셨습니다.
일례로 모리츠 그로스만은 1878년 5월 글라슈테에 독일 최초의 시계학교(Deutsche Uhrmacherschule Glashütte, German School of Watchmaking Glashütte)를 설립해 수많은 인재들을 양성했고, 관측시계로 유명한 율리우스 아스만은 그가 제작한 시계가 훗날 노르웨이의 극지탐험가 로알드 아문센에 의해 1911년 인류사상 최초로 남극점 도달에 성공하는데 기여함으로써 글라슈테산 시계의 명성을 높이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습니다. 또한 마린 크로노미터와 진자 시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루드빅 슈트라서와 구스타브 로데도 빼놓을 수 없으며, 독일 시계학교 졸업생이자 1913년부터 교수로도 활약한 알프레드 헬위그(Alfred Helwig)는 1917년 별도의 브리지 없이 한쪽 축만으로 지탱하는 플라잉 투르비용을 고안해 컴플리케이션의 대가로도 불렸습니다.
- 위 사진 좌측부터 시계 방향으로, 페르디난드 아돌프 랑에, 율리우스 아스만, 알프레드 헬위그, 모리츠 그로스만 순.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글라슈테 오리지날은 여느 고급 시계브랜드들처럼 창립자가 분명하진 않지만,
페르디난드 아돌프 랑에, 아돌프 슈나이더, 모리츠 그로스만, 율리우스 아스만, 알프레드 헬위그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글라슈테 오리지날은 지금까지도 이 5명의 시계 위인들을 글라슈테 오리지날의 아버지들처럼 여기고 존경을 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글라슈테 오리지날’이라는 이름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1916년 시계제작자 칼 W. 호이넬(Karl W. Höhnel)이 만든
진자식 탁상시계에 처음으로 ‘오리지날 글라슈테’라고 표기한 것을 시초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19세기 중후반 글라슈테서 제작된 여러 종류의 회중시계 다이얼에도 필기체로 큼지막하게 ‘글라슈테’가 표기된 적은 있지만,
원조를 뜻하는 ‘오리지날’을 함께 병기하기 시작한 건 20세기 초의 일이었지요.
당시 글라슈테산 시계들이 유럽 전역에서 인기가 치솟다보니 무분별하게 카피한 시계가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오리지날이라는 수식을 덧붙임으로써 복제를 방지하고 100% 글라슈테 메이드임을 강조하기 위해 이같은 방편을 마련한 것이었습니다.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지역내 가장 영향력있는 시계공급사 중 하나였던 글라슈테 독일 정밀시계회사(Deutsche Praezisions-Uhrenfabrik Glashuette, DPUG)와
글라슈테 시계공장(Uhrenfabrik AG Glashuette, UFAG)도 앞다투어 다이얼에 오리지날을 함께 병기함으로써 이제 글라슈테 오리지날 혹은 오리지날 글라슈테란 이름은
글라슈테에서 생산된 시계임을 뜻하는 일종의 상표명처럼 자리잡게 됩니다. 이후 1927년에는 다이얼에 ‘글라슈테 오리지날’이라고 표기한 여성용 손목시계가 등장했습니다.
한편 1차 세계대전 발발 후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세계공황이 심각해지자 기존의 고급 회중시계, 진자식 클락 제조사들은
하나둘 상대적으로 제조비용이 적게 드는 손목시계로 전향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1925년 글라슈테 독일 정밀시계회사(DPUG)가 파산하고, 이듬해인 1926년 글라슈테 시계공장(UFAG)으로 분리되면서
무브먼트와 손목시계제조사인 UROFA와 케이스 제조 및 수출을 담당하는 유통 법인회사인 UFAG가 등장하게 됩니다.
- 글라슈테서 생산된 마린 크로노미터.
단, 위 시계는 레플리카(복제품)임.
그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파일럿 시계, 크로노그래프 손목시계, 마린 크로노미터의 수요가 급증했고 글라슈테 경제도 일시적으로 다시 되살아나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1945년 2월 인근 드레스덴이 폭격으로 불바다가 되고 이내 독일이 패망함으로써 시계마을인 글라슈테에도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졌지요.
설상가상으로 당시 마을을 점령한 소련군은 글라슈테의 모든 공장들을 폐쇄시켰고, 이후 동독 정부는 가족 경영 회사들을 주 소유로 압류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습니다.
이로써 독일어로 '국유 기업(Volkseigener Betrieb)'을 뜻하는 이니셜 ‘VEB’를 붙인 VEB 메스테크닉(Messtechnik),
VEB 글라슈테 시계공장(Glashütte Uhrenbetriebe, GUB)과 같은 여러 회사를 하나로 강제 병합한 회사가 등장했습니다.
전쟁으로 생산 시설 대부분이 파괴된 것도 이러한 강제 병합의 비극을 야기한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
VEB 글라슈테 시계공장(GUB)은 그 딱딱한 이름만큼이나 규격화된 단순하고 저렴한 시계를 주로 생산했습니다.
1960~70년대에 걸쳐 GUB는 수동 칼리버인 70.1과 70.3을 비롯해, 자동 칼리버인 74와 75(날짜 추가)와 이를 탑재한 스페치마틱(Spezimatic) 시리즈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960년대 말 당시, 한 해 3백만개의 시계를 생산해 인근 서독에까지 수출할 정도였으니 그 규모는 상당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1978년부터 1985년 사이에는 자동 크로노그래프 칼리버 11을 탑재한 TV형 케이스의 스페치크론(Spezichron) 시계가 히트를 쳤고,
기계식 모델 외에 다양한 쿼츠 시계들(일본의 세이코와 기술 제휴)과 심지어 타자기 같은 시계 외의 공산품도 생산했지요.
- 글라슈테 오리지날의 전신격인 VEB 글라슈테 시계공장(GUB)에서 1970년대 제조 수출한 타자기
마침내 1989년 11월 분단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함께 독일이 통일되면서
1990년대 초 VEB 글라슈테 시계공장(GUB)은 글라슈테 시계회사(Glashütter Uhrenbetrieb GmbH)로 개명,
1994년 다시 현재의 이름인 글라슈테 오리지날(Glashütte Original)로 사명을 완전히 변경하기에 이릅니다.
이와 함께 국유기업에서 민간기업으로 전환되는 과정도 순차적으로 진행되었으며, 독일 신탁청(Treuhandanstalt)이 적극 관여했습니다.
당시 글라슈테 오리지날에 남아있던 직원은 총 72명 정도에 불과했는데,
불과 몇해 전인 GDR(German Democratic Republic, 구 동독) 시절의 2,500명 직원수에 비하면 사세가 얼마나 기울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당시의 젊은이들은 글라슈테 마을을 떠나는 추세였던 것이지요.
- 브랜드 재건 후 1990년대 중후반 ~ 2000년대 초반에 걸쳐 제작된 글라슈테 오리지날의 손목시계들.
새롭게 글라슈테 오리지날에 합류한 경영진들은 회사를 독일 최고급 시계브랜드로 키워갈 비전을 갖고 있었는데,
실제로 이듬해인 1995년 율리우스 아스만 투르비용 퍼페추얼 캘린더와 같은 하이 컴플리케이션 시계를 선보였고,
당시 이 시계는 독일에서 생산된 가장 고가의 시계로 기록되기도 했습니다.
1996년에는 칼리버 41을 탑재한 알프레드 헬위그 투르비용을 제작해 글라슈테 지방의 위인에 바치는 헌사를 대신했으며,
2000년 10월 니콜라스 하이예크(Nicolas G. Hayek, 1928~2010) 회장의 주도하에 스와치 그룹(Swatch Group)의 일원이 됨으로써
글라슈테 오리지날은 본격적으로 고급 시계브랜드로 비상하게 됩니다.
- 글라슈테 오리지날 본사 로비에는 니콜라스 하이예크 전 스와치 그룹 회장을 기리는 의미를 담은 고인의 사진과 매뉴팩처 준공 관련한 친필도 볼 수 있습니다.
스와치 그룹은 2001년 글라슈테 중심가에 옛 건물을 증축해 글라슈테 오리지날의 본사 및 매뉴팩처 건물을 설립했으며,
수년간의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통해 2008년 4월 현재의 건물을 완공했습니다.
유리로 둘러쌓인 투명하고 모던한 디자인의 건물은 글라슈테 오리지날의 본사이자 새로운 컨셉의 매뉴팩처로 거듭났고,
이후 알프레드 헬위그 시계학교(Alfred Helwig School of Watchmaking, 구 독일시계학교로 2002년 현 이름으로 변경됨)도 이전시켜
글라슈테 오리지날 자체적인 시계 전문 인력 양성의 요람으로 삼았습니다.
- 글라슈테 오리지날 매뉴팩처 건물 전경
저는 지난해 말 크리스마스를 한 주 정도 앞둔 시점에 드레스덴을 거쳐 글라슈테를 방문했습니다.
독일시계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글라슈테는 살면서 한번쯤은 꼭 찾아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막상 드레스덴 시내에서 차를 타고 1시간 가량 글라슈테로 향하는 길목에서도 좀처럼 실감이 나질 않더군요.
그렇게 도착한 글라슈테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기자기하고 고즈넉한 마을이었습니다.
마을 중앙엔 글라슈테 오리지날을 비롯해 옆으로는 랑에 운트 죄네가, 앞에는 노모스와 모리츠 그로스만의 본사가 이웃해 있고,
외곽 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진의 케이스 매뉴팩처인 SUG가, 그 반대편으로는 뮬 글라슈테의 공방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평일이긴 했지만 길거리에 사람이 거의 보이질 않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글라슈테는 실제 거주민의 비중이 크지 않고, 인구 상당수는 이곳의 시계 회사에 다니는 외지인들로 채워진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들 대부분이 인근의 드레스덴에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회사가 문을 닫는 저녁 무렵에는 마을이 더욱 한산해진다고 하네요.
글라슈테 오리지날은 이 건물 안에 케이스 및 무브먼트를 구성하는 대다수(98% 정도)의 부품을 제조할 수 있는 시설을 한데 모아 통합시켰으며,
자체적으로는 매뉴팩처(Manufacture) 보다 매뉴팩토리(Manufactory)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편의상 저는 매뉴팩처로 통일해 표기하겠습니다).
글라슈테 오리지날의 다이얼은 독일 서남부의 중소 도시 포르츠하임(Pforzheim)에 위치한 자체 공방에서 제작하며,
밸런스와 헤어스프링은 스와치 그룹 산하의 니바록스(Nivarox SA)로부터 1등급 부품을 제공받습니다.
가죽 스트랩은 아웃소싱 방식으로 공급받으며, 그외 인조루비를 제외한 나머지 부품들은 자체 매뉴팩처 내에서 모두 소화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매뉴팩처 투어는 그리 길지 않은 2시간 가량에 걸쳐 이뤄졌으며,
투명 컨셉을 적용한 모던한 디자인의 건물 덕분에 조립 라인과 일부 생산 라인은 밖에서도 작업 진행상황을 쉽게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스와치 그룹 산하의 몇몇 브랜드 제조 시설을 방문해 봤지만 이렇게 투명하게 대부분의 공정을 방문객들에게 공개하는 회사는 글라슈테 오리지날이 처음이었습니다.
또한 주요 시설 앞에는 터치스크린을 설치해 공정에 관한 간략한 설명과 제작영상까지 볼 수 있어 이해에 보다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만 브랜드 방침상 방문객이 시설 안에까지는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아쉽게도 공정을 자세하게 확인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이러한 종류의 현지 견학에서 접할 수 있는 특유의 인간적이고 밀착된 느낌까지는 한계가 좀 따랐습니다. 이점 모쪼록 감안해서 이번 매뉴팩처 방문기를 봐주시길 바랍니다.
보다 정밀한 시계 제조를 가능케 하는 각종 마이크로 엔지니어링 툴이 제조되어
시설 바로 옆에 위치한 케이스 및 무브먼트 플레이트(브릿지) 제조 시설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됩니다.
플레이트에 구멍을 뚫는 작은 드릴형의 툴도 자체 생산하고 있으며, 브라스(황동)나 스틸, 베릴륨계 브론즈 등 다양한 소재의 부품들을 커팅하는 스페셜 툴도 있습니다.
고가의 CNC 머신과 스템핑 툴, 각종 정밀 공구들을 활용해 시계의 뼈대가 되는 케이스 및 무브먼트의 틀을 가공하는 공간이 바로 이곳에 펼쳐진 것입니다.
또한 여러 소형 부품들이 제작되는데, 이중에는 밸런스휠이나 팔렛 포크, 스완넥, 클러치 레버, 요크, 투르비용 케이지 같은 섬세한 부품까지도 생산이 가능합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건물 2층에 위치한 각종 휠과 피니언을 제조하는 시설입니다.
더불어 이곳에서는 해당 부품의 폴리싱을 포함한 정밀 가공도 이뤄지는데요.
여느 매뉴팩처에서도 접할 수 있는 시설이지만 한 매뉴팩처 건물 안에 이렇게 체계적으로 관리 운영되는 곳도 실상 많지는 않습니다.
해당 인력은 자체 워치메이킹 스쿨(엔지니어링 관련 수료자) 출신도 일부 있지만, 대대로 시계업에 종사해온 지역민의 자제들도 적지 않습니다.
바로 옆 방에는 조금은 특이하게도(?) 스틸 부품의 하드닝(Hardening)만 전담하는 부서가 따로 마련돼 있습니다.
그 크기나 형태가 섬세하고 정밀함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부품의 경우 글라슈테 오리지날은 별도의 경화 프로세스를 거치는데요. 이를 통해 부품의 내구성을 기합니다.
주로 고온의(600도 정도) 가마에 부품을 넣고 가열했다 식혔다를 반복하는 식으로 이뤄지는데, 이때 가열 온도와 시간이 무척 중요하다고 합니다.
조금만 온도가 높거나 한쪽으로만 가열이 오래 가해져도 부품 전체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기 쉽기 때문이라고...
바로 옆방에서는 커팅 및 드릴링, 초벌 피니싱까지 완료된 플레이트에 얇게 로듐 코팅을 입히는 공정과
초음파 컨테이너 장비에 넣고 갈바나이징(특수아연도금) 처리하는 공정도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글라슈테 오리지날을 상징하는 더블 G로고가 음각된 로터에 더블 G부분만 프로텍팅 라커를 덧입히고
나머지 부분을 제네바 스트라이프 가공하는 모습과 같은 여느 메이커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공정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설 한쪽에서는 각종 무브먼트 피니싱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플레이트에 원형의 페를라주와 저먼 스트라이프를 새기는 작업, 라쳇휠에 선버스트 가공, 밸런스 브릿지 상단 인그레이빙 등 광범위한 피니싱 프로세스가 이뤄졌으며,
고가의 모델의 경우 별도로 컴플리케이션 공방으로 옮겨져 전담 워치메이커에 의해 일일이 수공으로 재가공이 더해집니다.
가령 브릿지의 앵글라주 및 블랙 폴리싱, 주얼캡 폴리싱, 스완넥 폴리싱 등이 다이아몬드 페이스트를 활용해 핸드 피니싱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스완넥 레귤레이터를 다이아몬드 페이스트를 묻힌 전용툴을 활용해 미러 폴리싱하는 과정을 한 워치메이커가 시범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브먼트 고정 스크류를 일일이 하나씩 열에 달구어 블루잉(Bluing) 처리하는 과정을 시연하고 있습니다.
깊은 컬러를 띄는 블루 스크류는 핑크톤의 루비(인조 스톤)와 대비를 이루며 무브먼트의 가시적인 아름다움을 한결 돋보이게 하지요.
무브먼트 플레이트 및 브릿지 측면에 가하는 베벨링(앵글라주) 테크닉을 역시나 워치메이커의 시범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피니싱까지 완성된 부품들은 따로 모아져 프리 어셈블리룸에서 조립이 이뤄집니다.
스크류 밸런스에 작은 스크류(웨이트)를 고정되는 작업이나 헤어 스프링을 결합하고 조정하는 과정은 100% 수작업으로 진행되며,
다른 부품들 역시 일부 기계의 도움을 받지만 어셈블리는 기본적으로 사람의 손길을 거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미세 조정도 병행되며, 일부 고급 무브먼트의 경우 추가 피니싱이 더해지기도 합니다.
이제 건물 3층에 위치한 하이 컴플리케이션 아뜰리에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이곳에서는 파노매틱루나 투르비용, 세네터 투르비용, 세네터 코스모폴리트 같은 주요 모델의 조립 및 최종 검수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지요.
글라슈테 오리지날은 1명의 워치메이커가 무브먼트 조립부터 케이싱, 검수 등 출고 전까지를 완벽하게 책임지는 시스템으로 하나의 시계를 완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