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쉐론 콘스탄틴의 심장을 만나다 - 제네바 플랑레와트 매뉴팩처 취재
지난 SIHH 기간 중 제네바에 위치한 바쉐론 콘스탄틴의 매뉴팩처에 방문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매뉴팩처가 총 4군데에 나뉘어져 있는데, 그 중 방문한 곳은 플랑레와트에 위치한 매뉴팩처입니다. 2005년 브랜드 250주년을 맞아 바쉐론 콘스탄틴은 브랜드의 탄생지인 캐드릴에서 플랑레와트로 매뉴팩처를 대대적으로 이전했는데, 바로 그곳입니다. 여기에서는 시계 디자인, 시계 조립, 조정, 테스트와 더불어 컴플리케이션 시계 제작과 메티에다르 시계 제작과 관련한 공정이 이루어집니다. 아, 그리고 빈티지 워크숍도 이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부품 생산은 제네바가 아닌 발레드쥬 매뉴팩처에서 진행됩니다. 발레드쥬 르브라쉬스에 위치한 이 매뉴팩처에는 R&D 센터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R&D 연구 결과 제작한 피스를 제작하고 테스트하는 연구소 역시 이곳입니다. 그렇다보니 대부분 일반(!) 시계의 부품은 발레드쥬에서 제작되고, 마감 작업 역시 그곳에서 진행합니다. 이곳에서 시계 부품을 제작해 마감까지 마치면 제네바 매뉴팩처로 옮겨지는 것이죠.
캐드릴에 자리하던 유서 깊은(!) 공방과 달리 바쉐론 콘스탄틴의 플랑레와트 매뉴팩처는 매우 현대적인 인상을 풍깁니다. 매뉴팩처 입구로 들어와 로비에 들어서면 높은 천정과 계단이 눈에 들어오면서 정면으로 펼쳐지는 아트월이 보입니다. 이는 250주년을 기념해 로컬 아티스트와 협업해 바쉐론 콘스탄틴을 상징하는 여러 가지 시그너처나 비주얼, 문구들로 꾸며놓은 작품입니다. 바쉐론 콘스탄틴이 시작된 캐드릴의 종탑 이미지나, 바쉐론 콘스탄틴의 완벽함을 상징하는 모토인 '가능하면 더 잘하라. 그것은 언제나 가능하다(물론 불어로 말이죠)'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25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아트월
로비 한편에는 스위스 로잔 예술대학교(ECAL)과의 협업을 통해 제작한 독특한 시계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이 공간에서는 수시로 전시 작품을 바꿔가며 다양한 전시를 보여준다고 하는데요. 저희가 방문했을 때는 세 개의 시계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우선 첫 번째는 공 리피터(Gong Repeater)라는 이름의 조르디 플라(Jordi Pla) 작품으로 시간을 소리로 들려주는 미니트리피터에서 직접적으로 영감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티벳에서 공수한 청동 소재의 볼(bowl)을 담고 있는 이 시계의 경우 손이 센서 앞을 지나가면 시계가 미니트리피터처럼 시, 쿼터, 분을 알려주는 식입니다.
- 조르디 플라의 공 리피터
레이첼 수밍(Rachel Suming)의 이클립스(ECLIPSE)는 기요셰로 장식한 세 개의 플레이트들이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면서 시간의 흐름만을 보여주는 시계입니다.
- 레이첼 수밍의 이클립스
제이크 무렙(Jake Mooreb)의 작품 화이트(Whyte)는 기관차의 바퀴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전통적인 시계의 모습에서 탈피하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합니다. 기존의 시계 바늘 두 개 대신 시와 분을 동시에 보여주는 하나의 바늘을 탑재하고 있습니다. 이 바늘이 계속해서 움직이는데, 바늘이 안쪽 원과 바깥쪽 원에 닿는 부분을 읽으면 됩니다(즉 이미지의 시간은 11시입니다).
- 제이크 무렙의 화이트
이제 매뉴팩처 안으로 들어가볼까요? 로비를 제외하고는 사진 촬영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내부 사진은 공식 사진으로 대체합니다. 사실 매뉴팩처를 방문한 때가 SIHH 기간 중이었던 탓인지 전반적으로 아틀리에에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았습니다.
우선 모든 공정 과정에 앞서 매뉴팩처 내에서 '브레인' 역할을 하는 디자인 센터와 마주했습니다. 일반적인 시계를 비롯해 유니크 피스, 특별 제작 피스, 혹은 주문 제작으로 이뤄지는 아틀리에 캐비노티에 피스 등과 관련해 모든 부서와 긴밀하게 협력하며 말 그대로 '와우(WOW!)'한 시계를 제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곳입니다. 물론 디자인 센터는 극비의 사항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출입 불가였습니다.
- 디자인 센터에서 작업한 스케치
본격적인 투어의 시작입니다. 일반 시계(Regular Production)의 경우 각각의 공정들이 아틀리에 단위로 묶여 있었습니다. 다른 매뉴팩처의 경우 방의 이름을 명명할 때 브랜드의 컬렉션 이름을 가져오거나 아니면 암호처럼 만들어놓는 경우도 있는데, 바쉐론 콘스탄틴은 각 방의 이름에 공정명을 매우 정직하게(!) 가져와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Assembly', 'Casing' 이런 식으로 말이죠(개인적으로 매우 바쉐론 콘스탄틴스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수작업 마감 작업은 발레드쥬에서도 진행하지만 제네바에서도 일부 진행한다고 합니다. 여기서는 페를라주와 제네바 스트라이프 패턴을 새기는 워치메이커들의 작업 과정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발레드쥬에서 부품이 도착하면 조립(Assembly) 아틀리에로 옮겨집니다. 이곳에서는 시계의 기어 트레인과 동력 전달 장치와 관련된 부품을 조립합니다. 루비를 각 시계 부분에 맞게 다시 세팅하면서 디테일하게 조립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아직 이때까지는 시계가 작동하기 전 상태입니다. 그리고는 조정(Adjustment) 아틀리에로 옮겨집니다.
조정은 조립과 비교해 더욱 고차원의 기술을 필요로 합니다. 수세기 전부터 워치메이킹에 있어 조정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했습니다. 다시 말해 더 숙련된 워치메이커가 관여를 하게 되고, 이스케이프먼트와 밸런스 휠 조립을 진행합니다. 조립 후 각각의 밸런스 휠 진동각을 보고 밸런스 휠의 조정을 직접 하게 됩니다. 똑같은 시계라도 얼마만큼 숙련된 워치메이커가 조정을 하냐에 따라 시계 성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수 차례의 조정을 거친 무브먼트는 케이스에 안착되기 전 최종 진동각 테스트를 거치게 되고 이 테스트에 통과한 무브먼트만이 케이싱(Casing) 아틀리에로 이동하게 됩니다.
케이싱 아틀리에에서는 시계 무브먼트와 다이얼, 바늘을 조립하고 최종적으로 케이스를 덮는(!) 작업을 합니다. 케이싱 과정에서 실수가 생길 경우 조정을 다시 거쳐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세심함이 요구된다고 합니다. 케이싱을 한 후에는 오차 테스트, 기압 테스트, 파워리저브 테스트, 기능 테스트 등을 다시 한번 거칩니다.
그 다음 행선지는 제네바 홀마크 아틀리에입니다. 바쉐론 콘스탄틴에 있어 제네바 홀마크는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특히 2011년부터는 무브먼트뿐 아니라 시계 전체에까지 제네바 홀마크 기준을 적용해 좀 더 엄격한 테스트를 거치게 되었죠. 제네바 홀마크 아틀리에의 경우 바쉐론 콘스탄틴 매뉴팩처 내부에 자리하고 있기는 하지만 제3의 독립적인 기관인 제네바 주 정부 산하 타임랩(Timelab)이 주관합니다. 그리하여 타임랩의 감사 아래 시계 테스트를 진행합니다. 일주일 동안 착용했을 때의 시뮬레이션 테스트, 파워리저브 테스트, 기능 테스트를 거칩니다. 당연히 테스트에 통과해야만 시계가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으며, 테스트에 실패할 경우 조립 또는 조정 아틀리에에서부터 다시 작업이 시작됩니다.
지금까지 언급한 부분은 일반 시계의 제작 과정입니다. 컴플리케이션 이상으로 올라가면 이제 작업 과정이 달라지는데, 워치메이커 한 명이 모든 조립과 조정 작업을 담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A부터 Z까지 책임지며, 최종 케이싱 작업까지 모두 동일한 워치메이커의 몫입니다. 하이 컴플리케이션이나 익셉셔널 피스(Exceptional Piece)의 경우 필요한 부품을 직접 만들어내기도 하며, 부품을 만들기 위한 도구까지도 직접 만들어낸다고 합니다(제작 과정에 들어갔을 워치메이커의 공을 떠올려보면 하이 컴플리케이션 시계의 천문학적(!) 금액이 이해가 가긴 합니다).
컴플리케이션 공방에서는 바쉐론 콘스탄틴의 패트리모니 울트라 슬림 미닛 리피터 Cal. 1731를 공진기(resonator)에 올려놓고 소리도 직접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무브먼트 두께 3.9mm를 자랑하는 얇은 미니트리피터죠. 특히 특허를 받은 사일런트 구심 조속기(Silent Centripetal Speeding Regulator) 덕분에 소음이 나지 않아 더욱 맑은 소리를 자랑합니다.
- 패트리모니 울트라 슬림 미닛 리피터 Cal. 1731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메티에 다르 공방입니다. 바쉐론 콘스탄틴하면 메티에 다르 컬렉션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말 그대로 손이 만들어내는 예술의 향연을 만날 수 있는 컬렉션입니다. 원시 시대의 마스크에서 영감을 가져온 '레 마스크', 샤갈의 벽화를 그대로 재현한 미니어처 페인팅의 정수를 볼 수 있는 '샤갈 & 파리 오페라', 전 세계 장식 공예에서 영감을 가져온 '패뷸러스 오너먼트', 인그레이빙, 기요셰, 젬세팅의 진수를 엿볼 수 있는 '레 주니베르 장피니' 등이 바로 그 예입니다.
- 메티에 다르 샤갈 오페라
- 메티에 다르 사부아 알루미네
- 메티에 다르 오마쥬 아 라르 드 라 당스
- 메티에 다르 패뷸러스 오너먼트
실제로 '메티에 다르 그랜드 익스플로러'를 하이 컴플리케이션 공방에서 볼 기회가 있었는데, 이는 제작 과정 중 실패(!)한 시계로 덕분에 직접 눈앞에서 만져보며 감상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 메티에 다르 그랜드 익스플로러
메티에 다르 공방에서 처음 들른 곳은 에나멜 공방입니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800~900도 사이의 고온에서 굽는 그랑푀 에나멜 기법을 사용합니다. 적게는 5번, 많게는 8번 이상 작은 화덕에서 원하는 컬러를 낼 때까지 굽는 과정을 거칩니다. 에나멜링 작업의 경우 '샤갈 & 파리 오페라'처럼 거대한 무언가를 극도로 작게 재현하는 '미니어처 페인팅', 다이얼 위에 금 실로 스케치를 하고 그 위에 에나멜을 채우는 '클루아조네', 이와는 반대로 모티브를 파낸 후 그 부분을 에나멜로 채우는 '샹르베', 또한 다른 곳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그리자이유'도 있습니다. 이는 일종의 흑백 효과를 내는 기법으로 한 가지 색으로 명암을 표현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두 번째는 기요셰 아틀리에입니다. 특히 기요셰의 경우 바쉐론 콘스탄틴은 프랑스 메티에다르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기요셰 장인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가 제자 한 명을 두고 모든 기요셰 작업을 진행하는데, 수직 패턴을 만들어내는 엔진, 원형 패턴을 만들어내는 엔진 이 두 가지 기법만을 조화시켜 수십 가지의 경우의 수를 만들어내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공방 한 켠에 영감을 받은 요소들과 패턴 스케치들이 함께 놓여 있었는데, 그것을 살짝 들여다보고는 그들의 창의성에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 인그레이빙 없이 기요쉐로만 스케치하고 새겨넣은 용
인그레이빙 아틀리에에서는 0.4~1.0mm 두께의 평면적인 골드 플레이트에 입체적으로 스케치하고 조각하는 기술력을 보유한 장인이 작업합니다. 그 역시 프랑스 메티에다르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고 합니다.
젬 세팅 공방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은 메티에 다르 기법 중에서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필요한 스톤을 확보해 그것을 원하는 크기로 커팅하는 것 자체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겠죠. 이외에 스톤 클루아조네를 위한 스톤의 커팅과 마케트리 작업을 하는 소규모 아틀리에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메티에 다르 공방을 마지막으로 매뉴팩처 투어가 마무리되었습니다.
바쉐론 콘스탄틴의 시계가 만들어지는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매뉴팩처를 나오면서 다시 한 번 로비에 있는 거대한 아트월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26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바쉐론 콘스탄틴이 쌓아온 고귀한(!) 워치메이킹 유산이 한 눈에 펼쳐져 있었죠. 이런 풍성한 유산을 지닌 그들이 앞으로 어떤 역사를 써내려 갈까요? 물론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할 것 같습니다. 분명 주목할만하다는 가치가 있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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