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10: Be Animated! 특별한 움직임을 담은 시계
사실 시계는 필연적으로 '움직임'을 담고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끊임없이 흐르는 시간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다이얼 위, 그리고 다이얼 안에서도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죠.
그게 바로 시계의 숙명이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여기에 좀 더 특별한 '움직임'이 가미된다면 어떨까요?
이를테면 애니메이션을 부여하는 것이죠.
단순한 바늘의 움직임만이 아닌, 시선을 사로잡는 시계 위 흥미로운 움직임이 더해지면 시계에는 생동감 넘치는 생명력이 부여됩니다.
이번 테마 10에서는 다이얼 위에서 한 송이 꽃이 만개하는 시계, 아름다운 새가 지저귀는 시계,
마치 블랙홀처럼 가운데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시계, 빨대 안 주스처럼 액체가 움직이는 시계 등
특별한 움직임을 담은, 애니메이션으로 매력을 배가시킨 시계 10개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1. 해리 윈스턴의 오퍼스 14(Opus 14)
2013년 선보인 오퍼스 13에 이어 얼마 전 오퍼스 14가 공개되며 오랫동안 기다린 팬들에게 반가움을 선사했죠. 이번 오퍼스는 레드나 블루, 별 디테일, 11시 방향 미국 도로 표지판을 연상시키는 플레이트 등 매우 미국적이면서도 복고적인 느낌이 강합니다. 실제 미국의 1950년대 주크박스에서 영감을 가져왔습니다. 기능은 시간 표시와 함께 GMT, 날짜 기능을 갖추고 있습니다. 기능상으로는 그리 특별할 것이 없지만 이 기능을 흥미로운 방식으로 확인하도록 만들었는데요. 바로 애니메이션을 활용한 것입니다! 마치 주크박스에서 원하는 노래의 판을 불러오듯 원하는 기능을 호출하는 방식으로 제작한 것이죠. 9시 방향 케이스 옆에는 레버가 있고, 이 레버를 GMT, DATE, ★ 중 원하는 기능에 놓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DATE에 레버를 놓고 4시 방향의 푸시 피스를 누르면 날짜를 보여주는 디스크가 9시 방향 쪽에서 툭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레코드 판 불러내듯 말이죠. 참고로 별 모양에 놓을 경우 해리 윈스턴 로고와 별 모양을 새긴 디스크가 튀어나옵니다. 실질적인 기능이라기보다 장식적인 요소라고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4시 방향 푸시 피스를 다시 누르면 디스크가 제 자리로 돌아갑니다. 특별할 것(!) 없는 기능을 움직이는 오토마톤 방식으로 보여줄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2. 파르미지아니의 토릭 칼레이도스코프(Toric Kaleidoscope)
칼레이도스코프(Kaleidoscope)는 프랑스어로 만화경이라는 뜻으로 둥근 통 속에 색깔이 있는 종이를 넣고 빙글빙글 돌려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습니다. 토릭 칼레이도스코프는 단연 애니메이션이 주인공인 시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다이얼 가운에 소용돌이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는데요. 바로 독립적인 레이어로 제작한 이 부분이 시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곳입니다. 기능은 시, 분과 더불어 미닛 리피터를 장착했습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 미닛 리피터 기능조차도 소용돌이 부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왼쪽에 있는 레버를 당겼다 놓으면 미닛 리피터가 시간을 알려주는데, 웨스트민스터 종소리를 그대로 재현한 것은 물론 그 소리에 맞춰 다이얼 아래 있는 이 레이어 부분이 회전하기 시작합니다! 마치 칼레이도스코프처럼 말이죠. 지켜보고 있으면 마치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신비로운 느낌이 듭니다. 유니크 피스로 45mm 사이즈 케이스 소재는 18K 화이트 골드, 바늘은 로즈 골드 소재로 제작했습니다. 다이얼의 짙푸른 컬러가 매력을 더합니다.
3. 율리스 나르당의 한니발 미닛 리피터(Hannibal Minute Repeater)
우선 이 시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소개하기 전 자케마르(Jaquemart)에 대해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자케마르는 오토마톤과 비슷한 듯 다릅니다. 오토마톤이 움직이는 것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면, 자케마르는 움직임이 소리와 관련을 지닌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즉 자케마르는 리피터 소리에 맞춰서 오브제가 움직입니다. 치밀한 계산이 필요한 거죠. 사실 자케마르는 쉽게 접하기 힘든 기능인데, 이 자케마르의 대가로 율리스 나르당을 꼽을 수 있습니다. 동물들이 등장해 움직이는 사파리, 세상을 호령한 칭기즈칸, 알렉산더 대왕 등을 주제로 한 자케마르 시계를 선보여온 율리스 나르당은 올해 또 하나의 자케마르 시계를 소개했습니다.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 바르카를 주인공으로 한 한니발 리피터입니다. 한니발 장군은 제2차 포에니 전쟁 중 군사와 코끼리를 이끌고 피레네와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여정이 바로 한니발 미닛 리피터 안에 담겨 있습니다. 말에 올라탄 한니발 장군은 충성스러운 코끼리와 군사의 엄호 아래 움직이고 있습니다. 배경을 이루는 산과 주변 지형 역시 18K 화이트 골드 소재로 모두 수공 제작했습니다. 심지어 다이얼 위 화강암 소재는 한니발 장군이 전쟁 당시 넘어갔던 알프스 산맥에서 공수해온 것이라고 합니다. 왼쪽부터 방패를 들고 전투 중인 한니발, 말에 탄 한니발, 한니발의 코끼리, 군사 이렇게 4개의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말에 탄 한니발은 시간을 알리는 소리에 맞춰 칼을 휘두르고, 15분 간격을 알리는 소리에 네 개의 모티브가 동시에 움직이며(칼을 든 이들은 칼을 휘두르고 코끼리는 코를 휘두르는 식), 분을 알리는 소리에 맨 오른쪽 군사가 칼을 휘두르는 애니메이션이 전투 장면을 보는 듯 흥미롭습니다.
4. 리차드 밀의 RM 19-02 뚜르비용 플라워
2015년 SIHH에서 리차드 밀이 가장 야심차게 선보인 신제품은 의외로 여성 제품이었습니다. 투르비용을 꽃으로 감싼 RM 19-02였죠. 이 시계의 핵심 포인트는 바로 다이얼 아래에 자리한 플라잉 투르비용입니다. 5개의 꽃잎이 투르비용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 이색적입니다. 이 꽃은 목련으로, 여리여리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수백만 년 전부터 지구에 존재하며 강한 생명력을 보여준 꽃입니다. 바로 이 꽃잎이 움직입니다! 발레리나가 우아하게 팔을 펼치듯 서서히 열리면서 꽃이 품고 있는 플라잉 투르비용이 모습을 드러내는 거죠. 특히 이 플라잉 투르비용은 꽃잎이 열릴 때 위로 1mm씩 올라오도록 설계해 더욱 드라마틱한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투르비용이 완전히 드러나면 안에서 주얼리를 세팅한 꽃술이 다시 나타나며 목련에 생동감을 부여합니다. 일정한 시간마다 꽃잎이 자동으로 움직이게 설정할 수도 있고, 원할 때 9시 방향 푸셔로 작동시킬 수도 있습니다. 무브먼트의 다섯 개 레버가 각각의 꽃잎과 연결되어 있고, 긴 피니언으로 결합한 장치가 플라잉 투르비용과 꽃의 수술을 들어올리며 이러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냅니다.
5. 자케 드로의 버드 리피터 제네바(Bird Repeater Geneva)
몇 년 전 자케 드로는 서정적이면서도 감성적인 버드 리피터를 선보인 바 있습니다. 어미새가 둥지 위 아기 새에게 먹이를 먹여주는 광경이 꽤 뭉클했습니다. 이 시계는 오토마톤의 대가인 자케 드로의 창립자 피에르 자케 드로에게 헌정하는 의미도 담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동으로 움직이는 인형인 오토마톤의 대가였는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피아노를 치는 작가,예술가, 음악가 오토마톤 등 다양한 작품을 소개했었죠(심지어 1770년대에 제작했다는 사실 역시 놀랍습니다). 올해 8피스 한정으로 선보인 버드 리피터 제네바는 피에르 자케 드로가1784년 자신의 세 번째 워크숍을 오픈한 도시 제네바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제작했습니다. 이 새로운 버드 리피터의 배경이 바로 제네바인 것입니다. 제네바의 상징들이 화이트 머더오브펄 다이얼 위에 모두 모여있습니다. 페인터와 에나멜러들이 한데 모여 제네바 호수의 유명한 분수와 살레브 산 등을 미니어처 형태로 그대로 구현해냈습니다. 다이얼 중앙에서는 새들의 천국이라고 여겨지는 루소 섬에 둥지를 튼 황금방울새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골드를 직접 손으로 조각해 완성한 이 새와 함께 두 마리 아기 새가 둥지 속 알 옆에 앉아있습니다. 오토마톤의 대가를 창립자로 둔 자케 드로답게 이 시계에는 다채로운 애니메이션이 펼쳐집니다. 부모 새들이 아기 새들을 먹이고, 새들이 날개를 펼치고, 배경의 물이 흐르고, 알이 부화하는 것입니다!
- 버드 리피터 제네바의 모태가 된 버드 리피터가 움직이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대신 첨부합니다.
6. HYT의 H2
하이엔드 워치메이킹과 유체역학(liquid mechanics)이라는 이색적인 분야의 결합을 시도하는 시계 브랜드 HYT. 다이얼 위에서 형광빛 액체가 왔다갔다 하며 보여주는 일종의 '애니메이션'이 꽤 이색적인데요. 그래서 한번 보면 잘 잊혀지지 않는 강렬한 인상을 자랑합니다. 오데마 피게 산하 르노 에 파피와 협업해 소개한 H2 티타늄 플래티넘 스켈레톤은 빨간색 형광 물질로 시를 표시하고, 가운데 분침으로 분을 표시합니다. 즉 사진의 시계가 가리키는 시각은 10시 34분입니다. 인덱스 6이 다이얼 안으로 치고 들어온(!)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분침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궁금해집니다. 분침이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보면 30분까지는 정방향으로 움직이다가 30분에 도달하는 순간 레트로그레이드 방식으로 점핑해 반대쪽 30분 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재미있습니다.
- 안타깝게도 해당 시계의 공식 동영상이 없는 관계로 액체가 움직이는 모습을 참고할 수 있는 H1 공식 동영상을 대신 아래에 소개합니다.
7. 반클리프 아펠의 포에틱 위시(Poetic Wish)
이 제품은 최근 소개된 것은 아니지만 이만큼 로맨틱한 애니메이션을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에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우선 2007년으로 함께 거슬러올라가볼까요? 2007년 선보인 포에틱 컴플리케이션 레이디 아펠 페어리에 등장한 요정은 요술 지팡이로 시간을, 날개로 분을 가리키며 한 소녀에게 앞으로 다가올 마법 같은 사랑을 예고했습니다. 2008년 선보인 윈 주르네 아 파리(파리에서의 하루)에서 모습을 드러낸 그 소녀는 파리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랑을 꿈꿉니다. 2010년에는 그 소녀가 어느덧 성숙해 퐁 데 자모르 시계의 파리 밤하늘 아래 다리 위에서 연인과 마주했습니다(하루에 2번 만나 달콤한 키스를 나누었죠). 그리고 2012년 두 연인의 사랑은 포에틱 위시에서 다시 한번 이뤄집니다. 여자가 주인공이 된 '레이디 아펠 포에틱 위시'에서는 한 명의 숙녀가 에펠탑 위에 서서 하늘을 나는 연을 바라보며 소원을 빕니다. 크라운을 돌리면 그녀가 다이얼 중앙으로 이동하며 시간을, 그리고 연은 하늘로 날아오르면서 분을 표시합니다(일종의 레트로그레이드 방식입니다). 또 그녀와 구름이 만나는 순간 종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소리로 시간을 알려줍니다. 5분 미닛 리피터로 예를 들어 3시25분일 경우 동동동(3시), 딩딩딩딩딩(25분) 이렇게 울리는 식입니다. 시간을 표시한 후에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남자가 주인공이 된 '미드나잇 포에틱 위시'에서는 노트르담 대성당 테라스 위에서 연인을 그리워하는 청년이 등장합니다. 크라운을 돌리면 청년이 움직이며 시간을, 별똥별이 하늘을 가로지르며 분을 표시합니다. 역시 청년과 구름이 조우하는 순간 대성당 종소리가 울리듯 소리로 시간을 알려줍니다. 이는 장 마르크 비더레흐트의 작품으로 해머를 가운데 놓기 위해 중심부를 오픈 구조로 디자인한 점이 독특합니다.
8. 크리스토프 클라레의 마고(Margot)
잭팟 시계, 핀볼 시계 등 위트 있는 아이디어를 선보여온 크리스토프 클라레가 작년 브랜드 최초의 여성용 컴플리케이션 '마고(Margot)'를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호응에 힘입어 마고의 후속작이라고 할 수 있는 '마거리트(Marguerite)'도 소개했죠.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올해의 마거리트보다 마고가 더 흥미롭다고 생각되어 마고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꽃잎을 떼며 그가 나를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라고 읊조리는 여인에게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2시 방향의 푸셔를 누르면 다이얼 위 꽃잎이 하나씩, 때로는 두 개씩 다이얼 뒤로 사라지는 모습이 매우 신비롭습니다. 꽃잎이 모두 떨어지고 나면 다이얼 4시 방향에 그가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대한 해답이 나타납니다. 'Un peu(약간)', 'beaucoup(많이)', 'passionnement(열정적으로)' 등으로 말이죠. 푸셔를 누를 때마다 소리도 함께 울려 퍼지는데, 이 소리가 해답이 나올 때까지의 긴장감을 고조시킵니다. 4시 방향의 푸셔를 누르면 꽃잎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냅니다.
9. 까르띠에의 발롱 블루 드 까르띠에 바이브레이팅 세팅 워치
이 시계는 앞서 소개한 시계들의 움직임과는 조금 다른 애니메이션입니다. 시계가 조금만 움직여도 시계 다이얼 위 다이아몬드들이 한알 한알 '떤다는' 점에서 더욱 다르죠! 마치 스프링을 달고 있는 듯 탱글탱글(!) 흔들리면서 떨리는 모습이 장관을 만들어냅니다. 물론 움직일 때마다 빛을 반사하기 때문에 다이아몬드의 광채가 더욱 반짝입니다. 마치 손목 위에서 시계가 살아있는 듯 말이죠. 사실 이것은 오래된 주얼리 세팅 기법에서 영감을 받은 것인데, 바로 '트렘블링 세팅(trembling setting)'이 그것입니다. 여기서는 다이아몬드를 고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세팅하는 것이 관건입니다(물론 아무데서나 할 수 없는 고난도 기법입니다). 까르띠에는 이 고전적인 기법에서 영감을 받은 바이브레이팅 세팅을 시계 다이얼에 적용하는 데 성공했습니다(덕분에 몇 건의 특허 출원을 하기도 했고요). 움직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인지 엑스트라 플랫 430 MC 무브먼트를 탑재해 미니멀하고 심플한 형태의 시계로 선보였습니다. 고유 번호를 새긴 20개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선보입니다.
10. MB&F의 스타플릿 머신(Starfleet Machine) - 레페 1839 by MB&F
이 시계는 탁상 시계입니다. 물론 예사로운 탁상 시계는 아닙니다. 마치 우주선 혹은 괴생명체를 연상시키니까요. 뭐, MB&F스럽기는 합니다. 오히려 이것을 함께 작업한 브랜드가 레페(L'Epee)라는 점이 의외였습니다. 레페는 1839년 탄생한 매우 유서 깊은 클록 브랜드입니다. 오랜 전통을 지닌 레페가 이처럼 '파격적인' 시계를 함께 만들어내다니 놀라웠습니다. 중앙에 위치한 블랙 돔에서 시와 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계에 진짜 매력을 부여하는 부분은 바로 돔 12시 방향 아래에 있습니다. 두 개의 바늘이 레트로그레이드 형태로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데, 바늘이 20초 간격으로 서로 맞닿았다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적기를 감지하는 레이저를 연상시켜 웃음을 자아냅니다. 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센스 넘치는 애니메이션 덕분에 스타플릿 머신의 매력이 더욱 극대화되기도 하고요. 40일간의 긴 파워리저브 덕분에 맘껏 신나는 우주여행(!)을 즐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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