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레라 파나메리카나(Carrera Panamericana), 타르가 플로리오(Targa Florio), F1 같은 유명한 레이스, 모나코(Monaco), 몬자(Monza), 실버스톤(Silverstone) 같은 서킷의 이름은 전부 태그호이어의 모델명으로 사용되었거나 지금도 사용 중입니다. 사람의 이름처럼 시계의 이름도 중요할 수 밖에 없는데, 시계의 이름에 레이스와 서킷 명을 줄기차게 가져왔다는 사실은 이것이 태그호이어에 있어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도로와 서킷이 있다고 해서 저절로 드라마가 만들어지지 않죠. 드라마의 주인공이 사람이듯 레이스의 주인공 또한 사람입니다. 때문에 태그호이어는 서킷 위에서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인 레이서와 인연이 깊은 브랜드이기도 합니다.
스티브 맥퀸과 현재의 모나코
앰버서더 전략, 즉 유명인을 내세워 브랜드의 홍보를 맡기는 전략은 요즘에야 어느 브랜드에서도 볼 수 있는 흔한 일이 되었지만 이를 본격적으로 제시한 브랜드가 태그호이어입니다. 푸른색 다이얼의 모나코를 착용한 영화배우 스티브 맥퀸의 필모그래피는 아주 화려하죠. 다양한 주제를 담은 영화에 등장했는데요. 황야의 7인, 빠삐용, 타워링이 그의 대표작으로 한번쯤 그를 만나 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 그가 출현했던 영화는 다양하나 몇 가지 장르에서 도드라집니다. 액션 영화의 비율이 높은 편이고, 액션 영화에서 빛나는 터프함이 스티브 맥퀸의 매력 중 하나였지 않았나 합니다. 또 하나는 그가 형사로 출현한 불리트(Bullit)나 레이서로 열연했던 르망(Le Mans)처럼 자동차 추격전, 레이스와 연관된 영화가 눈에 띄는데요. 아마도 스티브 맥퀸이 레이스 광이었던 점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가 르망에서 레이서로 분할 때, 리얼리티를 위해 운전연습을 받도록 했습니다. 그 때 맥퀸을 지도했던 사람이 F1 드라이버인 조세프 조 쉬퍼르였습니다. ‘크레이지 스위스(Crazy Swiss)’ 조 쉬퍼르는 스위스 출신으로 스위스 출신의 레이서로는 F1에서 첫 승리를 거두었으며, 통산 2승을 올린 바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1971년 레이스 도중 머신이 코너에서 균형을 잃고 서킷을 이탈하자마자 곧바로 불길에 휩싸이게 되었고, 탈출에 실패하며 세상을 뜹니다. 당시의 사고 영상을 보면 검은 연기로 인해 사고장소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는데요. 사인은 화염과 연기로 인한 질식사이며 이 사건을 계기로 F1 머신에 자동소화장치와 헬멧에 산소공급장치의 장착이 의무화 되기에 이릅니다.
스티브 맥퀸과 조 쉬퍼르
조 쉬퍼르(Jo Siffert)
조 쉬퍼르는 1968년 F1에서 스폰서 광고금지가 해제되자 당시의 호이어와 계약을 맺습니다. 호이어의 입장에서는 스위스 출신의 F1 레이서라는 부분이 상당히 맘에 들었을 겁니다. 호이어와 계약을 맺은 조 쉬퍼르는 호이어의 시계를 착용하며 앰버서더로 활동하게 되는데, 스티브 맥퀸의 운전을 지도하며 그에게 자신의 모나코를 권하게 됩니다. 또 자신이 소유한 포르쉐를 영화에 사용하도록 허락해 주기도 합니다. 스티브 맥퀸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입니다. 아무래도 시계에 눈이 가는 입장이라 영화 르망에서의 모나코는 당연하게도 대사 하나 없지만 조연의 하나로 느껴질 만큼 인상적입니다. 쉬퍼르의 캐리어는 10년 정도로 비교적 짧았습니다. 하지만 1968년 영국 GP에서 F1 첫 승리를 스위스에게 가져다 주었고, 캐리어 후반부터 F1과 내구레이스를 겸하기 시작해 이탈리아에서 벌어지는 랠리인 타르가 플로리오에서 팀을 이뤄 승리하기도 했죠. 비록 35세로 짧은 생을 마감했으나 스위스와 호이어로서는 잊을 수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쉬퍼르하면 떠오르는 콧수염과 풍성한 머리 숱을 뒤로 빗어 넘긴 그 만의 스타일도 함께요.
아일톤 세나
호이어가 1960~1970년대를 조 쉬퍼르와 함께 했다면, 1990년대는 전설이 된 F1 레이서 아일톤 세나와 함께했습니다. 아일톤 세나는 전설로 부르는데 그 누구도 이견이 없을 인물이죠. 탑기어에서 전, 현역 드라이버를 대상으로 누가 최고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부분이 세나를 꼽았고, 영국 잡지 ‘F1 레이싱’에서도 역시나 세나를 손꼽았습니다. 통산 41승, 챔피언 3회로 그 외에도 무수한 기록을 지니고 있으며 1994년 사고로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기록은 더욱 늘어났을지도 모릅니다. F1에서 30승 이상을 거둔 인물은 미하엘 슈마허, 세나와 같은 시기(물론 슈마허도 그 중 한명이지만 캐리어 후반에 만났습니다) 경쟁했던 알랭 프로스트와 나이젤 만셀 현재는 루이스 해밀턴, 세바스찬 베텔, 페르난도 알론소 정도에 불과합니다. 세나는 브라질 상파울로 출신입니다. 유복한 가정 환경 덕에 세나는 네 살 생일선물로 카트를 선물로 받고 달리는 일에 열중하기 시작합니다. 13세가 되자 카트로 본격적인 레이싱 캐리어를 쌓아 올렸고 1983년 F3에 입성하죠. F3를 압도적인 성적으로 평정한 뒤, 1984년 드디어 F1에 첫발을 디딥니다. 처음에는 톨먼(Toleman)에 입단했으나 바로 로터스로 이적합니다. 로터스로 이적한 1985년 4월 21일, 폭우가 내리던 포르투갈 GP에서 염원하던 첫 승을 거두게 됩니다. 아마 이때를 경계로 세나는 비에 강하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나 싶은데요. 로터스에서 3년을 보낸 세나는 1988년에 맥라렌으로 다시 이적합니다. 1994년 윌리엄스로 이적하기 전까지 1988, 1990, 1991년 총 세 차례의 챔피언에 오르게 되며, 이 무렵이 세나의 전성기였습니다.
1991년 Don’t Crack. Under Pressure’ (위)/ Remember Senna (아래)
2015년 다시 등장한 세나 에디션. 까레라 칼리버 16 오토매틱 크로노그래프 블랙 버전 44MM 세나 스페셜 에디션
까레라 칼리버 16 오토매틱 크로노그래프 44MM 세나 스페셜 에디션
포뮬러 1 크로노그래프 세나 스페셜 에디션
서킷 밖에서는 많은 선행으로 존경 받았지만, 서킷에서는 구설에 오른 적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의 레이스 스타일은 스티어링 휠을 잡으면 다혈질로 돌변해 저돌적이었고 때론 위험한 주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상대로 하여금 더티 플레이어로 불리기도 했고, 당시 FIA 회장으로부터는 위험한 드라이버로 낙인 찍혀 수퍼 라이선스 (F1에서 달릴 수 있는 자격)발급에 위기를 맞기도 하죠. 세나는 세 번째이자 마지막 챔피언에 오른 1991년 태그호이어가 벌인 ‘Don’t Crack. Under Pressure’ 캠페인의 첫 번째 주인공이 됩니다. 요즘 태그 호이어가 다시 쓰고 있는 문구이기도 한데요. 1980년대 태그호이어의 모회사인 태그는 맥라렌에 엔진(포르쉐 엔진에 터보차저를 개발해 장착)을 공급하며 맥라렌에 수 차례 우승을 안기기도 했죠. 세나가 맥라렌에 몸담고 있던 시절은 태그가 아닌 혼다의 엔진을 사용했던 것 때문인지, 태그호이어에서 포뮬러 1이라는 새로운 라인업은 등장했지만 당시 F1을 대표하던 세나 에디션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는 사소한 이유였겠고 스폰서십과 관계된 더욱 복잡한 문제가 있었을 것입니다. 태그호이어에서 세나 에디션이 나오게 된 것은 세나가 1994년 5월 1일 이탈리아 이몰라 서킷에서 방호벽에 부딪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뒤부터입니다. 당시 태그호이어에서 주력 모델이었던 링크를 중심으로 매우 다양한 세나 에디션이 등장하는데, 특히 일본에서의 반응이 아주 뜨거웠습니다. 세나가 활약하던 시절 혼다의 엔진 공급 등으로 F1의 관심이 커졌을 때 인데다가, 세나의 상품성(?)도 빼어났기 때문인데요. 링크 대신 까레라가 태그호이어를 다시 대표하면서 세나 에디션은 한동안 발매되지 않았다가, 올해부터 다시 등장하며 그를 기리고 있습니다. 재빠르게 코너를 빠져나가는 세나의 주행궤적을 연상케 하는 S자 로고는 그의 상징으로 세나 에디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번 까레라와 포뮬라 원으로 다시 보게 된 로고가 반갑게 느껴집니다.
스티브 맥퀸과 루이스 해밀턴이 출연한 듀얼(Duel)
모니코 칼리버 12 LS 오토매틱 크로노그래프 40.5MM
러시아 GP에서의 우승으로 시즌 9승을 올린 루이스 해밀턴은 현 F1에서 최고로 손꼽힙니다. 루이스 해밀턴은 스티브 맥퀸과 가상 대결을 벌인 필름인 듀얼(Duel)에 출연해 태그호이어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올드 머신의 맥퀸과 선두자리를 다투는 내용의 짧은 필름이지만, 마치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듯 자연스러운 합성과 꽤 박진감 넘치는 주행영상이 인상적입니다. 여기에서도 맥퀸은 오리지날의 푸른색 모나코를 차고 나오고, 루이스 해밀턴은 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칼리버 12 LS 오토매틱 크로노그래프를 착용하여 흥미로운 대비를 보여준 바 있습니다.
후안 판지오
단종된 까레라 16 후안 판지오 에디션
조 쉬퍼르, 아일톤 세나, 루이스 해밀턴의 시대보다 훨씬 이전 1950년대 5회 연속 F1 챔피언에 오르며 시대를 지배했던 후안 마뉴엘 판지오도 태그호이어와 함께 한 적이 있습니다. 호이어 시대에 손은 잡았던 것은 아니고, 단종된 타르가 플로리오와 까레라 모델에서 그를 만나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까레라 모델 중 에서는 판지오의 얼굴을 각인해 전설적인 레이서를 기리는 것도 있습니다.
젠슨 버튼
세바스티앙 오지에
자, 요즘은 누가 태그호이어를 대표하는 레이서일까요? F1에서는 2009년 챔피언을 비롯, 통산 15승을 거둔 젠슨 버튼과 WRC에서는 3회 챔피언을 거둔 세바스티앙 오지에가 활약하고 있습니다. 아직 전설들과는 어깨를 나란히 하기 어렵지만 훗날 그들과 함께 소개될 때가 올것입니다.
피가 끓어오르는 서킷 위에서 펼쳐지는 드라마, 드라마를 그려내는 레이서들의 손목에는 어김없이 태그호이어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