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아름다움으로의 초대
(part 1)
2011년 06월 09일
소고지음
발단
요즘처럼 햇살이 피부 껍질을 모조리 녹여버릴것만 같던 무더운 여름날이었습니다. 모두를 뜨겁게 달궈놓았던 2002년의 붉은함성도 한철 매미처럼 소리없이 사그라들고, 100년만에 내렸다는 폭설도 모두 녹아 대지에 자양분이 되어버리고 다시 더워지기 시작하는 2003년의 여름이었죠. 저는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맡기고 있었습니다. 한 손에는 부채를, 다른 한 손에는 버스 손잡이를 붙잡고, 귓바퀴 주변에서는 린킨파크의 그로울링이 쉴새없이 흘러나오고 있었죠. 찌는듯한 더위에 버스 에어컨은 고장이 난 듯, 기사님께서는 셔츠자락을 반쯤 풀어헤치고 손부채를 연신 흔들어댔고, 저는 하교길 버스 다양한 학생들 사이에 끼어 비지땀을 연신 흘려댔습니다.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버스는 드디어 집근처 정거장에 도착했고, 저는 날렵한 살쾡이로 빙의하여 과자박스만한 찜통 버스안을 얼른 탈출했었습니다.
곧장 버스에서 내린 저는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쉴 틈도 주지않고 푹푹 올라오는 아스팔트 열기에 저는 정거장에서 집까지의 거리가 멀지도 않았음에도 땀은 비오듯 흘렀습니다. 교과서로 태양을 가려가며 집을 향해(엄밀히 이야기하자면 집안 냉장고에 있는 아이스크림을 향해) 남은 생명을 짜내가며 걸음을 내딛었지만 길은 멀고 또 험하기만 했죠. 걷는것과 아이스크림 외에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질 않았습니다. 걷자, 걷자, 걷자, 걷자.. 수없이 앞으로 나아가길 뇌까리며 오로지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걸어가기를 수차례 반복하는데...
'어라?'
순간 바늘구멍처럼 좁아진 저의 시야가 어딘가에 꽂꽂히 박혀버리는바람에 저는 전혀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시선이 고정된 그곳은 베스킨라빈스도 동네 슬러시 기계도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바로 노점에서 시계를 파는 허름한 가판대. 1평 남짓한 테이블 이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시계의 ‘시’자는커녕, 시계를 차며 자랑을 하는 친구들을 이해하지 못했던 수 없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알마니? 뭐니 그게. 쥐샥? 새로나온 비타민이니 하며 멋부리기는 커녕 이 학원에서 저 학원으로 옮겨다니기에만 급급했고, 보이는 정보란 정보는 족족 머릿속에 몰아넣기 바쁜 대한민국 예비 수능인 중 한명일 뿐이었습니다. 1인당 1만 5천원이 넘는 음식은 밥이 아니라 사치라며 사줘도 입에 대지도 않던 저였습니다. 그런 제가 무엇이라도 홀린 듯 길거리 초라한 노점상 앞에 거짓말처럼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1평도 안되는 자그마한 벨벳 테이블 위에 아무렇게나 놓여져 있는 한 시계에서 눈을 떼질 못했습니다.
생전 처음보는 브랜드의 시계였습니다. 지금와서 회상해봐도 어디, 어떤 브랜드 짝퉁은커녕 시계를 만든 디자이너가 초등학생이었나 싶던 어설픈 디자인이었습니다. 디자인을 배끼기도 귀찮아 아무렇게나 시계 모양이겠거니 만들어서 파는 이른바 ‘길거리’표 시계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시계에 ‘꽂혀’버렸죠. 그때가 생애처음. 난생 처음으로 ‘지름신’을 영접했던 순간이었을겁니다. 샛노란 색깔의 초침과 울퉁불퉁한 튜브모양의 검정색 링이 어설프게 베젤 위에 올려져 있었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모양도 안나오는 그 시계가 순수하디 순수했던 저의 심박수를 120, 130, 140으로 요동치게 만들었던거죠. 저는 난생 처음으로 사람이 아닌 대상이 저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을 느꼈습니다.(“질러줘, 어서 나를 질러줘...”하는 그런 음성 말이죠.) 그리고 잠시 후, 고개를 요리조리 흔들어가며 지름신의 환상에서 깨어난 저의 손바닥 위에는 그날 저녁밥값이었던 7000원짜리 지폐뭉치가 아니라 그 노랗고 울퉁불퉁한 못난이 시계가 올라와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저의 모습은.. 뭐라고 해야할까요.
마치
절대반지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며 사랑스럽게,
지그시 그것을 응시하는
골룸 한 마리와도 같았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 날 저는 저녁을 굶었습니다. 하지만 행복했습니다. 뭐 한끼정도 굶는다고 사람이 죽지는 않는다는걸 직접 체감했던 의미있는 날이었습니다. 저에게는 기념일과도 같았던 첫 경험이었죠. 이후 필요한게 생기면 ‘굶어가며 돈을 모으면 되는구나’라는 멍청한 다짐을 하게 해주었던 위대한 사건이었습니다.(그때 닫힌 제 성장판을 다시 오픈업! 할 수만 있다면 저는.. 저는..) 어찌됐건 저는 행복했고, 또 다른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열심히 굶었습니다. 대전 촌놈이 나름대로의 ‘멋’을 찾기 시작한거죠. 다시 그때 그 시계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얼마 지나지 않아 저의 그 아름답고 또 소중했던 ‘절대시계’는 산산히 부서집니다. 애지중지하며 모시고 다녔으며, 열심히 닦아가며 사랑했던 시계의 파괴에, 저는 특별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부서진 조각조각을 찾아 나름대로 조립을 해서 열심히 차고다닐 뿐이었죠. 하지만 그럴 때마다 시계는 다시 부서지고, 또 부서지고. 결국 산산히 파괴되기에 이르릅니다. 저는 부서진 파편들을 주섬주섬 모아들고 차마 닫히지 않은 아픔을 그대로 간직한 채 이리저리 그 녀석을 살펴보며 추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아아... 그제서야 저는 제 시계가 부서질 수 밖에 없었던 원인을 찾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기랄...
-Part 2 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