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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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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제(Piaget)는 올해로 창립 14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1874년 스위스 쥐라 산맥의 작은 마을 라코토페(La Côte-aux-Fées)의 한 가족 농장에서 태동한 피아제는 

어느덧 세계에서 손에 꼽는 진정한 매뉴팩처이자 얇은 시계, 즉 울트라-씬(Ultra-Thin) 시계의 마스터로 성장했습니다. 


그간 리뷰를 진행하면서 여러 종류의 시계를 만났지만, 개인적으로 울트라-씬 계열의 시계들을 꾸준하게 리뷰할 수 있었던 점에 모종의 뿌듯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피아제의 알티플라노 43mm에서부터, 예거 르쿨트르의 마스터 울트라 씬 주빌리, 브레게의 클래식 투르비용 엑스트라-플랫 5377, 

그리고 오늘 리뷰를 통해 소개할 피아제의 알티플라노(Altiplano) 900P까지 가히 기라성 같은 울트라-씬 시계들을 만날 수 있었으니까요. 


특히 올해 리뷰한 두 울트라-씬 시계가 공교롭게도 울트라-씬 세계의 숙명의 라이벌인 예거 르쿨트르와 피아제라는 사실이 재미있습니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세계에서 가장 얇은 기계식 수동 시계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었던 예거 르쿨트르의 마스터 울트라 씬 주빌리는 

올해 SIHH서 공개된 피아제의 알티플라노 900P에 의해 챔피언 타이틀을 1년도 채 되지 않아 빼앗기게 됩니다. 이쯤 되면 가히 엎치락뒤치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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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스 두께 4.05mm로 작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얇은 기계식 시계였던 예거 르쿨트르(Jaeger-LeCoultre)의 마스터 울트라 씬 주빌리(Master Ultra-Thin Jubilee). 


올해 초 관련 공식 리뷰(https://www.timeforum.co.kr/9881399)를 통해서도 소개한 바 있지만, 

마스터 울트라 씬 주빌리는 포켓워치 시절부터 그 특유의 얇은 두께 때문에 나이프 워치(Knife Watch)로 불렸던 JLC의 장기가 고스란히 녹아든 기념비적인 시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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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올해로 140주년을 맞은 피아제는 자동 부문에서 달성한 기네스 기록을 수동 부문에서도 이룩하고 싶었나봅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로 3.65mm의 경이적인 케이스 두께를 실현한 알티플라노 900P를 공개했지요.   


1957년 발표한 역사적인 9P 칼리버(2mm)에서부터 현재까지 총 23개의 울트라-씬 무브먼트와 12개의 세계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피아제임에도 

유독 수동 칼리버 쪽에서는 예거 르쿨트르의 아성을 깨기는 힘들었습니다. 예거 르쿨트르의 마스터 울트라 씬 주빌리 이전에 세계서 가장 얇은 시계였던 

바쉐론 콘스탄틴의 히스토릭 울트라 파인 1955(Historique Ultra-fine 1955)의 베이스 조차도 예거 르쿨트르의 803 칼리버(1.64mm) 였으니 말 다했지요...


조금은 뜬금없지만 이쯤에서 저 개인적으로 5대 울트라-씬 수동 칼리버를 굳이 꼽아 보자면,  


저는 프레드릭 피게(Frédéric Piguet, 현 블랑팡)의 21 칼리버(두께 1.73mm)와 

예거 르쿨트르의 849 칼리버(두께 1.85mm), 그리고 피아제의 430P(두께 2.1mm), 

파텍 필립의 215 칼리버(두께 2.55mm), 오데마 피게의 3090 칼리버(두께 2.8mm)를 언급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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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 윗줄 좌측부터 시계 방향으로, 피아제 430P, 예거 르쿨트르 849, 오데마 피게 3090, 파텍 필립 215 칼리버 순. 



앞서 언급한 5대 수동 칼리버에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직경 20mm가 조금 넘는 약 9 리뉴(9 lignes)대의 사이즈에

파텍 필립을 제외한 나머지는 3헤르츠, 즉 시간당 진동수 21,600vph 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피아제와 예거 르쿨트르는 시와 분을, 파텍 필립과 오데마 피게는 시와 분, 초까지 표시하며, 

각 무브먼트의 브릿지 형태도 제각각이어서 각 제조사만의 개성 또한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꼽은 5대 울트라-씬 수동 명기 중에서도 마의 2mm대 안에 들어온 칼리버는 F. 피게의 21과 JLC의 849 두 칼리버 뿐입니다. 

제가 굳이 여기서 각 브랜드별 대표 울트라-씬 계열 칼리버를 두고 그 두께에 관해 마치 경쟁이라도 붙이듯 지겹도록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서 피아제의 딜레마와 타개해야 할 현실과 마주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피아제는 수동 마의 2mm 장벽에 가장 근접한 제조사였으니까요. 

천하의 파텍 필립도, 컴플리케이션의 대가인 오데마 피게도 수동 2mm 장벽 앞에서는 속수무책입니다. 이들은 아예 손을 놓아버린 형국이 되었지요. 


현실이 이러하기 때문에 울트라-씬 대전은 십수년 넘게 예거 르쿨트르와 피아제의 경쟁 구도 양상으로 굳어지게 된 것입니다. 

다만 자동 칼리버 부문에선 2.35mm 두께로(1200P, 1208P) 천하통일에 성공한 피아제이지만, 

수동 부문에서 번번이 JLC의 벽에 부딪혔던 것이 피아제로서는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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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티플라노 900P 케이스 및 무브먼트 분해도. 


이에 피아제가 들고 나온 해법은 조금은 파격적인 것이었습니다. 무브먼트의 두께를 비단 얇게 하기 위해 애를 쓰기 보다는, 

아예 무브먼트와 케이스의 경계를 허물어 버림으로써 울트라-씬 시계를 대하는 피아제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입니다. 


메인 플레이트와 케이스백이 일체화된 형태를 채택하고, 기어 트레인을 수직적이지 않고 옆으로 펼쳐 수평적으로 배열함으로써 

기계식 시계에서 이보다 더 얇은 시계가 과연 또 나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한 눈에 봐도 살벌한(?) 설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거 르쿨트르도 마찬가지지만, 피아제의 울트라-씬 시계 역시 컴플리케이션 무브먼트를 제조/조립하는 라코토페 공방에서 최종 검수됩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울트라-씬 시계는 부품의 많고 적음을 떠나 그 자체로 굉장히 섬세하고 전문적인 손길이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울트라-씬 시계는 케이스와 무브먼트 간의 남는 공간과 부품간 유격을 최소화 해야만 하고 

주요 휠 크기나 피니언의 톱니수도 일반적인 시계의 그것보다 조밀하면서 더욱 내구성을 요하기 때문에 

설계 단계에서부터 CNC 머신으로 절삭, 가공하는 단계에서도 한치의 오차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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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SIHH 관련 공식 영상을 보면, 피아제의 CEO 필립 레오폴드-메츠거(Philippe Léopold-Metzger) 씨가 말하길,  

900P를 새롭게 설계하기 위해 라코토페의 수석 워치메이커들과 제네바 매뉴팩처의 엔지니어들이 함께 연합해 

세계에서 가장 얇은 기계식 시계 만들기를 위해 골몰했다고 합니다. 

다 드러나진 않지만 분명 우리가 모르는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을 테지요... 


그러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900P를 찬찬이 들여다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5월 프로토타입 3종이 국내에 들어와 현대 무역센터점 부티크서 공개 전시도 했던지라(관련 TF 뉴스: https://www.timeforum.co.kr/10434427), 

해당 뉴스를 접하시고 매장을 방문해 직접 알티플라노 900P를 감상하신 회원님들도 계실 줄 압니다. 

그리고 마침 그 당시 까르네 모델 중 한 점(18K 화이트 골드 모델)을 타임포럼이 재빨리 컨택해 이렇게 공식 리뷰를 통해서 소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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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티플라노 900P는 다이얼이 곧 시계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름 38mm 화이트 골드 케이스에는 케이스백과 일체화된 모델명과 동일한 900P 칼리버가 

다이얼 전면부에 기어트레인이 고스란히 노출돼 마치 움직이는 바퀴들 위로 시간이 둥둥 떠다니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합니다. 


긴 말 필요없이 정면 다이얼 사진 여러 장 더 이어 감상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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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골드 케이스와 선명한 대비를 이루는 전체 블랙 코팅 처리된 무브먼트가 샤프한 인상을 선사합니다. 

투르비용 내지 하다못해 피아제의 다른 스켈레톤 시계들과 비교했을 때도 그렇게 화려하다고 보긴 힘들지만, 

오프센터 디자인의 시, 분 표시 다이얼과 그 외곽(미닛 트랙)을 실버톤으로 차등 있게 처리하고 

크라운 휠과 라쳇휠 등은 블랙이 아닌 새틴 브러시드 마감해 다른 부위와 차별화되고 있습니다. 


오프센터 다이얼은 케이스백과 연결되는 일자 스크류로 고정돼 있습니다. 이 부분 관련해선 다른 정보가 부족하지만, 피아제가 따로 특허를 낸 부분이라고 하네요.

8시 방향에는 밸런스가, 주요 휠들은 차례대로 펼쳐진 형태로 6시 방향의 오픈 워크 다이얼을 통해 확인할 수 있어 특유의 기계적인 매력을 드러냅니다.  


노출된 라쳇휠 바로 아래 부분에는 싱글 배럴이 위치해 있고요. 다른 시계와 달리 무브먼트가 전복된 형태이기 때문에 케이스백 안쪽 부분이 배럴 덮개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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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엽을 감았을 때의 느낌은 매우 부드러웠으며, 정지된 상태에서 크라운을 몇 회 감았을 뿐인데도 바로 밸런스가 움직이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동력 전달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며, 20여 회 정도 감았을 때 적당한 텐션과 함께 라쳇 클릭이 미끄러지듯 살짝 헛도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보통 사용자들이 수동시계의 태엽을 감아줄 때 만약 사파이어 크리스탈 백으로 무브먼트를 감상할 수 있는 종류의 시계라면, 

시계를 뒤집어 무브먼트를 보면서 태엽을 감아주게 마련인데(저 역시 해당됨), 피아제의 900P는 뒤집을 필요 없이 

바로 정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미묘하지만 수동 시계 조작의 새로운 재미를 주는 요소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무브먼트를 전복해 윤열을 앞으로 노출시킨 것은 케이스와 무브먼트를 일치시킴으로써 어쩔 수 없는 설계상의 이유 때문이었겠지만, 

한편으로는 디자인적 메리트도 생긴 셈입니다. 보통 울트라-씬 계열 시계들이 다이얼 디자인이 천편일률적이고 지극히 단순한 형태를 띄고 있는데 반해, 

900P는 설계상의 이유가 역으로 이 시계만의 개성적이고 특색있는 요소로까지 작용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900P는 총 145개의 부품과 20개의 주얼이 사용되었으며, 진동수 3Hz에 파워리저브는 48시간입니다. 

울트라-씬 설계의 수동 칼리버 사양 치고는 비교적 넉넉한 파워리저브 시간이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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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스백이 기존 시계의 메인 플레이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솔리드백 형태입니다. 

6개의 일자 스크류로 고정돼 있으며, 동심원 형태의 서큘러 그레이닝 처리된 브러시드 케이스백 가운데에는 

피아제 로고와 기계식을 뜻하는 단어, 그리고 상단에는 피아제 고유의 문장(coat-of-arms)이, 하단에는 케이스 소재와 일련번호가 인그레이빙돼 있습니다. 

  

한편 케이스와 무브먼트가 일체화된 구조 때문에 장기적인 내구성을 염려하는 분들도 계실 줄 아는데요. 

이유인즉, 워낙에 얇은 시계다 보니 외부 충격에 약한 데다 케이스백이 플레이트라면 충격이 가해졌을 때 

완충되는 부분이 상대적으로 적어 직접적으로 맞닿은 부품들이 손상을 입을 확률도 그만큼 커지기 때문입니다. 


덧붙여 제 사견이지만, 조립시 배럴부를 고정시키는 작업과 밸런스의 레귤레이팅 작업 역시도 다른 시계와 달리 무척 까다로울 것만 같습니다. 

다시 말해 이 시계의 수리나 오버홀은 반드시 피아제의 숙련된 워치메이커에 의해서만 받아야 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뭐 고급 시계는 대체로 다 이러한 부분을 감안하면서 구입하는 것입니다만... 피아제의 울트라-씬은 특히 전문적인 손길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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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께 3.65mm로 세계에서 가장 얇은 시계 답게 프로파일(측면부)은 가히 예술적입니다. 

장착된 스트랩의 두께가 더 두꺼워 보일 정도로 경탄이 절로 나올 정도의 두께입니다. 


500원짜리 동전 두개를 겹쳐 놓은 것보다 얇으며, 얇은 쿼츠 시계하면 떠오르는 스와치의 스킨(Skin) 시리즈(두께 3.9mm) 보다도 얇습니다. 

또한 케이스 측면을 보면 러그 쪽의 직선적인 형태가 피아제를 뜻하는 P자 이니셜을 형상화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또한 디테일에 강한 면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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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랩과 버클부입니다. 

전체적으로 플랫(평평)한 블랙 앨리게이터 가죽 스트랩과 케이스와 동일한 소재의 심플한 화이트 골드 핀 버클이 사용되었습니다. 


사실 위 모델 같은 경우는 까르네 제품이다 보니 스트랩 상태도 최상이 아니었기에 다른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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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스 지름이 38mm로 사이즈는 드레스 워치로서는 아주 이상적입니다. 

기존 알티플라노 43mm 모델과 40mm 모델과 비교했을 때도 착용시 가시적인 차이가 느껴지며, 

이전의 클래식한 사이즈로 회귀한 점은 반가운 변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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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용시 대충 이런 느낌?! 참고로 착용샷의 모델은 제가 아닙니다. ㅋ 

의외로 세미 정장 스타일에도 시크하게 잘 어울립니다. 



피아제의 2014년 최고 화제작인 알티플라노 900P는 "세계에서 가장 얇은 기계식 시계"라는 타이틀 못지 않게 

울트라-씬을 대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들여다 볼 수록 흥미로운 시계입니다. 

케이스와 무브먼트를 한데 결합한 발상의 전환은 참신했으며 각각의 구성요소들에 기울인 노력 또한 상당합니다. 

알티플라노 특유의 모던한 케이스 형태에 독창적이고 기념비적인 의미까지 담은 900P는 반 세기 넘도록 울트라-씬 분야에 

한우물을 깊게 파온 피아제의 녹록치 않은 내공이 빛나는 역작이자 피아제의 앞날을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종류의 시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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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협조:

피아제 코리아 


촬영 협조:

2nd Round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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