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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 타임존의 글이 생각납니다.
 
캘리포니아에 사는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 근처에 롤렉스 대리점이 보여 그냥 들어갑니다.
 
한 번 휘~ 둘러보고는 그냥 나가려던 찰나에 점원이 묻습니다.
 
'뭐 찾으시던 거라도 있으셨던 겁니까?'
 
'그냥 여러 사람들이 찾는 것과 같은 거죠. 그린 서브마리너나, 블랙 SS 데이토나 같은거요.'
 
'데이토나는 현재 없지만서도, 그린 서브마리너는 있습니다.'
 
그 사람은 거기서 바로 구매를 해버리고 맙니다.
 
여기에 따른 여러가지 답글들은,
 
잘했다. 부럽다. 있으면 사야지. 역시 사나이 답다. 등등의 글들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한 곳에 빠지면 좀 심하게 빠져버리는 경향이 있기도 하긴 하지만,
 
이건 너무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며칠 전 IWC를 구입하기로 결정한 찰나에,
 
그냥 평소의 버릇대로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다가 그만 실수로
 
롤렉스 서브마리너 50주년 기념판을 보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Z 시리얼의 최신판이고....
 
아무런 이유없이 limited edition 혹은 anniversary edition을 좋아하는지라,
 
게다가 롤렉스 고유의 초록색은 촌스러움을 넘어선, 아름다움에 비견되는 색이라고 생각되어,
 
계속 흠모하던 차였습니다.
 
 
저는 참지 못하고 16610LV를 사버렸습니다.
 
반성을 하되 후회는 없습니다.
 
지난 번 서브마리너를 한 번 손목위에 올려놓았던 경험 이후,
 
브랜드 이미지라는 것은 어찌해서 생겨난 것인가?
 
왜 사람들이 다른 것을 몰라도 롤렉스는 아는 것인가에 대해 마음 깊이 이해한 적이 있었고,
 
그 이후 서브마리너는 언젠가 꼭 거쳐가야할, 그런 관문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예상보다 빨리 온 기회이긴 하지만, 다음으로 미루고 싶지 않았습니다.
 

 
 

 

시계를 좋아하긴 하지만, 학생의 신분으로 근 몇달내에 너무 많은 시계를 사버렸다는 자책감도 듭니다.

 

인턴을 해서 월급을 받고, 이래저래 돈을 불리고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부모님의 뒷받침 위에서 커가고 있는 때라, 조금 죄스러운 마음도 듭니다.

 

특히 제 부모님께서는 장을 보다가 고추값, 깻잎값을 보고는 놀라시고는 살까말까 한참을 고민하시는데,

 

아들놈은 이렇게 제 좋다고 퍽퍽 사버리는 행위는 왠지 거부감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제 나름대로의 경제적 가치관은 잘 정립되어 있는 편이라 자부하고,

 

시계든 뭐든 소유와 앎의 끝에서 창출되는 새로운 가치 또한 부정할 수는 없으나,

 

과유불급이라는 공자님의 말이 떠오르면서 이제 나 자신을 식혀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원래는 이렇게 마음에 드는 것을 모은 후 정말 마음에 드는 1~2개만을 남긴 후에 되파는 것을 생각도 하고 있었으나,

 

그런 복잡한 일들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당분간 시계의 수를 더이상 늘리지 않겠고 결심하였습니다.

 

 

 

결혼하시고 저보다 먼저 인생의 길을 걸어가신 분들이 보기에,

 

주체할 수 없는 욕망에 패배한 젊은이로 보일 지는 몰라도, 너무 질타만 하지 마시고,

 

시계를 사랑하는 마음이 한 번에 폭발한 결과라고 봐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새로운 소유를 위한 발걸음이 아니라, 지금 나와 함께하는 행복을 향유하려는 마음

 

알아주시고, 타임존에서와 같은 따뜻한 말씀들 부탁드립니다.

 

 


 
 
 
 
서브마리너의 좋은 점이라면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점이 있겠지만,
 
저로서는 일단 그 정통성과 전통에 깊은 공감과 애정을 가지게 됩니다.
 
여러해를 지나면서도 잃지 않는 본연의 자세는 진정 소유의 쾌감을 알게 해줍니다.
 
 
꼬이지는 않되 단순하지도 않은 바늘의 모양새와 부지런히 움직이는 중앙의 초침은,
 
시간가는 것을 보면서도 시간가는 줄 모르게 만들어버립니다.
 
 
검정색 다이얼과 누구도 생각치 못한 녹색의 베젤은 스위스인의 차가운 공학 위에
 
이탈리아인의 색감을 얹은 듯, 조화로움을 나타냅니다.
 
정장과 스포츠 룩에 두루 잘 어울리며, 민소매 티셔츠에서도 풀죽지 않는 색감은,
 
색에 대한 롤렉스의 실력을 알게 해줍니다.
 
 
 

 

 

검정색 베젤의 서브마리너와 달리 50주년 기념모델은 스위스의 제네바가 아닌

 

나폴리를 떠올리게 합니다.

 

 

 

햇살만으로는 이미 여름이라 할 수 있는 5월의 어느 날,

 

나폴리 입구의 교차로 한켠에 붉은색 두카티 몬스터가 비스듬히 서있습니다.

 

아무도 지키지 않지만 홀로 깜박이는 신호등 아래엔

 

따가운 햇빛에 녹아내린 아스팔트가 바이크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채,

 

타이어의 모습을 판화처럼 찍어냅니다.

 

신호등 아래에서 홀로 지도를 펼쳐든 머리가 희끗한 중년 라이더.

 

지도를 접는 중년의 재킷 안쪽의 손목 부분에서 무엇인가가 반짝입니다.

 

 

산타 루치아 항을 지나다 한 식당 앞에 주차되어 있는 몬스터와 다시 만납니다.

 

중년의 라이더는 그의 데이토나 재킷을 의자에 걸친 채

 

하우스 와인과 마르게리타 피자를 먹고 있습니다.

 

이제 중년의 손목에서 반짝거리던 놈의 정체를 알게 됩니다.

 

16610LV, 서브마리너 50주년 기념 모델...

 

한 때 시계에 심취하던 시절, 모두가 한 번 쯤은 가슴에 품어보았던 그 시계...

 

 

그렇게 강렬하던 태양도 누그러지는 어스름녘

 

마르게리타의 모짜렐라 치즈가 차갑게 식어가고

 

하얀 요트들이 붉은 하늘을 배경으로 산타루치아로 되돌아올 무렵,

 

중년의 신사는 부츠의 끈을 조이고,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재킷을 걸치는 찰나의 손목은

 

반짝임으로 작별인사을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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