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tek Philippe 5170J Review
파텍 필립은 최고의 시계 브랜드입니다. 시계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도 어쩌면 이름 한번 쯤은 들어보았을 브랜드이고, 고급 기계식 시계 시장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지식이 있다면 파텍이 최고의 시계 브랜드라는 데에 이견을 달 사람은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절대적인 시계 판매량과 매출 금액은 롤렉스, 까르띠에, 오메가가 높을지 몰라도, 개당 판매 단가, 할인율, 브랜드 가치, 전문가 및 수집가의 선호도,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중고판매가와 경매 시장에서의 낙찰가를 생각할 때, 파텍 필립의 현재 위상은 절대적입니다.
최근 경매에 올라온 파텍 필립 ref. 2499P. 낙찰가는 $3.6m
이러한 파텍 필립의 위상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ref. 5170J 수동 크로노그래프
시계가 가지는 겉모습에서 비롯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물론 제 눈에는 파텍 필립의 시계들 다이알 사이드에서 보이는 모습도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만, 워낙 클래식한 디자인을 고수하는 브랜드인지라, 슬쩍 들여다봤을 때, 첫 느낌에 화려하거나 멋지다거나 하는 인상을 받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번 리뷰의 대상인 5170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날짜 창이 없는 크로노그래프 시계. 30분 미닛 카운터가 3시 방향에, 그리고 섭세컨드가 9시 방향에 있는 디자인은 지금까지 다른 시계 브랜드나 모델에서도 많이 보아온 모습입니다. 두 개의 섭다이얼이 무브먼트 중심에서 약간 밑으로 쳐져있는 배열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특별한 점을 찾기는 힘듭니다.
물론 확대해서 본다면 다이알 프린팅의 완벽함을 볼 수 있을 것이고, 구입하여서 오랫동안 착용을 한다면 질리지 않는 우아한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점들을 제외하면 첫 눈에 이 시계를 들여다보았을 때, 그냥 ‘깔끔하고 클래식한 디자인의 시계’ 이외에는 다른 느낌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실례로 다른 비 시계 커뮤니티에 파텍필립과 다른 캐주얼 시계 (예: 파네라이)등을 같이 올려놓고 반응을 지켜본다면, 파텍 필립의 브랜드를 모르는 사람들에게서는 그냥 할아버지 시계 같다는 반응 외의 것을 찾기란 쉽지 않기도 합니다.
용두에 새겨져 있는 칼라트라바 문양과 크로노 버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텍 필립이 현재의 위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제 개인적인 생각에는, 파텍 필립을 즐기기 위해서는 적절한 지식이 뒷받침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적절한 지식이 뒷받침이 될 때, 파텍 필립을 소유한다는 것은 말초적인 즐거움을 지나, 크나큰 즐거움을 소유자에게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007 Skyfall
단적인 예를 들자면, 007 영화는 오락영화입니다. 007 시리즈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손쉽게 영화를 즐기고 좋아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안 플레밍의 원작 소설을 읽고, 007 영화 시리즈의 맥락을 짚어나가는 사람에게는 또다른 즐거움을 선사하겠지만 (그래서 아는 만큼 보여주는 영화 시리즈이기도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쉽게 다가가고 모두들 최소한 어느정도는 즐길 수 있는 것이 007 영화입니다. 저는 롤렉스가 시계 브랜드 중에서는 007 영화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Rendering of Hamlet and his father's Ghost by Henry_Fuseli
하지만 파텍 필립은 그렇지 않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극과 비극 같은 시계입니다. 어린 학생 시절 학교에서 읽으라고 시켜서 마지못해 읽은 셰익스피어는 그냥 지루한 옛날 이야기이며, 햄릿은 왜 저렇게 혼잣말은 하는지, 로미오는 왜 죽어야 하는지 이해 안되고 말만 어렵게 써놓은 이야기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인생을 알고 난 뒤 접한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달랐습니다. 맥베쓰가 듣는 노크 소리가 양심의 소리였음을 알게되고, 템피스트에서 인생의 허망함을 보고, 그 작품들 안에 인간 사회의 보편적인 고찰이 들어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과 같이 고전으로 남는 문학작품들의 문학의 보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대와 지역, 나이, 성별, 인종을 초월해서 모든 인간에게 적용 가능한 보편적인 감성을 담고 있고 이것은 시간이 흘러도 퇴색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감성은 어느정도 삶을 살아간 이후에 더욱 더 잘 알게 되는 것이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라는 말과도 같이, 이렇게 새로운 지식을 통해서 알게 된 즐거움은 깊고 오래 가는 즐거움으로 남습니다.
그냥 보기엔 그냥 시계 같지만 이 시계에는 쉽게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파텍 필립은 어떤 보편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기에 시계 브랜드 안에서 현재의 위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시계를 뒤집어보아야만 합니다.
등짝을 보자.
(이 이후 무브먼트에 대한 기술적인 부분은 쩜하나군(fert32)님께서 수고해주셨습니다.)
Ref. 5170j에 탑재된 무브먼트는 CH 29-535로, 레마니아 베이스로 수정된 이전세대 수동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 CH 27-70과는 달리 자사 제작 무브먼트입니다.
Caliber |
CH 27-70 |
CH 29-535 |
Base |
누벨 레마니아 |
인하우스 |
지름 |
27.5mm |
29.6mm |
높이 |
5.57mm |
5.35mm |
주얼 |
24개 |
33개 |
부품 |
208개 |
269개 |
진동수 |
2.5Hz |
4Hz |
파워리저브 |
60h |
65h |
무브먼트의 스펙은 위와 같습니다. CH 27-70에 비해 지름은 커지고, 두께는 얇아졌으며 주얼과 부품수는 늘어났습니다. 진동수와 파워리저브는 상승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구조 상에서 어떤 점이 바뀌었을까요?
같은 점으로는, (스포크의 수가 두 개에서 네 개로 늘어나고, 웨이트의 개수가 여덣 개에서 네 개로 줄어들었지만)프리스프렁 밸런스를 채용했다는 점, 컬럼휠에 캡을 씌웠다는 점이 있으며 비교적 클래식한 구조를 가졌다는 점도 공통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차이점으로는, 다이얼 쪽에서 보았을 때 더욱 확실히 볼 수 있겠지만, 초침과 미닛 카운터의 위치가 구형에서는 정확히 센터상의 라인에 있었던 반면, 신형의 경우는 그보다 조금 아래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는 랑게 운트 죄네의 다토그래프와 같은 모습입이다. 무브먼트 상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차이점은, 사진상의 무브먼트 세시 방향이 구형에 비해 매우 복잡해졌다는 것입니다. 크로노그래프라는 똑같은 기능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크로노그래프 작동을 위해 사용되는 부품의 개수가 늘어난 것을 육안으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부품들이 시계의 기능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요? 이를 알기 전에 우선, 크로노그래프의 기본적인 구조에 대해 간략히 확인해 보도록 합니다.
파텍 필립의 구형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인 CH27-70은 가장 심플하면서도 정석적인 구조의 무브먼트로, 기본적인 크로노그래프 구조의 교보재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무브먼트입니다. 다만, 충분히 큰 사이즈의 고화질 사진을 구하지 못 했기 때문에, 다른 크로노그래프 사진으로 구조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밸쥬에서 제작하고 롤렉스에서 수정한 valjoux 72입니다. 이 무브먼트도 파텍 필립의 CH27-70 (Lemania 2310)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녹색 숫자가 쓰여있는 부품들이 크로노그래프 윤열을 이루는 기어들입니다. 1번 부품은 초침휠과 같은 축으로 연결되어 있는 휠로, 당연하게도 일 분에 한 바퀴씩 회전합니다. 무브먼트의 센터에 위치한 3번 휠은 크로노그래프 초침휠이며, 가장 길쭉한 바늘인 크로노그래프 초침이 연결되는 바늘입니다. 이 휠 또한 일 분에 한 바퀴씩 회전합니다. 5번은 크로노그래프 분침휠이며 1분에 한 칸 움직입니다. 보통 30분에 한 바퀴 회전을 하지만 종류에 따라 45분, 1시간에 한바퀴 회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2번과 4번휠은 각각 1번과 3번 휠, 3번과 5번 휠을 연결하는 기어들입니다. 2번 휠은 사진과 같이 크로노그래프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1번 휠과는 접촉하고 있지만 3번 휠과는 접촉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크로노그래프 초침이 시간을 카운트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버튼을 눌러 크로노그래프를 작동시킬 경우, 빨간 2번으로 표시된 레버(캐링 암)가 움직이게 됩니다. 이 레버에 붙어있는 2번 휠도 레버를 따라 이동하게 되고, 3번 휠과 접촉하여 동력을 전달해 시간을 재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1번 휠에서 시작하여 2번 휠, 3번 휠로 가는 흐름은 눈으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으나, 3번 휠에서 4번 휠을 거쳐, 미닛 카운트 휠인 5번 휠까지 가는 흐름은 이와는 다릅니다. 사진에서 보았을 때, 4번 휠과 5번 휠은 이빨이 맞물려 있어(파란 1번 점선 안) 4번 휠이 회전할 경우 5번 휠도 함께 회전함을 알 수 있지만, 정작 3번 휠과 4번 휠이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파란 2번 점선 안) 동력이 전달될 방법을 쉽게 확인할 수 없습니다. 이 부분에서의 동력전달은 다음과 같은 특별한 부품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빨갛게 테두리가 쳐진 부품은 미닛 핑거라고 하는 부품으로, 3번 휠의 아래 위치합니다. 이 핑거의 끝부분은 4번 휠의 이빨에 걸리게 되어 있으며, 핑거는 3번 휠과 조립되어 그와 마찬가지로 일 분에 한 바퀴 회전하고, 일 분에 한 번씩 4번 휠과 닿아, 4번 휠의 이빨을 건드려 회전시킵니다. 이 것이 3번 휠과 4번 휠이 직접 닿아있지 않는 이유이며, 또한 크로노그래프 분침이 크로노그래프 초침과 함께 천천히 회전하지 않고, 크로노그래프 초침이 55초에서 5초 사이를 이동할 때에 한칸 이동하는지에 대한 이유입니다.(실제로는 55초에서 5초 사이의 10초간 보다 더욱 짧은 시간에 바늘이 움직입니다.) 만약 3번 휠과 4번 휠이, 1번 휠과 2번 휠처럼 직접 연결되어 있었다면, 1번부터 5번 휠까지 모두가 함께 돌아가겠지만, 그렇지 않으므로 핑거가 4번 휠을 건드릴때만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빨간 1번 부품은 리셋 해머입니다. 리셋 해머는 우리가 크로노그래프를 리셋할 경우 움직여, 크로노그래프 초침과 분침을 다시 0으로 리셋시키는 부품입니다. 어떻게 리셋 해머는 크로노그래프를 리셋시킬까? 그 구조는 아래의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위는 레마니아 1861의 사진입니다. 왼쪽은 모든 부품이 조립된 사진이며, 오른쪽 사진은 몇 개의 부품이 제거되어 있습니다. 왼쪽 사진에서 빨간 점선으로 표시되어 있는 부품이 리셋 해머이며, 오른쪽 사진에서 빨간 점선으로 표시되어 있는 부품이 하트 캠 이라는 부품입니다. 하트 캠은 각각의 휠과 조립되어 있습니다. 리셋 버튼을 눌렀을 때 리셋 해머는 왼쪽의 사진처럼 움직여 2번 휠과 3번 휠의 축에 접촉합니다. 정확히는, 각 휠의 축이 아니라 오른쪽 사진의 하트 캠에 접촉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하트 캠과 리셋 해머가 최초로 접촉한 지점이 어디인지에 관계 없이, 리셋 해머의 누르는 힘에 의해 해머의 끝은 강제로 캠을 밀어 위 사진의 빨간 화살표가 가리키는 점과 접촉하게 됩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크로노그래프 바늘은 리셋을 시켰을 경우 자신의 위치를 알고, 찾아갈 수 있다. 크로노그래프 중에는 한 개의 카운터만 있어 초만 측정이 가능한 모델도 있지만, 현재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크로노그래프 시계는 초와 분 두개, 혹은 시 분 초 세 개를 측정할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개 이상의 카운터를 가진 크로노그래프를 리셋시킬 경우, 여러 개의 캠과 해머를 정확하게 접촉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리셋 해머가 모든 캠들과 정확히 접촉하지 못할 경우, 크로노그래프 초침은 0으로 리셋되지만, 크로노그래프 분침은 정확히 0에 도달하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리셋 해머 밑에 빨간 3으로 표시되어 있는 부품은 브레이크 레버입니다. 크로노그래프의 작동은 기본적으로 스타트-스톱-리셋 순으로 이루어지는데, 크로노그래프 초침 휠은 스타트 상황에서 초침 윤열에 연결되어 회전하고, 리셋일 때에는 리셋 해머에 의해 위치가 고정됩니다. 이 둘을 제외한, 스톱 상황에서 크로노그래프 초침휠을 고정해 주는 것이 바로 브레이크 레버입니다. 브레이크 레버의 한쪽 끝은 컬럼휠에 닿아 있고, 반대쪽 끝은 크로노그래프 초침휠에 접촉합니다. 버튼을 눌러 스톱 페이즈에 들어갔을 때, 컬럼휠이 회전하여 브레이크 레버를 밀어주고, 반대쪽 끝이 크로노그래프 초침휠에 닿아 크로노그래프 초침이 헛도는 것을 방지해 줍니다. 크로노그래프 분침 휠의 경우 다른 브레이크 없이, 빨간 4로 표시되어 있는 스프링이 회전을 막아줍니다. 브레이크 레버의 작동에서 중요한 것은, 스타트-스톱-리셋 과정에서 초침 윤열에 의한 크로노그래프 초침 회전과, 브레이크 레버에 의한 위치고정 사이에 최대한 정확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크로노그래프를 작동시킬 때, 스탑 페이즈에서 초침 중간휠이 떨어지고, 브레이크 레버가 크로노그래프 초침 휠을 즉시 잡아주지 못한다면 크로노그래프 초침 휠은 컨트롤을 잃고 이리저리 제멋대로 움직일 위험이 있습니다.
파텍 필립의 CH27-70도 지금까지 확인한 다른 무브먼트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크로노그래프 윤열이 있고, 미닛 핑거가 달린 센터 휠이 있고, 미닛 카운트 휠이 있으며, 센터 휠과 미닛 카운트 휠을 연결하는 중간 휠이 있고, 리셋 해머와 브레이크 레버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CH29-535의 모습을 다시 확인해 보도록 하지요.
다시 확인해본 CH29-535의 모습은 CH27-70의 모습과는 사뭇 다릅니다. 우선, 크로노그래프 초침 휠과 크로노그래프 분침 휠을 연결하는 중간 휠이 없습니다. 리셋 해머와 브레이크 레버 또한 위에서 본 형태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크로노그래프 초침-분침 중간 휠이 없으면 이 무브먼트는 어떻게 미닛 카운트를 할까요?
CH 29-535가 미닛 카운트 중간 휠 없이 크로노그래프를 구동시킬 수 있는 이유는, 무브먼트의 미닛 카운팅이 점핑 매커니즘에 의해 작동되기 때문입니다. 점핑 매커니즘은 인디케이터, 혹은 바늘을 짧은 시간 안에 즉각적으로 이동시키는 기술로, 퀵체인지 데이트창이나 레트로그레이드 등이 점핑 매커니즘에 의해 작동됩니다. 점핑 매커니즘은 기본적으로, 즉각적인 움직임을 이끌어낼 에너지를 축적할 스프링을 필요로 합니다. 때문에, CH 27-70에서 미닛 카운터가, 크로노그래프 초침이 55초에서 5초 사이를 지날 때에만 움직이더라도 이는 점핑 매커니즘에 의한 움직임이라고 볼 수 없으며(바늘이 즉각적으로 움직이는 에너지를 공급할 스프링이 없고, 바늘이 움직이는 시간이 비교적으로 오래 걸리므로), CH29-535는 CH27-70에 비해 더욱 짧은 시간에 즉각적으로 미닛 카운트 핸즈가 이동하게 됩니다. 이러한 작동을 만드는 부품은 아래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빨간 1번 부품 코일 스프링은 점핑 모션을 만들기 위한 스프링이며, 2번으로 표시되어 있는 빨간 점선 안의 레버는 스프링이 연결되어있는 부품입니다. 녹색 2번 휠은 크로노그래프 분침이 연결되어 있는 크로노그래프 미닛 카운터입니다. 이 휠은 점핑 모션을 위해 톱니 모양의 독특한 형태의 기어 프로필을 갖고 있으며, 이는 빨간 1번 암의 끝에 있는 은색 갈퀴와 맞물립니다. 녹색 1번 휠은 크로노그래프 초침이 연결되어 있는 크로노그래프 세컨드 카운터입니다. 크로노그래프 세컨드 카운팅 휠 아래에는 점핑 모션을 위한 스네일 캠이라는 부품이 있는데, 이는 하트 캠과 비슷한 캠의 일종이나, 형태는 이름과 같이 달팽이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위 사진이 스네일 캠의 일반적인 작동 모습입니다. 스네일 캠은 회전 운동을 하며, 접촉되어있는 암을 위아래로 이동시킨다. DIA.1에서 암은 스네일 캠의 가장 낮은 부분에 위치하므로, 암의 높이도 가장 높습니다. 하지만 캠이 회전함에 따라 암의 위치는 점점 높아집니다. 그리고 마지막 DIA.7에서 캠이 회전하여 DIA.1의 상태로 변하면서, 암은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낲은 위치로 갑작스러운 움직임을 일으킵니다.
무브먼트 내의 스네일 캠은, 사진에서의 빨간 2번 암과 접촉하고 있습니다. 빨간 2번 암은 빨간 1번 스프링에 의해 사진상에서 9시 방향으로 지속적인 힘을 받습니다. 하지만 녹색 1번에 위치하는 스네일 캠이 회전함에 따라 암은 점점 사진상의 3시 방향으로 위치하게 되고, 암의 끝부분에 있는 은색 톱니는, 미닛 카운팅 휠의 두 번째 이빨에 걸리게 됩니다. 그리고 계속 캠이 회전하여, DIA.7에서 DIA.1의 페이즈로 바뀌면, 스프링에 의해 암은 갑작스레 9시 방향으로 이동하고, 끝의 갈퀴는 미닛 카운팅 휠을 당겨 한 칸 이동시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센터의 세컨드 카운팅 휠이 한 바퀴 회전할 때마다 이루어지며, 크로노그래프 초침이 한 바퀴 회전할 때마다 크로노그래프 분침이 한 칸씩 이동하게 됩니다. 이러한 구조의 장점으로는, 미닛 카운팅이 정확하고 정밀하게, 즉각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CH 27-70에서 확인한 리셋 해머의 모습을 다시 보도록 하지요. CH 27-70의 리셋 해머는, 미닛 카운터 리셋 해머와 세컨드 카운터 리셋 해머가 일체형으로 조립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CH 29-535의 경우에는 미닛 카운터 리셋 해머와 세컨드 카운터 리셋 해머가 따로 가공되어 나사로 보이는 부품에 의해 연결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스크류로 보이는 녹색 동그라미 안의 부품은 스크류가 아닌, 축으로 이용됩니다. 그 축을 중심으로 미닛 카운터 리셋 해머는 회전 운동을 할 수 있습니다. 미닛 카운터 리셋 해머와 세컨드 카운터 리셋 해머는 각각 다른 스프링에 의해 텐션을 받아서 리셋을 수행합니다. 그러므로, 미닛 카운터 리셋 해머와 세컨드 카운터 리셋 해머가 일체형이 아니기 때문에, 각 해머는 각각의 하트 캠과 완전히 접촉하여 정확한 리셋에 대한 신뢰도를 높힐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브레이크 레버의 생김새를 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브레이크 레버의 한쪽 끝은 컬럼휠에, 반대쪽 끝은 크로노그래프 세컨드 카운트 휠에 위치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CH 29-535의 브레이크 레버는, 한쪽 끝은 휠에 닿아있지만, 반대쪽 끝은 컬럼휠에 닿아있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다. 그렇다면 이 레버를 어떤 방식으로 제어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독특한 형태의 캐링 암과 리셋 해머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브레이크 레버에는 두개의 핀이 솟아나와 있는데, 이들은 각각 캐링 암과 리셋 해머의 팁과 접촉하게 됩니다.(녹색 동그라미) 이러한 형태에 의해, 브레이크 레버는 컬럼휠의 회전이 아닌, 캐링 암과 리셋 해머의 움직임에 의해 컨트롤됩니다. 스타트-스톱-리셋 작동시 크로노그래프 부품의 움직임은 아래와 같습니다.
그림과 같이, 크로노그래프를 스타트했을 때, 브레이크 레버는 캐링 암이 작동한 후, 암의 팁에 밀려 이동해 세컨드 카운트 휠과 접촉을 끊으며, 크로노그래프를 정지했을 떄, 캐링암과 접촉을 끊고 스프링에 의해 회전하여 세컨드 카운트 휠과 접촉해 고정시키며, 크로노그래프를 리셋했을 때, 리셋 해머와의 접촉에 의해 세컨드 카운트 휠과 접촉을 끊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에 의해 각 단계는 순차적으로 전환되며, 동시에 즉각적으로 반응이 일어나고, 또한 각 페이즈가 겹쳐 크로노그래프 부품에 주는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복잡하고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기능성도 뛰어납니다.
결국은 아름답기 위한 모습보다는 더욱 정확하고 기능면에서 완벽한 크로노그래프를 만들기 위한 설계와 노력이 우선시 되었고, 그 뒤에 찾아온 것이 바로 아름다움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아름답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편했던 폴딩버클
“Relentless Pursuit of Perfection”
수 년 전, 렉서스의 광고 문구였었지만, 렉서스보다는 파텍 필립에게 더 어울리는 가치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파텍 필립은 이러한 가치를 추구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에게는 전면에 내세워 광고할 가치가 아닌, 자신들에게 있어서 당연한 가치이기 때문일런지도 모릅니다.
컬럼휠에는 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캡이 씌워져 있습니다. 약간은 오버스러운 것도 같지만 이게 파텍의 자세인듯 합니다.
당시에 가능한 모든 기술을 총동원하여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도 가능한한 완벽한 시계를 만드는 것. 단순히 보기에 아름다운 시계가 아닌, 정확함과 완벽함을 추구하는 시계. 그리고 동일한 기술과 피니싱이라도 다른 브랜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함을 보이는 것. 이것이 파텍 필립이 현재 시계 시장에서 최고로 평가받는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물론 그러한 시계를 소유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가격은 매우 높습니다 (5170J의 가격은 1억1천만원대). 그리고 시계가 보이는 모습 또한 젊은 이에게 어울릴만한 시계도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기에 꿈을 꾸게 만드는 시계가 아닐까 합니다. 나이가 들어서 자신의 아이나 손자에게 물려줄 생각을 하며 흐믓하게 시계를 구입하는 미래의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말이지요.
촬영을 도와주신 Picus_K님과 무브먼트 관련 글을 써주신 쩜하나군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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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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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세
2012.12.10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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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인
2012.12.10 14:50
대단합니다.
파텍의 명성이 그냥 얻어지는게 아니군요.
좋은 리뷰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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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헬커
2012.12.10 16:03
시계에 대한 리뷰에서 세익스피어의 문학까지 인용하고 계신 글의 깊이가 저절로 고개를 끄떡이게 하는군요. 대단한 필력이십니다. 파텍에 대한 존경심과 아울러 글을 써 주신분께도 감사드리며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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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ual7
2012.12.10 16:27
수고하셨습니다. 쩜하나군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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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
2012.12.10 17:00
Aㅏ........... 파텍 ... ㅠㅠ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인용구와 시계에서 예술로 승화되는 전개방식 입니다.
타임포럼 복잡시계팀에 계신 분들은 쩜하나군님을 주목해주실 필요가 있겠네요 XD 추천이 한 방 뿐이라는게 아까운 리뷰입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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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ee
2012.12.10 17:05
디테일한 리뷰 잘 보았습니다~
나중에 능력이 된다면 꼭 경험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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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우천황
2012.12.10 17:27
대단한 리뷰입니다. 파텍의 전설에 화룡점정을 하셨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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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port
2012.12.10 17:55
1억이 넘는 스톱워치 기능이 있는 기계식 수동 시계.
얼마 전 리뷰가 올라왔던 랑에의 다토그래프 업 & 다운, 그리고 바셰론의 패트리모니 트래디셔널 크로노를 보고서도 느꼈지만, 정말 너무 비싼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물론 이런 초고급 사치품들의 value 라는 것은 참 돈으로 환산하기 힘든 것이지요.
그리고 가격이란 것은 시장논리에 의해 결정될테니, 실제로 value 란 것을 매길 수 있다고 하더라도 가격과 value 그 둘 사이에는 꽤나 먼 거리가 있을 수 있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고 비단 고급 시계뿐만 아니라 우리 주위에 있는 많은 물건들에게서도 볼 수 있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았을때 이미 초고급 시계 가격대의 시작점이라고 볼 수 있는 천만원의 열배나 되는 일억짜리 시계를 이렇게 접하게 되면, 과연 어떤 목적을 위해서 이런 물건들이 존재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술적으로 뛰어나고 그 기술 개발을 위해서 많은 자본을 투자했다면 당연히 그 비용에 상응하는 가격을 책정하는 것은 일리가 있지만, 이렇게까지 "비싼" 기술을 개발하여 기계식 시계에 장착하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가, 이런 의문이 생기네요.
비교가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제약 회사들을 보면 새로운 약 개발을 위해 수백억 또는 수천억의 돈을 투자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개발한 약 한알에 몇백만원씩 가격을 책정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개발한 약은, 만약 시장에 나오는 것에 성공했다면 여태까지 존재한 어느 약도 대체할 수 없는 그만의 고유한 기능과 혜택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위의 리뷰에 소개된 기술적으로 최고의 경지에 다다른 1억짜리 기계식 시계에 대해서는 이러한 결론을 내리기 힘든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런 생각의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연장선에는 기계식 시계라는 상품 카테고리의 존재 가치 자체를 되짚어보게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몇만원짜리 전자시계보다도 기계적인 관점에서 성능이 떨어지지만 가격은 몇백배 이상 비싼 기계식 시계를 저 또한 한개 이상 소유하고 있으면서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 모순이란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정도의 차이" 라는 것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 개인의 정의에 따른 너무나도 주관적인 기준의 "정도" 이지만, 천만원짜리 기계식 시계와, 일억짜리 스톱워치 기능이 있는 기계식 시계는 "정도의 차이"의 거리가 너무 먼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같은 사람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밤늦게 잠이 안와서, 평생 1억짜리 시계와는 인연이 없을 사람으로써 주저리 주저리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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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port
2012.12.10 17:59
파텍이 한 가지 마음에 드는 것은, 1억짜리 시계에 폴딩 버클을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가격이 좀 더 저렴한, 바셰론의 패트리모니 수동 크로노그라프 시계도 폴딩 버클이 장착되었죠.
랑에의 다토그라프는 역시 1억이나 하면서 탱버클이 적용된 것은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고급시계 구매자들이 저와 같이 탱버클보다 deployant buckle 을 더 선호한다는 가정하에서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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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청년
2012.12.17 19:53
제 개인적인 생각은 탱버클의 장착은 어떤 전통(?) 같은 것에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추측을 해 봅니다.
1억이 넘는 시계에 단순히 비용절감을 위해 탱버클을 채용하였다고는 생각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탱버클으 장착으로 비용이 조금 줄어드는 부수적(?) 효과도 있겠지만요...
가격 책정과는 다소 무관한 시계라고 할 수 있는 듀포의 심플리시티의 경우도 탱버클이 장착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과연 비용절감 때문일까요???
탱버클이 보다 전통적인 버클의 모습이기에 이러한 선택이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보는 이유입니다.
("그럼 폴딩버클을 채용한 다른모델은???" 이라고 질문하시면 많이 궁색해지겠네요....)
뭐....정확한 비유는 아니겠지만 서브 넌데이트도 비용절감을 위해 데이트기능을 제거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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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찍사
2012.12.10 19:32
'State of the Art'의 의미를 고려해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
치우천황
2012.12.10 21:34
프리포트님의 의견에 전적으로공감합니다. 다만 시계의 가격과 가치의 괴리도, 즉 거품에 대해서는 아마 100가지 분석이 가능할 겁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프리포트님의 브레게 마린 골드나 저의 예거 m8d ppc도 어떤 사람들은 미친 돈질이라 할겁니다.
거품 경제학이 자본주의의 본질인 것을 인정 한다면 이런 시계들도 명분이 없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비싸다 싸다는 것은 상대적 기준이라
여기서 간단히 논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혹 디프로이먼트버클이 가격이 비싸서 탱버클을 비용측면에서 쓴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오해입니다. 원래 탱버클은 클래식한 시계의
전통입니다. 마치 수동시계에서 자동시계보다 전통의 향기를 강하게 느낄 수 있는 것과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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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son456
2012.12.11 01:04
저도 프리포트님의 의견에 상당부분 동감합니다.
조금 다른 시각으로는 시계를 예술품에 비교하기도 하지만, 현행 작가들의 미술품들도 비싼 것들은 1천만 파운드(150억~200억)를 넘는 것을 보면 예술품은 또다른 차원의 세계이지요.
왜냐하면 그것들은 세상에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본래의 기능(아름다움)이 여전한 미술품들과 달리, 시계는 기계이기 때문에 본래 기능이 퇴화되기 때문에 '영속적인 가치'라는 점에선 차이가 있습니다.
미술품도 습도 등의 관리가 필요하고, 시계 역시 관리만 잘 한다면 기능을 한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그 '관리'의 정도를 동일한 선에서 보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그 관리의 정도란 수백억의 모나리자가 아닌 수억의 호세 마리아 탬버리니(일반적 관점으로는 무명에 가까워 아는 분이 없으실 듯)의 그림과 비교해야겠지요...
같은 설계도를 가지고 똑같이 만들어내는 시계는 한정판이라 하더라도 예술 세계에서의 '판화'정도 위치일 것입니다.
마리 앙뜨와네뜨 시계 정도라면 예술품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겠지만, 아무리 수억의 시계라 해도 '잘만든 기계' 이상의 호칭은 과하다 봅니다.
그것도 특히 현행품이라면 더욱 그렇구요...
참고로 샤갈, 마티스의 회화는 최소 수억에서 수백억 이상까지 있지만 판화들은 3천만원 정도의 가격에 소장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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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port
2012.12.11 09:10
날개찍사님, 치우천황님 그리고 제이슨님 제 두서없는 댓글에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김우측님께서 너무나 훌륭한 리뷰를 써주셨는데 제가 보기 흉하게 댓글로 도배를 하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위의 세분에 대한 저의 생각은 댓글 하나로 모아서 하겠습니다.
먼저 날개찍사님께서 말씀하신 state of the art 에 대한 고려는 저도 공감하는 바입니다. 현존하는 기술의 가장 최고봉을 적용한 초특급 최고급 제품은 비록 그 바로 한단계 밑의 제품과의 기술적 또는 기능적 그리고 그 외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어떠한 측면에서의 차이가 매우 미세하다 하더라도 엄청난 프리미엄을 요구합니다. 그만큼 쉽게 말하자면 1등이라는 것의 가치가 반영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최고급 제품의 프리미엄은 그 물건의 가치의 차이가 비록 미세하다 하더라도 그것의 질적인 존재를 쉽게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을 때 더욱 받아들이기 쉬운 것 같습니다.
쉽게 머리속에 떠오르는 자동차의 예를 들면 이미 보통 사람들에게는 슈퍼카 중의 슈퍼카라고 할 수 있는 람보기니 아벤타도르의 가격이 40만불 정도인데, 많은 사람들이 양산되는 스포츠카중 최고라는 말하는 부가티의 베이론은 200만불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베이론이 아벤타도르의 5배 값어치를 할 만한 가치가 있냐 하는것은 이미 의미가 없는 질문이지만, 확실한 것은 베이론이 아벤타도르보다 엔진도 더 크고 더 빠르다는 점입니다 (그 외에 분명 베이론이 더 좋은 점이 있겠지만 제가 차에 대해서 잘 모르니 단순히 "더 빠르다"는 것에만 집중하겠습니다). 그리고 스포츠카라는 물건의 본질을 봤을때, 더 빠르다는 것은 분명히 큰 의미가 있는 기능적 차이입니다. 과연 얼마나 더 빠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것 역시 큰 의미는 없고, 중요한 것은 베이론이 1등이고, 1등은 2등보다 월등히 높은 프리미엄을 요구할 자격을 부여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타포에서 이미 여러 초고가의 시계들을 본 적이 있지만 제가 위의 답글에서 언급한 시계들과 같은 고가의 수동 크로노그라프 시계들을 보면서 치우천황님께서 언급하신 "가격과 가치의 괴리"를 더욱 강하게 느낀 것은 이러한 "1등급" 수동 크로노그라프 시계들이 2등급의 시계들보다 어떠한 기능적 면에서 뛰어난지 제가 잘 모르겠다는 이유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물론 저의 무지함 때문이지요. 위의 리뷰에서도 테크니칼한 면에서 어떠한 부품이 어떻게 사용되어 파텍의 시계가 세계 최고의 기술을 반영하고 완벽함을 추구하는지 잘 설명이 되어있지만, 그런 것을 읽고 나서도 그래서 과연 이러한 시계가 기능적인 면에서 어떻게 뛰어난 지 피부로 와닿지 않습니다. 역시 매우 고가인 예거의 듀오미터나, 또 퍼페츄얼 캘린더의 기능이 들어간 하이엔드 시계, 아니면 그 외의 다른 시계에서는 볼 수 없는 색다른 기능이나 기술적인 디자인을 적용한 시계를 보면 그런 시계가 고가인 이유가 이러이러하게 있구나하고 조금은 납득이 쉽게 갑니다. 그러한 기능들의 실용적인 측면에서의 유용함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기계식 시계 자체를 논할때 그러하듯 실용적인 유용함이란 이미 중요한 고려대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1억짜리 수동 크로노그라프 시계는 어떤점이 2천만원짜리 크로노그라프 시계보다, 얼마나 실용적인 쓸모가 있는 기능이냐를 떠나, 기능적인 면에서 과연 뛰어난 점이 있는지 그 자체를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에 파텍에서 일오차가 1초 미만에 파워 리저브가 1달인 날짜도 없고 복잡기능도 없는수동시계를 만들어서 가격을 10억으로 책정한다면 오히려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치우천황님께서 지적하셨듯이 이것은 저의 너무나도 주관적인 기준에 의한, 말 그래로 그냥 "의견" 입니다. 왜 아무 기능도 없는 천만원짜리 스틸 시계나 2천만원짜리 금통 시계는 괜찮으면서 현존하는 최고의 기술로 만든 1억짜리 금통 크로노 시계는 이해할 수 없냐라고 물으시면 "그냥 제 생각에 그렇습니다"라는 별 호소력 없는 답변 밖에 나올 수 없는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적어도 타포 내에서는, "매우 잘 만든 그리고 역사적으로나 그 외의 마케팅적인 값어치가 있는 고급 브랜드에서 제조한 스틸 소재의 기계식 시계에 천만원이라는 가격이 너무 터무니없지는 않다"라는 의견은 어느 정도는 받아들여지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의견을 기준으로 했을 때, 1억짜리 크로노그라프 시계는 저에게는 말씀하신 괴리감의 "정도의 차이"가 좀 너무 많이 나는 것 같습니다.
제이슨님의 예술품과 시계의 차이점은 저도 많이 공감됩니다. 아무리 state of the art 인 시계도, 그리고 아무리 장인의 손으로 만들어낸 수제품이라 하더라도, 공장에서 도면을 통해 다수가 생산되는 제품인 이상 그 자체가 경매같은 절차를 통하지 않는 한 값어치를 매기는 것 조차 불가능한 "예술품"으로 승화되기는 힘든 것 같습니다. "판화"이 비유하신 표현은 정말 감탄스럽습니다.
공감:1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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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mania
2012.12.10 18:04
환상적인시계에 환상적인리뷰네요 -
아잉먕
2012.12.10 18:25
정말 원더풀한 리뷰네요^^ 잘보고 갑니다. 내 생애 ㅎㅎ 파텍을 착용 해볼날이 오긴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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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찍사
2012.12.10 19:23
파텍은 용두만 뽑아봐도 다른 시계들과 느낌이 다릅니다.
손 끝에 느껴지는 Key Less Work의 정밀함과 완벽한 작동...
좋은 리뷰 잘 보았습니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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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eanblue
2012.12.10 20:22
고전 명작에 비유한 부분 참 멋스럽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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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tinum
2012.12.11 00:34
작년 쯤인가 캔사스시티에 가서 손목에 올려보고 반해버렸던 시계네요. 신형 파텍들이 나열 된 그곳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단순하면서도 강한 느낌의 시계라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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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
2012.12.11 01:18
작년에 사보나 딜러점서 잠깐 만져 봤는대 웨이트4개 짜리 작은 바란스휠로 바뀐거 빼고는 흠 잡을대 없는 시계 이더군요
구매시 할인해서 5만3천유로에 추가 택스리펀까지 생각해보면 국내가격 책정이 높네요 결국 다른한정판 모델과 고민하다
할인 없는 한정판을 구매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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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말아요
2012.12.11 03:40
꿈은 크게 가지는게 좋은거죠??? 저 높은 파텍의 봉우리를 목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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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dy
2012.12.11 10:58
프리포트님께서 제가 갖고있던 의심에 관한 질문을 정리하여 말씀을 주시니 개운한 느낌마저 듭니다. 뭐 그렇다고 100%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싼시계에 대해서는 진지한 사고를 갖아보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마도 대부분 시계를 좋아하시고 가치를 부여할 줄 아시는 분들이 이러한 질문과 의심을 갖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참 김우측님의 필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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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신13등급
2012.12.11 12:32
역시 PP, 리뷰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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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세이코
2012.12.11 16:18
입이 떡 벌어지는 리뷰와 멋진 댓글.. 잘보았습니다 포럼에서 글과 사진을 볼때마다 세상엔 참 엄청난 분이 많구나고 느끼는데 새삼 오늘 또 그러하네요.. 김우측님, 쩜하나군님 그리고 프리포트님의 시계 내공에 고개가 숙여집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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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기초이론
2012.12.11 21:19
정말 대단합니다...리뷰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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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ros
2012.12.11 23:30
추천을 안할수가 없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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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아주세요
2012.12.11 23:58
시계도 아트 리뷰도 아트네요..^^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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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
2012.12.12 09:15
ㅎㄷㄷ 한 리뷰 였습니다. 너무 좋은 리뷰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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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운드
2012.12.12 12:52
시계는 더할나위 없이 멋지지만 국내 가격 정책이 아쉬운 부분이군요.
기계식 크로노그래프 시계가 왜 이리 비싸냐에 대한 답은 파텍필립이니까 라고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기능적인 면에서 차이가 있을까요? 마감에서는 차이가 있겠지만 그 정도의 가치는 아닐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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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mm
2012.12.12 15:38
역시...명품이란 이름이 존재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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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오
2012.12.12 19:14
추천하고 갑니다... 김우측님 손목에 꽤나 잘 어울리는거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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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드
2012.12.12 19:23
정말 저같은 시계 문회안에게 정말 도움이되는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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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n.
2012.12.12 21:54
파텍은 확실히 젊은 사람의 시계는 아닌듯 하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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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시벨
2012.12.13 18:53
파텍은 재산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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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혈한
2012.12.13 22:43
순수미술을 전공하다보니, 아트 vs. 크래프트의 해묵은 논쟁이 상기됩니다.
대학원 때, 공예전공 친구들하고 공예가 예술이냐 아니냐로 결론없는
논쟁을 했던 기억도 나구요. 아무튼 저는 핸드메이드가 많이 들어갔다고
해서 예술적 가치가 높아지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차라리 플라스틱으로 찍어낸 저가의
스와치 시계가 제겐 더 예술품으로서의 가치가 있어 보이니까요.^^
- 리뷰는 정말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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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리파파
2012.12.14 11:38
멋진 리뷰 잘 봤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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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
2012.12.14 12:24
멋진 리뷰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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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롱이형
2012.12.14 12:24
늘 댓글 단다 단다 하면서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인지 못 달았습니다.
김우측님과 쩜하나님의 내공이 팍팍 느껴지는 멋진 리뷰입니다.
다른 모든걸 떠나서 저처럼 무브에 대한 지식이 미천한 사람에게는 참 유익하고 친절한 설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이엔드 워치와 가격의 적정성에 대해 논하는 것도 좋지만,
적어도 이번 리뷰에서는 좋은 지식을 전달해 주신 점과,
파텍이 왜 좋은 시계인가에 대한 이유를 하나 더 가르쳐 주신 점에 박수를 보냅니다.
당연히 추천 드리고 갑니다.
앞으로도 좋은 리뷰 많이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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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za
2012.12.14 12:42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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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키
2012.12.14 13:29
멋진 리뷰에 추천을 아니 드릴수가 없네요. 한번 읽어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니.. 두고 두고 읽겠습니다. 언제쯤 이런 리뷰를 쓸 수 있을지 감이 안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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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7
2012.12.14 15:36
아 감동적인 파텍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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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초심
2012.12.14 19:08
구~~~웃~~ !! 감동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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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AA
2012.12.14 22:56
멋진 리뷰에 추천드립니다! 정말 최고의 시계 브랜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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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케
2012.12.19 12:33
열심히 노력하고 산다면 언젠가 이런 멋진 시계도 착용 할 날이 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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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르크
2012.12.19 13:24
타포의 최정상 제품 리뷰 잘 보고 갑니다.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 정말 오랫동안 간직하여도 질리지 않는 시계라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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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로12
2012.12.25 14:03
음.. 가격때문일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다이얼도 왠지 VC가 더 끌리네요. 언제나 좋은 리뷰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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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보
2012.12.26 14:12
멋진 리뷰 잘 봤습니다.
최정상의 제품의 의미란 이런 것이군요..
진짜 리뷰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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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용젤리
2012.12.27 20:49
리뷰도 리뷰지만 시계가 참...
언젠가는 차볼수있겠죠. 그때를 조금이라도 빨리 만나려면 지금보다 훨신더 노력하며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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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odaria
2012.12.27 22:18
파텍같은 시계는 확실히 다른시계 메이커들과 시장 자체를 구분해서 취급해야 될 것 같습니다.
기타 브랜드들이 악세사리 주얼리라면 파텍은 미술품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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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dy
2013.01.02 16:39
상세한 리뷰 잘 보았습니다. 논의 되었듯이 가격은 참 아쉽습니다. 뭐 무브개발 투자금 회수라는 측면에서 어쩔수는 없겠지만 과거 르메니아 수정 무브도
아름다웠던것을 생각하면 시계값을 높이는 자사무브 채용과 개발은 저로서는 노탱큐라고 말하고 싶네요. 많은 포럼에서 언급되지만 랑에의 다토와 비교해서
무브 피니싱이 좋은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뭏든 요즘들어 파텍에 대한 찬양이 저같은 경우 재고해 보게 되는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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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잘 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