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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nd Feu

알라롱

조회 5045·댓글 58

리얼 에나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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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팡 트리플 캘린더 문 페이즈. 그랑 푀 다이얼


스펙 시트를 보면 어떤 시계의 대략적인 윤곽이 드러납니다. 가장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는 부분은 무브먼트쪽이 아닐까 싶은데요. 보석(루비)의 개수부터 좀 친절하다 싶은 곳은 니바록스 헤어스프링의 등급까지 표시합니다. 이에 비해 비교적 간단하게 설명이 되는 곳은 케이스와 같은 외관입니다. 대게 스펙 시트와 해당 모델의 이미지가 함께 하기 때문에 사실 외관은 스펙을 머리로 읽는 것보다 이미지를 눈으로 보는 게 더 이해가 빠르니까요.

 

외관 중에서도 다이얼에 대한 설명은 더 간단합니다. 블랙, 화이트, 실버 아니면 블루. 대부분 다이얼 컬러에 대한 명시입니다. 여기서 조금 더 긴 설명이 붙는 시계도 있습니다. 브레게의 기요쉐 같은 기법이 사용되었다면 단순히 컬러를 말하는 것만으로는 아까우니까요. 요즘 전에는 없었던 단어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Grand Feu’. 제 프랑스어 발음이 맞다면 그랑 푀가 될 겁니다. 번역기를 돌려보면 ‘Large Fire’라고 나옵니다. 왜 다이얼에 대한 설명에서 난데없이 불이라는 단어가 나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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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피자를 굽는것 같은 가마에서 다이얼을 굽습니다. 이런 방식이 아마 가장 전통적인일 듯 합니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에나멜 기법에 대해 조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다이얼에 주로 적용되는데 세분화되어 다채로운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양한 기법에 대해서는 나중에 알아볼 생각이라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다이얼이 될 플레이트 위에 유리질의 유약을 발라 불에 구워내는 기법입니다. (옛날에는 플레이트 자체를 에나멜로 성형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만…) 가장 보편적인 다이얼 기법인 라커와 달리 매우 소수의 모델에서 발견되는 이유는 만드는 과정이 매우 까다로워서 생산성이 형편없기 때문입니다. 에나멜 다이얼을 만드는 과정은 불을 얼마나 자유자재로 다루는가의 싸움입니다. 또 초벌 구이시 900도 가량의 온도가 되어야 에나멜 유약이 용해되기 때문에 온도자체도 무시무시(?)하달까요? 고온을 견뎌낸 에나멜 다이얼은 그 뜨거움을 견뎌낸 만큼 아름답습니다. 제가 표현력이 부족해서 그 매력을 반의 반도 설명하지 못하지만 뽀얗고 또 투명하면서 매끄러운 광택이 도는 그랑 푀는 정말이지 황홀합니다. 하지만 가마 속 온도, 가마에 들어간 시간, 식히는 과정을 잘 조절하지 못하면 여지없이 실패로 이어집니다. 뒤틀리고 금이 가고 부풀어 오르게 된 다이얼은 가치가 전혀 없으니까요. 그랑 푀에 불이라는 뜻이 왜 들어가는지 알게 되셨을 겁니다. 그런데 에나멜 다이얼을 만든다면 당연히 불에서 굽는 것인데 왜 굳이 언급을 하게 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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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 에나멜을 사용한 스토바입니다. 실제 질감은 직접 봐야 하지만 이미지상의 재현도라면 그랑 푀 대비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스토바의 가격을 생각하면 더욱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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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베는 에나멜 다이얼의 비중이 높은 메이커입니다. 모델에 따라 차등을 하는데 엔트리급은 콜드 에나멜을 사용합니다. 고급 모델은 환상적인 그랑푀 다이얼을 씁니다.

 

그건 콜드 에나멜이라는 에나멜 기법의 다른 하나가 있어서 입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것을 에나멜이라고 불러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고민이 됩니다만아무튼 콜드 에나멜은 유리질의 유약을 발라 약 700~800도의 가마 속에서 굽는 것이 아니라 레진(에폭시 수지)을 사용합니다. 그랑 푀에 비하면 100도도 안 되는 훨씬 낮은 온도로 성형되기 때문에 콜드 에나멜이라고 부릅니다. 콜드 에나멜의 공정은 그랑 푀와 비교하면 훨씬 생산성이 좋다고 볼 수 있습니다. 레볼루션의 편집장인 웨이 코의 말을 재차 인용하겠습니다. 그는 콜드 에나멜을 인더스트리 에나멜이라고 말했습니다. 뼈가 있는 말로 들리는데, 아무래도 수공이나 전통과는 거리가 있는 표현이죠. 물론 콜드 에나멜을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콜드 에나멜의 강점인 가격 접근성을 무시할 수 없으니까요. 반대로 그랑 푀와 같은 전통적인 에나멜 다이얼은 가격이 비쌉니다. 고급 기능이 달린 모델에 사용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이얼 자체만 보더라도 정성이 많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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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 푀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쟈케 드로 (이미지는 꼭 구하기 어려운 모델만 골라서 올리는 묘한 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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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릭 콘스탄트. 최신의 실리시움 기술과 전통적인 그랑 푀 다이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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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세론 콘스탄틴 메띠에 다르 컬렉션 샤갈 엔 오페라 드 파리의 다이얼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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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방가서 가마를 두리번 거리며 찾았는데 위 이미지 같은 전기식을 많이 쓰는듯 했습니다


단색일 경우 상대적으로 공정이 단순하다고 해도 7~8회 가량 덧바르고 굽기를 반복해야 에나멜 고유의 색감과 질감이 드러납니다. 색이 여러 개일 경우에는 색 하나를 바르고 굽고, 색 하나를 다시 다르고 굽는 과정의 반복입니다. 바세론 콘스탄틴의 메띠에 다르 컬렉션 샤갈 엔 오페라 드 파리 같은 모델은 이 과정을 20번이나 겪어야 비로소 완성이 됩니다. 그랑 푀 중에서도 고난이도를 자랑하죠. 단순한 반복이면 차라리 낫습니다. 매번 가마에 들어갈 때마다 금이 가거나 하는 위험성에 놓여집니다. 19번의 공정을 성공했더라도 마지막 공정에서 금이 가면 버려야 하는 아주 고된 과정입니다. 예전에 까르띠에 공장에 갔을 때 에나멜 다이얼 작업 광경을 에나멜러의 등 뒤에서 볼 기회가 있습니다. 다이얼 크기는 잘 아시겠지만 그 작은 공간을 심호흡하며 머리카락 다발 같은 붓으로 채워나가는 그런 것 말이죠. 안내를 맡았던 관계자가 네가 원하면 여기에 취직을 시켜주겠다고 하더군요. 자격증 같은 건 전혀 필요 없고 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된다는 말에 살짝 혹 했었습니다. 농담으로 한 이야기였겠지만 에나멜 다이얼을 만드는 인력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합니다. 공방에서는 나이가 있는 숙련자 보다는 보기에도 아주 앳되어 보이는 친구들이 더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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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 푀는 이렇게 다이얼에 아예 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는 메이커도 여전히 있습니다. 위 이미지는 브레게

 

메이커들이 다이얼에 일부러 그랑 푀라고 써가며 구분을 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사실 좀 안타깝습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아름다움을 아름다움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시대라는 것 같거든요. 하지만 그것으로 어렵게 정성 들여 만든 에나멜 다이얼을 알아보게 된다면 최소의 보상은 될거라 봅니다. 또 그것으로 그랑 푀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된다면 분명 좋은 일이 될 겁니다. 전통의 막바지에 있는 그랑 푀를 계승하겠다고 먼 동방에서 애니타 포르쉐(1)의 공방으로 찾아가는 청년이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주1 : 애니타 포르쉐(Anita Porchet) : 에나멜 아티스트. 1961년, 랴쇼드퐁 출생. 미술학교 출신. 1995년부터 프리렌서로 활동 시작. 바세론 콘스탄틴, 피아제, 율리스 나르딘, 예거 르꿀트르 등등 수많은 메이커의 에나멜 다이얼을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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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안걸리는 사진 뒤지다가 보니 이것 밖에는...작업중인 애니타 포르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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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작 바세론 콘스탄틴 마띠에 다르 컬렉션 중 두 점. 사진 추가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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