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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시계의 매력에 눈을 뜬 지 얼마 되지 않은 입문자입니다!

제가 원래 생각이 많은 편이라 글이 좀 길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리 양해를 구하고...

혹시나 스압이 싫으신 분들께는 지금이라도 도망가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시계 선배님들은 왜 그렇게 씁쓸해 하셨을까요?

입문 글을 올리고 들은 반응들이 진심으로 축하해주시면서도 묘하게 쓸쓸한...?

"예전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좋네요" 라던가, "제 시계 생활에 대해 돌아보게 되네요"와 같은 말씀들이셔서요.

정말 감사하지만 뭔가 갸우뚱? 했습니다.

너무 멋진 시계들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많으셨는데, 왜 이렇게 달콤씁쓸해 하실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시계 입문자로써 행복했던 이유 1 - 개인의 성장의 심볼

이전에는 시계가 돈 낭비라고(...) 생각했던 저에게, 입문하며 얻게 된 두 시계는 정말 큰 행복감을 주었습니다.

특히 두 번째로 영입한 튜더 블랙베이 GMT는 제가 번 돈으로 제가 산 것이기 때문에, 더 특별한 것 같습니다.

예물로써 선물 받은 시계에 비하면 훨씬 가격이 저렴하지만, 이건 온전히 제 능력으로 구매한 시계였거든요.

마치 "내가 이런 시계를 살 수 있을 만큼 성장했구나"라고 느끼는, 어떤 심볼 같이 느껴졌습니다.

pepsi.png


구입한 이유도 해외 거주 경험이 있어서, 타인의 입장도 고려하고 싶어서, 튜더는 언더독 느낌이 강해서 등...

무언가 이 시계에 대해, 그 메이커에 대해 "내가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에" 였습니다.

그러니까 튜더 블랙베이 GMT는 어떻게 보면, 지금 저라는 사람을 대변하는 "심볼"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시계 입문자로써 행복했던 이유 2 - 일탈의 스릴

예물 시계 이야기가 나왔으니 유추하셨겠지만, 저는 아직도 인생의 꽤 초반부에 있습니다.

하지만 벌써 느껴지는 어떤 스스로의 힘에 대한 자각(?), 그리고 너무 빠른 시간의 흐름에 대한 허탈함이 느껴지네요.

부모님께서도 슬슬 나이가 드시는 것이 보입니다. 이전에는 제가 부모님께 혼났지만, 이제는 종종 제가 부모님께 잔소리를 하네요.


점점 누군가의 허락을 맡고 해야 하는 일들이 적어집니다.

누군가의 허락을 맡아야 한다는 것은 귀찮은 일이지만, 동시에 그 사람이 책임을 져준다는 뜻도 있습니다.

점점 저 대신 책임을 지어줄 사람이 줄어들고, 반대로 제가 책임질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 보입니다.


확실히 시계는 비싼 취미가 맞습니다. 그런 의미에서의 "스릴"도 있습니다.

구매를 하며 뭔가 "아 이러면 안되는데" 싶지만 선을 넘을 때의 스릴이 있잖아요.

점점 저 대신 판단해주고 책임져줄 사람이 적어지며 "그건 안돼!"라고 해줄 사람이 적어지는 지금,

그 "안된다"는 것을 할 때의 스릴을 저는 튜더 블랙베이 GMT를 구매하며 느낀 것 같습니다.

(아직 부모님은 모르십니다. 쉿...)


시계의 적정 가격은 구매자가 뿌듯함이나 일탈의 스릴을 느낄 수 있는 가격이다.

아무리 역사가 긴 워치메이커도, 아무리 복잡한 컴플리케이션도 정말 억 단위까지 올라가는 시계의 가격을 정당화 할까요.

결국 시계가 비싼 이유는 제가 위에 적은 두 즐거움을 느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1. 구매하는 사람의 성장을 대변해야 한다.

2. 지를 때 충분히 "아 이거 선 넘나?"라는 스릴을 느끼게 해야 한다.


그럼 (특히 하이엔드) 시계의 가격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라고 물어본다면,

그 시대 "부자들"의 기준에서도 "헉"하는 소리가 나오게 하는 가격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성장과 성공을 거듭하며 이젠 더 이상 웬만한 것들은 원한다면 가질 수 있어진 사람들에게,

하이엔드 시계는 여전히 "내가 이걸 사도 되나?"라고 물을 수 있는 어떤 스릴을 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몇 남지 않은 선망의 대상이며 일탈의 창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는 튜더 블랙베이 GMT를 사며 일탈의 짜릿함을 느끼고,

누군가는 거기서 롤렉스 GMT-Master로 넘어가며 일탈의 짜릿함을 느끼고,

누군가는 거기서 AP 로얄오크로 넘어가며 일탈의 짜릿함을 느끼는 것 같네요.


그런데 시계의 끝판왕들을 모으신 분들에게는 말 그대로 "그 이상"이 없기 때문에 허탈해 하시는 것 같습니다.

남의 허락이던, 스스로의 허락이던, 무언가 "내가 이래도 되나?"라고 느낄 다음 목표가 또 하나 사라져 버렸으니까요.

안 그래도 허락도 받고 하며 의지할 사람들보다 내가 더 "강한"사람이 되어가며 고독을 느끼는데,

이제는 시계마저도 "이래도 되나?"라는 스릴 없이 입수할 수 있는 상황이

반대로 누구에게도 의지하기 힘든, 상당히 고독한 상황으로도 느껴지시지 않으실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봅니다.


아메리칸 사이코의 명함 씬

최근에, 2000년도 개봉한 '아메리칸 사이코'라는 영화의 유명한 장면을 보았습니다. "명함 씬"이라고 해야 하나..

1980년도 미국 월 스트리트, 젊은 나이에도 불구 부유한 삶을 사는 주인공 패트릭은 주변 사람들에게 새로 만든 명함을 자랑합니다.

명함의 재질부터 글꼴, 프린팅에 사용된 색깔 등 상당히 디테일한 부분들에 대한 설명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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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패트릭의 명함에 대해 인정하고 칭찬을 해주는 듯 하지만...

애초에 그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 모두 패트릭 정도는 되는 녀석들입니다.

다들 "그 명함도 꽤 멋지지만 이건 어때?"라는 느낌으로 본인 명함들을 꺼내 자랑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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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큰 차이는 모르겠으나 패트릭과 그 동료들에게는 무언가 명확한 차이가 느껴지나 봅니다.

종이가 얼마나 하얀지, 두께는 적당한지, 글꼴은 어떤지 등등...

저는 잘 모르겠지만, 패트릭도 확실히 그 차이를 느끼고 초조해 합니다.

3.png


이제 패트릭의 명함까지 총 3개의 명함이 나왔습니다. (다 비슷해 보이지만요...)

안절부절하던 패트릭은 뭔가 생각났다는 듯, 아직 명함을 꺼내지 않은 폴 앨런이라는 사람의 명함도 한번 보자고 하죠.

그런데 이미 자신 있게 명함을 꺼냈던 다른 동료들이 주섬주섬 명함을 집어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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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있게 담배를 피우던 폴 앨런은 끝판왕의 포스를 뽐내며 명함을 꺼내 보여줍니다.

오묘하게 탁한 색깔의 흰색부터 완벽에 가까운 종이의 두께까지, 감탄하던 패트릭은...

유명한 대사인 "이런 세상에, 워터마크까지 있잖아" 라고 생각하며 충격에 손을 떨다 명함을 떨어뜨리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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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사이코는 호러 영화지만, 그 내용은 단순히 "웬 X친놈이 사람 죽이고 다니는 이야기"가 아니라,

1980년대 여피족들의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이라고 합니다.

일반인들이 보기엔 똑같아 보이는 명함들을 가지고 본인들만의 리그에서 이러쿵 저러쿵 경쟁을 하는 모습이죠.


스스로 시계의 매력을 한 번 푹 느낀 후, "내가 혹시 후회할 취미에 발을 들이는 것은 아닐까?" 우려하며 상상한 제 모습입니다.

남들이 보기엔 큰 차이 없어 보이는 시계지만, 아주 작은 차이 하나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기꺼이 지갑을 여는 모습이죠.

누가 보면 정말이지 "돈과 시간이 남아 도니까 결국 저렇게 되는구나"라고 말할, 그런 취미입니다.


그런데 제가 타임포럼에서 짧더라도 어쨌든 시간을 보내보고 느낀 점은,

당연히 타임포럼의 멤버들이 저렇게 위선 가득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들 시계에 대한 애정과 열정으로 뭉쳐 응원과 축하의 말을 나누는 분들이셨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본 것은 아니지만, 결국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는 "허무함"이라고 합니다.

젊은 나이에 이미 가지고자 하는 (거의) 모든 것을 가진 패트릭은 남 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으나

동시에 더 소수의 누군가는 자신보다 더욱 부유하고 더욱 세련되었기 때문에 엄청난 허탈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시계에 대한 지식만으로 컬렉팅을 하면 그 끝에 허탈함이 올 것 같습니다.

"지식의 저주"라고 해서, 오히려 많이 알기 때문에 볼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제 막 입문을 해서, 오히려 잘 몰라서 이걸 느낀게 아닐까 하는 마음에 글을 적었습니다.

시계 뿐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입문자 주제에 뭔가 "조언"을 하니 혹시 기분이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다만, 그 축하의 말씀과 함께 적어주시던 글에서 느껴진 쓸쓸함이 뭔가 마음에 걸려, 좋은 의도로 적어보았습니다.


분명 시계에 대한 지식을 알면, 더더욱 기쁜 마음으로 시계를 컬렉팅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시계에 대한 지식만으로 컬렉팅을 하면, 그 끝에는 어떤 허무함이 올 것 같네요.

시계를 구매하며 "내 스스로의 성장"을 느꼈기 때문에,

시계를 구매하며 일탈의 스릴을 느꼈기 때문에 저는 더욱 이 구매가 값지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끝판왕급 시계들을 컬렉팅 하시면서도 성장이 아닌 변화일 뿐이고,

그 금액이 나감에 있어 더 이상 스릴이 느껴지시지 않으신다면...

이미 그만큼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계시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 씁쓸함보다는 만족감을 느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반대로, 성장의 기쁨과 일탈의 스릴을 느껴볼 다른 무언가를 찾아보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적고 보니 일탈의 스릴을 느끼시라고 부추기는건 뭔가 위험하게 느껴지기는 하네요 ㅡㅡ; 다들 좋은 일탈만 하실꺼죠?)


그 다른 무언가가 무엇이 될지는, 저도 그 위치가 아니라 모르겠습니다.

긴 뻘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저녁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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