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Bvlgari)가 2014년 론칭한 옥토 피니씨모(Octo Finissimo)는 스위스 시계 업계에서 완전히 달라진 불가리의 위상을 가장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컬렉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옥토 피니씨모를 기점으로 극도로 얇은 시계를 통칭하는(그러나 그 전까지 불가리로서는 미지의 영역이었던) '울트라-씬(Ultra-Thin)' 분야에 대담하게 출사표를 던진 불가리는 지난 6년 간 총 6개의 세계 신기록을 수립할 만큼 단숨에 21세기 최고의 울트라-씬 무브먼트 및 시계제조사로 거듭나게 됩니다.
- 2014년 발표한 옥토 피니씨모 수동 칼리버 BVL 128
같은 기능을 하는 부품이라도 일반적인 기계식 무브먼트의 그것보다 더욱 작고 더욱 얇게 그럼에도 더욱 정교하고 더욱 단단하게 제작해야만 하는 울트라-씬 무브먼트는 파인 워치메이킹 씬에서 예부터 웬만한 컴플리케이션 보다 제작이 까다롭고 난이도가 높은 별개의 영역으로 분류돼 왔습니다. '영원의 도시' 로마의 주얼러 불가리가 불과 6~7년 만에 울트라-씬 워치메이킹 분야의 정상에 우뚝 설 수 있으리라고는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렇듯 놀라운 반전 드라마의 성공에는 울트라-씬 분야의 전통적인 강자들(ex. 오데마 피게, 예거 르쿨트르, 피아제)과 확연히 차별화하고자 하는 불가리의 남다른 노력이 있었습니다.
- 2020년 신제품, 옥토 피니씨모 S
그리고 2020년 불가리는 어느덧 풍성한 포트폴리오를 자랑하는 옥토 컬렉션에 옥토 피니씨모 S(Octo Finissimo S)로 명명한 새로운 라인업을 추가했습니다. 옥토 피니씨모 S는 성공적인 옥토 피니씨모의 울트라-씬 미학을 이어가면서 실용적인 100m 방수 성능을 지원해 '옥토 피니씨모 사가(Octo Finissimo Saga)'의 새로운 장이 펼쳐졌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옥토 피니씨모 S는 '울트라-씬은 우아한 드레스 워치의 전유물이다' '울트라-씬 무브먼트는 섬세해서 스포츠 워치 컨셉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등등 시계애호가들이 품은 모종의 편견 내지 고정관념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제품입니다. 옥토 피니씨모 S는 기존의 옥토 피니씨모 라인을 계승하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매우 얇지만, 에브리데이 워치로 선택해도 좋을 만큼 실용적이고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제품명에 병기한 'S' 이니셜은 스테인리스 스틸을 상징하는 것으로, 옥토 피니씨모 S의 케이스 및 브레이슬릿 소재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혹자는 'S' 이니셜을 두고 스포츠 워치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옥토 라인 특유의 남성적이고 강인한 외관과 100m 방수 사양 등을 고려하면 흔히 떠올리는 캐주얼/스포츠 워치의 범주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관련해 불가리 CEO 장-크리스토프 바뱅(Jean-Christophe Babin)은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코멘트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세계 신기록을 연이어 세우며 슈퍼카(Supercar)로 시작한 옥토 피니씨모를 그란 투리스모(Grand Turismo, 일상에서 주행하는 고성능 차량)까지 확장해냈다. (중략) 스크류-다운 크라운을 갖추고 100m 방수를 지원하기 때문에 옥토 피니씨모 S 워치를 착용한 채 수영을 즐기고 샤워를 할 수 있다. 테니스 코트에서부터 회의실까지 어디에서든 착용할 수 있으며, 드레스업이나 캐주얼한 차림에도 모두 어울린다.”
- 2017년 발표한 옥토 피니씨모 오토매틱 티타늄
모노크로매틱 공식에 충실하면서 이를 기점으로 브레이슬릿 모델이 이어졌다.
옥토 피니씨모 S는 또한 기존의 모노크로매틱(Monochromatic) 공식을 탈피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케이스와 다이얼을 단일 소재 및 단일 컬러로 적용한 이전의 옥토 피니씨모 제품들과 눈에 띄는 차이를 보입니다. 여러 겹의 래커 처리 후 선버스트 마무리한 블랙과 블루 두 가지 컬러 다이얼을 지원하며, 특히 블루 다이얼의 색감이 돋보입니다. 너무 밝지도 너무 어둡지도 않은 오묘한 미드나잇 블루 컬러가 다이얼을 중심으로 은은하게 퍼져 나가는 방사형의 패턴과 어우러져 고급스러운 인상을 강조합니다. 옥토 피니씨모 S의 다이얼은 스위스 쥐라 산맥 자락의 세그네레지에(Saignelégier)에 위치한 불가리의 인하우스 매뉴팩처에서 완성됩니다.
라틴어로 숫자 '8'을 뜻하는 이름처럼 팔각형을 기반으로 110개에 달하는 단면을 입체적으로 적용하고, 돔을 연상시키는 원형의 베젤을 더해 완성한 옥토 라인 고유의 아이코닉 디자인은 옥토 피니씨모 S에서도 어김없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옥토 컬렉션의 탄생 배후에는 걸출한 인물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오데마 피게의 로열 오크(1972년), 파텍필립의 노틸러스(1976년) 등 손목시계 역사에 길이 남을 수많은 아이코닉 워치를 디자인한 20세기 최고의 시계 디자이너 제랄드 젠타(Gérald Genta, 1931-2011)가 그 주인공입니다.
- 故 제랄드 젠타
젠타에게 있어 팔각형은 그의 대표작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시피 각별한 애착의 대상이었습니다. 젠타는 팔각형의 모티프를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거장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의 한 건축 스케치와 막센티우스 바실리카(Massentius Basilica)와 같은 고대 로마의 건축물에서 영감을 얻었고, 조화로운 디자인을 위한 궁극의 코드로 여겼습니다. 젠타 생전 옥토는 바이-레트로그레이드와 점핑 아워 기능의 모델이나 레트로그레이드와 투르비용을 접목한 모델 등 주로 컴플리케이션 워치 형태로 출시돼 일부 시계애호가들 및 컬렉터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2000년 불가리가 제랄드 젠타 브랜드를 전격 인수함으로써 옥토 역시 자연스럽게 불가리의 컬렉션으로 흡수되었습니다. 이후 제랄드 젠타가 타계하고 불가리가 세계적인 럭셔리 그룹 LVMH에 합류한 이듬해인 2012년 옥토는 전면 리뉴얼을 통해 불가리의 새로운 남성 워치 컬렉션으로 론칭,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 불가리 워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파브리지오 부오나마싸
반면 옥토 피니씨모와 옥토 피니씨모 S는 불가리의 워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파브리지오 부오나마싸(Fabrizio Buonamassa)의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젠타의 오리지널 디자인을 계승하면서도 옥토 피니씨모만의 날렵한 케이스를 위해 더욱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최신작 옥토 피니씨모 S는 케이스 및 브레이슬릿 소재로 스틸을 사용했기 때문에 새틴 브러시드 및 폴리시드 두 상반된 마감 처리를 통해서도 제품의 캐릭터를 더욱 입체적으로 살릴 수 있었습니다.
- 올해 함께 출시된 옥토 피니씨모 로즈 골드 버전과 옥토 피니씨모 S
불가리는 앞서 출시한 옥토 피니씨모 제품군에 티타늄과 골드, 심지어 블랙 세라믹 케이스/브레이슬릿까지 주로 전체 무광의 샌드블래스트 마감을 선호했습니다. 이는 모노크로매틱 전략과 맞물려 옥토 피니씨모 컬렉션의 개성을 돋보이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디자인 코드를 모든 시계애호가들이 선호하는 것은 아니기에 브랜드로서는 다른 조합을 통해 라인업 확장의 필요성을 느꼈을 것입니다. 물론 옥토 피니씨모에 사용된 5등급 티타늄, 블랙 하이테크 세라믹, 카본은 매우 가볍고 혁신적이며 인체친화적이기까지 한 훌륭한 소재들입니다. 하지만 의외로 새로운 소재에 거부감이 있거나 골드 혹은 스틸과 같은 보다 전통적인 소재를 선호하는 이들이 아직까진 더 많습니다. 또한 골드 혹은 스틸은 가공이 용이하기 때문에 마감처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도 제품의 가치를 한층 더 돋보이게 할 수 있습니다. 시계애호가들이 고급시계를 선호하는 이유 중에 케이스 및 브레이슬릿의 마감 상태 또한 포함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쉽게 말해 해당 가격대를 지불한 만큼 시계가 남들에게도 비싸 보이고 좋아 보여야 한다는 암묵적인 요구가 있는 셈입니다.
일찍이 주얼러로 명성을 획득한 브랜드인 만큼 옥토 피니씨모 S의 스틸 케이스 및 브레이슬릿의 전체적인 가공 및 마감 상태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합니다. 유무광 마감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 케이스 및 브레이슬릿 역시 스위스 세그네레지에에 위치한 불가리의 인하우스 매뉴팩처에서 완성됩니다. 케이스의 직경은 40mm, 두께는 6.4mm로 같은 무브먼트를 공유하는 옥토 피니씨모 라인의 전작들(5.15mm)에 비해서는 다소 두꺼워졌지만, 수영 등 레저활동에도 안심할 수 있는 100m 방수로 방수 성능을 크게 향상시킨 점을 감안하면 여전히 얇은 두께를 자랑합니다. 참고로 테두리 요철 가공한 스크류-다운 크라운 중앙에는 블랙 세라믹 인레이를 세팅해 은근히 포인트가 됩니다.
팔각형과 원형이 어우러진 독특한 케이스 디자인 특성상 일반적인 단일 쉐입 시계들에 비해 실착시 스펙 보다는 조금 더 커 보이는 효과는 있지만, 오토매틱 스포츠 워치 사양치고는 매우 얇은 두께 덕분에 착용감은 좋습니다. 손목에 찰싹 감기는 인체공학적인 구조의 인티그레이드(Integrated) 스틸 브레이슬릿 역시 우수한 착용감에 기여합니다. 기존의 옥토 피니씨모가 너무 가볍고 너무 얇아서 오히려 아쉬움을 느꼈던 분들이 있다면 새로운 옥토 피니씨모 S는 확실한 대안체입니다.
무브먼트는 다이얼 상에 시와 분 그리고 오프센터 형태로 스몰 세컨드(초)를 표시하는 기존의 타임온리 자동 칼리버 BVL 138을 이어 탑재하고 있습니다(진동수 3헤르츠, 파워리저브 약 60시간). 2014년 첫 선을 보인 울트라-씬 수동 베이스(BVL 128)를 기반으로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를 생략하고 그 자리에 와인딩 효율을 좋게 하기 위해 플래티넘(Pt950) 소재의 마이크로 로터 설계를 적용해 기존 베이스의 2.23mm 두께를 유지합니다. BVL 138 칼리버는 2017년 옥토 피니씨모 오토매틱으로 데뷔 당시 케이스 두께 5.15mm로 세계에서 가장 얇은 기계식 자동 손목시계 기록을 수립한 바 있습니다.
- 두께 2.23mm에 불과한 울트라-씬 자동 칼리버 BVL 138
전체 로듐 도금 마감한 BVL 138 칼리버의 베이스플레이트는 구석구석 보이지 않는 곳까지 조밀하게 페를라주 마감하고, 톱 브릿지는 코트 드 제네브(Côtes de Genève, 제네바 스트라이프) 마감했으며, 브릿지 테두리는 수작업으로 얕게 모따기(Chamfering) 후 일부 폴리시드 마감했습니다. 비슷한 가격대의 여느 고급 시계제조사들의 제품과 비교해도 무브먼트 피니싱은 뒤지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오직 불가리에서만 접할 수 있는 100% 인하우스 개발, 제작 울트라-씬 무브먼트라는 점에서 고유의 성취와 가치를 지닙니다. 8개의 오각 스크류로 고정된 케이스백 중앙에 투명 사파이어 크리스탈을 삽입해 독자적인 무브먼트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 BVL 138 칼리버의 어셈블리 과정
참고로 옥토 피니씨모(옥토 피니씨모 S 포함) 라인에 탑재된 모든 울트라-씬 칼리버는 스위스 파인 워치메이킹의 요람으로 통하는 발레드주의 르상티에(Le Sentier)에 위치한 불가리 매뉴팩처에서 제작 및 조립이 이뤄집니다. 이곳은 불가리의 다른 특별한 하이엔드 타임피스들, 특히 그랑 컴플리케이션 시계들이 함께 조립되는 아뜰리에임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만큼 울트라-씬 무브먼트의 개발 및 조립 과정에 고도의 기술력과 노하우가 요구됨을 의미합니다.
옥토 피니씨모 S의 국제 품질 보증 기간은 롤렉스, 오메가, 브라이틀링 등과 동일한 최대 5년까지입니다. 이달 9월 1일부터 옥토 피니씨모 라인을 비롯한 제랄드 젠타, 일부 하이 컴플리케이션 제품들은 기존의 2년에서 5년으로 대폭 워런티가 늘어났습니다. 그 외 컬렉션 제품들도 2년에서 3년으로 늘어났으니 최근 고급 시계 업계의 경향을 발맞춰가려는 노력이 엿보입니다.
옥토 피니씨모 S의 국내 출시 가격은 블랙 다이얼(Ref. 103297)과 블루 다이얼(Ref. 103431) 버전 동일하게 각각 1천 480만원으로 책정됐습니다. 이는 기존의 옥토 피니씨모 티타늄 혹은 세라믹 버전에 비해 3~5백만원 정도 더 저렴한 수준입니다. 평소 옥토 피니씨모 라인에 많은 관심이 있고 불가리 매뉴팩처의 일취월장한 기술력에 감탄해왔지만 선뜻 접근하기 쉽지 않은 높은 가격대 때문에 주저했던 분들이라면 보다 트렌디하고 스포티하게 거듭나면서 진입 장벽까지 낮춘 옥토 피니씨모 S에 자연스레 관심이 쏠릴 것입니다.
실제로 국내에서는 약 한 달 전부터 선출시해 판매에 들어갔는데 제품이 입고되기가 무섭게 판매로 이어질 만큼 벌써부터 반응이 뜨겁다고 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비슷한 가격대에서 기록적인 두께의 울트라-씬 자동 무브먼트를 탑재한 캐주얼/스포츠 워치의 비교군을 찾기 어렵기 때문에 분명 니치한 매력이 있습니다. 본인의 취향과 직업군의 영향으로 얇고 우아한 드레스 워치를 보통 선호해왔지만 비슷한 두께의 스포츠 워치가 등장한다면 크게 고민하지 않고 선택할 만한 수요층이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옥토 피니씨모 S는 지난 6년여 간 기록의 행진을 이어온 ‘옥토 피니씨모 사가’의 새로운 장을 여는 이정표와도 같은 신제품입니다. 레드 닷 어워드 등 유수의 세계 디자인상을 휩쓴 옥토 시리즈 고유의 아이코닉 디자인을 기반으로 파인 워치메이커로서의 자긍심이 폭발하는 울트라-씬 기술의 정수를 녹여내고 나아가 모던 럭셔리 스포츠 워치의 새로운 영역까지 노리는 야심만만한 신작 옥토 피니씨모 S를 시계애호가라면 분명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옥토 피니씨모 S를 이제 국내 매장에서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이야 이제 점점 완성형이 되어가는듯 한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