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엔드 시계제조사 바쉐론 콘스탄틴(Vacheron Constantin)이 올해 새롭게 런칭한 피프티식스(Fiftysix)는 그 이름에서 예상할 수 있듯 1956년 제작된 메종의 역사적인 시계에서 디자인 영감을 얻은 레트로 컨템포러리 스타일의 남성용 시계 컬렉션입니다. 지난 1월 제네바 국제고급시계박람회(SIHH 2018)에서 처음 베일을 벗고, 9월 영국 런던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서 글로벌 런칭을 알린 피프티식스 컬렉션이 마침내 이달 11월부터 한국의 고객들에게 선보입니다.
- 피프티식스 투르비용
피프티식스 컬렉션의 국내 출시를 기념하여 타임포럼이 해당 컬렉션을 전반적으로 아우르는 내용의 스페셜 컬럼을 준비했습니다. 이번 포스팅을 통해 새롭게 탄생한 피프티식스 컬렉션을 미리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피프티식스 셀프-와인딩(Fiftysix Self-winding), 피프티식스 데이-데이트(Fiftysix Day-Date), 피프티식스 컴플리트 캘린더(Fiftysix Complete Calendar), 피프티식스 투르비용(Fiftysix Tourbillon) 총 4가지 라인업으로 구성된 피프티식스 컬렉션은 최상위 모델인 피프티식스 투르비용만 제외하고 나머지 세 라인업은 스테인리스 스틸과 핑크 골드 버전으로 각각 선보이고 있습니다.
- 피프티식스 데이-데이트
바쉐론 콘스탄틴의 전 컬렉션에서 스틸과 골드 버전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라인은 이전까지는 오버시즈(Overseas)가 유일했는데요. 이로써 새로운 피프티식스 컬렉션의 방향성 또한 분명해집니다. 물론 오버시즈처럼 외관부터 직접적으로 스포츠/캐주얼 라인을 표방하진 않지만, 피프티식스는 메종의 대표적인 드레스 워치 컬렉션인 패트리모니(Patrimony), 트래디셔널(Traditionnelle), 히스토릭(Historiques)과는 한눈에도 차별화된 지향점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스틸 버전을 전개함으로써 컬렉션의 문턱을 낮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쓰리 핸즈 데이트 라인업인 피프티식스 셀프-와인딩 스틸 모델의 소비자가가 유사한 기능의 오버시즈 스틸 모델보다 훨씬 저렴한 1천만 원 중반대에 책정된 것만 보더라도 피프티식스가 기존의 컬렉션 보다 젊은 고객층을 타겟으로 하고 있음을 실감케 합니다.
- 바쉐론 콘스탄틴의 새 광고 캠페인 'One of not many' 메인 비주얼
새로운 광고 캠페인 '많지 않은 것 중의 하나(One of not many)'에서 뮤지션 벤자민 클레멘타인(Benjamin Clementine)과 제임스 베이(James Bay), 디자이너 오라 이토(Ora Ito), 사진가이자 탐험가인 코리 리차드(Cory Richards)와 같은 최근 들어 주목 받기 시작한 젊고 재능 있는 인물들을 모델로 기용한 것도 밀레니얼 세대에게 보다 친근하고 스타일리시하게 어필하고자 하는 메종의 노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One of not many' 캠페인에 참여한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벤자민 클레멘타인이 오스카 와일드의 시를 변용한 신곡 '영원(Eternity)'을 가창하고 있다. 런던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서 촬영 당시 그가 착용한 시계는 피프티식스 컴플리트 캘린더.
첫 앨범으로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 영국의 뮤지션이자 싱어송라이터 제임스 베이. 'One of not many' 캠페인 영상에 등장한 그가 착용한 시계 역시 피프티식스 컴플리트 캘린더.
- 피프티식스 셀프-와인딩
새로운 피프티식스는 또한 기존의 바쉐론 콘스탄틴 컬렉션과 차별화된 디자인으로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앞서 강조했듯 1956년 제작된 아이코닉 모델(Ref. 6073)을 기반으로 하는 피프티식스의 디자인적인 특징들은 분명 새롭지는 않지만 해당 컬렉션의 캐릭터를 대변하기에는 충분합니다. 레트로(복고) 스타일을 지향하는 수많은 브랜드의 제품들이 그러하듯 피프티식스 또한 특유의 고전적인 다이얼 디자인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계의 진짜 매력(?!)은 케이스 디자인에 있습니다. 토너 형태의 미들 케이스에서 원형의 베젤로 이어지는 단차가 있는 양 러그 디테일에서 메종을 상징하는 말테 크로스(Maltese cross) 형태를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컬렉션에 영감을 준 오리지널 모델(Ref. 6073)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특징으로, 끝이 수직으로 파인 흡사 화살촉 모양의 러그 장식 4개가 한 구심점을 중심으로 모이면 바쉐론 콘스탄틴의 문장인 말테 크로스 형상을 띠게 됨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 피프티식스의 원형이 되는 Ref. 6073 (Circa. 1956, 뮤지엄 피스)
메종의 시그니처인 말테 크로스에서 영감을 얻은 특유의 개성적인 러그 형태가 현행 모델보다 두드러진다. 손목시계 초창기 시절엔 라운드 혹은 스퀘어 케이스가 지배적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제법 모험적이고 창의적인 시도가 아닐 수 없다.
- 1950년대 말 바쉐론 콘스탄틴의 지면 광고 이미지
센터 세컨드 형태의 자동 무브먼트를 탑재한 Ref. 6073 외 타임 온리(6102), 스몰 세컨드(6068) 형태로도 말테 크로스 러그 디자인의 시계들이 출시되었다. 1950~60년대 당시 크게 히트한 라인임을 알 수 있다.
- 피프티식스 셀프-와인딩의 케이스 디테일
피프티식스 컬렉션은 이렇듯 역사적인 헤리티지 피스에서 착안한 대담한 디자인의 케이스에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클래식한 다이얼을 조합하여 모던함과 클래식함을 절묘하게 아우르는 매력을 자랑합니다. 다만 말테 크로스에서 파생한 고유의 러그 디테일은 상대적으로 단순한 형태로 변형되었는데요. 1950년대와 확연히 달라진 제조 환경을 감안할 때 옛 방식 그대로를 고수하기란 대량 생산 체제와 맞지 않다고 판단했을 터입니다. 오리지널 모델(Ref. 6073)처럼 접착식 러그 형태로 제작하기 위해선 이에 따른 공정이 더 추가되고 별도의 세공 인력도 요구됩니다. 때문에 러그 일체형 케이스를 바탕으로 스텝 베젤 구조를 응용하는 방식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비록 오리지널 모델만큼의 입체적인 러그 형태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말테 크로스를 연상시키는 특유의 디자인 코드는 계승하고 있기 때문에 피프티식스만의 유니크함은 빛을 발합니다.
Fiftysix Self-winding
피프티식스 셀프-와인딩
바쉐론 콘스탄틴 전 컬렉션을 통틀어 새로운 엔트리 라인업으로 부상한 피프티식스 셀프-와인딩은 직경 40mm, 두께 9.6mm 크기의 핑크 골드 또는 스틸 케이스에 실버 혹은 그레이 컬러 다이얼을 적용했습니다. 공통적으로 다이얼 중앙은 오펄린 마감하고, 골드 소재의 아플리케 타입 바/아라빅 인덱스가 놓여진 테두리 바탕은 선버스트 마무리해 다이얼 투-톤의 미묘한 시각적 대비가 인상적입니다. 전체적으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가운데, 클래식한 레일로드 미닛 트랙과 화이트 컬러 야광 도료를 채운 바 인덱스 및 펜 모양의 핸즈와 같은 디테일이 눈길을 끕니다.
두 케이스 버전 공통적으로 무브먼트는 더블 배럴 설계의 자동 칼리버 1326를 탑재했습니다(진동수 4헤르츠, 파워리저브 약 48시간). 언뜻 보면 생소한 칼리버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까르띠에의 인하우스 칼리버인 1904 MC와 그 형태 및 스펙이 상당히 유사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같은 리치몬트 그룹 내 무브먼트 공급사인 발플러리에(ValFleurier)에서 제조한 에보슈 킷을 바탕으로 바쉐론 콘스탄틴에서 주요 부품을 새로 피니싱하고 재조립, 조정함으로써 바쉐론 콘스탄틴의 레벨에 맞게 재탄생 시켰습니다.
혹자는 하이엔드 시계 제조사인 바쉐론 콘스탄틴에게 어울리지 않는 무브먼트 선택이라고 비난도 하지만, 전례를 생각하면 같은 그룹의 에보슈를 공유하는 건 전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바쉐론 콘스탄틴 입장에서는 굳이 새로운 엔트리급 무브먼트를 만들어 하이엔드 제조사로서의 체면을 구기느니 차라리 그룹 내 다른 대안을 찾는 쪽이 현실적인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익숙한(?) 무브먼트의 채택 덕분에 바쉐론 콘스탄틴에서는 전례 없이 저렴한(!) 모델(스틸 기준)이 나올 수 있게 되었으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반색할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참고로 1326 칼리버를 탑재한 피프티식스 셀프-와인딩 라인업은 피프티식스 컬렉션에서 유일하게(어쩌면 전 바쉐론 콘스탄틴 컬렉션에서 유일하게!?) 제네바 홀마크(Hallmark of Geneva, 제네바실)을 따로 받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앞서 기술한 내용으로 미루어 여러분들도 쉽게 수긍할 줄 압니다.
피프티식스 데이-데이트
Fiftysix Day-Date
스몰 컴플리케이션에 해당하는 피프티식스 데이-데이트 라인업은 직경 40mm, 두께 11.6mm 크기의 핑크 골드 혹은 스틸 케이스로 출시됩니다. 앞서 본 데이트 라인업과 마찬가지로 오펄린 & 선버스트 마감한 투-톤의 실버 혹은 그레이 컬러 다이얼에 각 캘린더 서브 다이얼 부분만 동심원 형태로 스네일 처리해 나름대로 가독성을 고려했습니다. 3시 방향 서브 다이얼에는 포인터 핸드 타입으로 날짜를, 9시 방향 서브 다이얼에는 요일을 각각 표시하며, 6시 방향에는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를 배치했습니다.
무브먼트는 인하우스 자동 칼리버 2475 SC/2를 탑재했습니다(진동수 4헤르츠, 파워리저브 약 40시간). 기존의 트래디셔널 데이-데이트 라인업에 사용된 2475 SC 칼리버와 약간의 피니싱 차이를 제외하면 사실상 동일한 무브먼트이고, 타임 온리 자동 베이스인 2460 SC를 기반으로 독자적인 캘린더 모듈을 얹어 수정한 것입니다. 제네바산 고급 시계 무브먼트임을 공인하는 제네바 홀마크(제네바실)를 받았으며, 투명 사파이어 크리스탈 케이스백을 통해 아름다운 무브먼트를 감상할 수도 있습니다.
도시인들의 일상에서 어쩌면 가장 유용한 기능인 데이-데이트와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를 갖추면서 기존의 트래디셔널 데이-데이트 보다(같은 골드 소재도) 더 저렴하고 스틸 버전으로도 선보인다는 점에서 해당 기능의 시계를 선망했지만 높은 가격대 때문에 주저했던 분들에게 매력적인 신제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참고로 국내 출시 가격은 핑크 골드 모델은 4천만 원대 초반, 스틸 모델은 2천만 원대 초반으로 각각 책정되었습니다.
피프티식스 컴플리트 캘린더
Fiftysix Complete Calendar
풀 캘린더 혹은 컴플리트 캘린더로 불리는 사양의 신제품으로 현대의 시계애호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클래식한 문페이즈 디스플레이를 포함하고 있어 좋은 반응이 예상됩니다. 직경 40mm, 두께 11.6mm 크기의 핑크 골드 혹은 스틸 케이스로 선보이며, 오펄린 & 선버스트 마감한 실버 혹은 그레이 컬러 다이얼에 시간 외 별도의 어퍼처(창)로 요일과 월을, 블루 포인터 핸드로 날짜를, 그리고 6시 방향에는 이론상 122년 마다 한 번만 조정하면 되는 고도로 정밀한 문페이즈를 표시하고 있습니다. 푸른 밤하늘을 연상시키는 문페이즈 디스크 바탕에 달의 형상은 케이스 소재에 따라 다른 컬러의 골드(핑크 혹은 화이트 골드)를 사용하여 디테일하게 차별화한 점도 시선을 끕니다.
무브먼트는 제네바 홀마크를 받은 인하우스 자동 칼리버 2460 QCL/1를 탑재했습니다(진동수 4헤르츠, 파워리저브 약 40시간). 앞서 트래디셔널 및 하모니 컬렉션을 통해서도 동일한 무브먼트를 탑재한 컴플리트 캘린더 제품을 볼 수 있었기에 나름대로 친숙한 편입니다. 무브먼트의 두께가 기능에 비해 얇기 때문에(5.4mm), 피프티식스 특유의 볼륨감 있는 케이스와 빈티지 모델의 플렉시 글라스 느낌을 재현한 박스 형태의 사파이어 크리스탈을 감안하고도 비교적 얇은 케이스 두께(11.6mm)가 장점입니다. 피프티식스 컴플리트 캘린더 관련해선 추후 별도의 리뷰를 통해 자세하게 소개할 예정이오니 관심 있는 분들은 타임포럼 리뷰를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피프티식스 투르비용
Fiftysix Tourbillon
피프티식스 컬렉션에서 가장 나중에 공개된 피프티식스 투르비용도 함께 보시겠습니다. 서두에 언급했듯 컬렉션에서 유일하게 골드 모델로만 선보이며, 이는 바쉐론 콘스탄틴 컬렉션에서 투르비용이 갖는 위상과 상징적인 가치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피프티식스 투르비용의 케이스 직경은 41mm, 다른 피프티식스 제품들과 마찬가지로 1950년대 오리지널 모델 Ref. 6073에서 착안한 말테 크로스를 형상화한 특유의 러그 디자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중앙 오펄린 & 테두리 선버스트 처리한 투-톤의 실버 다이얼 바탕에 케이스와 동일한 18K 핑크 골드 소재의 아플리케 인덱스와 핸즈를 사용하고, 아라비아 숫자 인덱스를 제외한 바형의 아워 마커와 핸즈에는 화이트 컬러 야광도료까지 채워 지금까지 선보인 바쉐론 콘스탄틴 투르비용 모델 중에서 가장 젊고 트렌디한 느낌마저 줍니다. 이는 또한 피프티식스 컬렉션이 애초 지향하는 지점과도 상통하는 면이 있는데요. 레트로 컨템포러리 스타일을 추구하며 적당히 빈티지하고 적당히 모던하면서도 바쉐론 콘스탄틴 특유의 우아함을 포기하지 않는 디자인 말이지요.
사용된 무브먼트도 메종의 이전 세대 투르비용과는 다릅니다. 수동이 아닌 페리페럴(Peripheral) 타입의 로터를 적용한 새로운 울트라-씬 자동 칼리버를 탑재했습니다. 앞서 트래디셔널 투르비용(Traditionnelle Tourbillon)으로 먼저 소개한 바 있는 칼리버 2160이 그것입니다. 오픈 워크 다이얼 6시 방향을 통해 말테 크로스 형태를 취한 투르비용 케이지가 위용을 뽐내는 칼리버 2160은 31mm(13½’’’ 리뉴) 직경 안에 188개의 부품과 30개의 주얼로 구성돼 있으며, 22K 골드 페리페럴 로터를 사용한 덕분에 무브먼트 두께가 고작 5.56mm에 불과합니다. 이로써 앞뒤 사파이어 크리스탈을 포함하고도 케이스 두께는 10.9mm 정도로 슬림함을 자랑합니다. 진동수는 2.5헤르츠, 파워리저브는 80시간을 보장하며, 다른 바쉐론 콘스탄틴의 인하우스 칼리버들과 마찬가지로 제네바 홀마크(제네바실)을 받았습니다. 다만 피프티식스 투르비용은 다른 피프티식스 제품들처럼 올해 출시되지 않고, 내년인 2019년 4월부터 지정된 바쉐론 콘스탄틴 부티크에서만 구매가 가능합니다.
이상으로 피프티식스 컬렉션을 구성하는 전 라인업을 대략적으로나마 함께 살펴봤습니다. 바쉐론 콘스탄틴의 새로운 도전을 엿볼 수 있는 피프티식스 컬렉션을 이제 가까운 백화점 내 바쉐론 콘스탄틴 부티크에서 만나보세요.
56가 지향하는 방향, 장점과 단점까지 잘 요약해 주셔서 즐겁게 봤어요. 아쉬운 분들도 있겠지만, 선택지가 늘어나는건 분명 좋은 일이겠지요. 56 라인업도 디테일한 디자인을 정말 잘 뽑아내네요. 특히 데이 데이트 모델의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 디자인을 인상 깊게 봤습니다. 56가 바쉐론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보다 젊은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촉진제가 되길 바래봅니다.
바쉐론 부띡에서 본 56은 생각보다 이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