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 S3 프론티어(왼쪽), 기어 S3 클래식(오른쪽)
새롭게 발표한 기어 S3는 이전에 비해 더욱 시계다운 디자인을 강조하는 인상입니다. 이는 다른 스마트워치 경쟁자들이 스마트워치의 개념과역할 정립을 위한 노력과 함께 케이스 디자인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는 현상과 상반됩니다. 최초의 기어 시리즈인 기어 S는 커브드 렉탕귤러 (Curved Rectangular) 케이스를 택한 바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기어 시리즈를 모두 되짚어 봤을 때 가장 목적성이 명확한 형태로 손목을 따라 커브를 그리는 직사각형 케이스와 디스플레이는 착용감, 정보표시라는 목적에 잘 부합합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TV, 모니터, 스마트폰이 모두 직사각형인 점을 상기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죠. 시계에서도 기어 S와 유사한 예를 발견하곤 합니다. 과거 루엔(Guren), 티쏘(Tissot) 같은 브랜드에서 커벡스(Curvex) 혹은 커벡스 류의 시계를 내놓은 적 있습니다. 이름 그대로 완만한 커브를 그리는 렉탕귤러케이스로 입체적인 손목에 핏(Fit)할 수 있도록 내놓은 인체공학적인 시도였습니다.
그루엔의 커벡스 광고
위 광고는 그루엔이 커벡스를 판매하던 당시의 것으로 커브드텍탕귤러 케이스의 비효율성을 최소화했다고 비교하고 있습니다. 손목 위에서 커벡스의착용감은 좋을지언정 시계를 만드는 브랜드 입장에서는 골치였을 것 입니다. 광고에서처럼 케이스 공간 활용의 비효율성을 줄였다고 해도 일반적인 렉탕귤러 케이스에 비해서는 죽은 공간이 많아 보입니다. 또 케이스처럼 글라스도 완만한 곡선을 그려야 했는데, 미네랄 글라스가 주류였던 당시에는 크게 어렵지 않았지만 다이아몬드에 필적하는 표면 경도를 지닌 사파이어 크리스탈이 사용되며 이러한 커브드 가공은 가공장인에게 좌절을 안겨주곤 했습니다. 현재에도 사파이어 크리스탈은 두 번의 커브를 그려내는 게 한계에 가까우니까요. 그래서 기술적 어려움, 케이스 활용의 비효율성, 케이스 형태에 맞춰 꺾어 내린 탑재 무브먼트의 신뢰성 부족을 이유로 커브드렉탕귤러는인체공학적 이라는 장점에도 한때를 풍미한 뒤, 시장에서 사라져가게 됩니다.
기어 S2 클래식(왼쪽)과 기어 S3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기어 시리즈가 사용성과 효율성을 계속 추구했다면 후속 모델도 같은 케이스 형태를 추구했어야 옳습니다. 하지만 기어 S2에 접어들며 라운드 케이스로 변화하는데 이를 비유한다면 시계의 주류가 렉탕귤러에서 라운드로 이행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시계가 자체적인 동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고 교회 종탑의 거대한 구조에서 손목으로 올라오는 소형화를 거치며 라운드 케이스가 일종의 표준으로 자리하게 됩니다. 이것은 기어 S의 커브드 렉탕귤러 케이스처럼 기능성이 디자인을 확립한 바와 같이 시계 역시 기능이 형태를 결정한 것입니다.
불가리 피니시모 무브먼트의 모습, 원형 부품으로 가득하다
회전 운동을 하는 톱니바퀴, 톱니바퀴와 톱니바퀴를 연결하는 피니언, 톱니바퀴와 피니언을 관통하는 축(Stem), 좌우로 바쁘게 진동하는 밸런스 휠, 동력이 되는 메인스프링 등 원형 혹은 단면이 원형의 시계부품을 수납하는 무브먼트는 필연적으로 원형이 되어야 했고 이것을 효율적으로 수납할 수 있는 시계 케이스 형태 또한 라운드가 되어야 했습니다. 회중시계의 시대를 살펴보면 대부분이 라운드 케이스였고 렉탕귤러 같은 변형 케이스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점은 손목시계의 시대에 들어서 입니다. 새로움을 추구한 결과인 렉탕귤러 케이스는 라운드 케이스에 밀려 그리 위용을 떨치지 못했습니다. 제아무리 잘난 렉탕귤러무브먼트라고 해도 공간제약 때문에 시계 브랜드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렉탕귤러 케이스에 원형 무브먼트를 탑재하기도 했지만, 결국 합리적, 효율적이며 자연스러운 흐름을 지닌 라운드 케이스라는 귀결로 이어집니다.
삼성이 기어 S에서 S2로 넘어오면서 원형의 케이스를 선택한 배경은 시계의 기술에서 기결된 원형의 케이스를 따랐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평소 접하는 손목시계의 외형과 닮아 이질감이 덜하다는 이유일 터입니다. 기어 S2에서 시작된 변화가 신작인 기어 S3 두 버전(기어 S3 클래식과 기어 S3 프론티어)으로 이어진 것도 삼성이 추구하는 '시계다운' 디자인의 틀 안에서 기능성을 변주하고자 노력한 흔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회전 베젤과푸시 버튼>
IWC 인제니어 크로노그래프 루돌프 카라치올라 에디션의 (고정) 베젤
롤렉스 서브마리너, 잠수 시간을 확인 할 수 있는 회전 베젤을 갖췄다
브라이틀링 내비타이머의 슬라이드 룰 회전 베젤
기어 S2, S3는 라운드 케이스를 택하며 회전 베젤을 얻게 되었습니다. 원래 베젤의 역할은 글라스를 측면 충격에서 보호하고, 케이스에 접착된 글라스의부착 면을 가려서, 보다 아름답고 자연스럽게 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케이스에 고정된 형태가 베젤의 기본이었고 좌우로 회전하는 회전베젤은 1950년대 초 스포츠 워치의 본격적인 등장에 따라 탄생한 산물입니다. 방수시계를 거쳐 다이버워치로 진화할 때 고심도 방수기법을 확립한 롤렉스서브마리너(Submariner)는 회전 베젤의 장비로 잠수시간을 읽을 수 있도록 해 다이버의 안전을 도모했습니다. 1950년대 초 미국을 중심으로 민간항공의 시대가 열리자 파일럿은 브라이틀링의 내비타이머 (Navitimer)를 착용합니다. 이 시계의 회전 베젤은플라이트 컴퓨터로 부르던 슬라이드 룰(Slide Rule)과 결합해 비행속도, 비행거리, 연료계산, 사칙 연산 등을 수행할 수 있게 해주어 당시 파일럿에겐 매우 유용했습니다.
기어S2와 S3는 이들과 같이 회전 베젤을 기능적인 관점에서 접근해 더했습니다. 애플워치 등 최근 출시되는 타사의 스마트워치들처럼 터치 스크린을 지원함에도, 베젤을 돌리는 직관적인 조작 방식과 인터페이스(사용자경험, UX)를 통해 타사 제품과는 차별화된 기어 S3만의 개성적 디테일을 갖추게 된 것은 물론, 남녀노소 누구나 큰 이질감을 느끼지 않으면서 편리하게 조작할 수 있는 스마트워치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스마트워치에서 터치 스크린을 통한 입력은 사실 회전 베젤조차도 필요치 않다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회전 베젤을 넣은 것은 시계다움을 위해서 입니다. 그럼 기어 S2, S3가 지닌 두 개의 푸시 버튼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엔터와 이스케이프 역할을하는 두 버튼은 크로노그래프의푸시 버튼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듯 합니다. 시계의 빅 데이트, 월드타이머에서 손쉬운 변경을 위해서도 푸시 버튼이 사용되지만 한 쌍을 이루는 푸시 버튼은 크로노그래프가 아니면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기어 S2, S3의 버튼은 사용상의 편리함, 시계다움을 가져오지만 디테일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크로노그래프의 요소이므로 비교가 불가피하죠. 크로노그래프는 메커니즘의 정확한 제어와 작동을 위해 케이스 보다 제법 높게 솟은 푸시 버튼을 지닙니다. 푸시 버튼을 누를 때의 스트로크는크로노그래프의 물리적인 메커니즘에 맞춰 길어지게 되나, 접촉만 하면 되는 전자제품 감각의 기어 S2, S3의 버튼은 감촉은 스트로크가 빈약하고 입력압력이 약해 시계의 관점에서는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케이스 소재, 디자인과 피니시>
시계업계에서 가장 흔한 케이스 소재는 스테인리스 스틸입니다. 스틸은 1800년대 중반 대량 생산이 시작되어 세계 각국의 랜드마크를건설하고 거대한 선박을 만들 수 있게 했습니다. 시계 소재 인 녹이 슬지 않는 스테인리스 스틸은 그보다 뒤인 1900년대 초반에 등장해 산업 전반에 사용하게 되었고,용도별로 합금비율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시계에서는 저가 제품군을 제외하면 316L로 부르는 스테인리스스틸이 가장 일반적입니다. 내부식성이 강해 인체에서 나오는 땀에 부식되지 않고 가공성도 좋은 편에 속합니다. 기어 S2, S3는 과감하게 케이스의 주된 소재로 316L 스테인리스 스틸을 사용했습니다. 시계 브랜드 입장에서는 당연하지만 非시계 브랜드 입장에서는 스테인리스스틸은 필수 선택지가 아닙니다. 플라스틱이나 알루미늄을 선택하면 제조단가를 낮출 수 있거니와 시계와 동일 소재가 아니어서 직접적인 비교가 성립되지 않도록 하는 효과도 노릴 수 있습니다. 시계 제조의 노하우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非시계 브랜드 입장에서는 정면승부를 피하고 싶을 수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삼성은 전작 기어 S2부터 기어 S3에도 316L 스틸을 케이스 소재로 사용함으로써 기존 아날로그 시계들과의 비교를 피하지 않고 정면 승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소재를 사용한다는 것은 앞서 언급한 '시계다운' 외형을 갖추려는 노력의 일환에 다름 아닙니다. 더불어 어느 정도 케이스 가공 및 퀄리티 컨트롤에 대한 자신감이 깔려 있음을 어림할 수 있습니다.
IWC 포르투기저 애뉴얼캘린더의 폴리시드 케이스 가공과 러그 라인, 케이스 일부는 하얗게 보일 정도로 광택이 뚜렷하다
몽블랑 1858 매뉴얼 스몰 세컨드의 케이스 측면 헤어라인 가공, 사진으로 선명하게 결이 전달된다
또한 기어 S3는 여느 시계와 마찬가지로 유광의 폴리시드, 무광의 헤어라인 가공으로 표면을 처리했습니다. 전자는 뚜렷한 광택을 내야 올바른 가공이며, 후자는 뚜렷한 헤어라인의 결과 표면을 만졌을 때 매끈함도 느껴져야 하죠. 시계에서 피니시(Finish)는 매우 중요합니다. 작은 물건인 시계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수법이기 때문입니다. 피니시는무브먼트를 구성하는 부품을 다양한 가공으로 아름답게 만들 때 사용하는 단어지만, 케이스에서도 거의 같은 의미로 통용됩니다. 무브먼트피니시와 구분하기 위해 케이스 피니시라고 하게 되면 케이스 표면 가공, 모서리 처리를 중점적으로 따지게 되며, 시계에 다가간 기어 S3에도 같은 기준이 적용됩니다.블랙 PVD처리해 표면이 코팅되어 질감이 다소 가려지는 기어 S3 프론티어와 달리 소재 그대로를 드러내는 기어 S3 클래식이 케이스 피니시를살펴보기에 더 좋습니다. 기어 S3 클래식을 살짝 떨어뜨린 거리에서 발산하는 광택은 비교적 뚜렷합니다. 헤어라인피니시는 육안으로 충분히 결을 확인할 수 있지만, 지문 등이 묻으면 쉽게 흐트러집니다. 반복된 가공처리가 다소 부족할 때 드러나는 현상이나, 100만원 미만 가격대의 시계와 직접 비교를 했을 때 열등하다고 표현하기는 사실 어렵습니다. 절대적인 가격을 고려한다면 솔직히 말해 수준급입니다. 모서리 처리는 러그 하단부와 끝 단, 케이스 백처럼 피부와 직접 접촉하는 부분과 나머지의 비 접촉 부분으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기어 S3의 러그는 끝 단이 매우 둥글게 디자인되어 접촉 시 발생하는 우려를 원천적으로 차단합니다. 케이스 백은 시계와 직접 비교가 불가능한데 이유는 각종 센서를 담고 있어 플라스틱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부분의 모서리는 만졌을 때 날카로움을 느낄 수 없도록피니시 되었으나, 엣지(Edge)로 부를 수 있는 샤프한 맛은 다소 떨어집니다. 이 역시 절대적인 가격대를 고려한다면 충분히 허용되는 수준입니다.
<러그와스트랩>
기어 S3 프론티어와 매치하는 다양한 색상의 실리콘 밴드
러그는 회중시계를 손목시계로 바꾸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케이스의 한 부분입니다. 회중시계에 와이어를 용접에 스트랩을 끼워 착용하던 원시적인 손목시계가 정식으로 대접받게 된 시점은 케이스 디자인 단계에서 고려해 완성한 러그가 출현하고 나서부터입니다. 러그의 폭은 시계마다 제 각각이지만 대략 케이스 지름에 비례합니다. 케이스가 커지면 러그의 폭 또한 커지며기어 S3의 46mm 지름이라면 좁게는 20mm 넓게는 26mm가 러그 폭의 허용 구간이지 싶습니다. 22mm에서 26mm 사이 폭의 러그는파네라이가 촉발시킨 빅워치의 등장 이후, 일반적인 사이즈로 자리잡아 누구든 원하는 폭의 스트랩을어럽지 않게 구입할 수 있습니다.
기어 S3 클래식에는 스티치리스 가죽 스트랩이 제공된다
기어 S3가 선택한 22mm의 러그 폭은 범용성이 크게 고려되어 소위 ‘줄질’이 가능합니다. 스트랩은 시계의 종류와 상관없이 시계의 인상을 좌우하는데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는 요소입니다. 색상, 소재, 패턴의 무수한 조합이 가능해 시계 케이스, 다이얼 디자인으로 구현하기 어려운 영역을 스트랩이 채워주기도 하죠. 이탈리아 태생의 시계 브랜드 파네라이(Panerai)는 단기간에 '파네리스티(페라리 마니아의 페라리스티를 응용한 조어)’로 불리는 마니아층으로 구성된 세계적인 팬덤을 구축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단순하지만 감각적인 디자인과 이탈리아 해군이 전장에서 사용했던 스토리성. 그리고 다양한 스트랩 교체를 손쉽게 가능하도록 한 스크류 고정 방식과 브랜드에서 OEM으로 제공하는 다양한 스트랩과서드 파티의 스트랩이 유통될 수 있어서 입니다. 기어 S3는 두 모델의 성격에 맞춰 가죽 스트랩, 실리콘 밴드가 기본 장착됩니다. 별도로 구입할 수 있는 스트랩이 아주 많다고는 할 수 없으나 수 종이 제공되어 스마트워치를 시계 '줄질'하는 감각으로 다룰 수 있습니다. 기어 S3는 줄질을 하기에 꽤 친절한 구조를 지닙니다. 스트랩 안쪽 스프링 바를 쉽게 뺄 수 있도록 스프링 핀 디테일을 제공합니다. 사실 이것은 하이엔드 브랜드에서나 볼 수 있는 의외의 고급 옵션입니다. 이를 제공하려면 사실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지만 시계브랜드들은 좀 무심하다고 할까요? 기어 S3에서 스트랩탈착의 용이함을 누릴 수 있어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다만 스프링 핀의 머리가 너무낮습니다. 거의 스트랩과 같은 높이에 있어 이것을 당기기가 조금 어렵습니다. 스프링 핀의 손목 접촉을 우려한 듯 하지만, 케이스 백이 손목을 제법 위로 떠받치고 있어 좀 더 스프링 핀을 크고 높이 만들어도 좋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가는 손목을 위해 길이가 짧은 '숏(Short)' 스트랩을 기본 제공하는 세심함은 시계 브랜드에서 되레 벤치마킹 했으면 하는 요소입니다.
기어 시리즈의 최신작 기어 S3는 시계라는 관점에서 아직 시계와 1:1 비교는 어렵겠지만, 스마트워치로는 일반적인 시계의 화법을 따르고 시계 산업에 가깝게 접근하고 있어 차별적인 행보임은 분명합니다. 디자인적인 부분에서 앞으로도 스마트 워치가 시계와 얼마나 가까워지고, 혹은 기어만의 영역을 어떻게 개척해 나갈지 지켜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이은 3편에서는 기어 S3 기능의 시계적 관점과 스마트워치만이 가지고 있는 기능과 편의성에 대해 시계의 관점에서 살펴볼 예정으로 많은 관심 바라며 마무리 하겠습니다.
아이폰이라 애플워치 써본적 있는데 기어는 어떨까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