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5년 예한-자크 블랑팡(Jehan-Jacques Blancpain)에 의해 스위스 빌레레에서 태동한
블랑팡(Blancpain)은 그 설립연도만 봤을 때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계 브랜드입니다.
대를 잇는 가족경영 체제 하에 극소량 한정 제작 방식으로만 시계를 제작해왔던 이들은
가족 기업의 역사가 끝나는 20세기 초반에 들어서야 비로소 활기를 띄기 시작합니다.
특히 1953년 처음 세상에 등장한 다이버 시계, 피프티 패덤즈(Fifty Fathoms)는 기존 블랑팡의 이미지를 뛰어넘는 타고난 명작이었습니다.
- 1953년 출시된 첫 피프티 패덤즈 시계.
다이버 시계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던 1950년대 초반, 블랑팡의 피프티 패덤즈는 같은 해 등장한 롤렉스의 서브마리너와 함께 최초의 모던 다이버 시계로 손꼽힙니다.
1932년 오메가에서 세계 최초로 시판용 다이버 사양의 시계인 '마린'을 선보이긴 했지만, 당시엔 아직 현대적 다이버 시계의 외형까지는 갖추지 못했던 게 사실이고,
1936년 파네라이는 이탈리아 왕실 해군의 요청으로 다이버 시계인 라디오미르 첫 프로토타입을 발표했지만 민간 판매용으론 이어지지 않은 철저히 군용이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피프티 패덤즈와 서브마리너의 등장은 레크레이션 다이빙의 유행 시점과도 맞물려 있으며, 본격 다이버 시계의 등장이라는 점에서도 매우 시사적입니다.
피프티 패덤즈의 탄생 배경은 이러했습니다.
1952년 프랑스 해군 산하의 엘리트 전투부대의 공동 창립자이자 전투 잠수부들(Les Nageurs de Combat)의 캡틴이었던
로버트 밥 말루비에르(Robert "Bob" Maloubier)와 그의 팀원들은 작전 임무 수행 중 깊은 바다 속에서도 최상의 시인성을 보장하고
방수성과 내구성이 우수한 시계를 만들어달라고 당시 블랑팡의 CEO였던 장-쟈끄 피슈테르(Jean-Jacques Fiechter)에게 요청하게 됩니다.
- 1955년 다이빙 훈련 당시 피프티 패덤즈를 착용한 프랑스 해군 엘리트 전투 잠수부대 창립자 밥 말루비에르
그 자신도 다이빙을 즐기는 아마추어 다이버였던 피슈테르는 이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그렇게 1년 여의 연구개발 끝에 탄생한 것이 바로 피프티 패덤즈입니다.
시계 이름에 사용된 '패덤즈(Fathoms)'란 1950년대 당시 유럽의 선원들이나 해군에서 수심을 가리키는 보편적인 용어였습니다.
피프티 패덤즈는 즉 '50 패덤즈'를 의미했고, 이는 현대의 '미터'로 환산하면 약 91.45m의 수심입니다.
이는 같은해 등장한 롤렉스의 서브마리너의 그것과도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단, 서브마리너는 100m).
최초의 모던 다이버 시계인 피프티 패텀즈를 상용화하기로 결정했을때, 방수 가능 깊이는 이미 영국의 수심 측정 기준인 91m 기준에 부합했으며,
별도의 수압 테스트는 물론, 남 프랑스의 한 해변에서 피슈테르가 속한 다이버 클럽의 지도사들을 통해 실제 다이빙 테스트까지 시행함으로써,
런칭 당시부터 다이버 시계가 갖춰야 할 내외부적 요건들을 충족하기 위해 철두철미하게 고심한 흔적을 보여줬습니다.
- 1950년대 중반의 피프티 패덤즈 지면 광고 이미지
피프티 패덤즈는 이중 방수링(Double O-Ring seal)으로 단단히 밀폐된 특허 받은 크라운 시스템을 비롯해,
41mm 혹은 42mm에 달하는 오버사이즈 케이스, 블랙 다이얼 바탕에 특수 야광도료를 덧바른 인덱스와 핸즈,
잠수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눈금이 표시된 단방향 회전 베젤, 자동 무브먼트 사용과 안티 마그네틱 설계 등
당시 출시된 여느 시계들과는 확연히 차별화된 특징과 외형, 장점들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현대의 다이버 시계들에도 고스란히 계승되고 있는 것으로써 1950년대 초 블랑팡이 얼마나 선견지명이 있는 업체였는지를,
또한 피프티 패덤즈가 왜 후대의 다이버 시계애호가들로부터 '모던 다이버 시계의 시조'라고 불리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 피프티 패덤즈는 1950년대 중후반 스위스를 비롯해, 독일, 미국, 일본 등 여러 국가에서 케이스 방수와 관련한 몇 종의 중요한 특허를 획득했습니다.
이렇듯 블랑팡의 피프티 패덤즈는 실제 다이빙 환경에서도 매우 안정적이고 뛰어난 성능을 보여준 결과,
프랑스 국방부는 엘리트 잠수부대를 위한 전용 다이버 시계로 이례적으로 스위스산 다이버 시계의 도입을 허가하게 됩니다.
한편,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인 해양탐험가이자 다이버들의 우상인 자크-이브 쿠스토(Jacques-Yves Cousteau)의 다큐멘터리 필름(1956년 작)
"침묵의 세계(Le Monde du silence)"에서도 걸프해 연안을 탐험하는 쿠스토의 손목에 피프티 패덤즈 시계가 착용돼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 1960년대 초반 미 해군 네이비 씰에 납품된 피프티 패덤즈 시계를 착용한 한 잠수대원이
미국 제35대 대통령인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을 향해 보고하는 모습이 담긴 자료사진.
최초 개발 단계서부터 밀리터리 스펙(Mil-Spec, 군용 사양)에 충실했던 피프티 패덤즈는 1950년대 중후반부터 1970년대 말까지 프랑스 해군을 비롯해,
체코, 독일, 미국(US Navy Seal)의 특수부대원들이 가장 선호하는 다이버 시계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미국의 조세법상 수입 시계에 과중한 세금이 부가되는 통에 블랑팡은 지금으로 따지면 공개 입찰 방식으로 미국의 사업파트너를 선정하는데,
앨런 토넥(Allen Tornek)이 설립한 한 회사가 블랑팡의 피프티 패덤즈 다이버 시계를 미 해군 측에 납품하는 일종의 중계 회사로 최종 낙점되게 됩니다.
이로써, 당시에 미 해군에 제공된 피프티 패덤즈에는 다이얼에 블랑팡이 아닌 '토넥-라빌(Tornek-Rayville)' 혹은 '블랑팡-토넥(Blancpain Tornek)'으로 표기되었습니다.
시계는 애초 스위스에서 케이스 따로, 무브먼트 따로, 다이얼 따로 분해되어서 수출되었고, 1960년대 후반부터는 토넥에서 다이얼을 따로 자체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 1960년대 중반 프랑스 해군 소속 다이버가 피프티 패덤즈 시계를 착용하고 입수 전 촬영된 사진.
- 21세기 버전의 클래식 피프티 패덤즈의 귀환을 보여주는 모델로 2007년부터 블랑팡의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습니다.
- 2007년 피프티 패덤즈 컬렉션 최초로 8일간 파워리저브의 플라잉 투르비용 자동 무브먼트를 탑재한 피프티 패덤즈 플라잉 투르비용 레드 골드 버전
- 현행 피프티 패덤즈 플라이백 크로노그래프(사진 좌측 모델)와 피프티 패덤즈 오토마티크 블루 다이얼 버전(사진 우측 모델)
- 2009년 출시된 수심 1,000m까지 방수가 가능한 500 패덤즈 GMT 모델 (500개 리미티드 에디션)
- 1965년 처음 등장한 'No Radiations' 다이얼을 재현한 2010년 출시 모델, 트리뷰트 투 피프티 패덤즈 (500개 리미티드 에디션)
- 피프티 패덤즈 컬렉션 최초로 크로노그래프에 컴플리트 캘린더 기능을 접목한 하이 컴플리케이션 모델, 피프티 패덤즈 플라이백 크로노그래프 퀀템 컴플리트
- 2011년 첫 선을 보인 X-패덤즈.
기계식 수심 측정 기능을 갖추고 있습니다.
- 2013년 런칭한 피프티 패덤즈 바티스카프
- 2014년 발표한 피프티 패덤즈 오션 커미트먼트 바티스카프 플라이백 크로노그래프 (250개 리미티드 에디션)
- 2016년 신제품으로 그레이 컬러의 플라즈마 하이테크 세라믹 케이스와 블루 세라믹 베젤을 사용한 피프티 패덤즈 바티스카프
1992년 스와치 그룹에 인수된 이후로 1990년대 말부터 새롭게 선보이는 피프티 패덤즈 컬렉션은 예전에 비해 한층 더 고급스럽게 환골탈태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피프티 패덤즈 탄생 50주년인 2003년을 기점으로 플래이백 크로노그래프, 투르비용 등 다양한 컴플리케이션 기능의 시계들이 첫 선을 보였으며,
2009년 수심 1,000미터까지 방수되는 500 패덤즈를 비롯해, 60주년인 2013년에는 미니멀한 디자인의 바티스카프 라인업을 새롭게 추가했습니다.
피프티 패덤즈는 블랑팡을 세상에 널리 알린 대표작이자, 군용 시계의 한 전설적인 표본이며,
블랑팡 전 컬렉션 내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모던 다이버 시계의 영원한 명작입니다.
실시간 정보 및 뉴스 공지는 타임포럼 SNS를 통해서 보실 수 있습니다.
타임포럼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TimeforumKorea
타임포럼 인스타그램 --> https://instagram.com/timeforum.co.kr
타임포럼 네이버 --> http://cafe.naver.com/timeforumnaver
Copyright ⓒ 2016 by TIMEFORUM All Rights Reserved
이 게시물은 타임포럼이 자체 제작한 것으로 모든 저작권은 타임포럼에 있습니다.
허가 없이 사진과 원고의 무단복제나 도용은 저작권법(97조5항)에 의해 금지되어 있으며
이를 위반시 법적인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타임포럼 뉴스 게시판 바로 가기
인스타그램 바로 가기
유튜브 바로 가기
페이스북 바로 가기
네이버 카페 바로 가기
Copyright ⓒ 2024 by TIMEFORUM All Rights Reserved.
게시물 저작권은 타임포럼에 있습니다. 허가 없이 사진과 원고를 복제 또는 도용할 경우 법적인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댓글 53
-
미스터팬더
2016.07.12 23:22
-
다이버 매니아라면
서브와 피프티는 필수라고 생각합니다ㅎㅎㅎ
-
cata
2016.07.13 00:24
이 시계는 사이즈가 너무나 아쉬운 시계죠..
사이즈때문에 포기하신 분들이 많은 시계
공감:1 댓글
-
로렉스를찬소년
2016.07.13 00:40
바티스카프 완전 취향저격입니다ㅜ
감사합니다 잘보고갑니다~
-
p:arc
2016.07.13 00:57
아마도최고의다이버아닐까요?
-
요새 ff 얘기가 많이 올라오네요.
최고의다이버입니다.
-
혜안으로
2016.07.13 07:30
블루모델은 정말 예술입니다ㅎ
-
동동찐찐
2016.07.13 09:02
modc님에 이어 또 알찬 내용을 담은 포스팅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
노프라브럼
2016.07.13 09:07
오 블랑팡 드림워치 다이버시계내여,,,,
-
섭마와 더불어서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죠!!
-
잘봤습니다
-
도리왕
2016.07.13 11:30
피프티 패덤즈 넘 멋지죠...
가난한자의 몽블랑...섹블랑이라고 커스텀으로도 유명하죠...
-
타킹좋아
2016.11.23 10:59
커스텀해본사람으로써,그냥.피프티패텀,으로가는게
낳을것같습니다
돈있으신분들은!섹블은개뿔!
-
사이즈 흑 ㅠ
-
Questlove
2016.07.13 12:49
이글을 보니 돌아가시기전에 밥 말루비에르 할아버지(?) 를 만나뵜을때가 생각이 나네요. 지금생각하면 그때 이런저런 예기를 더 물어봤어야했는데 그러지못한게 정말 아쉽습니다 ㅋ
-
라디오오
2016.07.13 13:42
들이고싶습니다!
-
요나킴
2016.07.13 14:15
저는 정말 사랑하는 모델이에요 !
-
어이쿠야 X-패덤즈 ^^
-
푸른누리
2016.07.13 19:43
요즘 관심가지고 있는 모델인데 이렇게 정리까지 해주시니 잘보고갑니다!
-
donan
2016.07.13 20:39
개인적으로 섭마보다 멋진 디자인의 워치라생각합니다
예전에 일본 빈티지매장에서본 패덤즈모델은 정말 멋지더군요
좋은글 잘보았습니다
-
오렌지랜드
2016.07.13 22:23
아 제눈에 바티스카프가 너무 멋지네요
-
아수라백작
2016.07.14 08:11
디자인 컨셉이 정말 차이가 많네요 전부 이쁘지만 공통의 아이덴티티를 찾기 힘든 느낌도 듭니다 ㅎ
-
소소솨솨
2016.07.14 10:47
dhdhdhdh
-
쿠단
2016.07.14 11:19
정말멋집니다
-
다이버 역사와 같이하는 피프티패덤즈군요.
-
다시 한번 가지고 싶은.....정말 매력적인 시계지요 ㅜㅜ
-
마이노스
2016.07.14 14:31
며칠전에 구입하고 글도 올렸는데 칼럼까지 올라오니 기분 너무 좋네요~ ㅎㅎ
-
피프티 패덤즈의 일대기가 잘 정리되어 있어 많이 알고 갑네요~ 다이버 워치에서 확실히 멋진 시계중 하나입니다.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
디자인 멋지네여^^
-
hoiho
2016.07.15 13:27
다이버 시계중 가장 우아한 디자인.
-
플라잉 뚜르비용 보고 지리고 갑니다
-
allegro
2016.07.16 13:55
잘 정돈된 바티스카프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고
특히 핸즈의 형태가 멋지군요.
-
뜬구름4
2016.07.17 16:55
바티스카프는 사이즈에 비해 얇은 특징으로 착용시에도 큰 부담이 없었습니다.
필드용으론 괜찮은 시계예요..
-
블랑팡 매장을 가서 바티스카프를 한번 착용해보고 싶더라고요. 디자인이 잘 나온 것 같아요^^
-
시계 엄청 이쁘네요, 디자인 잘나온거같네요 ㅎ
-
BIP
2016.07.24 14:30
알면 알수록 참 매력적인 시계임에는 분명합니다.
특히나 다이버 시계의 상징과도 같은 회전베젤의 역사적 아이덴티티를 알게 되면 더욱 놀라게 되는 모델이죠.
다만 무브의 신뢰성 만큼은 확실히 서브의 3135에는 상대가 안되는 듯 합니다.
-
테크닉최고
2016.07.27 15:30
잘보고갑니다~
-
곤곤이
2016.08.02 00:15
잘봤습니다.
-
Drakeman
2016.08.04 11:14
사이즈만 조금더 작았어도 바로 구매를 했을 시계였는데.. 저에겐 무리더라고요^^;
-
gjw
2016.08.30 14:21
꼭 한 번 겪고 가고 싶은 시계입니다.
-
최근 바티스카프를 영입하며..다시 이 칼럼을 보니~~더욱 좋네요 흐흐
-
mong
2016.10.21 22:51
멋져요..역시.. 전 서브보다 패덤스..
-
쓰레빠
2016.10.22 18:03
좋은 글 잘읽고 갑니다.
-
흰흰파흰
2016.12.14 13:25
아 진짜 예쁘다
-
잘 읽고 갑니다.
-
밀스펙 복각 버전 한국발매를 앞두고 복기하러 들렀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귀속시계
2018.05.16 11:14
영롱합니다
-
이우성
2018.06.06 13:16
이런스타일이 멋진듯..
-
무난한거 같으면서도 이쁘고~ 정말 잘 만들어진 모델 같아요~
-
JoeL
2019.07.12 22:54
돔 사파이어는 언제봐도 매력적이네요
-
[VS] Artistic White, 예술적인 화이트 시계 ፡ 13
2016.07.26 -
[WATCH IT] 여름밤 파티에 어울리는 여성시계 ፡ 17
2016.07.22 -
[NEW TREND] 매뉴팩처의 흐름 Part 2 ፡ 39
2016.07.21 -
[VS] 무지개 빛깔을 모두 담은 시계 ፡ 23
2016.07.19 -
[NEW TREND] 매뉴팩처의 흐름 Part 1 ፡ 38
2016.07.15 -
[VS] 바늘이 없는 시계? ፡ 23
2016.07.12 -
[WATCH IT] 여행자를 위한 시계 2 - GMT, UTC, 듀얼타임 시계 ፡ 27
2016.07.10 -
[NEW TREND] 21세기 기계식 무브먼트의 변화점 ፡ 27
2016.07.07 -
[ALL TIME CLASSICS] 오메가, 씨마스터(Seamaster) ፡ 45
2016.07.06
돔 사파이어 베젤의 야광이 나는 다이버 워치라며 아이덴티티를 확실히 해주는 듯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