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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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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I-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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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릴 것인가, 드러낼 것인가? 사회, 문화, 예술 전반에 걸쳐 끊임없이 대립해온 주제이자 표현 방식입니다. 시계는 가림과 드러냄의 경계를 넘나듭니다. 제 성능을 발휘하기 위해 무브먼트는 다이얼, 케이스 등에 의해 가려집니다. 가리면 가릴수록 기능에 충실해집니다. 반면에 드러냄은 시계에 또 다른 성격을 부여합니다. 아름답게 장식한 무브먼트가 드러나는 순간 시계는 작품으로 승화됩니다. 대신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기능은 약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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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냄은 예술적 가치를 중시하는 고급 시계에서 보다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는 듯합니다. 조각하듯 무브먼트를 깎아내는 스켈레톤은 대표적인 드러냄의 양식입니다. 워치메이커의 제조 능력과 미적 감각을 가늠할 수 있는 스켈레톤은 구동을 담보할 수 있는 한계까지 무브먼트를 도려내는 것이 관건입니다. 남은 면적과 시각적 쾌감은 반비례합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조잡해서는 안됩니다. 막힘 없이 투명하고 명료해야 합니다. 자칫하면 가독성을 해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약해선 안됩니다. 아름다움을 좇다가 성능을 놓친다면 보기 좋은 장식품에 불과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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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띠에(Cartier)는 스켈레톤에 대한 깊은 고민과 예리한 통찰을 바탕으로 이 험준한 영역에서 비상한 재능을 발휘해 왔습니다. 단순히 무브먼트를 깎는 데에 그치지 않고 스켈레톤을 매개로 고유한 디자인과 독자적인 스타일을 융합합니다. 아이코닉한 로마 숫자 인덱스를 브리지 디자인 요소로 활용하고, 파인 워치메이킹의 상징과도 같은 제네바 홀마크를 획득하는가 하면 까르띠에 크래쉬 워치처럼 유니크한 케이스 형태에 꼭 맞는 스켈레톤 무브먼트를 새롭게 제작하는 등 스켈레톤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과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완성된 스켈레톤 워치는 각각의 컬렉션에 파고들어 스펙트럼을 확장하는 역할을 합니다. 파샤 드 까르띠에 스켈레톤 워치(Pasha de Cartier Skeleton Watch)가 꼭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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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샤 드 까르띠에 스켈레톤 워치는 컬렉션의 기조를 충실히 따르면서 세세한 부분에서는 그만의 독특한 개성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스켈레톤의 특수함과 지위에서 비롯합니다. 스테인리스스틸 케이스의 지름은 41mm, 두께는 10.45mm입니다. 지름이 기본 41mm 모델과 동일하나 두께는 0.9mm 더 두껍습니다. 미세한 차이는 케이스 실루엣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옵니다. 스크루 다운 방식의 플루티드 크라운 커버를 잠그기 위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케이스 한 켠을 불룩 튀어나오게 가공한 기본 모델과 달리 파샤 드 까르띠에 스켈레톤은 케이스가 두꺼워 형태를 애써 왜곡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깔끔하고 정돈된 듯한 인상을 남깁니다. 스켈레톤의 아름다움을 취한 대가로 방수 성능은 30m에 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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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이 제법 넓은 베젤은 폴리시드 처리해 번쩍거립니다. 완만한 곡선을 그리다가 사파이어 크리스털 글라스와 가까워지면서 솟구치는 형태입니다. 현대적이고 스포티한 성향에 우아함이 혼재된 복잡한 성격의 시계임을 보여줍니다. 케이스 하단은 분할한 뒤 베젤처럼 폴리시드 처리했는데 브러시드 처리한 케이스 측면과 어우러지면서 뛰어난 입체감을 선사합니다. 나사로 고정한 사파이어 크리스털 글라스백은 테두리를 얇게 만들어 탁 트인 시야와 시원시원한 개방감을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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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금속 케이스나 스켈레톤 모델은 플루티드 크라운 커버 및 크라운에 스피넬이 아닌 사파이어 카보숑을 채택했습니다. 조명을 비추면 스피넬과 사파이어의 분명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전자는 짙고 선명하지만 단조로운 파란색이라면 후자는 은은한 초록빛이 감도는 깊이가 느껴지는 파란색입니다. 빛의 반사에 따라 청록으로 둔갑하는데 신비로운 기운이 서린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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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티드 크라운 커버를 열어 젖히면 가녀린 크라운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평상시에는 마주할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파이어 카보숑을 세팅하고 측면 가공을 했다는 것에서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까르띠에의 세밀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시와 분을 제외하면 별다른 기능이 없기 때문에 조작은 단순합니다. 크라운을 뽑지 않은 상태에서는 와인딩을, 한 칸 뽑으면 검처럼 생긴 블루 핸즈를 돌려 시간을 맞출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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퀵스위치(QuickSwitch) 시스템을 적용한 브레이슬릿은 파샤 드 까르띠에 워치의 디자인 코드를 훼손하지 않은 채 사용자 친화적인 기능을 제공합니다. 케이스 일체형 러그 안쪽 중앙에 있는 버튼을 누르기만하면 손쉽게 분리할 수 있습니다. 스트랩과 브레이슬릿을 언제든 교체할 수 있는 영리한 장치이지만 익숙해지려면 연습이 필요합니다. 추가로 제공되는 그레이 엘리게이터 가죽 스트랩에도 퀵스위치 시스템이 적용됐습니다. 영리한 발상이지만 서드 파티 스트랩에 배타적인 측면도 없지 않습니다. 브레이슬릿도 케이스처럼 유광과 무광 마감을 엮어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내고자 했습니다. 러그와 연결되는 엔드 링크 양쪽에 부착된 끌루 드 파리 모양의 구조물은 파샤 드 까르띠에 워치의 전통입니다. 양쪽으로 열리는 폴딩 버클은 푸시 버튼이 생겨 착용하기 한결 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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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와인딩 칼리버 9624 MC는 칼리버 1904 MC를 스켈레톤 처리한 무브먼트입니다. 과거 끌레 드 까르띠에 스켈레톤 워치에 탑재한 칼리버 9621 MC와는 형제지간입니다. 칼리버 9624 MC는 그 자체로 다이얼이기도 합니다. 로마 숫자와는 대조적으로 구불구불한 곡선이 주를 이루는 아라비아 숫자 인덱스를 도입한 파샤 드 까르띠에 워치의 특징을 훌륭하게 살려냈습니다. 산토스 드 까르띠에 스켈레톤 워치, 크래쉬 스켈레톤 워치, 까르띠에 프리베 또노 스켈레톤 워치 등 전작을 통해 스켈레톤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린 메종의 노하우가 빛을 발하는 대목입니다. 또 다른 특징인 정사각형 레일 트랙은 화려함을 더하는 동시에 연약한 스켈레톤 무브먼트를 견고하게 해주는 기능적 역할을 겸하고 있습니다. 스켈레톤 무브먼트의 미관을 해칠 우려가 있는 초침은 배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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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에 아름답다는 것은 그만큼 신경을 써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특히 스켈레톤 무브먼트는 보통의 무브먼트와 다르게 내부 측면(flank)이 훤히 드러나기 때문에 손댈 곳이 많습니다. 내부 측면 마감은 모서리 마감인 베벨링을 위한 기초 공사에 해당하므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이 점을 숙지하고 있다는 듯이 가공 후에 남은 거친 흔적을 매끈하게 정돈했습니다. 모서리는 얕게 베벨링을 했습니다. 플레이트 또는 브리지 표면은 빼놓은 곳 없이 브러시드 처리했습니다. 감상에 행여 방해가 될까 로터는 세라믹 볼 베어링 주변부와 테두리 윤곽선을 남겨둔 채 나머지 부분은 모조리 제거했습니다. 갈고리 형태의 레버를 사용해 로터가 어느 쪽으로 회전하든 메인스프링을 감아줍니다. 시간당 진동수는 28,800vph(4Hz), 파워리저브는 48시간입니다. 더블 배럴의 목적은 파워리저브의 증가보다는 작동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에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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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샤 드 까르띠에 스켈레톤 워치의 가격은 3340만원로, 동사의 산토스 드 까르띠에 스켈레톤 워치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하이엔드를 지향하는 타사의 스켈레톤 워치로 비교 범위를 넓히면 해당 가격대에서 이 시계와 대적할 수 있는 상대가 딱히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독보적입니다. 현재는 스테인리스스틸 버전만 출시됐는데 골드 케이스 및 다이아몬드를 세팅해 중량감을 키운 모델이 뒤이어 등장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드러냄으로 스스로를 표현한 파샤 드 까르띠에 스켈레톤 워치. 독창적인 형태와 놀라운 아이디어로 가득한 디자인, 스켈레톤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무브먼트까지. 가리고 싶어도 가려지지 않는 매력으로 똘똘 뭉쳤습니다. 시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아이코닉 워치를 줄줄이 배출한 메종은 과연 이번에도 그 실력을 증명했습니다. 


제품 촬영 :
권상훈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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