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발레드주의 파인 워치메이커 예거 르쿨트르(Jaeger-LeCoultre)는 올해 리베르소(Reverso) 탄생 90주년을 맞아 해당 컬렉션에 다양한 신제품을 출시하고, 미국의 저명한 아티스트 마이클 머피(Michael Murphy)와 협업한 특별한 설치 미술 작품을 지난 4월 중순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워치스앤원더스(Watches & Wonders)에서 첫 선을 보이는 등 다각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 워치스앤원더스 상하이에서 전시된 '스페이스타임'
이에 타임포럼은 예거 르쿨트르 스위스 본사의 주선으로 올해 그랑 메종의 하이라이트 신작인 리베르소 트리뷰트 노난티엠(Reverso Tribute Nonantième)을 모티프로 한 대형 설치미술 작품 '스페이스타임(Spacetime)’의 아티스트인 마이클 머피를 이메일을 통해 단독 인터뷰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의 육성을 통해 '스페이스타임' 작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부터 예거 르쿨트르와의 협업, 평범함을 거부하는 독특한 작품 세계까지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마이클 머피 약력:
1975년 미국 오하이어 영스타운에서 출생한 마이클 머피는 켄트 주립 대학교(KSU)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스쿨(The Art Institute of Chicago)에서 미술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뉴욕으로 이사해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펼치고 있다. 특히 그는 오브제 자체 보다 작품을 보는 사람의 관점과 인지를 더욱 중요시하는 이른바 지각예술(Perceptual Art) 분야를 개척한 선구자로 평가 받고 있으며, 나이키(Nike), LG, 렉서스(Lexus), 토요타(Toyota), 스바루(Subaru), 봄바디어(Bombardier, 캐나다의 민간항공기 제조사), 내셔널 풋볼 리그(NFL), A&E(미국 텔레비전 채널) 등 수많은 기업 및 단체와의 협업으로 유명세를 얻었다. 크고 작은 사회 문제에도 관심이 많은 그는 미국에서 빈번한 총기난사 사건과 BLM 등 인종차별 시위, 이민자 처리 문제 등과 관련해 대중들의 관심과 경각심을 촉구하는 여러 설치 작품들을 선보인 바 있으며,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 체 게바라(Che Guevara), 스티브 잡스(Steve Jobs),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 등 한 시대를 풍미한 각 분야의 영웅적인 인물들을 주제로 한 포트레이트 시리즈도 꾸준히 제작하고 있다. 디지털 프로세스 및 수작업 기술을 결합하여 2차원 이미지를 공중에 매달린 3차원 모빌로 만드는 그의 혁신적인 설치 작품은 지각예술 웹사이트(perceptualart.com) 및 인스타그램(@perceptual_art) 채널을 통해서도 만나볼 수 있다.
시간이 조금 흘렀지만, 지난 4월 워치스앤원더스 상하이에서 '스페이스타임'을 처음 전시했을 때의 소감을 듣고 싶다.
워치메이커와 조각가(마이클 머피 자신)가 한 팀이 되어 이뤄낸 정말 흥미롭고 뜻 깊은 경험이었습니다. 예거 르쿨트르와 협업하면서 럭셔리 워치 세계를 접하게 되었고, 그 세계와 시계에 대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 결실을 워치스앤원더스 상하이에서 선보이게 되어 영광입니다.
예거 르쿨트르와 협업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파트너십이 애초 어떻게 시작됐는지 궁금하다.
예거 르쿨트르와의 협업은 저에게 찾아온 엄청난 행운이자 행복입니다. 해당 시기에 팬데믹으로 저는 제 20년 경력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진행하고 있던 모든 작품 활동이 완전히 멈춰버린 상황이었습니다. 이 협업을 제안한 예거 르쿨트르에게 더욱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이 작품은 저를 다시 일할 수 있게 해준 첫 번째 작업의 결실입니다.
올해 90주년을 맞은 아이코닉 타임피스인 리베르소가 이번 작품의 오브제가 되었다. 리베르소의 어떤 점에 매료됐고, 어떤 점이 당신의 지각예술 작품세계에 어울린다고 판단했는가?
리베르소는 회전 가능한 다이얼로 앞면과 뒷면의 두 가지 면을 볼 수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이와 유사하게도 대부분의 제 작품들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저는 이 점에서 리베르소와 저의 작품이 명백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저는 팝아트와 유사한 방식으로 각 브랜드를 상징하는 제품 혹은 로고를 모티프로 하여 작품을 제작합니다. 리베르소는 예거 르쿨트르의 아이코닉한 컬렉션이자 상징적인 그래픽 아이덴티티를 지니고 있어 제 작품의 모티프로 매력적이었습니다.
- '스페이스타임' 설치 작품
리베르소 트리뷰트 노난티엠의 더블 페이스 구조를 작품에 반영하는데 있어 특별히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스페이스 타임'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기술적 어려움이 발생했습니다. 일례로 각각의 2D 제품 이미지를 설치하는 과정은 정말 복잡했고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쳤습니다. 더욱 더 정교한 작품을 위해 일렬로 매달려 있는 수많은 오브제로 구성된 저의 작품들 역시 단 1mm 이상의 오차도 절대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3.66m(12피트) 높이의 작품을 1mm 단위로 정밀하게 제작하여 더욱 완벽한 작품으로 탄생될 수 있었습니다. 작업의 전체 프로세스는 모두 제각각 정해진 순서가 있었으며 무려 75개 단계로 진행되었습니다.
몇몇 부품은 굉장히 사실적이다. 실제 시계 부품을 떠올리게 하는데 제품 및 무브먼트의 오리지널 설계도 같은 것을 참고했는가? 69개에 달하는 컴포넌트를 정렬해 시계의 앞뒤 면을 재현하는데 있어 가장 중점을 둔 사항은 무엇인가?
저는 작품을 제작할 때 단지 사물이나 이미지를 창조하는 것이 아닌 경험을 창조합니다. 관람객이 작품을 감상한 경험이 제 작품의 최종적인 산물이지요. 그러한 이유로 제 작품들은 더욱 생생하고 실감나게 관객에게 와 닿는다고 생각합니다. 말씀처럼 높은 ‘정확성’을 구현하기 위해 실제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파인 워치메이킹의 세계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요소가 바로 정확성이기 때문입니다. 작품에서 작은 요소 하나라도 누락되면 전체 작업이 실패하게 마련입니다. 가장 약한 부분이 강한 전체를 만들어내는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당신의 아나모포시스(Anamorphosis) 작품은 보는 사람의 관점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스페이스타임'은 관람자로 하여금 어떠한 점에 주목하게 한다고 생각하는가?
우선 저에게 예술이란 정보와 생각, 감정을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있는 의사소통의 한 형태입니다. 예술의 그러한 점이 저에게는 가장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제 작품은 관람객의 관점에 따라 개체에 대한 인식 또한 달라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3차원의 물체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작품 주위를 움직여서 다각도로 관람하여야 합니다. 이를 위한 관람객의 움직임은 측정 가능한 시간에 걸쳐 일어나고, 이로써 시계의 복잡성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받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편집자주: 시각 예술의 일반적인 관점에서 아나모포시스(Anamorphosis)는 피사체의 왜곡된 이미지를 특정 각도에서 보거나 곡면 거울에 반사시키면 왜곡이 사라져 그림이나 사진의 이미지가 정상적으로 보이게 되는 원근 기법으로, 실제와 다르게 만들어진 왜곡된 형상을 뜻한다 해서 왜상(歪像)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어쩌면 가장 먼저 묻고 싶었던 질문이다. 왜 작품의 이름을 '스페이스타임(Spacetime)'으로 정했는가? 문페이즈 디스플레이를 갖춘 시계의 기능적인 측면에 주목한 것인가? 혹시 다른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작품의 이름인 ‘스페이스타임’은 물리학에서 착안한 것입니다. 물리학에서의 시공간(Spacetime)은 공간의 3차원과 시간의 1차원을 하나의 4차원 다양체로 융합하는 수학적인 모델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제 설치 작품들은 항상 4차원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작품 이름도 자연스럽게 스페이스타임이 되었습니다.
스위스 시계 브랜드와의 협업은 이번이 처음으로 안다. 예거 르쿨트르와의 협업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남겼는가? 향후 그랑 메종과 새로운 작업을 이어갈 계획이 있는가?
저는 항상 시계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시계를 타임피스(Timepiece)라고 하는 것처럼 저는 항상 제 작품을 피스(Piece)로 불렀습니다. 저는 늘 시간에 관한 작품을 제작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습니다. 이는 공간과 시간이라는 것에 매력을 느끼고 영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3차원 공간에 떠다니는 평면 이미지로 구성된 착시 작품들을 제작해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 작품이 4차원의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의 작품은 길이와 너비, 높이를 가지고 있는 동시에 또 다른 차원인 시간에 걸쳐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작품 사진을 볼 때에는 시간적인 요소가 빠져 있습니다. 하지만 타임라인에서 발생하는 애니메이션으로 작품의 영상을 보면, 시간적 측면도 볼 수 있고, 실제로 해당 예술 작품을 경험할 수 있답니다. 저는 항상 영상과 애니메이션으로 작업을 하여 그 시간적 요소를 작품에 담아내고자 노력합니다. 예거 르쿨트르와의 또 다른 협업에 관해서는 아직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좋은 협업으로 또다시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웹사이트(perceptualart.com)에 올라온 포트폴리오를 봤다. 상업적인 협업 작품들도 물론 관심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스티브 잡스, 버락 오바마, 마이클 조던과 같은 실존 인물들을 형상화한 초상화 작품들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러한 작업을 할 때 소재에 관한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는가?
저는 주로 대중문화 또는 사람들이 현재 관심을 두는 주제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제 작품들은 오늘날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조리한 상황을 일부 반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장 많은 영감을 받는 것은 자연입니다. 인간의 두 눈에서 발생하는 특정의 광학 현상이 있는데 이러한 현상들은 자연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숲 속을 걸을 때 나무들은 모두 서로 관계를 맺고 움직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시차'라고 부르는 이러한 효과가 제 설치 작품의 핵심 구성 요소 중 하나입니다. 사물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방식으로 애니메이션의 한 형태로 볼 수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당신은 한국인들에게 그리 잘 알려진 컨템포러리 아티스트는 아니다. 한국에서도 당신의 대형 설치 미술 작품을 볼 기회가 조만간 있을까?
지금 확정할 순 없습니다만, 서울이 굉장히 많은 문화적 자산과 모던 아트로 잘 알려져 있는 아름다운 도시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을 꼭 방문하여, 관객들에게 직접 제 작품을 선보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 '스페이스타임'을 유튜브 영상으로 확인하세요.
참고로 마이클 머피의 작품 '스페이스타임'은 오는 7월 9일부터 18일까지 중국 상하이 모던 아트 뮤지엄(Modern Art Museum Shanghai)에서 열리는 리베르소 90주년 기념 '리베르소 스토리 전시회(Reverso Stories exhibition)'를 통해 일반 대중들에게도 공개될 예정입니다. '리베르소 스토리 전시회'는 이후 파리, 마이애미를 순회하며 펼쳐지며 그 때마다 '스페이스타임' 작품도 함께 감상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