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HH 2018] 예거 르쿨트르 Report
올해 SIHH 참가 브랜드 부스 중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여준 메종은 다름아닌 예거 르쿨트르(Jaeger-LeCoultre)였습니다. 매년 컬렉션의 테마에 따라 부스 컨셉이 조금씩 바뀌긴 했지만 올해처럼 전면적인 리뉴얼은 실로 오랜만인데요. 어쩌면 지난해 새롭게 부임한 부-CEO 조프로아 르페브르(Geoffroy Lefebvre)의 의견이 강하게 반영된 것일 수도 있고, 예거 르쿨트르가 지향하는 브랜드의 새로운 방향성을 보여주려는 의도일 거라는 확신도 듭니다. 올해는 또한 예거 르쿨트르의 창립 185주년이 되는 해인 만큼 한 해를 여는 SIHH에서부터 브랜드의 일신한 면모를 과시하고 싶었을 터입니다.
천장을 높이고 벽과 기둥을 최소화해 사방으로 시원시원하게 개방하면서 바닥 및 벽면 곳곳에 원목을 많이 사용한 부스 내부는 스위스 발레 드 주 르 상티에 마을에 위치한 예거 르쿨트르의 매뉴팩처 내 아뜰리에 디자인을 연상케 합니다. 더불어 세심하게 연출된 특유의 고급스러운 분위기는 예거 르쿨트르가 후원하는 베니스국제영화제 및 상하이국제영화제의 한 행사장 분위기마저 떠올리게 합니다. 이렇듯 상당히 공을 들인 부스 한쪽에는 워치메이킹 테이블과 함께 실제 르 상티에 컴플리케이션 아뜰리에서 근무하는 한 젊은 여성 워치메이커의 어셈블리 시연이 행사 기간 내내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 올해 새롭게 바뀐 예거 르쿨트르의 SIHH 부스 곳곳을 담은 공식 영상
그리고 예거 르쿨트르와 파트너십을 체결한 아르헨티나의 유명 부츠 제조사 까사 파글리아노(Casa Fagliano)의 가죽 장인들도 한 섹션을 차지해 그들의 부츠에 사용되는 말궁둥이 가죽, 코도반(Cordovan)을 이용해 리베르소 컬렉션의 스트랩을 만드는 과정을 선보여 관람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했습니다. 인상적이게도 그들의 손목에는 예외 없이 리베르소가 채워져 있었고, 그 중에는 올해 신제품인 리베르소 트리뷰트 듀오페이스 블루 다이얼 제품도 볼 수 있었습니다.
- 100개 한정으로 선보인 신제품, 리베르소 트리뷰트 듀오페이스 까사 파글리아노 에디션(Ref. Q396245J)
관련 Pre-SIHH 뉴스 바로 가기 >> https://www.timeforum.co.kr/15905283
한편 SIHH 개막 첫날(1월 15일) 오후에는 최근 예거 르쿨트르의 글로벌 브랜드 홍보대사로 위촉된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Benedict Cumberbatch)가 부스를 방문해 일대를 마비시켰습니다. 그는 예거 르쿨트르 부-CEO 조프로아 르페브르의 안내를 받으며 새롭게 바뀐 부스 곳곳을 여유롭게 둘러보았고, 어셈블리 데스크와 까사 파글리아노 전시 코너에서는 직접 무브먼트와 시계 스트랩을 만져보며 친밀하게 질문을 건낼 만큼 남다른 열의를 보였습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당일 저녁 예거 르쿨트르가 주최한 갈라 이브닝 행사에도 참석해 브랜드 홍보대사로서의 첫 공식 일정을 알차게 마무리 지었습니다.
- 뉴 폴라리스 런칭 이벤트 현장을 담은 공식 영상
- 폴라리스 런칭 기념 갈라 이브닝 행사에 참석한 영화배우 디에고 루나, 베네딕트 컴버배치, 예거 르쿨트르 부-CEO 조프로아 르페브르, 중국의 가수 겸 배우 징보란 순.
- 폴라리스 오토매틱
이제 본격적인 신제품 소개에 들어가겠습니다. 올해 SIHH에서 예거 르쿨트르는 기승전 ‘폴라리스(Polaris)’를 강조했습니다. 2018년은 메종의 아이코닉 다이버 워치 메모복스 폴라리스(Memovox Polaris)의 런칭 50주년이 되는 해로, 이를 기념해 예거 르쿨트르는 1960~70년대 유행한 알람 기능의 다이버 시계, 메모복스 폴라리스의 시그니처 디자인을 재현하면서 이를 별도의 독립 컬렉션으로 구성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로써 새롭게 부활한 폴라리스 컬렉션에는 쓰리 핸즈 오토매틱, 크로노그래프, 크로노그래프 월드 타임, 데이트, 메모복스 총 5가지 라인업에 다채로운 신제품들로 채워졌습니다. 마스터 라인에 속해 있던 기존의 메모복스 디자인도 특유의 레트로 스타일을 잘 계승하고 있었지만, 하나의 온전한 컬렉션으로 구축함으로써 마스터 혹은 마스터 컴프레서 라인에 혼재에 있던 메모복스 풍의 시계들을 보다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브랜드의 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너무 드레시하거나(마스터) 너무 스포티(마스터 익스트림) 하지 않은 딱 그 중간 즈음에 해당하는 스포티하면서도 우아하고 올라운드로 즐길 수 있는 꽤 매력적인 컬렉션이 탄생했습니다.
Polaris Automatic
폴라리스 오토매틱
시분초를 표시하는 쓰리 핸즈 구성의 심플한 폴라리스 오토매틱부터 함께 보시겠습니다. 메모복스 혹은 메모복스 폴라리스의 아이코닉 디테일인 이너 회전 베젤을 갖춘 투 크라운 디자인이 돋보이며, 지름 41mm의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로만 선보입니다. 다이얼은 블랙과 블루(오션 블루) 두 가지 컬러가 있으며, 흥미롭게도 3가지 각기 다른 피니싱이 적용되었습니다. 다이얼 중앙부는 선레이 마감하고, 야광도료인 수퍼루미노바를 채운 아플리케 아라빅/바 인덱스가 놓여진 외곽 바탕은 오돌도돌한 결이 살아있는 그레인 처리했으며, 15분 단위로 눈금이 프린트된 이너 베젤링 상단은 다소 펄감이 느껴지는 오펄린 마감했습니다.
무브먼트는 인하우스 자동 898E/1 칼리버를 탑재했습니다(진동수 4헤르츠, 파워리저브 약 40시간). 3mm가 조금 넘는 제법 얇은 두께의 무브먼트지만 새로운 폴라리스 컬렉션의 볼륨감 있는 케이스 구조에서는 얇은 두께가 그리 장점으로 부각되진 않습니다. 사파이어 크리스탈 케이스백을 통해 무브먼트를 감상할 수 있으며, 브랜드 이니셜 로고가 각인된 로터는 하드메탈 계열인 텅스텐 소재를 사용하여 보다 개선된 와인딩 효율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로듐 코팅 마감한 플레이트 및 브릿지와 달리 로터 부위만 안트라사이트(무연탄계) 컬러 코팅 마감한 점도 나름대로 특색이 있습니다.
Polaris Chronograph
폴라리스 크로노그래프
폴라리스 크로노그래프는 스틸 외 로즈 골드 케이스로도 선보입니다. 공통적으로 케이스 지름은 42mm, 두께는 11.9mm, 방수 사양은 100m. 이너 회전 베젤을 갖춘 투 크라운을 특징으로 하는 전통적인 메모복스 혹은 1960~70년대 제작된 예거 르쿨트르의 다이버 시계 디자인을 고려할 때, 크로노그래프는 사실 그리 적합한 형태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현대에는 크로노그래프 시계가 젊은 세대에게 인기가 있고, 기존의 마스터 컴프레서 라인을 통해서도 비슷한 구성으로 전개한 선례가 있기 때문에 새로운 폴라리스 컬렉션에 크로노그래프 제품군의 출현이 그리 놀랍진 않습니다.
앞서 보신 폴라리스 오토매틱과 마찬가지로 3가지 각기 다른 피니싱이 적용된 블랙과 오션 블루 두 가지 컬러 다이얼 버전이 있으며, 각 컬러 다이얼 별로 가죽 스트랩 혹은 3연의 스틸 브레이슬릿 형태로 따로 출시됩니다. 다만 로즈 골드 케이스 버전만 은은한 차콜 그레이 계열의 다이얼로 선보이며, 스트랩도 브라운 컬러 악어가죽 스트랩을 매칭해 보다 고급스러운 느낌을 연출합니다.
무브먼트는 컬럼휠과 버티컬 클러치 방식의 인하우스 자동 크로노그래프 칼리버 751을 탑재했습니다(진동수 4헤르츠, 파워리저브 65시간). 이미 여러 크로노그래프 모델에 사용된 메종의 대표적인 자동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로, 다이얼 면에 바이 컴팩스 형태로 30분(3시 방향)과 시(9시 방향) 카운터를 각각 표시합니다. 또한 다이얼 챕터링에 특정 구간의 평균 속도를 확인할 수 있는 타키미터 눈금을 함께 표시해 보다 스포티한 인상을 풍깁니다.
Polaris Chronograph WT
폴라리스 크로노그래프 월드 타임
이번 폴라리스 컬렉션에서 어쩌면 가장 이례적인(?) 신제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반 크로노그래프 버전과 달리 상징적인 이너 회전 베젤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이를 루이 코티에식 월드 타임링으로 대체함으로써 영리하게 라인업을 확장한 것입니다. 예거 르쿨트르는 기존의 인하우스 자동 751 베이스에 독자적인 월드 타임 모듈을 추가해 새로운 자동 칼리버인 752를 완성하고, 이를 폴라리스 크로노그래프 월드 타임의 엔진으로 사용했습니다. 비슷한 가격대에서 크로노그래프에 월드 타임 기능을 접목한 제품의 종류가 극히 제한적이라는 점을 상기할 때, 앞서 출시된 IWC의 파일럿 워치 타임존 크로노그래프와도 겹치는 지점이 있습니다. 어찌됐든 이런 식의 라인업 확장은 요즘 시대에는 그나마 참신한 편에 속합니다.
폴라리스 크로노그래프 월드 타임은 컬렉션에서 또 유일하게 스틸이 아닌 티타늄 케이스로 선보입니다. 케이스 지름은 44mm, 두께는 12.5mm, 방수 사양은 100m. 다이얼 컬러는 블랙 혹은 오션 블루 두 종류이며, 가죽 스트랩 모델로만 출시됩니다.
Polaris Date
폴라리스 데이트
폴라리스 데이트는 알람 기능이 없는 것을 제외하면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1968년 오리지널 메모복스 폴라리스 모델을 상당히 유사하게 재현한 신제품입니다. 메모복스(알람 기능)까지 굳이 원치 않으면서,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가격대의 빈티지 복각 디자인을 찾는 이들에게 좋은 선택지가 될 만합니다. 스틸 케이스의 지름은 42mm이며, 케이스 방수 사양은 앞서 보신 모델들과 달리 200m로 예거 르쿨트르의 다이버 시계 전통에 충실하고 있습니다. 업그레이드된 방수 사양 때문은 아니겠지만 사파이어 크리스탈 케이스백 대신 솔리드 케이스백을 채택해 아쉽게도 무브먼트는 감상할 수 없습니다. 아무래도 1960년대 빈티지 피스를 보다 충실하게 재현한 제품이기 때문에 이러한 디테일에 있어서도 그 시절의 다이버 시계의 특징을 살리고자 한 의도일 터입니다. 대신 케이스백 중앙에 다이빙 헬멧을 인그레이빙해 나름의 개성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클래식한 블랙 컬러 다이얼로만 선보이며, 매트한 블랙 러버 스트랩 혹은 스틸 브레이슬릿 버전이 있습니다. 무브먼트는 인하우스 자동 899/1 칼리버를 탑재했습니다(진동수 4헤르츠, 파워리저브 약 40시간).
Polaris Memovox
폴라리스 메모복스
마지막 신제품은 폴라리스 메모복스로, 메모복스 폴라리스 50주년을 기념해 1,000피스 한정 제작된 리미티드 에디션입니다. 앞서 보신 폴라리스 데이트와 마찬가지로 옛 헤리티지 피스의 올드 라듐톤을 재현한 연한 베이지 컬러 수퍼루미노바를 사용해 외관에서부터 빈티지 어필을 확실하게 하고 있습니다.
스틸 소재의 케이스 지름은 42mm, 두께는 15.9mm, 방수 사양은 200m이며, 시간과 날짜 표시 외 알람 기능을 갖춘 인하우스 자동 칼리버 956을 탑재했습니다(진동수 4헤르츠, 파워리저브 44시간). 기존의 마스터 메모복스 부티크 에디션, 메모복스 트리뷰트 투 딥씨 등에 탑재된 메종의 대표적인 알람 기능의 자동 칼리버로, 그리 새롭진 않지만 작동 안정성 면에서는 충분한 검층을 거쳤다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번 폴라리스 메모복스 모델에는 기존의 메모복스와 달리 3개의 크라운 설계를 적용하여 특색을 드러냅니다. 2시 방향에 있는 탑 크라운은 알람 기능을 위한 것으로 이 크라운을 충분히 와인딩함으로써 알람 기능을 관장하는 추가 배럴에 동력을 제공하면 해당 시간대에 시분침이 도달하는 순간 알람이 작동하게 되는 식입니다. 이때의 사운드는 리피터처럼 선명하진 않지만(공의 형태와 소재가 조금 다름), 특유의 진동과 함께 찌르르한 파열음으로 퍼져나가고 다이빙시 수심 속에서 좀 더 또렷하게 공명합니다(이를 통해 다이빙 시간도 헤아릴 수 있는 것!). 그리고 가운데 크라운은 이너 회전 베젤을 조작할 때 사용되며, 하단 4시 방향의 크라운으로는 시간을 세팅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스트랩은 러그 일체형의 블랙 러버 스트랩을 사용했으며, 올해 리디자인된 새로운 폴딩 버클이 장착되었습니다. 새 폴딩 버클은 스틸, 러버를 가리지 않고 여러 종류의 스트랩과 간편하게 호환이 가능하다고 하네요. 앞서 보신 폴라리스 컬렉션의 모든 제품에 이 새로운 형태의 폴딩 버클이 체결되었습니다.
예거 르쿨트르는 이렇듯 올해 SIHH서 전례 없이 하나의 컬렉션에 오롯이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1960년대 유행한 레트로 다이버 워치 디자인의 한 표본이라 할 수 있는 메모복스 폴라리스의 50주년을 기념하면서 해당 복각 한정판 외에도 기능별로 다양한 신제품을 선보여 폴라리스를 하나의 온전하고 대안적인 스포츠 워치 컬렉션으로 구축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마스터와 리베르소로 대변되는 클래식 드레스 워치 라인업이 유독 강세를 보이는 예거 르쿨트르에 있어 폴라리스는 어찌됐든 중요한 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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