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틀맨과 회중시계 SEIKO YOUR STORY
젠틀맨과 회중시계
시계의 바늘도 제대로 읽지 못하던 어린 시절, 땅거미가 어스름해지고 함께 동네를 천방지축 뛰어놀던 아이들이 내일을 기약하며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면, 엄마는 저에게 씻고 유리가게에 가서 할아버지를 모시고 오라는 심부름을 시키셨습니다.
유리가게는 그 시절 친구들과 제가 비밀 본부로 정한 놀이터 달팽이 미끄럼틀 아래처럼 동네 할아버지들의 아지트였습니다.
유리가게 한 편에 마련된 탁자와 쇼파에서 할아버지들은 장기를 두거나 막걸리를 마시기도 했는데
입구에 들어서면서 꾸벅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하면, 할아버지 친구분들은 언제나 알은체를 하셨습니다.
‘쩬틀맨 형님 손자가 모시러 왔수.’ 유리가게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할아버지를 젠틀맨이라 불렀습니다.
할아버지가 늘 매너 있는 행동을 하시고 베풀기도 잘 하신 이유도 있지만, 제가 할아버지 집에 가요라고 부르면
언제나 웃으며 윗옷 안주머니에서 반짝이는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할아버지가 회중시계를 꺼내는 모습은 마치 토요명화 극장에서 보았던 007시리즈 영화의 남자 배우가
권총을 꺼내는 동작처럼 군더더기 없이 멋지게 보였습니다.
고모가 일본에서 선물로 사다드린 반짝이는 은장 세이코 회중시계, 할아버지는 매일 저녁 주무시기 전
시계의 태엽을 감고 부드러운 융 천으로 그것을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닦으셨습니다.
그리고 시계가 상하지 않도록 부들부들한 송아지 가죽으로 감싸 보관하셨습니다.
이 과정이 할아버지 하루 일과의 끝이었고, 또 그것을 매일매일 반복하셨습니다. 할아버지를 동경하던 소년인 저는
그 모습이 너무나 멋져보였습니다. 할아버지가 시계를 손질하실 때 가끔 옆에서 할아버지를 졸라
회중시계를 만져보고 이리저리 살펴보며, 언젠가 나도 할아버지처럼 나만의 회중시계를 가진 멋진 신사가 싶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나의 첫 회중시계는 할아버지와 함께 고르자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시고 제가 시계바늘을 제대로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간 계산까지 할 수 있을 때 쯤
곁을 떠나셨습니다. 할아버지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저에게 늘 애지중지 소중히 여기시던 그 회중시계를 남겨주셨는데
처음에는 할아버지처럼 매일 매일 공들여 시계를 관리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마음가짐도 흐트러지고
시계도 그 느슨해진 마음을 눈치 챘는지 바늘이 멈추다 서다를 반복하였습니다.
예전 같지 않은 시계를 가지고 안타까워 시무룩해있는 저를 본 고모께서 얼마 후
할아버지의 회중시계와 같은 모델은 오래되어 구하지 못했지만 그것보다 더 좋은 모델인 세이코 금장 회중시계를
미리 주는 성년 선물이라며 사다 주셨습니다.
그 시절 제가 되고 싶던 할아버지 같은 신사가 되었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성인의 기준이 되는 나이를 훌쩍 지나버린 지금 회중시계보다는 실용성 있는 손목시계가 더 편하고 어울리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세이코 은장 회중시계와 고모의 선물인 세이코 금장 회중시계는 나란히 서랍 안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물론 세상에 더 좋고 비싼 시계는 얼마든지 있겠지만
저에게 있어 최고의 시계는 할아버지가 늘 소중히 관리해서 언제나 반짝이던 그 세이코 은장 회중시계입니다.
그리고 그 멋진 회중시계가 외적으로뿐만 아니라 내적으로도 잘 어울릴만한 멋진 젠틀맨이 되고 싶습니다.
[사진1] 직업 특성상 회중시계를 지니고 다니기 어려워 늘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두 회중시계를 서랍 속에 나란히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사진2] 할아버지의 옛날시계 : 꼼꼼한 성격의 할아버지께서는 항상 시계를 감싸 보관하는 부드러운 송아지 가죽에
고모가 세이코 회중시계를 선물한 날짜를 적어 두셨습니다. 1978년 1월 21일 할아버지는 매일 저녁 시계를 손질하시며 그 날짜를 기억하셨습니다.
[사진3] 고모께 미리 받은 성년선물인 세이코 금장 회중시계, 할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으면 이시계가 멋지게 어울리는 신사가 될 수 있을까요?
[사진4] 직업 특성상 실용성있는 손목시계를 차고 다닙니다.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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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새시계같네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