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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603  공감:2 2018.05.09 03:51
나의 세이코.jpg

이 시계는 아버지의 것도, 할아버지의 것도 아닌 저의 것입니다.
제가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던 날, 처음으로 구입한 시계입니다.

지금도 큰 변함은 없지만, 학창시절 저는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웠습니다.
학비는 시에서, 식비는 구에서 지원을 받으며 학교를 다녔습니다.
이런 부족한 형편에 비행기도 타고, 또 그 비싼 세이코 시계를 구입했다니 참 철없게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큰 변함은 없지만, 그때 제게 부족했던 것은 집안 형편이었을 뿐,
저는 어디 가서 주눅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위에 모범이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어쩌면 저는 그 결핍 덕분에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빨리 깨달을 수 있었고,
제가 노력해서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에 하나씩 열정을 더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시간 덕분에 저는 열여덟 살 때 두 가지 큰 행운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찾아온 행운은 앞서 말한 그 비행기입니다.
학교 선생님들의 추천으로 저는 서울시에서 주최한 해외연수 프로그램에 면접을 볼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 당시 저에게 비행기는 부의 상징과 다름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기회를 놓치게 된다면 다시는 대한민국 밖으로 나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며, 어린 마음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운이 좋게 합격하였고, 한 학기를 준비하여 열여덟 여름, 처음으로 해외에 발을 디뎠습니다.

시에서는 연수 프로그램의 모든 경비를 제공하였지만 용돈은 참석자의 재량이었습니다.
저는 힘들게 일하시는 어머니께 단 돈 만 원이라도 달라는 부탁을 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운이 좋았던 것은, 시와 구에서 수업료와 급식카드로 저를 도와주었던 것처럼,
저의 주변에는 제게 힘이 되어주던 분들이 많이 계셨다는 것입니다.


당시 담임선생님께서는 저의 형편을 아시고 외부 장학 재단에 장학금을 신청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장학금은 대부분 인강을 듣거나 교재를 구입하는데 사용하였고, 매달 조금씩 저금하였습니다.
대학교 입학원서를 쓰기까지 어머니께 한 푼도 손을 빌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는 감사할 일 중 하나입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해외연수를 준비하며 딱 두 가지를 구입했습니다.
출국 전 인터넷 면세점에서 온갖 할인을 받아 구입한 이 세이코 시계와,
귀국 전 어머니께 드릴 중국 전통 과자가 첫 비행기를 타며 지출한 모든 것입니다.


저의 이 작은 시계에는 너무나 감사하여 잊지 말아야 할 사람들의 얼굴과,
힘들게 저를 키워주신 어머니의 사랑이 담겨있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마치 손의 일부처럼 매일 착용하였고,
그때마다 제가 받은 은혜를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갚아야 한다는 저의 꿈을 기억하였습니다.
이제 저는 취업이라는 어려움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면접까지 기회가 된다면 다시 세이코 시계를 손목에 차고, 저의 꿈을 피력하고 싶습니다.

이 작은 시계는 이제는 함께하지 않는 아버지의 것도,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저의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고작 8년 사용한 시계지만, 다른 어떤 의미보다 저에게는 소중합니다.
만약 제 시계를 고쳐주신다면 어릴 적 용기와 추억을 기억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겠습니다.
또다시 8년이 지난 뒤에는, 시계가 꼭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하겠습니다.

많이 부족한 저의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각자의 시계를 마주하며 오늘 하루 깊은 추억 함께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세이코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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