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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I-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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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타늄 기반의 니바크론 밸런스 스프링은 주원료가 철과 니켈인 니바록스 밸런스 스프링과 비교해 자성의 영향을 최대 1/20 수준으로 감소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2019년 2월, 필자는 스와치(SWATCH)의 플라이매직(Flymagic) 론칭 이벤트를 취재하기 위해 스위스 비엘(Biel)로 향했습니다. 닉 하이에크 스와치그룹 회장은 프레젠테이션에서 앞으로 그룹 내 브랜드가 생산하는 모든 기계식 시계는 실리콘 또는 니바크론(Nivachron) 밸런스 스프링 중 하나를 채택할 거라고 밝혔습니다. 수리를 위해 서비스 센터를 찾는 시계 가운데 무려 30% 정도가 자기장에 의해 문제가 생긴 것이며, 이로 인해 제조사와 고객 쌍방이 불필요한 비용과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을 방지하는 게 니바크론 밸런스 스프링 개발의 배경임을 역설했습니다. 시계 제국을 다스리는 회장님까지 나서서 언급할 정도면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님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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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리콘과 내자성 소재로 구성된 오메가의 밸런스와 코-액시얼 이스케이프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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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의 연철 케이스

각종 전자기기가 범람하는 오늘날 적과의 동침은 피할 수 없습니다. 자기장으로 인해 시계가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할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시계에 자성이 생기면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밸런스 스프링이 꼬이거나 미세한 부품끼리 들러붙습니다. 그 결과 시계의 오차는 급격히 커집니다. 시계를 자기장으로부터 보호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내자성을 가진 금속으로 부품을 제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케이스 내부에 차폐막을 설치하는 것입니다. 각 브랜드들은 자사의 정책이나 제품의 성격에 따라 혹은 시대적 요구에 따라 다른 해답을 제시하며 저항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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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8년에 제작된 바쉐론 콘스탄틴 포켓 워치

바쉐론 콘스탄틴은 19세기 중반부터 보이지 않는 상대를 경계와 호기심이 섞인 시선으로 바라봤습니다. 제네바의 매뉴팩처는 비철 소재를 이용해 문제를 해결하기로 합니다. 1846년 브론즈로 제작한 밸런스 휠과 밸런스 스프링으로 가능성을 타진했고, 한 발 더 나아가 비자성 소재 연구 협회의 일원이 되어 보다 깊숙이 파고들었습니다. 1862년에는 팔라듐 밸런스 스프링을 적용한 시계를 출시했고, 1885년에는 밸런스 휠과 밸런스 스프링은 팔라듐, 팰릿 포크와 이스케이프먼트 휠은 골드로 만들어 자기장에 대항했습니다. 아쉽게도 이런 노력은 뚜렷한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자기장에는 강하지만 상대적으로 내구성이 떨어지는 재료를 사용하다 보니 안정성을 확보하는데 실패했던 겁니다. 하지만 “가능한 한 더욱 잘하라. 그것은 언제나 가능하다” 라는 무시무시한 말을 남긴 설립자의 정신을 되새긴 끝에 1915년 최초의 내자성 포켓 워치를 출시하는 쾌거를 이룹니다. 그로부터 15년 뒤인 1930년에는 티쏘가 바쉐론 콘스탄틴처럼 내자성 소재의 밸런스를 이용한 최초의 내자성 손목시계 안티마그네티크를 선보입니다. 이후 라인하르트 스트라우만(Reinhard Straumann)이 개발한 니바록스(Nivarox)가 밸런스 스프링의 소재로 부상하면서 기계식 시계는 소재 혁신을 통해 자성에 대한 내성을 어느 정도 갖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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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5년에 처음 생산된 IWC 인제니어 Ref. 666 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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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의 롤렉스 밀가우스 Ref. 6451. 프랑스어로 숫자 1,000을 뜻하는 밀(mille)과 가우스(Gauss)를 조합해 작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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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릴륨 또는 골드로 제작한 레버 이스케이프먼트와 연철 캡을 혼용한 파텍필립의 아마그네틱 Ref. 3417(사진 : 크리스티)

20세기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자성에 대한 논의는 다시 진행되어야만 했습니다. 손목시계의 시대가 개막했기 때문입니다. 주머니 속에 웅크리고 있던 시계가 밖으로 나오면서 자기장과 같은 외부 요인에 쉽게 노출됐습니다. 전자기기가 대중화의 물살을 타고,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거치며 항공 기술과 각종 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하게 된 것도 또 다른 이유였습니다. 특수한 소재만으로는 자기장을 막아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리하여 장인들은 연철 케이지(혹은 캡)로 무브먼트를 둘러싸는 아이디어를 고안합니다. 연철 케이지는 자기장이 무브먼트를 관통하지 못하게 만들어 부품이 자화(magnetization)되는 것을 막아주었습니다. 이 같은 방식은 항공기나 전투기 조종사를 위한 파일럿 워치 또는 특별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과학자나 작업자를 위한 툴 워치에서 빛을 발했습니다. 1936년 최초의 파일럿 워치에 내자성 소재의 이스케이프먼트를 투입했던 IWC는 수년 뒤 연철 케이지를 도입해 70,000A/m에 달하는 자성에도 견딜 수 있는 마크 11을 출시하며 파일럿 워치 명가의 토대를 닦습니다. 최초의 인하우스 셀프와인딩 무브먼트 칼리버 85를 탑재한 인제니어(1955년), 제네바의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과학자들이 애용했던 롤렉스의 밀가우스(1956년), 철도청 관계자와 전문가들을 위해 출시된 오메가의 레일마스터(1957년), 파텍필립 최초의 양산형 내자성 시계 아마그네틱(1958년) 모두 연철 케이지를 해법으로 제시한 시계였습니다. 연철 케이지는 강력한 자기장 맞설 수 있는 효과적인 해결책이지만 무브먼트 감상의 즐거움까지 차단해 버리는 단점도 존재합니다. 실용성과 심미적 가치가 충돌하는 일이 벌어지는 겁니다. 둘 다 포기할 수 없었던 워치메이커들은 언제나 그랬듯이 답을 찾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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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리버 400을 탑재한 오리스 아퀴스 데이트

스와치그룹은 서두에 언급했듯이 실리콘과 니바크론 밸런스 스프링이라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합니다. 전자는 브레게, 블랑팡, 오메가 등에, 후자는 해밀턴이나 미도와 같은 미드레인지 브랜드에 투입합니다. 오메가의 뒤를 이어 마스터 크로노미터 인증에 동참한 튜더는 15,000 가우스의 자기장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시계를 공개했습니다.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한 볼거리는 없지만 어찌됐든 무브먼트도 즐길 수 있으니 사용자나 구매를 고려하는 입장에서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리스의 야심작 칼리버 400은 실리콘 이스케이프 휠과 팰릿 포크 등 30개 이상의 비철금속과 내자성 부품을 동원해 내자성에 관한 국제 기술 표준 ISO 764를 충족합니다. 오리스에 의하면 전문 테스트 기관인 뒤부아 실험실에서 매일 2,250 가우스의 자기장에 무브먼트를 노출시켜 성능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바쉐론 콘스탄틴의 오버시즈는 제네바씰 인증을 받은 아름다운 무브먼트를 어떻게 해서든 보여주겠다는 일념 하에 연철 케이지로 무브먼트를 덮는 대신 링처럼 둘러버립니다. 덕분에 25,000 A/m에 달하는 자기장에도 견뎌내는데 성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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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쉐론 콘스탄틴 오버시즈 퍼페추얼 캘린더 울트라 씬 스켈레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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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스터 크로노미터 인증을 위해 오메가 매뉴팩처에 마련된 스위스 계측학 연방학회(METAS) 연구소

정확성이 시계를 구입하는데 있어 의사 결정의 근거가 되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제는 방수나 파워리저브 같은 실생활에 유용한 종합적인 성능까지 고려합니다. 여기에는 당연히 내자성도 포함됩니다. 자기장의 숲에 살고 있는 현대의 시계 애호가들에게 내자성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시계를 만드는 입장에서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여전히 제한적입니다. 실리콘이나 티타늄 같은 비철 소재를 사용하거나 연철 케이지를 사용하거나. 핵심은 얼마나 뛰어난 내자성을 갖추느냐가 아니라 실용과 미학의 접점을 찾는 것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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