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여기에 글을 씁니다. 다름 아닌 연필 득템기입니다.
고등학교때 화실에 다니며 석고상 등을 그리느라 한참 연필을 많이 썼었습니다.
당시에는 주로 일본산 톰보우가 대세였고 한국산 더존도 많이 썼었습니다. 파버 카스텔 등은 수입되지도 않았던 시절입니다.
석고상을 그릴때는 연필심 소모가 유난히도 많아서 심을 길게 깎아야 하기 때문에 자동연필깎기보다는 손과 칼로 무조건 연필을 깎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연필심만 2~3cm로 길게 깎아내기도 했는데 누가 더 길게 깎나 친구들과 경쟁도 했었네요.
그때의 실력이 아직도 녹슬진 않아서 연필 깎는 건 자신 있습니다.
아무튼 대학, 직장 생활 후에 연필은 좀 멀어진 듯 합니다. 간간히 쓰긴 했지만 결코 지워지면 안되는 메모가 많아져서
주로 방수도 되고 지워지지 않는 볼펜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행사에 가서 그 자리에 연필을 만나거나
호텔방 전화기 옆 메모지에 연필이 놓여 있거나 그리고 선물을 받거나 하면 매우 기분이 좋았습니다.
최근에 다시 연필에 빠졌습니다. 아날로그 감성을 내세우며 만나는 사람마다 한자루씩 선물 주기도 하고...
보자마자 반해 버린 연필은 그라폰 파버 카스텔 퍼펙트 펜슬입니다. 바로 가족 것까지 득템해 선물로 전해줬습니다.
연필은 주로 제일 저렴한 필기구라 여기는 일반적인 생각을 뛰어 넘는 연필입니다.
한국어로 초등학생들은 깍지라고도 부르는 익스텐더는 순은 또는 백금도금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건 백금도금 버전으로 이니셜을 새길 수 있습니다.
익스텐더에는 연필깎기가 내장되어 있습니다.
전용 연필은 두 가지 색으로 지우개가 달려 있습니다. 지우개 리필 따로 됩니다만 연필 하나의 가격도 상당한데..지우개 너 마저도..ㅠ ㅠ
자연도태될때까지 지우개는 그냥 안 쓰려구요.
아무튼 지우개를 달 수 없지만 갈색 데스크펜슬도 하나 더 득템.
이런 케이스에 담아 줍니다.
간만에 다시 연필을 바라보니 연필에 관한 책을 보고 싶어졌습니다.
사실 연필 스케치 교본과 같은 드로잉에 관한 책은 많으나 정작 '연필'을 주제로 한 책은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나마 전설적인 연필책은 헨리 페트로스키 교수가 쓴 <the Pencil> 입니다.
연필이 어떻게 개발되었고 발전했나에 관한 심도 깊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페트로스키 교수의 다른 책도 무척 재밌습니다.
이 책은 한국어로 번역 출간되었는데...현재는 절판되어 구할 수가 없습니다. 한국 중고책은 너무 고가! 영문 원작이 더 저렴하다는 안타까운 진실.
최근 몇몇 외국책은 절판되어 구할 수 없어서 가슴이 쓰라렸던 기억이 있는데 그나마 이 책은 원작이라도 구할 수 있는 것도 다행입니다.
다행인지 저는 지인이 예전에 사둔 책이 있어서...
그리고 최근에 나온 연필에 관한 책으로 번역 출간된 <연필 깎기의 정석>이 있습니다.
아주 재미있습니다. 실제로 연필을 깎아주는 것이 직업인 사람의 자전적 책입니다.
현재는 연필 1개 깎아 주는데 35 달러 받는다고 합니다.
이를 주문할 수 있는 자체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고 주문을 하면 연필, 연필 깎고 남은 연필밥, 인증서까지 동봉해서 보내준다는군요. 아래 사진처럼요.
저도 깎는 거라면 자신 있는데 이 분 연필도 꼭 경험하고 싶더군요. 뉴욕에 계신 분은 가능하십니다.
작가 경력이 있어서 그런지 의외로 내용이 무척 재미있는데, 아래처럼 이렇게 전문적인 연구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연필밥 사용처처럼 위트있는 서술도 있습니다.
이 책을 보노라면 연필보다는 오히려 다른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직업이든 그 직업을 사랑하라라는 메세지를 주는 것처럼요.
데이비드 리스 씨는 전혀 없던 직업을 만들어내고 이야기를 담는 재주를 다 갖추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보다 자신의 직업에 얼마나 전문적인가, 전문가가 되려고 노력은 했었나를 되짚어 보게 되더군요.
마지막으로 어제 득템한 연필꽂이... 연필의 손상 없이 담을 수 있어서 제 완소 아이템이 될 것 같습니다. 아이디어가 뿅뿅 나올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지는 꽂이입니다.
댓글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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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ual7
2013.09.14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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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미스훈
2013.09.14 07:55
필력이 좋으십니다.부드러운인품이 느껴진달까요 -
manual7
2013.09.14 13:45
감사합니다. 부드러운 사람이 되고 싶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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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GBY™
2013.09.14 11:53
연필은 보급형 스테들러가 최고라 생각했었는데..역시 이 세계도 하이엔드가 존재하는군요 ㅎㅎ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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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ual7
2013.09.14 13:47
<연필깎기의 정석> 책에 보면 뒤에 연필 판매처, 심지어 빈티지 연필깎기 블로그 및 구입처 등의 정보가... 보면 안될 듯해서 아직 안둘러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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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GoesOn
2013.09.14 13:21
지난번에 보여주셨을 때도 느꼈지만 10미터 밖에서도 고급스러움이 느껴질 정도의 아우라가 풍기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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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ual7
2013.09.14 13:47
그렇죠? 저절로 사게 되는 아우라.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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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찌남
2013.09.14 13:32
완전 갈필이라 너무 못써서 필기 자체를 좋아하지 않지만 연필 깍는건 정말 좋아했습니다.
수동칠님 덕에 학창시절 연필 깎았던 생각을 떠올리니 가슴이 벌렁거립니다. 제것을 다 깎으면 친구들 것도 깎아줄 정도로 엄청 좋아했거든요.
도루코 커터날을 차라락 빼서 나무를 깍아내는 그 감촉, 둥글게 말려 깎여 나가는 연필 밥들, 그 연필밪들이 깎여나가는 소리, 최대한 길게 깎으면서 샤파로 깎은것처럼 최대한 부드럽고 매끈하게 처리하려했던 그런 기억들이 새록 솟아납니다.
연필심을 뾰족하게 세우는건 별로 안좋아했습니다. 연필심이 깎여나가는 느낌과 소리를 좋아하지 않아서 ㅎㅎ
짧은 시간동안 몰두하며 집중해 깎으며 느낀 차분해졌던 기분을 생각하니 설레입니다.
집에 연필이 있는지 찾아봐야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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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ual7
2013.09.14 13:52
저도 그냥 일반 칼로 깎았었는데..그러면 칼의 등날을 밀어내는 왼손 엄지가 좀 많이 아프죠.
그래도 저도 연필심을 뾰족하게 세우는것은 그리 좋아하진 않아서 손으로 깎아 내는 걸 더 선호합니다.
그런데 책에 저자는 주머니칼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합니다.
물려받은 주머니칼로 깎는 이야기를 적었는데...음...이 기회에 연필깎기용 주머니칼을 구하나 하는 사심도 생깁니다.
시계공구 전시에서 뒷백 따는 칼을 보고 저걸로 연필을 깎을 수 없을까 하고 생각을 했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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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다키다니
2013.09.14 14:38
필기감이 굉장히 궁금해 지네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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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ual7
2013.09.16 20:15
필기감은 HB 로 단단한데 부드럽게 써집니다. 뭉툭함이 덜합니다. 개인적인 취향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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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kesc
2013.09.15 18:09
연필 한 개 깎아주는데 35달러......이건 비단 시계나 연필 문제만은 아니지만, 생각할 거리가 되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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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ual7
2013.09.16 20:16
네..비단 연필의 문제보다는 직업에 대한 내 자신의 태도에 대한 깨달음을 일깨우는 책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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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함
2013.09.15 22:30
우와~ 어딘가 완전히 새로운 영역을 접한것 같습니다. 이래서 타포가 너무 좋아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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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ual7
2013.09.16 20:17
^^ 저도 타포에서 많이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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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카우트
2013.09.16 15:50
익스텐더가 아주 훅하니 뽐뿌가 오네요 ^^ 저도 제 딸내미 연필은 제가 깎아주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신기해하는 녀석을 보는 것도 좋고 어릴때 생각도 나고요.
가지런한 연필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요(문제는 딸내미가 터프하게 연필질을 해놔서 하루가 못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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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ual7
2013.09.16 20:19
아들내미보다 딸내미가 제 연필을 깎을 줄도 모르고 험하게 쓰는 것 같습니다(유경험).
저도 익스텐더가 맘에 들어서 구매했구요. 딸린 연필말고 일반 연필도 끼울 수 있습니다. 육각형도 끼워지고 연필도 깎아 집니다.
원하는 경도의 연필로 끼워 다니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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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BOY
2013.09.17 14:39
저도 연필깍기가 취미인데요....마지막 사진 연필꽂이 구매처가 궁금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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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ual7
2013.09.17 17:14
쪽지 주셔서 답변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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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크zio
2013.09.17 23:13
비슬리 참 곱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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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오빠
2013.09.18 10:21
그라폰 파버카스텔 연필이군요 ㅎㅎ
저도 이번에 볼펜사면서 만년필&볼펜은 몽블랑이다 라는 개념을 깨준 브랜드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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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PnC
2013.09.19 14:05
새로운 세계로군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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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ke76
2013.09.20 17:42
ㅎㅎ...저도 개인적으로 펜 보다는 연필에 더 마음이 가더라고요. 그래서 사무실에서 결제 외에는 연필을 애용합니다. 엑스펜더도 쓰긴 합니다만....멋지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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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pin10
2013.09.22 23:23
저도 올해 초부터 필기할때 파버카스텔 보난자 씁니다. 그립은 솔직히 목재 샤프나 다른 필기구보다 별로지만 나무, 흑연 냄새와 사각거리는 소리가 참 좋네요.
글씨 쓸 때도 전보다 더 신경이 쓰입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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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him
2013.09.25 09:27
내가 모르는 무궁한 세상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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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xer
2013.09.26 16:36
$35 ㅎㄷㄷ 헛웃음이 나와버렸지만,,, 아래 내용까지 찬찬히 보니 연필깎는 열정에 대한 보답이라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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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
2013.10.03 16:28
새로운 세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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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레이푸
2013.10.03 22:41
글을 읽고 어린시절 연필을 깍던 기억이 나더군요~~^^ 그리고 문득 누가 처음 연필 깍는걸 가르쳐주었을까? 란 궁금증이 생겼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처음 연필깍는법을 가르쳐 주었던 사람은 기억이 나질 않네요..ㅠㅠ 분명 부모님이셨을거 같긴한데...어머니신지 아버지신지...기억이 ......^^;;;;;;;;
오늘은 어린시절 연필깍을때 추억이나 새록새록 떠올리며 마무리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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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onihi
2013.10.04 15:44
뭔가 머리와 손을 같이 쓰는 일을 하시는 것 같네요~ 저도 비슷한 쪽 일을 합니다. 전 필기구 중에는 만년필을 사랑하는 편입니다만 연필에 대한 것들을 보니 또 흥미롭네요. 재밌게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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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nor
2013.10.29 10:30
저도 뽐뿌받아서..
연필깍이책이랑 퍼펙트펜슬 두개 다 삼ㅠ
이니셜 새겨서 받으니 이뿌긴하네염ㅋ -
dfefdfe
2013.11.05 13:26
연필깍는 직업도 있군요..
저도 연필 잘 깍는데..
아웅...죄송해요. ㅠ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