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 어차피 신문 기사라는 것 자체가
사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정도로 엉터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읽어서 기분 나쁜 기사는 있게 마련인가봅니다.
'시계' 라는 주제에 대한 제대로 된 글이라면 책 몇권으로도 부족할 것이며,
그 주제를 아무리 '최근에 일어나는 명품시계 붐' 이라 줄인다해도
단 몇백자의 기사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 어떤 사건이라도 일어나게 되는 이유가 반드시 있습니다.
사람들은 여기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어떤 사건에 대한 '단 하나'의 이유를 듣고 싶어합니다.
흔히들 2차대전의 시작을 사라예보의 총성이라고 말합니다.
단 하나의 이유에 집착하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 같은 사람들을 모아 사라예보에서 총성을 들려준다면,
바로 2차대전과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 믿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2차대전이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수없이 많은 이유들이 모여 만들어낸 사회적인 흐름이었습니다.
이유를 말하라면 서양 근세사를 읽어봐라라고밖에 할 수 없죠.
일본은 경제의 거품 후에 10년이 넘도록 장기불황을 거쳐 지금에 이릅니다.
아직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은 아직도 가지고 있는 돈을 제대로 풀어놓지는 않습니다만,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개인은 물론, 회사와 정부 또한 튼튼해졌습니다.
현재의 일본 경제는 단단하다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입니다.
미국은 레이건 시절 경제의 발판이 다져지고 클린턴 정부에 들어서 그 효과가 나타나게 됩니다.
부시 정부 들어서 그 발판에서 너무 높게 올라온 감이 있어 안정된 경제라고는 할 수 없으나,
세제 혜택과 경기 부양책으로 호황의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최근엔 부동산을 중심으로 그게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이 엄청나게 많은 수의 신흥부자들이 상하이를 중심으로 생겨나고 있는 중이며
이들의 구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 입니다.
이러한 활황 속에서 소비재, 특히 사치재의 매출 증대는 자연스런 일입니다.
해당 기간인 1990년대 말부터,
현재까지 시계는 물론이며 고급 자동차나 부동산의 판매량이 모두 급증하였습니다.
일례로 10년 가까이 깨지지 않던 최고속도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던 Mclaren F1의 기록이
최근들어 여러차례 위협받다가 결국은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Enzo Ferrari, Koenigsegg CCR, Pagani Zonda, Edonis, Bugatti Veyron과 같은 여러 수퍼카들의 제작 판매는
경제 활황의 결과물의 하나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시계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또한 사회가 경제적으로 안정되면서, 육체적인 강함이 더이상 미덕이 아니게 되고,
오히려 모성을 자극하는 유약함과 가느다람이 아름다움의 새로운 기준이 되어갑니다.
더 이상 남자다움이란 말은 여자다움이란 말과 차이가 없어지고, 생활 패턴조차 닮아 갑니다.
결과적으로 남자 또한 여자와 같은 종류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됩니다.
남자들이 이발소 대신 미용실을 가게 되고, 남성을 향한 피부 용품들이 하나 둘씩 생기며,
남성 패션잡지가 계속해서 인기를 얻습니다.
악세사리 또한 여성의 전유물은 아니며, 남성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에게 맞는 악세사리를 찾아갑니다.
시계란 복잡한 부품들이 서로 얽혀 생명을 부여받는 장치입니다.
동시에 여러방향으로 빛을 반사시키며 자신의 존재를 눈에 각인시키는 보석이기도 합니다.
남성의 본능적인 호기심과 새로운 의미의 아름다움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조건을 모두 갖춘 셈입니다.
더이상 시간의 정확함이 포인트가 아닌 시계산업의 변화,
하나의 거대기업으로 통합되면서 나타나는 시너지 효과 및 엄청난 재력을 바탕으로 한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마케팅등도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이렇듯, 기계식 시계의 인기가 높아지는 것 또한
현재의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심리적 문제가 다양하게 어우러진 결과입니다.
그러나 먼저와 같은 이유로 사람들은 '최근에 일어나는 명품 시계 붐' 에 대한 '단 하나의 이유'를 듣고 싶어합니다.
최근 신문 기사의 질을 볼 때,
기사란 현재 사회의 분위기를 봐서 사람들이 가장 맞장구치며 좋아할 만한,
그래서 발행부수를 늘려줄 그런 단 하나의 이유를 찾아낸 결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분법이란 말은 너무나도 무서운 말입니다.
여러가지 색을 흑백으로 나누고, 여러가지 위치를 강남, 강북으로 나누고,
또 여러가지의 경제 사정을 부자와 가난한자로 나누어 버립니다.
원래 자신을 희다, 검다, 혹은 부자다 아니다라고 생각을 해본 적도 없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이분법의 부추김에 자연스레 자신을 둘 중 하나로 설정해버립니다.
이후에는 그런 설정에 대한 반발감은 없어지고, 화려하고 극렬한 선동언어에 자신의 생각을 잃게 됩니다.
이렇게 생각이 없어진 사회에서는 기존에 정해진 틀에 맞추어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할 수 있는 이유면 충분합니다.
최근 어떤 매체를 불문하고 기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되었던 이유는
생각없는 사람들에게 생각할 힘을 주는 매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전 바이크 동아리 일을 하면서, 사람들의 바이크에 대한 나쁜 편견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준법 운행과 더불어 봉사활동까지 많은 일들을 했었습니다.
방금과 같은 기사를 보고 시계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적극적으로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생각해 봅니다.
딱히 기사 하나를 보고 반응하기 보다는 시계를 사랑하는 마음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순수한 마음을 알리고
서서히 우리가 생각하는 올바른 문화를 퍼뜨려나가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언젠가 Malcolm Gladwell씨가 말했던 Tipping point를 만나
급격한 붐을 이루게 된다면 더할 나위없이 기쁜일일 것입니다.
타임 포럼이 있는 이유중 하나도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요?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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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ros
2007.08.11 04:11
T_T;;;; 맑은 정신으로 다시 읽고 다시 댓글을 달겠습니다. -
oceanblue
2007.08.11 11:01
미술사나 역사에 대해 잘 모르는 문외한으로서의 짧은 견해이지만, 현재 덕수궁 미술관에서 전시중인 미술작품을 볼때 드는 생각이 예술은 돈 있는 자를 위한 생각이 많이 들더군요. 시계가 금속공예의 예술작품화가 가능한 것도 그 시계를 구매할 사람이 있기 때문이고 점점 그 구매능력이 있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수요도 늘어나는 것이죠. 한가지 더 생각해볼 것은 과연 부자의 수가 늘어난 것이냐는 것입니다. 국민부채는 날로 증가하는 마당에 말이죠. 적어도 배고픈 시절은 지났다는 뜻이 되겠죠? 먹고 사는 문제를 벗어난... 그런데, 뭐 어떻습니까? 있는 사람이 쓰겠다는데. 중요한 것은 그 소비가 얼마나 현명한 것이냐입니다. 소위 말하는 흥청망청이 아니라 가치에 대한 개념이 서 있다면 소비라고만 할 수는 없는 투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니까요. -
ray
2007.08.11 13:01
오천님... 글자를 크게 써주셔요... 노안이라 돋보기써야함다.
돋보기 찾아서 읽고 댓글 다시달겠슴다. -
지노
2007.08.11 14:46
레이흉아 빨리 안경 쓰삼!! ㅋㅋ
타임포럼 회원 여러분 모두가 건전한 시계 문화 저변확대의 공신들이시죠!!
멋진 글 잘 봤습니다. ^^ -
Gracia
2007.08.11 15:55
도대체 글의 논점이 뭡니까;; -
Kairos
2007.08.11 23:40
^^;;;; gracia님..... 약간 가혹한 댓글을 달아주셨네요.
제가 주제넘께 다시 정리해 보자면
1. 사람들은 알아듣기 쉽게 과도한 일반화를 바라는 경향도 있다.
2. a. 경제적 활황과 상대적 부유함이 아닌 절대적 부유함의 상승으로 인하여 많은 파급효과들이 시장에 나타나고 있는데 시계도 그중 하나이다.
b. 거기에 덧붙여 악세사리로서의 역할로서도 부각되고있다.
3. 이러한 시계에 대한 관심 혹은 시장의 성장에 대해 과도한 일반화로 설명을 하려는 시도들이 있다.
4. 1번에서 이야기 했듯 단순화된 흑백논리로 고가 시계 시장의 성장이라는 (제 해석) 현상을 해석하는 행위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5. 중요한 부분은 단순한 단 하나만의 대답이 아닌 '문화'이며 시계 매니아들의 모임이 그 문화 형성에 기여하지 않을까 싶다.
라는 논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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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ros
2007.08.11 23:48
오션블루님.... 램브란트 아저씨 구경하고 오셨군요.
전 자유시장경제를 고수해 나가는한 절대적 빈곤은 더 줄어들고..... 절대적 부는 더 상승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유있는 분들이 자신이 잘산다는걸 증명하기 위한 소비를 한다는건....... 사실 좀 상스러워 보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냥 좋아서 사고.... 좋아서 시계를 사려는데 마침 여유가 있다........ 이런 부분은 그 아무도 비난할 수 없다고 봅니다. 세상에 현명한 소비란.... 만약 그런 개념이 있다면 상스럽지 않은 소비와 동의한다고 생각하고........ 상스럽지 않은 소비란..... 나름 철학이 있는 소비가 아닌가 싶습니다. -
4941cc
2007.08.12 07:53
글 쉽게 쓰는 건 정말 어려운 일 같아요~~~T_T -
oceanblue
2007.08.13 20:01
헉 개지지님... 제가 표현이 좀 서툴렀나본데... 저 역시나 남들이 보기엔 넘 과하다 하는 시계들(?)을 사용하고 있고요... 제 말씀은 그저 이런 걸 즐기는 경우에 즐기면서 하되 능력이 되고(빚까지 내면서 하는 것과는 다르게...) 그리고 그걸 구매해서 사용하는 사람이 그 구매로 인해 다른 심리적인 만족감이나 생활의 활력을 얻는다면 그것 하나로도 투자라는 말씀이었어요. 정말 글 쉽게 쓰는 건 정말 어려운 일 같아요(2) -
은빛기사
2007.08.15 17:22
ㅎㅎ 반올림이 안되어,,4900님이라고,,해야겠군여 ㅎㅎ(윽,,썰렁,,,) 잘 읽었습니다 ^^ -
meternich
2007.08.22 16:40
우선 잘못된 부분 하나.. 사라예보의 총성은 2차대전이 아닌 1차대전의 서막이었습니다.. 오스트리아 합스브르크 왕가의 페르디난츠 황태자 부부를 암살(?)한 사건이지요 -
4941cc
2007.08.24 04:44
헉 수정을 하려다가 메테르니히님의 덧글이 영향을 받을까봐 그냥 두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엘리뇨
2007.12.25 05:37
뭐 근데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데 이유가 없는것처럼 상관없다! 라고 말하는것도? ^^: -
엘리뇨
2007.12.25 05:37
뭐 근데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데 이유가 없는것처럼 상관없다! 라고 말하는것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