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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

 
 
제 어린날에 있어서 시계란 당연히 배터리로 가는것이었습니다. 문방구에서 볼 수 있던 제가
 
좋아하던 만화 주인공이 그려져 있던 시계도, 아버지께서 해외 출장 후 사다주신 스와치 시계, 게스 시계도
 
모두 똑딱거리는 초침이 멈추고 나서 왜 멈춘것일까 하고 그제서야 속을 들여다 보면
 
여지없이 동그란 건전지가 하나씩 들어있었습니다.
 
 
 
동그란 건전지를 어디서 바꿀수 있는지도 몰랐던 저는 어차피 여러개의 시계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건전지의 힘이 다한 시계는 그냥 서랍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때 그때 건전지가 남아있던 시계를
 
차고다녔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이 청바지의 오뛰뀌띠르(-_-;)라는 소리를 듣던 Diesel이란 브랜드의 시계를
 
차고 다닐때, 한물 간 청바지 브랜드인 게스가 창피해 지기 시작했었고 그때부터 꽤 오랜 시간
 
시계를 차지 않았었습니다. 어릴때 부터 브랜드라는 낙인을 밝혔던게죠. 여기저기서 국민학교를
 
다니다가 국민학교 졸업장 만큼은 8학군에서 받아야 인생이 보기 좋다고 생각하신 어머니
 
덕분에 6학년때 천호동에서 개포동으로 이사가서 학위(?)를 수여했던 기억마냥, 지금 떠올리자면
 
조금 우습습니다.
 
 
<저 아님다>
 
 
 
그래도 언제나 건전지로 가는 시계보다 제 마음속에는 정말 좋은시계란..... 아버지의 결혼예물 오메가나
 
결혼 10주년때 좀 살만해 진 기념 혹은 살만한것처럼 보이기위해 장만하신 롤렉스같이 무지무지 좋은
 
시계들처럼 건전지 없이 신기하게도 사람이 차기만 하면 작동한다는 시계였습니다.
 
 
 
 
 
저에게도 Automatic이란 Magic word에 다름 없었습니다. 그리고 세계 최고의 브랜드인 롤렉스나 오메가에서나
 
만들수 있는 시계인줄로 알았구요.
 
 
 
지금은 누군가 내가 좋아하는 시계가 아닌, 정말 '좋은' 시계란 무엇이냐 라고 묻는다면 쿼츠 시계를 말해야
 
하나 기계식 시계를 말해야 하나 사실 망설여집니다만, 그래도 기계식 시계를 위한 열망은, 시계를 알기
 
전까지도 "성공의 상징 = 시계위의 Automatic이라는 글자"라는 고정관념에서 시작되었었습니다.
 
 
 
내 손목의 움직임이 관성으로 전환되어 로터가 뺑글뺑글 돌면서 메인스프링이 감기고 무섭도록 정밀한
 
헤어스프링과 발란스의 움직임이 4번휠 까지 전달되어 나오는 결과라고 본다면 기계식 시계는 저로선
 
이해 할 수 없는 경이로운 정확성(쿼츠에 비해서는 부정확 할지 몰라도)을 보여주는 아직도
 
신기한 기계입니다. 로터없는 녀석은 주인이 직접 밥을 직접 손으로 주는 모습이 낭만적이구요.
 
 
쿼츠가 우수한가 기계식이 우수한가 라는 질문에는 아직 전 대답할 수 없어도,
 
왜 시계를 좋아한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기계식 시계를 좋아하는지 이제는 사실 이해가 갈듯도
 
하기에....... 기계식 시계와 쿼츠 시계를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 시계의
 
알맹이인 무브먼트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 하고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안에 무엇이 들어가냐에 따라 쿼츠냐 기계식이냐가 결정되는거지요. 사진은 앙꼬없는 찐빵입니다. ^^>
 
 
기계식이냐 쿼츠냐라는 질문에서 기계식이라는 정답을 얻게된다면, 우리는 기계식 시계의
 
가격대, 브랜드네임에서부터  디자인까지.... 수많은 연구를 시작하게됩니다. 그
 
리고 우리나라 상황에서 자동차 시장처럼 어쩌면 몇가지 되지 않는
 
현실적인 옵션중에 하나를 고르게 되는것과는 달리, 우리는 알면 알수록 많은 시계들을 맞딱뜨리게 되고
 
처음에 끌리는 시계가 객관적으로도 좋은 시계 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단계를 넘어서, 좋은 시계를
 
찾고 그중 자신에게 끌리는 시계를 찾자고 마음먹으면, 인생이 고달파지는 너무도 많은 선택을 맞딱뜨리게
 
되고, 자신의 시계를 찾는 사람은 트레져헌터 비스무리하게 변해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아무리 케이스와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 하더라도, 결국 시계의 알맹이가 흔하디 흔한 알맹이라고
 
판단되면 구매를 망설이게 되기도 하고요.
 
 
하지만 케이스, 다이얼 디자인, 브랜드네임 등등을 고려하더라도, 기계식 시계를 찾는 사람은 최초에
 
기계식 무브먼트라는 선택을 내린 사람이기에, 무브먼트를 절대 간과 할 수도 없습니다.
 
 
 
 
 
 
쿼츠와 기계식이라는 갈림길 그 다음에 나오는 갈림길은........
 
흔히 ETA 무브먼트냐 자사무브먼트냐 라는 갈림길로 보이게 될 지 모르지만,
 
그러한 이분법보다 제가 보기에 더 합당한 이분법이 있으니,
 
 
그것은.....기계가 조립한 무브먼트를 찾는가 혹은 사람의 손으로 조립된 무브먼트를 찾는가 입니다.
 
 
기계가 조립한 무브먼트란, ETA에서 에보슈를 그대로 생산조립한 무브먼트, 세이코의 7S무브먼트가
 
가장 대표적이고 거의 유일한 예이며,
 
 
사람의 손으로 조립한 무브먼트란 르마니아, 피게, ETA의 에보슈 부품 키트나 자사 무브먼트를 시계브랜드에서
 
직접 고용/외주한 인력으로 조립하고 조정을 거치는 무브먼트로 구분이 가능합니다.
 
 
롤렉스의 무브먼트 같은 경우는 이 둘 사이에 있는것으로 보이구요.
 
 
 
대량생산으로 얻어지는 정밀성을 토대로 만들어지는 ETA의 생산조립 무브먼트는 말 그대로 현대성에 기반해
 
시계라는 전통있는 기계체를 만드는 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 및 범위의 경제(economy of
 
spectrum) 의 쾌거입니다. 수동 무브먼트인 유니타스 6497/6498, 푸조 7001, 2801, 수동 크로노그래프 7760,
 
자동무브먼트인 2892, 2824, 2826, 2834, 7750 등등등......... 그 종류와 양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실상부 세계 제 1의 무브먼트 메뉴펙쳐이며 매년 수천만불을 투자하는 회사입니다. ETA가 생산조립하는
 
기계식 무브먼트란 사실 즉 '믿을만함'과 '합리성'의 동의어라고 판단을 내린다 하더라도 큰 무리가
 
없습니다.
 
<7750만으로도 여기 보이는 시계 숫자의 열배 이상의 시계 종류가 나옵니다.>
 
 
 
세이코의 경우에도 일부 무브먼트는 공장에서 ETA보다는 덜하지만 자동화에 기반된 생산을 하는 것으로
 
알고있고 그래서 Seiko 5, 다이버 시리즈 등등의 너무나도 착한가격 속에 담겨있는 믿을만한 무브먼트(=믿을만한 시계)를
 
우리에게 선사합니다. 롤렉스의 경우 연간 수만개의 기계식 시계 무브먼트를 만들면서 부품 하청업체들에게
 
최고의 수준을 강요하는 높은 기준과 거기에 경이로운 브레게 스프링 구부리기를 포함하는 노하우 등까지 합쳐져
 
자동화생산에 기반을 둔 튼튼하고 정확하기로 업계 1위가 아니라면 정말 억울해할 무브먼트를 만듭니다.
 
 
 
10년전 ETA의 사장이었던 안트완 발리씨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이야기 하길 "이 시계는 ETA 무브를 쓴
 
주제에 왜 이렇게 비싼거야 라는 말을 들을때 마다 짜증납니다. 좋은 ETA 무브를 쓰긴 했는데 왜 이렇게
 
비싼거지? 로 바꿔서 말해야지요."
 
무브먼트의 성능이 좋은 시계... 라는 관점에서는 대량생산되는 무브먼트들은 그 설계상 약점이 없는 한  (너무
 
얇거나, 작아서 윤열사이 제조오차 허용공간이 적다거나 등등) 가장 합리적인 선택 일 수 밖에 없으며
 
케이스의 뒷편에서 묵묵히 자기 할 일을 제대로 하는것이 손목시계 무브먼트의 본질적인 운명임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속칭 범용 무브먼트에 사실 부족함이 없을것입니다.
 
<결국에 일은 다 우리들이 하는건디>
 
 
하지만 너무 흔하다는 점이......... 이미 쿼츠에서 기계식을 선택하면서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한 시계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사람에게는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믿을만한 무브먼트에 대한 존경과
 
기계성에 그 자체에 대한 만족이란 어쩌면 그냥 타협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수 있지요.
 
 
 
기왕에 대학을 가려면 더 좋은 대학을 가야한다고 재수를 선택하는 입시시스템 안의 도전자들을
 
떠올리게 하는 새로운 탐구의 도전은 사람의 손을 더 거친 무브먼트로 향하게 됩니다.
 
 
 
 
사람 손이 많이 가는 무브먼트라면 RGM이나 IWC식으로 ETA의 에보슈 키트를 구입해서 분석한 후
 
더 높은 중량을 위해 더 무거운 로터를 달고, 거기에 맞는 베어링을 끼우고,
 
메인스프링을 적절한 토크, 아이소크로니즘, 내구성을 제공할 녀석으로 바꾸고
 
(엄청난 계산이 필요한 사실 무시무시한 작업이죠), 발란스와 헤어스프링을 바꾸는 정도의 기능적인
 
수정과 페를라쥬와 제네바 스트라이프를 넣는 장식까지 마치는 무브먼트. 그리고 
 
ETA나 세이코, 롤렉스, 셀리타 등의 무브먼트들을 제외한, 규모의 경제상 사람의 손으로
 
조립하고 조정할 수 밖에 없는 자사무브먼트의 늪까지 있습니다.  자사무브먼트란 곧 독창적인
 
그 브랜드의 철학과 미학이 뼈대부터 담겨있다고 할 수 있으니 그 유혹을 벗어나기 힘들수도 있죠.
 
 
<너는 왜 외모도 죽여주는거니>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결국엔 하이엔드 브랜드를 기웃거리게 하는 수순으로 압축되며,
 
시계에 관심을 가지게 된 사람은 몇번의 타협만 참지 않다보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는 가격을 만나게 됩니다.
 
자사무브먼트라서 비싸다고 해서 더 믿을만하지 않다는 것도 꼭 더 정확한것도 아니라는걸 알게 된 후에도 그냥
 
기계식 자체를 포기하면 포기하고 쿼츠로 돌아가면 돌아갔지, 꿈(?)을 버릴수 없다는 오기마저 생깁니다.
 
 
<옛날엔 당연히 무브가 이랬어야 했건만...?>
 
 
제가 인간로또 보아만을 바라고 세상을 살 수 없듯........
 
스포츠머리에 일수가방을 들고 속이 비치는 나시티를 입은 2m의 거구 아저씨들을 보면 땅에 떨어진
 
동전을 확인하면서 걷듯.........
 
틱탁님 앞에서는 AP의 로얄오크는 유행지난 된장 아이템이라고 말해도
 
토리노님 앞에서면 AP 로얄오크야말로 완소 무브 완소 케이스 완소 브레슬렛이라고 외치듯.......
 
 
 
무브먼트를 보면, 그리고 어설픈 지식으로 무브먼트 이야기를 하고 또 들여다 보다 보면.........
 
어쩌면 적절한 타협할 줄 아는것이 다름아닌 능력이자 시계에 대한 지식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케이스에서도 다이얼에서도 브레슬릿이나 스트랩에서도 선택할 사항은, 욕심을 부릴 대상은 너무나 많기에,
 
무브먼트에서부터 타협을 배우는것도 나쁘진 않을까 합니다.
 
 
<적절한 타협의 결과.......의 예시>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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