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 앙뜨완 프레지우소 시계가 한 점 있습니다.
프레지우소 시계가 일반적으로는 가격이 엄청나게 높은 시계로 알려져 있지만,
모델에 따라서는 2000 ~ 3000불 대의 시계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흔한 시계는 아니지만 모델에 따라서는 그리 구하기 어렵지도 않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마침 장터에 프레지우소 시계가 한 점 올라왔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장터에 올라온 시계에 대한 정보를 구글에서 검색을 하고,
내친김에 제 시계도 찾아봤습니다.
헉, 없습니다. 제 시계에 대한 정보가 없습니다.
원체 레어한 시계여서 - 비싼 시계는 아닙니다만 - 정보가 원래 많이 없긴 했었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제법 사진도 있고 내용이 올라와 있는 웹페이지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는데,
오늘은 11페이지를 넘기면서 겨우 하나 찾았습니다.
https://lot-tissimo.com/en/cmd/lan/l/en/
오늘 부랴부랴 이렇게 포스팅을 하는 이유는 뭐라도 인터넷에 흔적을 하나 남기고 싶어서입니다..
레어한 시계를 가지고 있다는 뿌듯함이 갑자기 마구 무너지면서 머리가 핑 도는군요.
지금부터 몇 년이 지나면 아마도 제 시계에 대한 정보는 구글에서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고,
자동으로 이 시계는 족보도 없는 짝퉁으로 변할 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이 시계를 독일의 제법 이름있는 경매장에서 구입을 했는데
오늘 찾아본 내용으로는 그 회사가 2017년에 망했더군요.
그 시계를 구입할 때만 해도 박스와 보증서까지 있는 물건이라고 해서 구매를 한 것인데
대금 지불후 경매회사에서 박스와 보증서가 없으니 200유로를 빼주겠다고 해서 그러자고 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경매회사에서 구입을 한 것이니
이 시계의 족보는 그 경매회사에서 보증을 해 줄 것이다 라는 안일한(?) 생각에서
덜컥 그러자고 했던 것이죠.
물론 200유로 더 주고라도 박스와 보증서를 받고 싶었지만 없다는데 별 수가 있습니까?
그 시계는 지금 병원에 가 있고 앞으로도 두어달 더 있어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찍어뒀던 발 사진 몇 장을 올리겠습니다.
(크기를 줄이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서 이렇게 크게 올립니다)
(세공이라고 하나요 여하튼 썩 훌륭하진 않군요)
(확대해서 보니 역시 많이 엉성하네요)
(썩 이쁘진 않지만 조금 작다싶은 사이즈는 맘에 드네요)
원체 족보를 찾기 힘든 물건이라 보충 설명을 드리면,
앙뜨완 프레지우소와 지금은 명인의 대열에 들어선 7명의 장인이
Goldpfeil (독어로 황금화살)이란 독일의 가죽제품 전문업체의 이름하에
각자 작품(?)을 한 점씩 만들어서 Goldpfeil Seven masters 란 이름으로 시계를 팔았었습니다.
십수년 전의 일이어서 현재는 명인이라고 불리우는 그들이 크게 위명을 얻기 전일 수도 있겠습니다.
어찌됐건 꽤 유명한 사람들 7명이 모여서 그것도 한정판으로 만들었다면 뭔가 희귀한 시계일 것이란 느낌이 안드시는지요?
그런데 생각보단 비교적 가격들이 착합니다. 별로 인기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크게 비싸게 팔리지는 않는 걸 보면
시계의 완성도가 떨어지는지 Goldpfeil 이란 시계랑 별로 상관없는 회사의 이름을 걸고 나와서인지 어떤 이유에선지 크게 인기가 없어보입니다.
오늘 사진을 올린 이 시계는 Seven masters 중 앙뜨완 프레지우소가 "Leather"란 이름으로 만든 제품입니다.
왜 이름이 '가죽'인가하면 다이얼과 시계줄이 가죽입니다.
시계줄이 가죽이라는게 특별할 건 없지만 다이얼이 가죽인건 흔하지 않은 시도 아니겠습니까?
일반판이 오렌지색을 띄는 타조가죽의 다이얼로서 100개 한정판(엘로골드)이고 (당연히 다이얼과 스트랩이 동일한 가죽입니다)
제 시계는 5개 한정판인 검정 악어가죽의 화이트골드 모델입니다.
이 시계를 제가 소중히 여기는 이유는 - 사실인지는 저도 모릅니다만 구글에서 그렇다니까 그런 줄로 알고 있습니다 -
무브먼트의 장식을 앙뜨완 프레지우소가 직접 가공을 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좀 엉성합니다. 하하
상상해 보십시오.
지금은 명인이니 장인이니 하는 세계 최고가 시계를 만드는 시계메이커가 - 또는 위명을 팔아서 자기 속만 채우는 장사치(?) -
아직 크게 이름을 얻기 이전인 시절에,
뭔가 실험적인, 시계가 아닌 다른 분야의 회사로부터 스폰서를 받으면서
자기 이름을 걸고 시계를 만든다는 흥분에 작은 작업장 구석에서 열심히 시계를 만들고 있는 모습을..
물론 사실은 전혀 다를 수도 있지만 전 이런 낭만적인 상상을 하면서 혼자서 저 시계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여하튼 살다살다 별 희안한 일이 다 생기는군요.
제 시계를 보증해 줄 커다란 옥션회사가 망해버렸고,
처음부터 원체 존재감 없는 시계여서 구글에서도 정보를 찾아볼 수 없는 시계로 전략해 버린 듯 해서 마음 한 구석 섭섭합니다.
황망한 가운데 올린 포스팅이라서 글도 그렇고 앞뒤 순서도 없이 엉망입니다만 양해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십시오.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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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롱
2018.01.23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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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llowpin
2018.01.23 12:43
알라롱님께서 직접 댓글을 달아주셨군요.
저 역시 레더의 존재를 알고 계신 분이 계실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시계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신 분들이 많이 계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듣보잡 모델까지 파악을 하고 계시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레더가 빠르면 1달 안쪽에도 나온다고 하니 돌아오는대로 몇 장 찍어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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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롱
2018.01.23 15:35
듣보잡 모델이라뇨. 다이얼을 레더로 만드는 시도는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신선합니다. 어떻게 보면 골드파일이라는 이름에 가장 부합하는 모델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요즘처럼 더 다양한 가죽 스트랩이 나왔더라면 더 다양한 다이얼이 나왔을터라 조금 아쉽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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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llowpin
2018.01.23 22:41
가죽을 다이얼로 쓴다는게 신선한 아이디어는 맞습니다. 다이얼이라고 하면 종류가 뭐가 됐던지 간에 의례 딱딱한 소재가 아니겠습니까?
요샌 운석, 나무, 화석에 뼈까지 가져다 쓴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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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니
2018.01.23 20:20
엘로우핀님 여기서 또 뵙네요 ㅎㅎ
사실 게시판이 하이엔드/인디펜던트로 가야할 것 같습니다.
정말 독특하고 가치있는 시계를 잘 설명해주셔서
재밌게 읽었습니다~ 종종 올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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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llowpin
2018.01.23 23:13
네 반갑습니다. ^^;
다음부터는 인디펜던트 란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인지를 못하고 있었네요. ㅎㅎ
사실 앙뜨완이나 쥬른 같은 공방/공장은 이젠 너무 규모가 커져서
'독립시계'라는 단어가 가지는 '소규모', '장인의 열정과 정성', '높은 가격' (이건 여전히 유효하군요) 같은 느낌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냥 비싼 주류 상업 시계회사 같은 느낌입니다. 한마디로 맛이 안납니다.
하지만 새 피가 계속 투입되고 있으니 그 쪽도 여전히 재밌습니다.
인기 연재 만화가 끝나도 새로운 작가들의 작품이 계속 나오는 것과 같지요.
AHCI 에서 중국계 메이커들의 약진이 엄청 납니다.
뭐 이렇게 댓글로 할 얘기는 아닌 것 같고, 언젠가 나중에 기회가 될 때 깊고 넓은 가르침을 부탁 드립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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껌스
2018.01.23 23:37
정말 간만에 뵙습니다.
잘 지내셨나요? ㅎㅎ
시계도 시계지만 이런 자기가 키워나가는 각자의 히스토리.
이게 시계질의 참 맛 아닐까 싶습니다.
사진이 흐릿해서인지
엉성(?)하다고 하시는 프레지우소의 손길이 잘 안보여 조금 아쉽기도 하네요.
특히 다이얼과 인덱스가 궁금한데
가죽을 다이얼로 쓴다면 최고급(?) 악어가죽을 쓸텐데 그 퀄리티도 궁금하고, 인덱스도 열심히 연마했을거 같은데 잘 안보이네요 ㅋㅋ
좋은 시계, 스토리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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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llowpin
2018.01.24 10:02
네 잘 지내셨지요? 그 사이에 결혼도 하신 것 같고, 뒤늦게나마 축하드립니다.
시계는 나중에 다시 몇 장 찍어 올리겠습니다.
다이얼은 그냥 알고 계시는 매트한 검정색 악어가죽이고, 스트랩의 저퀄러티로 미루어보아 최고급(?) 가죽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인덱스는 그냥 볼록한 반원의 단순한 양각인데, 화이트 골드 모델이니 화이트 골드가 아닐까 막연히 추측만 해봅니다.
일단 지금은 시계가 제 손에 없으니 나중을 기약해야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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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KEY
2018.02.10 19:56
귀한 시계 잘 감상했습니다.
오히려 이런 시계가 프레지우소가 더 고심해서 제작하지 않았을까요?
물론 기술력이 뒷받침 되지 않아서 옐로우님의 마음에는 썩 드는 마감은 아니겠지만요.
저도 앙뜨완의 모델중 시에나 라는 모델을 사용했었는데, 원핸드 시계라 시간 보기가 번거로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상업적으로 많이 변질된 그가 만든 시계라고 생각하면 신기하기도 하네요.
현재는 거의 대부분의 작업을 외주로 맡겨 조합하는 식으로 판매하더라구요. 초고가의 제품마저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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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llowpin
2018.03.03 00:17
답글이 늦었습니다. 저도 뭐 엄청난 마감을 기대하진 않았습니다. 단지 말씀 하신 것처럼 그래도 그 분이 때가 조금이라도 덜 탔던 시절이라서 시계도 뭐랄까 조금 소박하다고 할까요 그런 느낌입니다. 지금의 프레지우소가 가지는 화려하고 비싸고 귀족적인 분위기와는 아무래도 조금 다르겠지요.
가지고 계셨다는 원핸드는 지금 봐도 어떻게 시간을 읽는지 모르겠습니다. Speake-Marin 시계 중에 그런 모델이 있는걸로 알고 있는데, 읽는 방법이 비슷하지 않을까 싶네요.
프레지우소가 지금은 외주를 줄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예전에 비해서 엄청난 갯수의 시계를 만들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요새 그 분 느낌은 제작자 보다는 비즈니스맨 스멜이 물씬 풍기는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벌 수 있는 재주로 돈 버는 걸 가지고 뭐라 할 순 없는데 뭐랄까 훌륭한 선수 하나를 잃어버렸다고 볼 수 있을까요?
앞으로 제가 그 브랜드의 시계를 다시 사게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어쨌건 조금 아쉽기는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골드파일을 그것도 레더를 소유하신 분이 있을지 생각도 못했습니다. 말씀하신것처럼 골드파일과 유명 워치메이커의 협업은 해리윈스턴의 오푸스 급은 아니더라도 당시에 꽤 센세이셔널 했습니다. 골드파일이란 이름 덕분에 대부분 폭망(?)했지만 비아니 할터 모델 같은건 그래도 가격이 잘 버텨주는 듯합니다. 나름 신박한 모델이 있었는데 프랭크 젖치 같은 모델도 그 하나고요. 손목시계를 잘 만들지 않는 사람이라 가격이 좀 매겨지나 했는데 역시 유명세가 없다보니 그렇지 못하더군요. 아무튼 레더가 병원에서 퇴원하면 사진 몇 장 더 올려주시길 부탁드려 봅니다. 후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