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계에 관심은 항상 있었어도 '난 시계에 투자 하기엔 너무 실용주의자' 라는 생각을 하면서 오디오 장비와 어쿠스틱 기타, 베이스에 빠져 지내는 아이러니 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시계는 사고 차고 보고 닦고 뽐 내는 것 말고는 내가 별로 손 댈 것이 없다는 점과 시계 취미에는 가격의 지붕이 없다는 큰 위험이 함께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애써 관심을 끄고자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오디오 취미가 비싸게 하려면 상당히 비싼 취미가 될 수 있겠지만 조그만 통 안에 수 십개도 모을 수 있는 고가 시계와는 비용이라는 면에서 레이스가 되질 않지요.
오디오 취미던 악기 취미던 그 자체를 사랑하고 피니쉬를 완상하고 케이블의 소재에 감동하는 것이 아닌 좋은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 궁극적 목표가 되는 것이라 지르고 주문하고 사랑하고 버려두고 어쩌고 하면서 어느 정도 선에서 타협하고 절충하고 만족도 하고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최선의 사운드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니까.. 타협을 해도 타협이 아닌 것이고 계속 추구 한다는 것이 신기루에 취해 콧김 내 뿜으며 달리는 꼴 밖에 아니라는 것을 어느 정도 저지르고 나면 알게 되니까요.
비슷하게 보이는 취미지만 시계는 그 무섭다는 컬렉터 레벨의 취미인데다가 문턱도 상당히 높은 편이지요.
어릴 적 모두 한번 쯤은 해 보았을 동전 모으기나 우표 수집. 같은 수집이라도 시계 모으기는 시작 연령부터가 많이 다를 수 밖에 없고 고가 시계 한 둘 있다고 시계가 취미요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다시 한번... 돈 장난 아니게 드는 취미입니다. (시계를 잘 알고 나름의 시각이 서 있고 해도 컬렉션이 없으면 시계에 관심이 많고 시계 공부에 취미가 있는 사람이지 '시계'가 취미인 사람은 아니겠지요...)
그런저런 이유로 더구나 모르는 사람이 없는 대표적 고급 시계 롤렉스 같은 물건은 가능하면 가까이도 앉지 않으려고 주의하면서 지내 왔습니다.
그리고 시계에 관심이 생기더라도 절대 롤렉스 같이 아무나 다 알고 아무나 다 차고 있는 건 내 성미에 안 맞으리라 생각 하기도 했고요.
아니나 다를까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시계는 바로 저희 학원 남선생 하나가 차고 온 거대한 사각 패션 시계(라고만 생각했던) 파네라이 였습니다.
다음 날 지나가듯, 거 뭐야? 흔히 보던 물건이 아니네... 그랬는데 이 친구가 뭘 별거라고 얘기 하기를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가 보이더군요.
이거 보기보다 가격이 좀 되나 보구나 하면서 이름이나 알아내고 내가 찾아 보지 했는데... 알고보니 어라, 이 친구 더듬 거린 이유가 있었네...
지금도 그 시계의 모델이 정확히 어떤 건지는 몰라도 파네라이 중에 싼 거는 없지요? ㅎㅎ
그 사건을 시작으로 해외 시계 포럼이나 상점을 시작으로 밤마다 모니터로 시계 구경에 시간을 보내고(짝퉁 사이트가 그렇게 많은 것에 놀라면서) 돌고 돌다가 계속 언급되는 그 이름 '타임포럼'에도 찾아 오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스레드를 다 읽고 어느 새 나도 애호가가 된 것 같은 느낌에 내 손목을 보았지만 내가 가진 이것은 쿼츠... 미국 유학 시절 중고로 구해서 한 10년은 몸에서 뗀 적이 없을 만치 어디에나 함께 한 믿을만한 좋은 시계, Tag Heuer WH1251-KO, 이지만 시계를 조금 알고 나니 오토가 아닌 쿼츠인 것이 아쉽고 포럼에 올라오는 멋진 녀석들 보다 한참 작은 크기가 안타깝기 시작하더군요.
제가 위로나 옆으로나 평균이 넘는데다, 185에 88, 손목도 아내 줄자로 재어 보니 오른쪽 20.5, 왼쪽 20으로 가는 편이 아니라 항상 좀 큼직한 시계가 더 맘이 끌리는데 좀 큰 편인, 역시 얼마 전까지 오토매틱인 줄 알았던, Hermes의 클리퍼 크로노도 두께는 기계식인데 실상은 쿼츠... 게다가 브레이슬릿을 다 썼는데도 손목이 너무 조여서 거의 차는 일이 없고.
그래서 며칠 생각하다가 '그래 가는거야. 나도 하나 진짜배기로 하나 하자.' 속으로 외치면서 아내에게는 당신 가방 하나 사러 가자 하고 주말에 백화점 나들이를 나섰습니다.
맘에 써 둔 목록대로 IWC 먼저... 그 목록의 1번 빅파가 의외로 당당히 진열창 바로 안에 붕 떠 있더군요. 사진으로만 보던 것 보다 더 큰 몸체와 그 보다 더 크게 다가오는 용두, 생각보다 더 멋진 신형 빅 파일럿이었습니다.
조금 쭈볏 거리면서 매장에 들어 가서 조금 시간을 보내고... 거기 직원의 태도 때문에 우리 동네에서 IWC는 절대 안 사리 하면서 그냥 나오게 되었습니다.
누가 들어도 어이 없을 '아, 우리 사장이 욕심이 많아서 여기다 이걸 갖다 놨는데 이거 수준이 되야지 말이죠... XX에서 이 정도 시계 절대 안 팔릴 꺼예요. 그래도 손님처럼 손목에 얹어 보고 가격만 물어 보고 가는 사람들은 꽤 많지만요 ㅋㅋ' 아우... 이걸 싶기도 하고 이런 친구 한테 가게 맡겨 놓고 이런 고급 시계를 팔겠다는 사장의 야망이 참으로 안쓰럽더군요. 천육백에 한 오프로 해 주고 현찰로 명세서 없이 하면 조금 더 가능하겠다는데 가격도 별로...
덕분에 같은 매장 안의 오메가는 구경도 못하고 나와서 언짢은 기분에 커피 하나 사들고 전부터 알던 백화점 내의 금방에 가서 뭐 없나 하고 보는데 바로 국민 시계, 훈남 얼굴 서브마리너 검은색이 진열장 안에 있는 게 아닙니까... 신품은 아닌 듯 하지만 겉보기에 그다지 나이 먹은 것 같지도 않고 그냥 막 맘이 끌리더군요.
그 날 따라 평소 가져 왔던 롤렉스 이미지와는 왜 그리도 달리 멋진 녀석으로 보이던지...
그 옆에는 오메가 시마스터 청판, 흑판 신품들도 있고 브라이 크로노 에볼루션 콤비 중고도 있었고요.
대뜸 이거, 섭마 언제거냐 얼마냐 했더니 알려 주는 것이 Z단위 070621스탬핑에 박스만 없는 검정 섭마, 가격은 각종 중고 장터에서 본 어느 가격보다 괜찮은 400대 중반, 그 가격에서 흥정 해 주겠다고 하네요.
제 아내도 첫 눈에 예쁘네 하고 찍은 것이 섭마.
가격 듣더니 롤렉스가 원래 그 정도 밖에 안 하냐고(중곤지 신품인지도 모르고) 생각보다 괜찮네 하고 있고.
정말 금전적으로 맘에 찔림도, 부담도 없는 가격.
모든 것이 완벽한데 아직도 내 마음 속의 하나의 벽 '어이, 늙은이 같이 무슨 롤렉스... 차라리 브라이나 아니면 원래 생각대로 IWC나 파네라이로 가라. 남들이 Zeppelin할 때 Sabbath 해야 나지' 하는 벽.
그것이 나를 막고 있네요.
우선 며칠 홀드 해 두라고 했고 여전히 깊은 고민 중 입니다.
와... 무지 기네요.이런 내용도 결론도 없는 긴 넔두리를 이렇게 길게 썼을까요?
저 나름 고민이긴 한 모냥입니다만 이렇게 공간을 낭비해서 죄송하기도 하네요 ^^
포럼에 써 보는 첫 글인데 이런 내용이 너무 길어져서 민망합니다.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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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akis
2009.09.21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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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노야
2009.09.21 20:42
후반부의 '늙은이같이 무슨 롤렉스냐'는 그만큼 롤렉스에 대해 모르신단 말씀입니다. : )
데잇저스트 같은 쪽이면 또 모를까, 서브를 두고 늙은이 느낌이라뇨......
롤렉스에 대한 부정에서 긍정으로, 다시 인정으로 오실 분이 또 한 분 늘었군요. : )
남들이 제플린할때 사바스라는 말씀 역시 크게 공감합니다.
그에 대한 반사이익을 다른 브랜드에서 일정부분은 얻고 있다고도 역시 생각합니다.
하지만 역시, IWC도 파네라이도 롤렉스가 될 수 없습니다.
또한 롤렉스의 경우는 제플린과 사바스의 예와는 많이 다르답니다.... -
디카프리오
2009.09.21 20:56
네.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저역시 오디오도 해보고, 나름 로렉스에 관심있어 몇가지 모델들이 내손을 거쳐갔지만,
값비싼 것만으로 만족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디오만해도 맥킨, 윌슨, 코드, 다인, 알텍.. 수천,수억을 호가하는 것들도 많지만
그저 음이 좋아 적당한 가격의 기기에 음악을 듣는 고수 애호가들도 많습니다.
기기를 쫓아가다 보면 본말이 전도되어 좋은 음악소스하나 변변하게 못듣는 이들도 많더군요.
결국 자기만족입니다.
순간순간 과거로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을 내가 차고있는 시계속에서 확인하며 아름다움을 느낄때,
어떤 시계인가는 중요하지않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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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꾸
2009.09.21 21:15
흐~ z단위 서브가 400대중반이라...넌데이트겠죠 ? -
인톨
2009.09.21 22:00
사람들 손이 많이 가는데는 갠히 그러는게 아니겠죠? 좋은 롤렉이 구매하셔서 뿜쁘샷 보여주세요 ^^ -
무한광속
2009.09.21 22:21
요즘 롤렉에 너무나도 흠뻑 빠져있는 터라 한글자 한글자 쭈욱 내려가면서 다 읽어보았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가면서 한 마디 하자면 롤렉스 만쉐이! -
태꽁이
2009.09.21 23:05
글 잘 읽었습니다...사실 전 얼마전까진 정말 정말 로렉이 안 좋아했던 사람이였습니다..이유가 저도 '너무 나이들어 보이지 않나?'라고 생각을 했었져.근데 여기 타포 생활을 하면서 요즘엔 완전히 로렉에 빠져있답니다.그래서 저번주엔 서브 넌데이트를 구입하게 되었구요.이틀을 지켜본 바로는 역시 로렉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산지 이틀밖에 안되었지만 완전 200% 만족하고 있구요..다음엔 요트마스터를 구입하고 싶더라구요.그리고 데이토나까지 구입하고 싶은 맘이 들더라구요..절대 후회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꼭 득템샷 기대할께요..^^ -
SG
2009.09.21 23:16
저 또한 로렉스에 대한 이미지때문에 오메가 브로드애로우, IWC 마크 16 등을 먼저 경험하며 먼길 돌아왔습니다. 현재 제 손목엔 서브마린가 있네요...로렉스 절대 늙은이(?) 느낌의 시계가 아닙니다...또한 시계는 자기 만족이라죠..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시계를 보면 흐뭇해지네요...
이유는 '서브마리너' 이니까요! ^&^ -
법대간지
2009.09.21 23:51
서브의 가장큰 장점은 연령대 상관없이 착용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20대부터 끝까지~~ -
Carrera
2009.09.21 23:52
저도 처음에 로렉스를 부정하고 로렉스만은 피하자고 했는데 지금 가장 많은 브랜드가 로렉스입니다. 서브마리너가 마음에 드셨다면 질러서 즐겨보시는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
에어킹L
2009.09.22 06:39
시계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경위를 상세히 묘사하셨군요^^ 글을 읽는데 님의 시선으로 장면이 상상 되었습니다. 덕분에 제가 시계에 빠지게 되었던 과정을 떠올리기도 했고요~시계와 그 가격조건이 마음에 드는데 단지 롤렉스에 대한 현재의 생각때문에 망설이신다면 그냥 지르시는게 나을 듯 하네요...롤렉이가 님을 실망 시킬 것 같진 않습니다 ㅎㅎㅎ -
왕킹짱
2009.09.22 10:56
롤렉스.. 그냥 지르세요.
섭마 착용하시고 롤렉스에 대해 이것저것 알아보시고 롤렉스 무브에 관련된 글들을 읽어보신다면
아 이거 정말 물건이구나 하시게 될 겁니다. ^^ -
라우드롭
2009.09.22 12:28
이것 저것 다 해보신 타포 회원분들의 결론이 결국 롤렉스라면, 나름 일리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브마리너는 생김새 자체로는 절대 노티나지 않고
경계하시는 롤렉스 냄새도 나지 않기 때문에 주위에서 잘 알아보지도 못합니다.
시계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야 100명 중 1명 꼴이 아닐까 싶은데 말이죠...
저거 서브마리너 네~하고 단번에 알아볼 사람들 말입니다.
서브마리너가 그 가격이라면 입문용으로는 아주 우수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르세요~~~무조건~~~ -
Wooden_Tone
2009.09.23 09:02
지르기로 했습니다.
넌 데이트라 저렴한 것 같고 저는 넌 데이트가 좋네요(이유는 짐작 하시리라... ^^)
이걸로 슬슬 시작 해 볼까 생각 합니다.
자꾸 포럼 오면 금방 또 뭐 하나 지를까 걱정되서 가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뒤돌아 도망갈까 생각도 하는 중입니다 ㅎㅎ
- 전체
- Daytona
- Datejust
- Submariner
- Sea Dweller
- Sky Dweller
- Milgauss
- Cellini
- Date
- GMT master
- Explorer I, II
- Yacht I, II
- etc
누구나 다 아는 롤렉스, 조금은 생소한 IWC 그리고 글 쓰신 분처럼 관심 없으면 그냥 패션시계(?)로도 보일 수 있는 파네라이....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시계라고 생각합니다.
(앗.. 일단 제 사견은 이런 고민이 시작된 이상, 자세히 그리고 빨리 알아보시고 본인 마음에 들어오는 시계로 구입하셔야 한다는 전제입니다)
모두 멋진 제품들이라 생각하지만, 저는 롤렉스에 한 표 던집니다. 부담스럽지 않은 다자인에 아이덴터티가 있는 서브마리너... 근데 좀 작지 않을까요? 그래서 딥씨 추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