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를 좋아하긴 하지만, 학생의 신분으로 근 몇달내에 너무 많은 시계를 사버렸다는 자책감도 듭니다.
인턴을 해서 월급을 받고, 이래저래 돈을 불리고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부모님의 뒷받침 위에서 커가고 있는 때라, 조금 죄스러운 마음도 듭니다.
특히 제 부모님께서는 장을 보다가 고추값, 깻잎값을 보고는 놀라시고는 살까말까 한참을 고민하시는데,
아들놈은 이렇게 제 좋다고 퍽퍽 사버리는 행위는 왠지 거부감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제 나름대로의 경제적 가치관은 잘 정립되어 있는 편이라 자부하고,
시계든 뭐든 소유와 앎의 끝에서 창출되는 새로운 가치 또한 부정할 수는 없으나,
과유불급이라는 공자님의 말이 떠오르면서 이제 나 자신을 식혀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원래는 이렇게 마음에 드는 것을 모은 후 정말 마음에 드는 1~2개만을 남긴 후에 되파는 것을 생각도 하고 있었으나,
그런 복잡한 일들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당분간 시계의 수를 더이상 늘리지 않겠고 결심하였습니다.
결혼하시고 저보다 먼저 인생의 길을 걸어가신 분들이 보기에,
주체할 수 없는 욕망에 패배한 젊은이로 보일 지는 몰라도, 너무 질타만 하지 마시고,
시계를 사랑하는 마음이 한 번에 폭발한 결과라고 봐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새로운 소유를 위한 발걸음이 아니라, 지금 나와 함께하는 행복을 향유하려는 마음
알아주시고, 타임존에서와 같은 따뜻한 말씀들 부탁드립니다.
검정색 베젤의 서브마리너와 달리 50주년 기념모델은 스위스의 제네바가 아닌
나폴리를 떠올리게 합니다.
햇살만으로는 이미 여름이라 할 수 있는 5월의 어느 날,
나폴리 입구의 교차로 한켠에 붉은색 두카티 몬스터가 비스듬히 서있습니다.
아무도 지키지 않지만 홀로 깜박이는 신호등 아래엔
따가운 햇빛에 녹아내린 아스팔트가 바이크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채,
타이어의 모습을 판화처럼 찍어냅니다.
신호등 아래에서 홀로 지도를 펼쳐든 머리가 희끗한 중년 라이더.
지도를 접는 중년의 재킷 안쪽의 손목 부분에서 무엇인가가 반짝입니다.
산타 루치아 항을 지나다 한 식당 앞에 주차되어 있는 몬스터와 다시 만납니다.
중년의 라이더는 그의 데이토나 재킷을 의자에 걸친 채
하우스 와인과 마르게리타 피자를 먹고 있습니다.
이제 중년의 손목에서 반짝거리던 놈의 정체를 알게 됩니다.
16610LV, 서브마리너 50주년 기념 모델...
한 때 시계에 심취하던 시절, 모두가 한 번 쯤은 가슴에 품어보았던 그 시계...
그렇게 강렬하던 태양도 누그러지는 어스름녘
마르게리타의 모짜렐라 치즈가 차갑게 식어가고
하얀 요트들이 붉은 하늘을 배경으로 산타루치아로 되돌아올 무렵,
중년의 신사는 부츠의 끈을 조이고,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재킷을 걸치는 찰나의 손목은
반짝임으로 작별인사을 대신합니다.
댓글 44
-
Kairos
2007.02.20 13:30
지노님이 옛날에 이러셨을까요~! 지름신의 현신의 모습을 몸소 보여주시는 모습~! 이 모습만으로도 "남자"를 꿈꾸는 많은 남자들에게 귀감이 될듯 합니다. 아........그리고 이 감수성......... 쓰러질것만 같습니다!!!!!!!!! T_T;;; -
검프
2007.02.20 13:32
왜 전 사진이 안보이죠? 보게해주세요^^ 이눔의 컴이 문제인가 으이구..하지만 사진없이 글을 읽다보니 가슴 한구석이 져려오네요..시계에 한번 빠져 본사람만이 알수있는 글귀네요 캬 '반성은 하되 후회는 없다' 저역시 반성은 무지했습니다..하지만 후회는 몬합니다...지금도 울마눌몰래 시계들만 보고있으면 든든합니다..가만가만 보니 보이지 않는 사진들..."제 마음속에 있는거죠?" -
Tic Toc
2007.02.20 13:42
으이....개지지님 또 반하셧다. 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Kairos
2007.02.20 14:05
이 문장문장마다 단어단어마다 느껴지는 포쓰에 반해버렸죠. 으아~ ^^;; -
링고
2007.02.20 15:10
개지지님 댓글처럼 감수성으로 가득한 매력적인 글이네요....^^*
사용기 말고도 시계에 대한 일반적인 글도 써보시면 좋으실 듯합니다만.....^^* -
Kairos
2007.02.20 15:37
일단 링고님께 궁금한거 하나 여쭤보시는걸로 시작하시면 좋을듯..... (모래지옥의 시작이라고 불리우죠. 크하하하핫) -
bottomline
2007.02.20 17:37
늪에 빠진 거야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왜 저렇게 멋진 시계가 알라롱의 손목에만 올라가면 빛을 잃는걸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
티타보르
2007.02.20 21:05
좋은 글은 지름신을 강림케하죠^^ 농담이구요 사진과 함께한 좋은글은 언제나 기쁩니다 -
woo쯔
2007.02.20 22:33
무조건 블랙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 저 쟈켓엔 그린이 더 어울리네요 ㅋㅋ
-
Tic Toc
2007.02.20 22:44
첫샷의 바나나는 번떡이는 위트 같습니다.ㅎㅎㅎㅎ 하지만 나폴리와 제네바. 둘다 가보지 못한 저로써는 어떤느낌인지 대략 감만 잡습니다. ㅎㅎㅎ 그냥 통틀어 유럽. 오케이 -
톡쏘는로맨스
2007.02.20 23:14
볼수록 이쁘네요.........글 솜씬는 볼 때마다 감탄이 나오게 만드네요...........^ ^ -
오메가랜드
2007.02.21 07:33
와..이쁘다..ㅎㅎ 보는것만으로도 기분 좋습니다. -
알라롱
2007.02.21 11:42
바나나와 그린서브의 매치. 어딘가에서 본것같은 아련한 기억속의 사진이군요. (홋홋. 생각났다 바나나킥의 포장이었구나) 사용기 포인트 15점 드리겠습니다. / 저기 위의 라인횽의 발언은 메모해 두겠습니다. 훗훗. -
맥킨
2007.02.21 11:50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알교주님 맘 상하신거 아녀요~~~~~~~~~~~~~~ -
eagleeye_kr
2007.02.23 01:40
몬스터를 타시나봐요. 듀카티 자켓이 멋지네요.
저는 929, TL1000S, DoubleX 이런 차들을 주로 탔습니다...아주 오래전 이야기네요.
여하튼...멋진 시계에 멋진 글 입니다.
헐...시계도 사고 싶고 바이크도 사고 싶게 만드는 아주 악질 글 입니다...ㅎㅎㅎ -
한을
2007.03.03 18:29
아이쿠!!!!!!!!!!!!!!!!!!!!!바쁜 삶속에 까끔은 느끼고싶은 여유로움............................................................................................................^^ -
pp
2007.10.31 09:36
과일+그린섭의 사진은 이때부터 시작했군요 ㅎㅎ -
kinkyfly
2008.02.10 16:12
듀카리 자켓이 더 탐나는데요~~ -
아톰애인
2008.09.30 19:32
멋져요. -
누크
2008.10.17 11:04
서브마리나도 정말 멋진데 50주년한정판이어서 더 좋으시겠습니다. -
푸르미
2008.11.10 01:15
늦었지만 득템을 축하드립니다. -
luvjin
2008.11.24 01:35
포스가 느껴져요 부럽다 ㅠ -
소고
2009.01.29 21:50
크으... 대단합니다.. 멋진 문장이라는 생각 뿐입니다.. -
알만한이
2009.02.22 00:44
캬아^^멋집니다 -
쇼팽
2009.05.21 18:49
멋지십니다.. 글도 행동도 ^-^ -
훼인
2009.05.27 18:45
음 ㅎㅎ 이륜차.....! -
스카
2009.05.29 02:14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
아람짱
2009.06.03 22:47
멋지네여^^ -
웅
2009.06.04 16:32
4941cc님 글에 푹 빠졌다 갑니다.... -
토미박
2009.10.02 09:37
바나나와의 조화 ㅋㅋ -
빤스미
2009.10.04 14:32
부모생각하지못하는사람도많답니다.. 4941cc님은 성공하실겁니다 -
초보-아빠
2009.10.27 11:41
그린 서브 너무 멋있는 녀석인것 같습니다~ ^^ -
블랙케디스
2009.11.06 01:25
...^^ -
인생은콩자반
2010.05.05 20:31
공감글입니다 ^^ -
pedro
2010.12.14 20:58
잘읽고갑니다.. -
PAULee
2012.06.28 04:43
예전에 서브살때 고민했던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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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ien
2014.12.07 17:58
그린 서브 참 매력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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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치두치
2015.02.10 20:05
역시 서브는 멋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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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암
2015.02.25 23:06
글과 시계 다 멋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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쫀득쫀득붕어빵
2015.07.09 17:29
기가막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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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지만
2015.08.10 17:01
정말 너무 멋집니다 구하는 모델인데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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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잉세븐
2017.03.04 20:11
멋지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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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jhksk79
2018.08.03 23:47
볼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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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1999
2019.11.26 22:42
멋진 글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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