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워치 이야기 Speedmaster
구글링하다가 특집 기사가 있었길래....내용이 재미있네요..^^
우주로 쏘아올릴 시계를 찾아라!
1969년 7월 21일 아폴로 11호가 세 명의 우주비행사를 달 표면 위에 내려놓는 데 성공하면서 무모해 보였던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달 착륙 프로젝트는 현실이 됐다. 꿈을 현실로 만든 것은 최첨단 우주과학 기술이지만, 이 과정에 스위스산 손목시계의 역할 또한 컸다.
1960년 초 두 명의 미국항공우주국(NASA) 직원은 신분을 감춘 채 우주비행사가 우주에서 착용할 수 있는 최고의 시계를 찾기 위해 미국 휴스턴 지역에 있는 몇 개의 시계 및 주얼리 매장을 방문해 다양한 브랜드의 크로노그래프 시계를 하나씩 구입했다. 당시 나사는 머큐리(Mercury·1인 우주비행) 프로젝트가 거의 완료돼 가는 상황에서 제미니(Gemini·2인 우주비행) 및 아폴로(Apollo·3인 우주비행) 미션을 준비 중이었다. 당시 나사는 우주비행사들이 우주선을 벗어나 우주에서 활동하는 계획도 갖고 있었는데,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필수 장비 중 하나가 바로 우주의 극한상황을 견딜 수 있는 손목시계였다.
우주 공간에 떠있는 우주비행사가 움직일 때마다 손목시계는 매우 강렬한 태양 광선이나 100°C 이상의 높은 온도에 갑작스럽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 특히 달의 경우 표면 온도가 -160°C와 +120°C 사이를 넘나들기 때문에 나사는 극한 환경을 견딜 수 있는 시계를 찾기 위해 엄격한 테스트를 거칠 수밖에 없었다.
1965년 3월 1일 테스트 결과가 발표됐다. 1차 테스트를 통과한 브랜드는 모두 세 개였지만 이후 테스트 과정에서는 차이가 드러났다. 한 브랜드의 시계는 습도 테스트에서 두 번의 작동 오류를 보였고 이후 열 저항 테스트에서 작동을 멈췄다. 초침이 구부러져 시침과 분침이 엉켜버렸다. 또 다른 브랜드의 경우, 시계의 앞 유리인 크리스털이 휘어져 결국 온도 테스트를 받던 중 케이스에서 분리됐다. 이러한 크리스털 분리 현상은 감압 테스트 동안에도 또 다시 발생했다.
최종 테스트를 무사히 통과한 시계는 하나뿐이었다. 바로 오메가 스피드마스터(Speedmaster)였다. 당시 나사에서 시험을 한 직원은 “1차 테스트를 통과한 세 개의 크로노그래프 시계 제품에 대한 기능 및 환경테스트가 완료되었다. 테스트 결과 오메가 크로노그래프 시계 제품만이 성능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제미니 3호(Gemini Titan Ⅲ) 우주비행사 세 명에게 주어졌다”는 기록을 남겼다.
이후 오메가 스피드마스터는 모든 유인 우주 비행에 사용 가능한 유일한 시계로 인정받았다. 이는 시계 브랜드 오메가의 역사에서도 빠질 수 없는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나사는 1965년 3월 1일 공식적으로 “우주비행사들은 나머지 두 개의 브랜드와 비교할 때 오메가 시계가 정확도, 신뢰도, 시인성, 조작의 수월성이 뛰어났기에 오메가 크로노그래프 시계를 만장일치로 최종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1966년 제미니 4호 미션을 수행한 우주비행사도 오메가 스피드마스터를 손목에 찼지만 나사가 우주인이 찰 시계의 성능 테스트를 철저히 비밀에 부쳤기 때문에 정작 오메가는 그때까지만 해도 자사 제품 스피드마스터가 우주로 향한 여정에 최종 선택됐다는 사실을 몰랐다. 오메가는 전세계 언론에 대서특필된 암스트롱 등 세 명의 우주인 사진을 보고서야 스피드마스터가 달에 다녀온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아폴로 11호는 1969년 7월 16일 달을 향해 발사됐고, 세계표준시(GMT)로 7월 20일 20시17분 달에 착륙했다. 그리고 7월 21일 2시56분 닐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역사적인 첫 발자국을 찍었다. 오메가로 인해 역사적인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과정은 정확한 시간을 남기게 된 것.
주인의 생명도 구한 시계
오메가의 우주 여행은 몇 가지 일화도 남겼다. 우선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우주인은 닐 암스트롱이지만 오메가 스피드마스터를 차고 달에 발을 디딘 최초의 지구인은 버즈 올드린이었다. 오메가코리아의 트레이닝&판매담당 매니저인 박경원 부장은 이에 대해 “달 착륙 당시 착륙선에 탑재된 내장 전자 타이머가 고장이 나서 타이머 대용으로 닐 암스트롱이 자신이 착용하고 있던 오메가 스피드마스터를 우주선 내에 풀어놓고 달에 첫발을 내딛게 됐다. 그래서 암스트롱보다 13분 늦게 달 표면을 밟은 올드린이 달에서 스피드마스터를 착용한 최초의 지구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성공적으로 우주작전을 수행한 이후 암스트롱을 비롯해 우주인이 찬 오메가 시계는 문(Moon)워치라는 별칭을 얻으며 시계 역사의 전설이 되었다. 이를 기념해 오메가는 2009년 ‘달 착륙 40주년 문워치’ 스페셜 에디션을 선보였을 뿐 아니라, 2010년에는 1975년 7월 미국과 러시아 우주선의 역사적 도킹을 기념하는 1975개의 스페셜 에디션 시계도 선보였다. 당시 미국 우주인 토머스 스탠퍼드와 러시아 우주인 알렉시 레오노프가 악수를 나눌 때 그들의 손목에도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프로페셔널 크로노그래프가 빛나고 있었다.
오메가와 나사의 인연은 ‘아폴로 13호’에서 있었던 극적 순간으로 인해 더욱 긴밀해졌다. 1970년 4월 달 착륙을 목표로 발사되었던 아폴로 13호는 우주선의 이상으로 곧바로 지구로 귀환해야 하는 비상 상황에 맞닥뜨린다. 당시 아폴로 13호는 생존에 필요한 전기를 제외하고 모든 장비의 전원을 차단할 수밖에 없었다. 우주선 내에 내장된 전자시계의 전원도 차단해야 했기 때문에 지구 궤도 재진입을 위한 정확한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그들의 손목시계밖에 없었다. 오메가 스피드마스터는 그 역할을 무사히 수행했고 세 명의 우주인은 지구로 무사 귀환할 수 있었다. 이후 나사는 1970년 10월 감사의 뜻으로 오메가에 스누피 어워드를 수여했다. 스누피 어워드에는 아폴로 13호에 탑승했던 세 우주인의 자필 사인과 무사 귀환에 대한 감사의 말이 담겨 있었다.
우주에 다녀온 오메가 스피드마스터는 자동(오토매틱) 크로노그래프가 아닌 수동(핸드 와인딩)이었다는 점도 지적할 필요가 있다. 1969년 시계 역사상 최초의 자동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가 발명되었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당연한 일이었지만, 흥미로운 것은 자동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가 발명된 후에도 우주인들은 오랫동안 자동 크로노그래프 시계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잘나가는 팀에 절대 변화를 주지 말아라(Never Change Winning Team)’라는 나사의 원칙 때문이었다. 우주인에게 무조건 오메가 스피드마스터만을 채웠던 나사는 이후 조금 관대해져 나사가 세운 정확한 기준에만 맞는다면 우주인들이 자신의 시계를 착용하는 것을 허락했다. 그러나 아직도 우주인뿐 아니라 많은 시계 애호가들 사이에서 오메가 스피드마스터만한 위상을 지닌 우주 시계는 없다. 이후 출시된 시계들은 우주 여행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것이지만 오메가 스피드마스터는 일반용 그 자체로 혹독한 우주 시험에 통과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인인 이소연씨는 2008년 우주 비행 당시 어떤 시계를 착용했을까? 오메가의 박경원 부장은 이소연씨도 오메가를 찼느냐는 질문에 “솔직히 말해서 이소연씨가 나사가 아닌 러시아 항공우주국 소유인 소유즈호를 타고 우주에 갔기 때문에 스피드마스터를 착용했는지 정확히 모른다. 다만 한 가지, 나사의 우주인은 우주로 미션을 수행하러 갈 때 두 개의 시계를 착용하는데 하나는 기계식 시계이고 다른 하나는 쿼츠다. 이유는 우주 유영 등의 선외 활동을 할 때는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여러 가지 상황(예를 들면 태양의 흑점 폭발로 인한 강력한 자기장의 발생, 전파 방해 등)에 대비하기 위해 기계식 시계를 착용하고 선내에서는 쿼츠를 착용한다. 우주선 내에서 착용하는 대부분의 쿼츠 시계가 오메가의 스피드마스터(X-33)다”라고 답했다. 박 부장은 우주인이 여러 개의 시계를 차는 이유에 대해 “국제 우주정거장(ISS)은 세계표준시를 사용하고, 우주선은 관제소가 있는 미국의 휴스턴 시각을 기준으로 삼는데, 고향에 위성전화를 걸고 싶어하는 우주인들은 두 개 이상의 시계를 차기도 한다”고 말했다. 확인 결과 우주 여행을 마친 우주인 이소연씨의 손목에도 오메가 스피드마스터(X-33)가 채워져 있었다.
추가 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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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전문지 '크로노스'의 2009년 7월호에는 NASA에서 시계 구매를 담당한 '제임스 H. 레이건'의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다. 그 인터뷰에 따르면 크로노그래프 시계는 위급 상황을 위한 일종의 백업 시스템이었고, 자체적으로 개발하기엔 너무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에 애초부터 외부 업체들의 시계를 구매하려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후보를 찾는 일부터 시작했다. 시계 회사들의 크로노그래프 생산 라인을 확인하고 우주인들에게 손목시계 사용 경험을 물었다. 그때 개인적으로 롤렉스, 브라이틀링, 오메가 등의 시계를 차고 나간 우주인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정식으로 NASA 구매부를 통해 6~8개의 브랜드에게 테스트용 샘플을(확실한 용도는 아직 밝히지 않고) 요청했다. 요청에 응한 브랜드는 4곳이었다. 해밀턴, 롤렉스, 론진 비트나우어, 오메가.
스피드마스터가 NASA의 우주 탐험 시계로 선정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이 시계가 시대의 아이콘이 되는 다큐멘터리다. 아폴로 전 세대인 머큐리 프로젝트 시대의 공식 시계는 우주선에 장착된 시계 뿐이었다고 한다. 우주까지 가는데 시계 하나라니 내가 보기에도 위험해 보인다. 그래서 레이건 씨는 보조기구 개념으로 우주인에게 지급될 기계식 손목시계를 찾기 시작했다. 각종 테스트에 통과한 최후의 시계 하나가 우주인의 기계 중 하나로 쓰이는 것이었다.
테스트는 혹독했다. 11개의 테스트 항목 중에는 71°C에서 48시간 버티고 93°C에서 30분 견디기, 95% 습도에서 250시간 테스트, 최소 8.8g 중력에서 최대 2000Hz의 진동 측정 등이 있었다. 오메가 스피드마스터의 영문 위키피디아 항목에 그 세부 요소가 나와 있다. 이쯤 되면 웬만한 시계들이 떨어져나간다 해도 부끄러울 일이 아니다. 롤렉스는 습기 테스트에서 탈락하고 열 테스트에서는 바늘이 녹았고, 론진은 여러 차례 글라스가 녹았다는데 테스트가 저러면 당연한 것 아닐까 싶다. 해밀턴은 처음부터 회중시계를 보내와서 바로 제외되었다고 한다. 오메가는 저렇게 엄청난 테스트를 거치고도 살아남은 최후의 시계가 되었다. NASA는 오메가에게 화환을 보낸 건 아니었지만 정식으로 스피드마스터를 대량 구매하기 시작했다.
스피드마스터는 달 표면에 두 번째로 도착한 버즈 올드린의 시계로 알려져 있다. 첫발을 딛은 닐 암스트롱은 혹시나 해서 탐사선에 시계를 두고 나왔기 때문에 닐 뒤로 나온 버즈 올드린의 스피드마스터가 처음으로 달 표면을 겪은 손목시계다. 하지만 그 전에도 스피드마스터는 미국 최초의 우주 기록과 함께 했다. 1965년 6월 5일 미국은 자국 최초로 우주 유영에 성공했는데, 그 주인공인 에드 화이트는 스피드마스터를 차고 있었다.
스피드마스터는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70년의 아폴로 13호 미션에서다. 이 일은 영화화된 것처럼 탐사선의 산소 탱크가 폭발하며 공포의 서바이벌 게임으로 변했다. 여기 타고 있던 잭 스와이거트는 궤도를 수정하기 위해 정확한 시간을 알아야 했는데 그때 의지해야 하는 시간 계측기가 스피드마스터였다. 스와이거트의 시계가 시간을 정확히 표시한 덕분에 궤도 수정은 성공했고, 그런 인간의 기지와 기계의 안정성이 쌓여 아폴로 13호는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NASA는 이때의 공을 인정해 오메가에게 '스누피 어워드'를 줬다. 우주 개발에 공헌한 업체와 개인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오메가가 한 번씩 스누피 그림을 새긴 한정판 스피드마스터를 출시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오메가의 스피드마스터 라인업은 김밥천국 메뉴처럼 많다. 하지만 지금도 오리지널 문 워치를, 그 희대의 명기를 살 수 있다. 이름부터 프로페셔널 문 워치. 사양도 그때의 것과 비슷하다. 그때 것과 비슷하다는 건 지금 것과는 다르다는 뜻이기도 하다. 차이점은 크게 셋이다. 사파이어 크리스털 글라스 대신 옛날 손목시계에 쓰던 플렉시글라스를 썼다. 자동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 말고 수동 크로노그래프를 넣었다. 케이스 뒤를 유리로 처리해 무브먼트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요즘 경향과는 달리 쇠로 뒷면을 막았다. 다 각자의 이유와 장단점이 있다. 플렉시글라스는 경도가 약한 대신 충격을 받아도 금이 갈 뿐 산산조각나지는 않는다. 수동 크로노그래프는 오토매틱 모듈이 없는 개념이어서 기계 구조가 간단해지고 두께가 줄어든다. 시계 뒤를 유리로 처리하면 보기엔 좋지만 내구성이 약해질 일을 굳이 할 필요는 없다. 이건 프로페셔널 문 워치니까.
무엇보다 오메가 스피드마스터는 멋진 시계다. 지금은 찾기 힘든 20세기 디자인 특유의 담백함이 살아 있다. 지름 42mm 케이스는 출시 당시 기준으로는 꽤 큰 것이었지만 지금은 적당하다. 다이얼과 베젤에 촘촘하게 새긴 눈금과 돔 형태로 조금 솟아오른 플렉시글라스도 귀여운 느낌이 난다. 시침과 분침 역시 요즘 오메가가 쓰는 브로드애로우 형태가 아닌 얇은 1자형이다. 이때는 시계가 비싼 물건이기 전에 정교한 시간 계측기였다. 지금의 거의 모든 시계에서 볼 수 있는 과잉이 드러나지 않는 것도 스피드마스터가 장신구이기 이전에 정밀기기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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