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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entie 2106  공감:27  비공감:-3 2014.07.13 21:40

세이코의 전범기 한정판 출시를 접하고서, 많은 시계 애호가들이 불편한 심정일 거라 생각합니다. 저의 개인적인 고민을 나누고, 세이코에게 열혈 매니아의 실망과 좌절을 전하고자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포스트로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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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화질 원본 사진 : http://farm4.staticflickr.com/3719/12713219693_572196e21d_o.jpg


그동안 7개의 세이코 시계를 모아왔던 저는 이번 일로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브랜드를 지우고 시계 자체만 봐오던 제 안목이 부족했음에 자책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시계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해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시계에 애착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시계의 매력을 간단히 정리할 수는 없지만, 시계에 끌리는 마음에는 합리적인 이성보다는 무의식적인 감성이 깊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일정한 박동으로 살아 숨 쉬는 시계는 반려동물 못지 않은 애착을 느끼게 합니다. 시계는 단순히 시각을 알려주는 기계가 아니라, 내 심장과 함께 뛰면서 지금 이 순간을 함께 하는 시간 여행의 동반자입니다. 제 시계들은 단순히 제조사와 제품명으로만 기억되는 게 아니라, 청혼할 때 함께 한 시계, 결혼식 때 함께 한 시계, 일터를 그만둘 때 함께 한 시계, 새로운 일터에 첫 발을 내딛을 때 함께 한 시계, 가족이 아플 때 함께 한 시계, 친구와 속 깊은 대화를 나눌 때 함께 한 시계 등으로 기억됩니다. 저는 마음이 괴로울 때 시계를 풀어서 귀에 대고 탈진기가 들려주는 심장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차분해집니다. 시계의 감성적인 측면 때문에 우리는 디지털 디스플레이의 쿼츠 시계가 갖은 정확성을 포기하고, 기계식 시계를 선택합니다. 내 심장과 함께 뛰는 시계의 심장을 보고 싶기 때문에, 내구성을 포기하고 시스루 백을 선택합니다. 저는 시계의 감성적인 측면을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가격대비 성능”을 의미하는 “가성비”라는 용어를 시계에 적용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성비가 좋은 시계”보다는 “affordable watch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의 시계)"가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세이코는 그동안 내가 갖고 싶은 감성의 시계를 감당할 수 있는 가격에 제공해준 affordable watch의 대표주자였습니다.


아무리 기계적인 성능을 중요시하는 시계 애호가라도, 자신의 시계를 고를 때에는 감성적인 부분을 고려할 것입니다. 기술적인 사양뿐만 아니라, 시계의 탄생에 담긴 이야기를 궁금해 하며, 이야기에 마음이 움직일 때 그 시계를 선택합니다. 시계 제조사들도 시계가 시간 여행의 동반자라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조사들은 역사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다양한 한정판이나 특별판 시계를 내놓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계들의 이야기가 제조사의 정서적인 정체성을 이룹니다.


세이코의 전범기 한정판 출시가 저를 포함한 많은 시계 애호가들을 실망시키고 분노케 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동안 세이코가 자신의 수익 중 일부를 극우단체에 기부해온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입니다. (사실 저는 기업이 자신의 수익을 어디에 쓰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것은 주주나 경연진의 고유 권한이라 생각합니다.) 세이코는 전범기 한정판을 발표하면서, 제국주의 시절의 침략적인 야욕을 기념하고자 했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위험한 극우주의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것은 랑에운트죄네, 글라슈테 오리지날, 진, 노모스, 슈타인하르트 같은 독일 브랜드들이 나치 문양의 시계를 출시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물론 독일 브랜드들이 그럴 리는 만무하겠지만 말입니다.) 아무리 성능이 뛰어나고 디자인이 훌륭해도 시계에 담긴 이야기가 사람들의 감성을 상하게 한다면, 나쁜 시계입니다.


한 번 상한 감성은 쉽게 치유되지 않습니다. 불쾌감은 또 다른 긍정적인 감성 경험을 하기 전까지 오래토록 지속될 것입니다. 세이코는 이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자국민의 긍지를 높이기 위해 내수용으로만 출시했다는 변명도 통하지 않습니다. 이미 전범기 한정판은 세이코의 정체성 중 일부가 되어버렸습니다. 세이코가 고노 담화 한정판 같은 것을 만들기 전까지는, 전범기 아래 큰 희생을 치뤘던 사람들에게 남긴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전범기 한정판 출시 이후, 세이코 시계들을 봉인해 두고 있습니다. 내 마음을 상하게 한 제조사의 시계들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것 또한 마음 불편한 일이라 중고로 판매할 생각은 없습니다. 내 삶의 소중한 순간들을 함께 해준 동반자이기에 버릴 수도 없습니다. 그저 봉인해두었다가, 상한 마음이 아물 때가 되어야 다시 제 손목 위에 놓일 것 같습니다. 애꿎은 제 시계들을 어둠 속에 묻히게 한 세이코가 많이 밉습니다.


마지막으로 타임포럼 회원님들께 부탁 말씀 드립니다. 이번 전범기 사건으로 포럼 내에서 가장 많이 상처 입은 사람들은, 다름 아닌 세이코 애호가들입니다. 그동안 정들었던 시계를 마음 편히 찰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큰 부담일지는 시계 애호가라면 누구나 공감하실 겁니다. 그러니, 제조사를 보는 안목이 부족했던 세이코 애호가들을 가련히 여기시고, 부디 매국노나 염치없는 사람으로 매도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세이코 대신 찰 시계들이 있기 때문에 봉인이라도 해두지만, 대체할 시계가 없는 분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계속 세이코를 차야 합니다. 길 가다가 세이코 시계 찬 사람을 만나시면, 생각 없는 사람이라고 비난하지 마시고 세이코 시계 밖에 없는 가련한 사람이라 생각해 주십시오. 세이코를 향한 나쁜 감정이 시계 애호가들에게 옮겨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두서 없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글이 불편하셨다면, 저의 시계 사랑을 봐서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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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화질 원본 사진 : https://farm6.staticflickr.com/5591/14340984140_ece80a441d_o.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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