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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샀냐구요? 글쎄요..뭐..파텍이니까.."

최고의 시계 브랜드 파텍필립의 고객들에게 구매이유를 물어본다면 아마 저런 대답을 할 것 같습니다.

정말 파텍이 만들면 모든 시계가 최고일까요??

 

 

저는 감히 그렇다고 대답하겠습니다.

그 이유 역시 "파텍이니까.."

 

 

파텍은 실제로 다른 경쟁회사들을 압도합니다. VC의 패트리머니와 말테, AP의 쥴스오데마와 에드워드피게(솔직히 AP의 정장시계 라인은 별로..^^)은 PP의 칼라트라바에 비해 별다른 장점을 찾아보기 어려우며, 브레게의 클래식라인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역시나 파텍 다음의 초이스가 아닐까 싶습니다.

독일의 랑게요?? 아무리 랑게가 파텍과 더불어 새로운 Big2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여도 모든 사람들은 파텍과 랑게라고 얘기하지, 랑게와 파텍이라고 얘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알파벳 순서라면 또 모르지만요..

 

                파텍의 가장 단순한 수동 정장시계인 칼라트라바 3919J (2006년 단종됨.)

 

하지만 파텍도 한발 물러서는 부문이 있기는 합니다. 바로 하이엔드 스포츠시계 쪽에선 말이죠. 이 쪽은 AP의 Royal Oak가 꽉 잡고 있습니다. AP는 전체 생산량과 매출의 절반 이상을 이 기괴한 팔각형의 시계가 책임지고 있으며 그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르죠. 거대한 RO Offshore 모델들은 아메리카컵에서의 알링기의 성공과 헐리우드 혹은 스포츠스타 마케팅의 성공으로 불티나게 팔리고 있죠.

 
 

               Royal Oak ref.15300                                                       Royal Oak  Offshore Barrichello(F1 Racer) Limited

 

 

그런데 제 생각을 잠시 말씀드리자면..

AP와 RO의 문제점은 여기서 나타납니다. 온통 RO, 더 나아가 ROO가 판을 치기 시작한 이후로 AP가 진정한 하이엔드로서의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RO가 있어 AP가 하이엔드인 것아 아니라 AP가 하이엔드이기 때문에 RO가 존재하는 것인데..이제는 그 주객이 전도되어 버렸습니다. AP 부띡의 진열장에는 작은 여성용의 RO부터 지름 57mm의 괴물 ROO까지 온통 팔각형만이 가득한 것이죠. 저는 45mm씩 하는 그 거대한 ROO들이 하이엔드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제 취향이 아니니 잘못되었다..라는 말은 아닙니다만 적어도 그 시계들에게서 왕실과 귀족들의 시계를 만들던 클래식의 향기는 맡을 수 없으며 아름다운 돌연변이 RO의 느낌과도 사뭇 다르게 보입니다. 그저 시계의 포스에만 중점을 두다보니 그 마초의 냄새가 하이엔드의 향기를 다 삼켜버렸다고 해야 할까요?

 

 

                              Royal Oak  Offshore Barrichello(F1 Racer) Limited

 

물론 아직까지도 AP는 르노앤파피라는 복잡시계 제조회사를 보유하고 있고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으며 또한 JLC의 그늘에서 점차 벗어나 인하우스 무브먼트 시대를 열어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클래식 라인을 살리려는 각고의 노력 없이는 앞으로도 절름발이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AP는 RO라는 제랄드젠타의 선물을 전가의 보도마냥 마음껏 휘둘렀고 그로 인해 쿼츠쇼크를 벗어났으며 큰 돈을 벌기까지 했지만 결국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과 맞닥뜨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름다운 돌연변이었던 RO가 정말 몬스터가 되어버린 셈이죠. 참 슬프게 돈을 번 AP..

 

..그럼 여기서 다시 한번 질문을 던져봅니다. 최고의 하이엔드 스포츠시계는 RO일까요??

여전히 대답은 Yes에 가깝습니다만 위의 상황과 현재 시계브랜드의 위치를 놓고 보자면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그 이유는 바로 파텍필립이 있기 때문입니다.

 

1955년 미국은 한 메시지를 받습니다. "underway on nuclear power"

최초의 핵잠수함 노틸러스가 보낸 메시지였죠. 이 센세이셔널한 함정은 이어서 1958년 태평양에서 북극으로 잠항하여 대서양으로 나오는 역사적인 항해를 합니다. 이 세상을 놀라게 한 바로 이 잠수함의 이름이 1976년 파텍의 스포츠시계 역사를 활짝 연 한 시계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노틸러스..근대의 잠수정 이름이기도 하였으며 해저2만리 네모선장의 잠수함이기도 합니다. 공통점은 잠수함이라는 점, 그리고 세상을 놀라게 했다는 점이겠네요.

 

                                   1958년 뉴욕항 앞바다에서의 노틸러스

 

1972년 등장한 RO의 성공 이후 파텍 역시 스포츠시계의 발매를 준비하였고 그 디자인은 역시 제랄드 젠타가 맡았죠. 당시 젠타의 시계들은 나름의 공통점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노틸러스 역시 RO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죠. 노틸러스는 발매시기에만 4년의 차이가 있었을 뿐 사실상 RO와 형제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8각의 베젤(노틸러스는 좀 둥글지만..)과 케이스 일체형인 브레슬릿, 핸즈와 인덱스의 디자인, 거기에다 오리지널 모델의 무브먼트까지 동일(JLC 920)한 완전히 한 핏줄의 시계이죠.


 

   
                           Nautilus ref.3700                                             Patek Phillippe cal. 28-255 (JLC 920 베이스)

 

이 오리지널 모델(RO는 5402, 노틸러스는 3700)들은 심지어 빅사이즈인 점과 얇은 두께까지 거의 같은데 그러한 이유로 둘다 JUMBO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이 두 모델이 특별한 이유는 몇가지가 있는데 일단 당시로서는 오버사이즈(특히나 정장시계만 만들던 빅3의 시계로서는..)인 39mm에 가까운 베젤사이즈를 가졌고, 초침도 없는 초박형 정장시계 무브먼트였던 JLC cal.920을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지금가지 초박형 자동 무브먼트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무브먼트로서 빅3 세개 회사만이 사용한 이력이 있는 JLC의 역작입니다. 사실 매우 델리키트한 초박형 무브먼트는 스포츠 시계와 어울리지 않죠. 특히나 당시 자사 자동무브먼트를 가지고 있던 파텍은 하필이면 왜 RO와 똑같은 무브먼트를 쓰려고 했는지 참 알기 어려운 노릇입니다. 하지만 이 무브먼트를 통해 파텍과 AP가 자신들의 새로운 시계를 어떻게 생각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비록 스포츠 시계라 할지라도 얇고 우아한 시계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죠. 말하자면 운동할 때 차는 시계가 아니라 해변을 거닐고 요트 위에서 일광욕을 즐길 때 차는 시계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노틸러스라는 이름이 민망하게도 이 두 시계는 스포츠 시계치고는 방수성능도 별로 뛰어나지 않습니다. (물론 일반적인 정장시계보다는 훨씬 뛰어납니다만 노틸러스는 이름이 워낙 다이버워치스러운지라..)

 

얘기가 조금 샜습니다만 아무튼 노틸러스는 RO의 형제기기나 다름없는 시계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RO의 아류작으로 치부할 수는 없는 것이 젠타는 노틸러스의 베젤을 얹는 방식에서 멋진 베리에이션을 보여줌으로써 나름의 아이덴티티를 부여했습니다. 그 방식은 베젤 양쪽에 귀모양의 구조물을 달아놓아 그것으로 케이스를 꽉 감싸고 이를 위아래에서 나사로 잠그는 형식이죠. 잠수함의 해치처럼 느껴지는 이러한 구조로 RO의 베젤 나사를 대신했고, 이 귀 모양은 처음보는 이들에게 뭔가 어색하고 괴이하다는 느낌을 주지만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매력을 선사해주었습니다.

 

  

                       현행품인 ref. 5711/1A의 이미지 화면                                    노틸러스의 특허 (상세설명은 생략 ^^)

 

노틸러스 점보(ref.3700)의 데뷔 이후 역시나 더 작은 사이즈의 제품인 Ref.3800이 발매되었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3800(현행품은 5800) 사이즈는 너무 작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만 당시로서는 일반적인 사이즈였죠. 점보는 3700/1 및 3700/11이 76년부터 90년도까지 생산되고 단종되었습니다. 아마도 단종의 이유는 JLC 920 에보슈 물량의 소진이 아니었을까 생각되는데 재미있는 것은 로얄오크 점보의 단종시기도 이와 비슷합니다. (둘의 상관관계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이내 다른 무브를 쓴 신제품이 발매되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 후계기는 1998년에야 발매가 되었죠. 3710/1이라는 새로운 빅사이즈 노틸러스는 IZR이라고 불리우는 작은 파워리져브 게이지와 로만 인덱스를 달고 나왔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노틸러스 사상 최악의 모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로서는 도저히 미적 균형감을 찾아볼 수 없는 시계라고 생각합니다. 이 모델 현재는 단종된 상태이고 중간에 잠시 빅사이즈 스틸모델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노틸러스 발매 30주년이었던 2006년, 파텍은 노틸러스의 전 라인을 체인지하였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나 16년만에 다시 나타난 빅사이즈 타임온리 스틸시계였습니다. 다음이 새로운 노틸러스 라인의 목록입니다. (스틸모델 기준)

 

                       
A new flagship model: the Nautilus Ref. 5711/1 A         For smaller wrists: the Nautilus Ref. 5800/1 A
                    
      Getting complicated: the Nautilus Ref. 5712      An anniversary coup: the Nautilus chronograph Ref. 5980/1 A  

 

이 작년 이 신모델들이 나올 때까지 수년 동안 빈티지 점보의 가격은 점점 상승하였습니다. 사실 그 전까지는 파텍의 여러 라인에서 그렇게 인기있는 편은 아니었으나(이 묘한 디자인에 대한 혹평이 많았다고 합니다.) 젊은 시계 매니아들이 늘어나고 스포츠시계가 대세를 이루면서 현재는 파텍의 시계 중 가장 핫~~한 라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근 파텍의 빈티지 가격은 대체적으로 꽤 상승하였는데 특히 노틸러스 점보의 빈티지는 2000년 전후부터 급격히 올라서 현재 3700/1의 경매가격은 2만불이 훨씬 넘습니다. 시계의 가치를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중고가격인데 RO점보의 70년대 빈티지들은 1만불도 채 되지 않는 사실을 보면 노틸러스의 가치를 반증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하나 더 얘기하자면 또 하나 시계의 가치(혹은 인기..)를 숫자로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그 시계의 실구매가입니다. 현재 RO 점보의 미국 리테일가는 16300불인데 실구매가는 11000~12000불 정도가 되는 듯 합니다. 반면 2006년 노틸러스는 각 모델들에 프리미엄까지 붙어있는 상황입니다. 예를 들어 5711/1 A는 리테일가가 18800불이지만 이베이나 기타 그레이마켓에서는 20000불이 넘게 거래되고 있습니다. 이런 식의 신품 프리미엄은 대단히 드문 케이스입니다. 이렇듯 현 상황에서는 RO와 노틸러스의 플래그쉽 모델의 실구매가 차이가 거의 두배 가까이 나는 기현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PP와 AP의 브랜드파워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노틸러스가 RO에 비해 얼마나 잘 관리가 된 시계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습니다.

 

이렇듯 최고의 오리지널리티와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RO조차도 노틸러스 앞에서는 잠시 어깨의 힘을 빼야 할지도 모릅니다. 첫발매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듯이 스틸로 만들어진 가장 값비싼 시계(정말이지 왠만한 골드 칼라트라바보다 비쌉니다 ㅡ..ㅡ)는 바로 이 녀석 노틸러스입니다. 최고의 하이엔드 스포츠워치를 얘기할 때 RO와 함께 반드시 노틸러스를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왜냐구요?

 

그야 물론..

 

 

 

 

" 파텍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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