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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혹했던 세계대전이 끝난 1940년대 후반은 투박한 군용 시계를 생산해야만 했던 시계업계가 드디어 본연의 드레스워치 제조로 돌아오던 시기였습니다.

 

거기에 전후 복구를 위한 마셜 플랜으로 서유럽 경제에 봄바람이 불던 시기였죠.

 

 

그로인해 이시기에는 심플한 드레스 워치 뿐 아니라 좀 더 화려한 트리플 캘리더, 여기에 문페이즈를 더한 풀 캘린더 시계가 매우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무렵인 1948년은 오메가에도 창립 100주년이 되던 해였고, 아울러 그들의 사세가 최고조에 진입하던 시기였습니다. 

 

창립 이후 100년동안 오메가는 대중들에게 정확하고 품질좋은 시계를 대량으로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왔지만

 

경제적 여건도, 회사 사정도 가장 아름답고 찬란했던 좋은 시절을 맞이하고 있던 오메가는 시대의 유행에 부합하여 특별한 무브먼트로 특별한 시계를 생산합니다.

 

 

바로 오메가 최초의 트리플 캘린더(일, 월, 요일) 문페이즈 시계인 코스믹(Cosmic) 시계가 그것입니다.

 

오메가는 당시에 가장 잘 나가던 메가메뉴펙처 답게 1947~1956년 까지 약 5만개 가량의 코스믹 문페이즈를 생산했기 때문에,

 

이 시기에 생산되었던 풀 캘린더를 노려본다면 어느정도의 퀄러티와 많은 수량으로 인해 오메가의 코스믹 문페이즈가 가장 적당하고 만만했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저에게 코스믹 문페이즈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코스믹 문페이즈에 사용된 무브먼트인 Cal.381 때문이었습니다. 

 

 

오메가의 Cal.381은 오메가의 네이밍이고 원래 이 무브먼트의 명칭은 Lemania 27 DL 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무브먼트는 당시 오메가와 함께 SSIH의 멤버였던 Lemania가 오메가에게 제공한 무브먼트였습니다. 

 

 

그리고 이 Lemania 27 DL의 베이스먼트 무브먼트가 Lemania CH 27, 다른 네이밍으로는 Lemania 2310, 오메가 네이밍으로는 그 유명한 Cal.321 입니다. 

 

즉, 오메가의 Cal.321에서 크로노그래프 부품을 제거한 수동 무브먼트가 오메가 Cal. 381인 것이죠.

 

제가 수동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 중 가장 좋아하는 무브먼트가 Cal. 321 이었던 까닭에 오메가의 코스믹 문페이즈는 항상 저의 구매 예정목록 상단에 위치해 있던 시계였습니다.

 

다만 이 시계를 구하려는 자들은 대개 뫼비우스의 띠 같은 무한 루프의 번뇌에 시달리게 됩니다. 

 

오메가 코스믹 트리플 캘린더 문페이즈는 50~60년대의 드레스 워치 답게 방수처리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은 시계입니다. 

 

케이스 백은 스냅백에 방수 개스켓 같은것은 당연히 존재하지 않고, 케이스 양 옆에는 월, 일, 문페이즈 조정을 위한 구멍이 3개나 뚫려 있죠.

 

습기에 의한 침습이 아주 용이한 이런 케이스 구조로 인해 현재까지 남아있는 코스믹의 상태는 천차만별 입니다. 

 

당연히 다이얼이 '비교적' 덜 침습된 코스믹은 가격이 높고, 그래서 좀 더 낮은 가격을 찾아보면 다이얼의 상태가 엉망이고, 그래서 쫌 더 좋은 상태의 다이얼을 찾아보면 가격이 높고, 그래서 쫌 더 낮은 가격을 찾아보면 다이얼이 엉망이고...

 

거기에 재생 다이얼까지 지뢰처럼 널려있는...오메가 코스믹 트리플 캘린더 문페이즈에 꽂힌다는 것은 그야말로 번뇌로 이르는 지름길이기 때문에 여러분께는 절대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그것은 저의 참담한 실패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ebay나 Chron24만 눈빠지게 노려보고 있던 저에게, 뜻밖에 국내 매물 하나가 상당히 저렴?한 가격에 떠있는게 우연히 발견되었고...

 

그냥 구경이나 해 보자고 갔던게 바로 성급한 구입으로 이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신나서 자랑질 포스팅까지 했었는데...ㅠㅠ 

 

지나가던 고수분께서 아무래도 재생 다이얼 같다는 충고를 해 주시고, 황망한 마음으로 이리저리 알아보니 다이얼은 재생에 핸즈까지 모두 제치가 아닌걸로 확인된 것입니다.

 

(사진은 제가 구입했던 것과 같은 오메가 코스믹 문페이즈 2471-3 의 오리지날 입니다)

 

기분이는 하늘에서 바닥까지 곤두박질 치고, 다행히 업체와는 잘 얘기가 되서 환불은 받았지만 쪽팔린 마음에 포스팅도 다 날려버렸지만...

 

이 와중에도 저는 다른 매물을 찾아보고 있었죠...ㅋㅋ

 

하지만 정말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코스믹 문페이즈는 건드리면 안되겠다...라는 생각만 들고,

 

전 과감하게 꿩대신 봉황을 계획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이번에 구입한 바쉐론의 풀캘린더 37150이 바로 Lemania 27 DL을 사용하는 시계이니까요 ㅎㅎ

 

사실 37150을 구입하게 된 것도 무브먼트 때문이고, 구입 전 끝까지 망설였던 것도 무브먼트 때문입니다. 

 

바쉐론은 1937년 SAPIC 이라는 지주회사를 통해 JLC와 한솥밥을 먹게 된 이후로 리슈몽에 인수, 자사 무브먼트에 집중하기 전까지 쭈욱 JLC의 무브먼트를 에보슈로 사용하던 브랜드였기 때문입니다. 

 

비록 코스믹 문페이즈 판매당시 선전 문구가 "울트라 슬림 케이스에 걸맞는 무브먼트를 사용한 최초의 캘린더 시계" 였을정도로 Cal.381은 스펙이 괜찮은 무브먼트였지만,

 

아무래도 바쉐론의 이름값에 Lemania 무브먼트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았으니까요(물론 Lemania 2310은 예외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바쉐론과 Lemania라는 뜻하지 않은 콜라보가 결성되게 된 당시의 시대상 또한 아주 재미있는 일이기에...

 

사연많은 시계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저항하지 못하고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

 

(Sheikh Amani, 사우디 석유장관...다 사버릴꼬얌~)

 

바쉐론의 37150이 발매된 때는 1990년 이었는데요, 이때 바쉐론은 쿼츠 파동으로 중동의 석유재벌 손에 팔려가 있었죠...

 

그래도 1989년에 바쉐론의 아카이브에 보관되어 있던 많은 히스토릭 피스를 이용해 Les Historiques 라인을 바젤에 발표하고 이듬해인 1990년부터 판매를 시작했다는 것은 바쉐론도 슬슬 부활하기 시작하는 기계식 시계시장의 기류를 읽고 있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 당시 바쉐론은 중동 자본으로 생명연장을 하고 있었을 뿐 하이앤드 메뉴펙처로서의 능력이 완전히 소진되어 있었던 때였습니다.

 

바쉐론이 그런 능력을 간신히 되찾은 때는 1996년 리슈몽의 전신인 방돔 그룹에 인수되어 자금수혈을 받고, HDG(Haute de Gamme Sarl) 라는 작은 컴플리케이션 모듈 공방을 인수하여 숙련된 기술자들을 공급받고 난 이후이죠. 

 

 

HDG 인수 후 비로서 바쉐론은 Cal.1400 같은 자사 무브먼트나 뚜루비용 무브먼트 1790 등을 발표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1990년에는 수동 풀캘린더를 만들고 싶어도 무브먼트를 만들거나 구할 수 없었을 겁니다.

 

 

1960년대 마지막으로 사용했던 풀캘린더 무브먼트인 p495가 몇개 남아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뜬금없이 이 무브먼트를 사용한 풀캘린더 92232가 1980년대 발매되었던 것으로 보아 얼마 남아있지 않던 NOS p495는 이때 다 소진되었을 것으로 보이고(쌀독에 남아있던 쌀을 바닥까지 득득 긁어 먹어치운 느낌...ㅋㅋ)...

 

 

JLC 889 같은 자동 무브먼트 에보슈는 여전히 공급 되었는지 아니면 재고가 충분했는지 1992년에는 이를 이용한 자동 풀캘린더 47050이 나오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37150 같은 수동 풀캘린더를 만들 수동 무브먼트는 구할 수 없었겠죠.

 

JLC에 p495를 다시 주문하면 되지 않았겠냐?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37150이 1990년대에 대략 400개 판매 되었었는데...

 

고작 400개 수량의 무브먼트라면 아마 재생산 단가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날거라 JLC에 주문을 넣을 생각도 못했을 겁니다.

 

결국 대안은 Lemania 27 DL(Omega Cal. 381) 밖에 없었겠죠. 스펙 자체는 바쉐론에서 쓰기에 모자라지 않고, 메가메뉴펙처 오메가를 위해 Lemania에서 넉넉하게 생산했을거라 뉘집 창고에 처박혀 있었을 NOS 몇백개 정도 조달하는데 어렵지는 않았을 겁니다~ ^^

 

암튼 이렇게 궁핍했던 바쉐론과 5만개나 판매했던 넉넉한 수량의 Cal. 381이 그런저런 사정으로 만나 알흠다운 콜라보를 이루게 된 것이 37150 입니다

(...라고 저는 생각합니다...ㅋㅋ)

 

 

암튼 이녀석을 보게 되면 요새 몇백년의 역사가 어쩌고 헤리티지가 저쩌고 하면서 시계 가격이나 올려대고 면접 해가면서 시계 팔아대는 스위스 놈들...

 

니들도 어려운 때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재미있는 녀석입니다~ ^^

 

아참, 아래 퀴즈 정답 발표입니다. 

 

 

좌측부터 브레게의 타입 XXI 3815에 사용된 584q 무브먼트는 Lemania 2310 수동 크로노그래프를 베이스로 개발된 자동 크로노그래프 이고요...

 

위에서 얘기드린 것처럼 바쉐론 37150에 사용된 VC 1150 무브먼트는 Lemania 2310에서 크로노그래프 부품이 제거된 단순 수동 무브먼트이고...

 

오메가 문워치 Cal.321에 사용된 Omega Cal.321은 당근 Lemania 2310의 오메가 네이밍 입니다. 

 

즉, 이 3개의 시계에 사용된 무브먼트들은 모두 다른 브랜드 이지만 같은 어머니 Lemania 2310에서 태어난 같은 배를 가진 동복(同腹) 형제들인 것입니다.

 

그나저나...드래곤볼 모으는 것처럼 이렇게 3개를 다 모으면 뭔가 시계의 용이 나타나 원하는 시계를 하나 내려준다...뭐 이러면 좋을텐데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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