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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템기에 앞서 고백하자면 저는 시계 편식이 있는 편입니다. 


브랜드를 좀 가린다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브랜드의 시계는 몇 번이고 몇 개고 사지만 저랑 안맞는 브랜드는 안사거나 샀다고 하더라도 또 사지 않기도 합니다.


제 시계 편식의 역사는 꽤 전통 깊습니다. 적지 않은 시계를 사고 또 팔아왔지만 아직도 구매 경험이 없는 메이저 브랜드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쉐론 콘스탄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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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노답 삼대장의  원본. 왼쪽이 V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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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장 빅 3. 왼쪽부터 VC, PP, AP


사실 바쉐론 콘스탄틴에 흥미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제가 시계질을 시작한 무렵은 바쉐론 콘스탄틴의 이빨이 하나 빠지긴 했어도 소위 '빅3' 브랜드였습니다. 


예거 르쿨트르 에보슈를 주로 쓰다가 인 하우스 전략에 따라 수동 인 하우스를 하나 내놓았던 때였지만, 그래도 빅 3의 위상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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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도 봐도 설레네요


그 보다 기계식 시계라는 물건에 흥미를 가지게 한 계기가 바쉐론 콘스탄틴의 메르카토르 였습니다. 다만 가격을 알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메르카토르로 기계식 시계의 세계에 눈을 떴지만 구매를 실행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현실적인 대안을 찾기 시작했고 태그호이어 링크로 입문하게 됩니다. 


링크를 사고 멈췄어야 했지만 호기심 왕성한 MBTI의 소유자인 제게 링크는 훗날 20년 가깝게 이어질 시계질의 서막에 불과했습니다. 


맹렬한 구매욕과 학구열(후우 학창시절에 좀 그러지)은 수 많은 시계를 경험하게 했고 빠르게 하이엔드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당시에는 컬렉팅을 나름 체계적으로 하던 때 였을텐데, 한 브랜드의 시계를 무브먼트 별로 모았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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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버 71. 결국 못샀습니다. 고장이 잘 난다는 게시물에 꽂혀서....


블랑팡을 칼리버 21, 1151, 1185 탑재한 모델별로 샀었고 칼리버 71을 추가해야 하나 마는가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퓨리스트의 게시물과 함께 했었습니다. 


블랑팡은 상당히 만족스러웠습니다. 해외에 있었던 때라 아주 구하기 어렵지도 않았고 중고라면 아직 밸루가 올라오기 한참 전이라서 매~~우 합리적인 가격에 하이엔드의 맛을 체함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진정되었다 싶었던 병이 다시 찾아옵니다. 몇 년간을 그렇게 괴롭혔던 병인데 아무 이유없이 불쑥 찾아왔습니다. 



네 그렇죠. 기변병입니다. 


지름 혹은 죽음 이외에는 답이 없는 이 병을 떨치기 위해 죽는건 좀 억울했습니다. 나이도 어렸으니까요. 병을 치료하기 위해 블랑팡 컬렉션을 홀랑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한 티어 위의 하이엔드로 가보자. 



파텍 필립은 지금도 그렇지만 디자인이 그다지 제 취향이 아닙니다. 


랑에가 해외에서는 한창 뜨던 시점이었지만 저먼 실버의 3/4플레이트를 실물로 보고 좀 더 고민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브레게의 마린은 1세대가 무브먼트 체인지를 하던 시점입니다. 


예거 르쿨트르의 칼리버 889에서 프레드릭 피게의 칼리버 1151로 바뀌던 시점인데 저는 마이너 취향인지 889보다 1151을 더 좋아했고, 가끔 나오는 중고 마린은 아직 889를 탑재해서 사지 않았습니다. 


브레게의 드레스 워치는 좋긴 했지만 평소 옷차림과 너무 떨어져 있었습니다. 


오데마 피게는 36mm 로얄 오크 Ref. 14790을 무려 블루 다이얼로 샀었는데 화이트 다이얼의 태피스트리 패턴이 잘 보인다는 이유로 맘에 들어 하지 않았습니다.


결정적으로 제랄드 젠타 선생님의 위대한 디자인을 이해하려 했지만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역시 떠나보낸 블랑팡이 갑인가 라는 생각을 하던 중, 무브먼트가 시계 선택의 7할이다라는 편협한 의지로 새로운 시계구매 레이더를 돌렸고 그것에 포착된 시계가 바쉐론 콘스탄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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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칼리버 1400. 하지만 VC는 시계 지름이 커지고 파워리저브가 길어질걸 예상하지 못했....


당시 바쉐론 콘스탄틴은 인 하우스 전략에 따라 수동 무브먼트 칼리버 1400을 내놓은 시점이었고 파도치는 듯한 브릿지 형태에 감명을 받던 차였습니다. 


하지만 제 호기심을 더욱 더 자극하던 무브먼트는 칼리버 1120이었습니다. 


하이엔드의 영역을 더듬기 시작하면 반드시 거치게 되는 '빅3'의 공용재, 예거 르쿨트르발 울트라 씬 에보슈인 수동 1종과 자동 1종을 만나게 됩니다. 


물론 수동 1종은 자존심 강한 그분께서는 쓰지 않았고 자동 1종도 그리 오래 쓰지 않았지만, 자존심 덜 강한 나머지 두 분들은 지금까지 쓰고 있는 그런 무브먼트였습니다.


특히 자동 1종은 풀로터 방식에서 여전히 가장 얇은 두께와 아름다움을 자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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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을 풀 로터 울트라 씬, 오른쪽을 페리퍼럴 울트라 씬으로 바꾸면 되겠습니다. ㅎㅎㅎㅎ


요즘 유약하기 이를데 없는 브랜드들은 두께를 줄이기 위해 페리퍼럴 방식을 채용하지만 1970년대 이전의 하이엔드에겐 그런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죠. 안들어가면 구겨 넣으면 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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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 자동 무브먼트의 GOAT. 칼리버 1120. (근데 AP 버전이 더 좋습니다)


자동 1종의 바쉐론 콘스탄틴 버전인 칼리버 1120은 완성도, 두께, 아름다움, 루비 베어링이 내는 짤짤짤 회전음. 맘에 들지 않는 게 없었습니다. 


시계 디자인에 있어서는 바쉐론 콘스탄틴이 취향이었던 만큼 칼리버 1120이 들어간 시계만 구하면 되는 것이었죠. 


긴 서칭을 한 끝에 오프라인에서 하나를 발견하고 가슴이 두근두근해집니다. 가격표를 보고 ATM에서 돈을 찾아 온 뒤 구매를 위한 확인 절차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당시 칼리버 1120에는 함정이 하나 있었습니다. 


프리스프렁 버전과 레귤레이터 버전이 혼재했다는 거죠. 


시계 선택의 7할이 무브먼트인 제게는 무브먼트 선택에 있어 더욱 세부적인 항목을 체크리스트로 가지고 있었는데요. 


일단 브레게 오버코일, 두께 3mm 미만, 제네바 헤어스프링 스터드, 자동의 경우 브릿지 3분할 이상에 프리스프렁을 충족해야 했습니다. (시계 사지 말란 이야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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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아름다운 칼리버 1120도 레귤레이터 버전이면 밥맛이 뚝 떨어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후후후


그런데 제가 발견한 시계는 프리스프렁 대신 레귤레이터 버전이었고 그 충격으로 바쉐론 콘스탄틴과 오랜 이별을 하게 됩니다. 사실 만난적도 없지만요. 



바쉐론 콘스탄틴과 헤어진(?) 후 시계질은 계속되었습니다. 이후로도 많은 브랜드를 경험했지만 바쉐론 콘스탄틴은 별로 찾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바쉐론 콘스탄틴에서 신제품이 나왔는데 그거시 바로 어메리칸 1921이었습니다. 


제 편협함과 무관하게 바쉐론 콘스탄틴의 히스토리크 라인은 사랑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유는 가장 얇은 자동 1종과 수동 1종을 심심치 않게 탑재했고 빈티지 복각이기 때문에 디자인도 취향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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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고민에 빠진 상황에서 우연히도 뉴욕 부티크 버전을 접하게 됩니다. 


레귤러 버전과 달리 볼드 인덱스와 하트 시침이고 뉴욕까지 가지 않으면 안되는 시계였습니다. 


여기서 장고 끝에 또 구매하지 못하게 되는데 증상은 완화되었지만 하이엔드 브랜드만 보면 다시 발동걸리는 무브먼트 병이었습니다. 


탑재한 칼리버 4400은 칼리버 1400의 짧은 파워리저브를 극복하고 주 5일제 근무에 대응하기 위해 롱 파워리저브용 대형 배럴을 넣었지만 지름이 커지면서 넙대대해졌고  브릿지 분할을 최소화하면서 궁색한 디자인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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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버 4400, 브릿지를 최소 2번은 더 자를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칼리버 4400으로 인해 (사실 돈이 좀 모자라서) 첫 바쉐론 콘스탄틴 구매는 물건너 가게 됩니다.



이 후로 바쉐론 콘스탄틴의 시계는 심금을 울릴듯 말듯한 신제품이 여럿 나왔으나 굳은 의지로 사지 않았..아니 못했습니다. 



무브먼트가 시계 구매의 7할, 다시 무브먼트 구성 요소 체크 리스트 같은 상당히 심각한 병은 이제 완쾌했습니다. 


오데마 피게의 로열 오크 오프쇼어처럼 로테이팅 캠을 사용한 크로노그래프 모듈을 올린 크로노그래프라도 예뻐할 구석은 많으니까요. ㅂㄷㅂㄷ



이런 너그러운 마음씨를 지니게 되니 선택할 수 있는 시계가 무척 많아졌습니다. 


잠시 잊고 있었던 바쉐론 콘스탄틴도 그에 포함되겠군요. 


그런데 그 사이 많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바쉐론 콘스탄틴의 오버시즈가 엄청나게 잘 팔린다니요. 


그래서 선택했습니다. 


바쉐론 콘스탄틴의 오버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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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슬릿이 좀 뿌옇게 보이신다면 빨리 안과를...이 아니고 눈이 좋으신 겁니다. 비닐을 안땠습니다. 왜냐면 비닐은 소중하니까요. 그리고 블랙 다이얼처럼 보이지만 블루입니다. 크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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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봐도 블랙 같네요. 근데 블루입니다. 역시 사진은 아이폰으로 찍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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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인 골드 로터입니다. 



기승전 허망하게 오버시즈입니다만, 첫 바쉐론 콘스탄틴을 구매하기까지 긴 시간의 여정이었습니다. 


앞으로 오버시즈로 종종 놀러오겠습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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