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미 해군 선박국?(U.S Navy Bureau of Ships)에서는 미 해군의 NEDU(Navy Experimental Diving Unit) 소속 UDT(Underwater Demolition Team)와 EOD(Explosive Ordnance Divers) 잠수부들이 사용할 잠수 기능이 있는 손목시계에 대한 특수 계약, 통칭 MIL-SHIPS-W-2181을 발주합니다.
이 계약의 요구조건은 방수 성능을 가지고, 수중 임무에 적합해야 하며, 어둠 속에서의 시인성과 회전 베젤을 갖추고 있을 것 등이었습니다.
(바로 블랑팡의 Fifty Fathoms의 특징들이죠...)
그리고, 우리는 이미 이 계약을 따낸 최종 승리자를 알고 있습니다.
바로 블랑팡의 MIL-SPEC과 블랑팡의 미국 사업파트너인 Torneck-Rayville의 TR-900 이었죠.
그런데 사실, 이 계약은 이미 내부적으로 사업자가 정해져 있었습니다.
바로 Bulova 가 그 대상이었습니다.
Bulova는 다들 아시다시피 미국의 시계회사로서, WWII 기간동안 미군에 소요되는 시계를 공급하면서 미군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MIL-SHIPS-W-2181 계약이 발주될 당시 Bulova의 CEO는 그 유명한 미 육군의 5성장군, 브래들리(Ormar N. Bradley) 장군이었습니다!
확실히 짝짜꿍이 맞아가죠? ^^;
1955년에 발주된 이 계약에 응해 1957년 이미 Bulova는 그들의 최초의 다이버 프로토타입을 NEDU에 제출했고, 실제 NEDU 다이버들에 의해 실전테스트가 이루어 졌습니다.
투피스 케이스백에 두꺼운 황동제 항자성 케이지, 바 형식의 수분 인디케이터를 특징으로 하는 이 Bulova의 시계는, 블랑팡의 Fifty Fathoms와 매우 유사한 외형을 가졌지만 수동 무브먼트를 사용하고 있어서 현대적 다이버로서는 결격사유가 있었고...
https://www.hodinkee.com/articles/bulova-mil-ships-w-2181
Hodinkee에서 NEDU 관계자가 이 시계와 사랑에 빠졌다고 빨아주는 것과는 달리...
(Hodinkee도 장사꾼 다 되었습니다...ㅉㅉ)
NEDU의 테스트 결과도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위 결과를 보시면 NEDU 테스트 후 3개 중 2개에서 침수가 발생, 수분 인디케이터의 색이 변색되었습니다)
하지만 군납 관련 프로세스가 다 그렇듯 무려 5성장군의 후광이 어디 가겠습니까...
답정너로 정해진 Bulova의 새로운 다이버에 바로 OK 싸인이 떨어졌고,
Bulova가 미 해군 선박국을 위해 새로운 다이버를 생산할 것이라는 기사가 선박국 기관지 "Bureau of Ships Journal"에 공식 기재되기도 했죠.
그리고 Bulova가 해군의 요구조건에 부합하는 새로운 다이버를 개발하는 동안,
미 해군 다이버들이 다이버 없이 놀고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이미 상업적으로 널리 팔리고 있던 사제 다이버들을 선택해서 사용해야 했습니다.
사실 이 상황이 매우 불합리했던게...
해당 미 해군의 소요계획 MIL-SHIPS-W-2181의 요구사항은 당시 현대 다이버워치의 시조이자 프랑스 해군 등에서 사용하던 Blancpain의 Fifty Fathoms의 사양 그 자체였기 때문에,
미 해군은 Bulova가 새로운 다이버를 개발할 때 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그냥 Fifty Fathoms를 구매하면 해결 될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미 해군이 임시로 사용할 다이버로 3개의 민간 브랜드 다이버 - Rolex Submariner, Enicar Sea Pearl 600, Blancpain Fifty Fathoms - 가 선정되었고,
NEDU 소속의 UDT와 EOD에 의한 가혹한 실전 환경에서의 테스트 결과 Blancpain의 Fifty Fathoms가 채택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Bulova의 새로운 다이버가 생산될 때 까지 미 해군은 Blancpain의 Fifty Fathoms를 임시로 사용하도록 권고되었죠.
당시 블랑팡의 미국 사업파트너인 Allen V. Torneck은 MIL-SHIPS-W-2181 계획의 선정자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Fifty Fathoms로 미 해군에 끈질긴 구애를 던졌고,
Fifty Fathoms MILSPEC 중 Blancpain의 브랜드 네임을 달고있는 MILSPEC들이 바로 이때, Bulova 다이버 개발 전 미 해군이 임시로 사용하던 MILSPEC 들입니다.
그렇다면, 블랑팡과 Allen V. Torneck은 5성 장군의 후광을 업고있는 Bulova를 어떻게 제치고 사업을 따낼 수 있었던 것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Bulova가 포기했거든요.
당시 Bulova가 아큐트론에 집중하고 있을때라 여력이 없었다, 미 해군의 요구조건을 만족시키기에는 Bulova의 기술력이 너무 떨어졌다...등, 여러 추론이 가능하겠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합당한 이유는 브래들리 장군에게 있지 않나 합니다.
5성장군 브래들리는 미 해군의 여러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었을테고, 아마도 어느순간 미 해군의 MILSPEC 수요가 1,000개 남짓밖에 안된다는 정보를 입수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고작 1,000개의 시계를 납품하기 위해 Bulova에 익숙하지 않은 다이버를 개발하기에는 지나치게 수지가 맞지 않았겠죠.
결국 Bulova MILSPEC은 모두 12개의 프로토타입만 만들어진 체 계획이 폐기되었고,
MIL-SHIPS-W-2181 조달계획의 최종 승리자는 블랑팡과 Allen V. Torneck 이 되었습니다.
정식으로 미 정부에 납품하게 된 블랑팡은 미국 상품 구매를 우선시하는 'By American' 법을 우회하기 위해 상표를 'Blancpain' 에서 'Torneck Rayville' 로 바꾸어 납품하게 되었고, 이게 그 유명한 'Torneck Rayville TR-900' 입니다.
슬프게도 Allen V. Torneck과 블랑팡은 미 해군의 조달 수요가 1,000개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사전에 알지 못했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았을 때 Torneck씨는 매우 실망했다고 하더군요.
Torneck씨가 TR-900에 쏟아부은 엄청난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는 1,000개의 MILSPEC 판매량은 터무니없이 작은 것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오늘날 Bulova MILSPEC이 아닌 Blancpain MILSPEC이 있게 된 것에는 그의 지대한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영면해 계실 Allen V. Torneck 씨에게 감사의 마음과 함께 이 글을 바칩니다.
Rest In Peace...Allen
댓글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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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liner
2021.08.25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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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oc
2021.08.26 09:32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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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s8
2021.08.26 07:44
잘 읽었습니다. 덕분에 또 하나 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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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oc
2021.08.26 09:38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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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minster
2021.08.26 07:57
수요가 그 정도란 건 잘 알았을 겁니다 ㅎㅎ 일반인들도 추론할 수 있으니....어차피 상관없었겠죠 저걸로 팔아먹고 그 걸 홍보 수단으로 일반인들에게 팔면 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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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oc
2021.08.26 09:40
진짜 몰랐데요. 당시 미 해군 주문방식이 적은량의 수량을 나눠서 주문하는 방식이라 총 주문량을 일반인은 알도리가 없었죠. 막 631피스...이렇게 주문받고 실망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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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츠키
2021.08.26 08:31
오늘도 재미있는 밀리터리 워치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
TR-900 이 묻혀있는 장소의 지도가 어디 남아있지 않올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해봅니다…ㅎ
재작년에 15만 USD인가? 로 낙찰되었던 것 같은데….100개만 건져도…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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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oc
2021.08.26 09:48
이분 찐이시네...ㅋㅋ 콘크리트 부워서 매장했다는데 저도 가끔 어디 묻혔을까...가운데 TR-900은 의외로 멀쩡하지 않을까 상상해 봅니다. 빈티지 가격 쫌만 더 올라가면 미쿡에서 원정대 조직되지 않을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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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츠키
2021.08.27 10:06
저희 은퇴하면 함께 원정대나 만들어 볼까요? ㅎㅎ
찾지는 못하더라도 다큐 영화 한편은 나올 것 같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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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하나
2021.08.26 08:56
재밌는 역사 덕분에 하나 알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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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oc
2021.08.26 09:48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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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구1
2021.08.26 09:12
빈티지 정말 멋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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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oc
2021.08.26 09:49
타포에는 나츠키님꺼가 유일한듯 하고 국내에서는 한번도 못봤어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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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rth vader
2021.08.26 12:48
너무 재밌는글, 늘 감사하게 읽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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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oc
2021.08.26 20:40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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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ris
2021.08.26 13:49
이번 부로바는 호딩키 프리미엄이 많이 붙은 가격 같더군됴 ..
블랑팡 호딩키 버전들을 팔때는 리테일 대비 단지 200-300 유로 정도만 비쌌는데요 ..
아마도 부로바 특성 자체가 가격대가 낮다보니 호딩키 프리미엄이 붙으면 더 비싸게 느껴질 수도요 ㅎㅎ
어쨋든 부로바 밀스펙도 끌리긴하는데 러그가 16mm 라서 조금 언밸런스 하다는 느낌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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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oc
2021.08.26 20:44
아...아마 부로바 밀스펙은 호딩키에서만 파는건 아닐겁니다. 16mm 러그는 미요타 82뭅과 더불어 저도 안타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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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바보아빠
2021.08.26 16:37
시계와 관련한 역사 이야기 재미있습니다.
오랜동안 시계 잡지와 서적들을 많이 보았지만 이런 야사와 같은 내용들은 굉장히 드물어서 올리시는 글들 항상 감사히 즐겁게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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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oc
2021.08.26 20:45
사실 양덕들의 글들을 이것저것 짜집기 한 수준이라 부끄럽습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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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o
2021.08.26 17:28
너무 멋진 글 잘봤습니다. 이런 글은 국내 커뮤니티에선 타포에서만 볼 수 있는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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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oc
2021.08.26 20:46
이런 글 올릴수 있는곳도 국내엔 타포밖에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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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롱
2021.08.26 18:38
오늘도 선공감 후정독입니다. 공감 두번 못하는게 아쉽습니다.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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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oc
2021.08.26 20:46
공감 2회 가능하게 해주세요~ Lv7이 은근히 욕심납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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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빠
2021.08.27 15:18
좋은글 너무 잘읽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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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컬
2021.08.30 15:16
+1따봉
재밌게 잘 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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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그대마왕
2021.08.31 10:00
블로그도~ 정독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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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static
2022.03.23 02:46
불로바-오메가 이야기 먼저 읽고 링크로 넘어왔습니다.
항상 mdoc님 글 재밌게 보고있어요. 감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