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거 르쿨트르 스위스 발레드주 르 상티에 매뉴팩처 방문기
저는 지난 SIHH 기간 내 하루 짬을 내어 스위스 발레드주(Vallée de Joux) 르 상티에(Le Sentier)에 위치한
예거 르쿨트르(Jaeger-LeCoultre)의 매뉴팩처를 방문하고 왔습니다.
180년이 넘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예거 르쿨트르의 매뉴팩처를 둘러볼 수 있다는 것은 저로서는 큰 영광이었는데요.
말로만 듣고 사진과 영상으로만 접했던 매뉴팩처 내외부를 실제 눈앞에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뭐라 형용하기 힘든 감정이었습니다.
매뉴팩처로 향하기 위해 SIHH 취재차 묵었던 제네바 시내의 숙소에서 아침 일찍 나와 타 매체 기자들과 합류해
예거 르쿨트르서 보내온 차량을 타고 약 1시간 반 가량 이동하니 스위스 파인 워치메이킹의 요람인 발레드주에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발레드주는 스위스 쥐라(Jura) 산맥 끝자락에 위치한 외딴 골짜기 지대를 일컫습니다(그 이름부터 '주 계곡'이란 뜻임).
이렇듯 지대 자체가 외진 편이기 때문에(흡사 우리나라 강원도 두메산골 같은 느낌) 일반 대중교통편으로는 이동이 쉽지 않은 곳입니다.
차로 이동하는 동안 발레드주 인근에 들어서니 주변 자연 경관부터 눈에 띄게 바뀌었고 그야말로 영화 속 한 장면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천혜의 자연환경이란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요?! 예거 르쿨트르 홍보 필름 속에 나오는 수려한 자연 경관이 실제로 눈앞에 활짝 펼쳐진 것입니다.
여기서 잠시 발레드주에 얽힌 역사적인 배경 이야기를 하면 이렇습니다.
‘태양왕’으로 불렸던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자신의 재위 말년 돌연 낭트 칙령(16세기 말 위그노 교도에게 조건부 종교의 자유를 허락한 칙령)을 폐지하고,
가톨릭 이외의 교파를 무차별 탄압했는데요. 이로 인해 프로테스탄트(신교도)들은 종교 박해를 피해 가족들을 이끌고 스위스 북서쪽으로 이주하기 시작했고,
쥐라 산맥 자락의 뇌샤텔, 발레드주 인근에 주로 정착했습니다. 왜냐면 당시만해도 이 지역은 외래의 적이 쉽게 침입할 수 없는 천연 요새와도 같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농번기가 끝난 후 기나긴 겨울 동안 소일거리가 필요했던 사람들은 집이나 허름한 막사를 개조해 시계 수리 및 제조를
제2의 업으로 삼기 시작합니다. 18~19세기 스위스 시계산업의 융성은 어찌보면 종교 박해가 낳은 뜻밖의 산물이었던 셈입니다.
예거 르쿨트르의 설립자 앙투안 르쿨트르(Antoine LeCoultre, 1803-1881) 역시 신교도의 후손으로,
그의 할아버지는 16세기 말 프랑스 파리에서 스위스 발레드주로 이주해 르 상티에 마을의 개척을 이끈 사람 중에 한 명입니다.
- 1833년 앙투안 르쿨트르가 설립한 첫 공방 자료 사진. ⓒ 예거 르쿨트르 아카이브
선대로부터 자연스레 워치메이킹을 익힌 앙투안 르쿨트르는 일찍이 시계 제작에 큰 흥미를 느꼈고 재능을 발휘하게 되는데요.
그의 나이 서른살인 1833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첫 공방을 세우게 되었고 바로 이 곳이 예거 르쿨트르의 효시가 되고 있습니다.
앙투안 르쿨트르는 지금 용어로 말하면 마이크로 엔지니어링에 특히 천재적인 감각과 비전을 갖고 있었고,
무브먼트의 핵심 파츠인 피니언, 휠 등 소형 부품들을 정확하게 계측하고 내구성이 뛰어나게 제작하는 것에 몰두했습니다.
그리고 1844년 마침내 최초로 마이크론 단위까지 측정할 수 있는 정밀기구인 밀리오노미터(Millionomètre)를 발명하는데 성공하지요.
이 밀리오노미터 덕분에 각 부품들을 훨씬 정확하고 빠르게 측정할 수 있게 되었고, 향후 무브먼트 대량생산의 활로까지 열리게 됩니다.
- 설립자 앙투안 르쿨트르(사진 좌측 인물)와 1866년 증축 설립한 르쿨트르의 첫 매뉴팩처 시설 내부(사진 우측 참조).
그리고 말년에는 현대화된 기계들을 구비하고 체계적인 생산 라인을 갖춘 본격적인 매뉴팩처를 설립하게 되는데요.
앞서 합류한 그의 아들 엘리 르쿨트르(Elie LeCoultre, 1842-1917)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또한 회사명도 르쿨트르 앤 씨(LeCoultre & Cie)로 사용하기 시작했지요.
르쿨트르 앤 씨는 현 예거 르쿨트르 매뉴팩처의 전신이자, 발레드주 지방에 처음으로 들어선 현대화된 시계 매뉴팩처였습니다.
흔히 예거 르쿨트르를 가리켜 '발레드주의 터줏대감' '르 상티에의 원조 매뉴팩처'라는 식의 표현을 쓰곤 하는 것도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 탓입니다.
제네바서 1시간 반 정도를 달려 드디어 예거 르쿨트르 매뉴팩처 앞에 섰습니다.
감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리베르소를 착용한 손목으로 방문 인증샷을 남겨봅니다.
위 촬영된 사진상으로는 매뉴팩처 외관이 그리 커보이지 않지요?! 하지만 이는 건물 한 동에 불과합니다.
주로 본사 사무직(디자이너나 리테일 관련 직원들)이 이 건물 안에서 근무하고 있고, 실제 시계가 제작되는 매뉴팩처 시설은 그 뒤로 펼쳐져 있습니다.
예거 르쿨트르 매뉴팩처 전체 건물을 담은 사진을 보시지요.
그 규모만 봤을 때는 제가 지금껏 가본 스위스 매뉴팩처들 중 가장 컸습니다.
예거 르쿨트르의 매뉴팩처는 역사적으로도 발레드주에 들어선 첫 매뉴팩처이면서,
이 지역 매뉴팩처들 중에서도 단연 큰 규모를 자랑합니다. 매뉴팩처 직원수만도 1,400여 명에 달한다고 하네요.
그래서일까요? 예거 르쿨트르를 가리켜 직원들은 매뉴팩처 외에 '그랑 메종(The Grande Maison, 거대한 집이란 뜻)'이라는 표현을 선호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배경으로 그림과도 같은 자연 환경이 펼쳐져 있습니다.
건물에 큼직큼직한 유리창이 많은 것도 자연광 아래서 시계 작업을 해오던(당시엔 전기가 없어서) 선조들의 전통을 이어가고자 함입니다.
참고로 르 상티에 마을 인근에는 블랑팡, 불가리, 오데마 피게 등의 매뉴팩처 건물도 볼 수 있습니다.
외관상으로는 그저 여느 건물들처럼 평범해 보이기도 하지만, 건물 내부로 들어서면 얘기는 확 달라집니다.
매뉴팩처 내부는 마치 미로처럼 복잡하게 구획돼 있고, 한 생산 라인에서 다른 라인, 혹은 한 층에서 다른 층과 동을 이동할 때도
매번 출입 패스를 가져다대야만(심지어 출입할 수 있는 패스 종류가 다르기도) 문이 열릴 만큼 매우 철저하게 보안 관리가 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보안에 각별한 신경을 쓰게 된 배경은 수년 전 매뉴팩처에 큰 도난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라네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의 매뉴팩처임에도, 그 건물 내부는 여러번의 리뉴얼 공사를 거쳐 완전히 현대화된 시설로 거듭났습니다.
건물 내부로 들어서서 방문객들을 맞이하는 일종의 접견실에서 본사 관계자로부터 간단한 매뉴팩처 소개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방 한쪽에 외투를 벗고 매뉴팩처 방문시 으레 챙겨 입는 하얀 가운 같은 것을 걸치고 본격적인 시설 투어에 들어갔습니다.
단, 매뉴팩처 시설 내부 사진 촬영은 철저히 금지되었습니다(아예 사진기 자체를 안으로 들고 가지 못했습니다).
불과 몇년 전만 하더라도 촬영이 허락되는 분위기였는데 도난 사건도 있었고 기술 누출의 위험 등 보안 관리가 살벌해지면서 정책이 바뀌었다고 하네요.
고로 지금부터 여러분들이 보실 사진들은 브랜드 측으로부터 제공 받은 공식 이미지들임을 밝혀 둡니다.
- 다축 투르비용을 갖춘 최초의 그랑 컴플리케이션 모델인 자이로 투르비용 1을 조립하는 모습.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최근 새롭게 리뉴얼한 하이 컴플리케이션 워크샵이었습니다.
예거 르쿨트르의 기술력을 보여주는 제품들, 듀오미터 라인을 비롯해 퀀템 퍼페추얼(퍼페추얼 캘린더), 투르비용, 미닛 리피터, 그랑 소네리, 자이로투르비용 등
말 그대로 브랜드의 최상위 하이 컴플리케이션(대표적인 예로 히브리스 메카니카 시리즈와 같은) 시계들이 최종 조립, 검수되는 공간입니다.
예전에는 매뉴팩처 투어를 온 사람들이 워치메이커의 곁에 다가가서 시계의 조립 과정도 볼 수 있었다고 하지만,
최근 리뉴얼 공사를 거치면서 워치메이커들의 작업 테이블이 있는 공간으로는 아예 외부인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유리벽이 세워졌습니다.
이는 단지 보안상의 이유 때문만은 아니고, 하이 컴플리케이션 시계들이 보다 청결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조립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변화는 하이 컴플리케이션 워크샵 입구쪽에 방문객들에게 간단한 프레젠테이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 것입니다.
프로젝터 장비까지 갖춰져 있고 현미경으로 확대된 제품, 무브먼트의 이미지를 보면서 해당 컴플리케이션 시계의 작동 원리를 보다 깊게 이해할 수 있게 했습니다.
- 하이 컴플리케이션 워크샵을 총괄 관리하는 마스터 워치메이커, 크리스찬 로랑
하이 컴플리케이션 워크샵에 관해서 예거 르쿨트르 매뉴팩서 44년 근무한 마스터 워치메이커이자
하이 컴플리케이션 부서를 총괄하는 크리스찬 로랑(Christian Laurent) 씨가 친히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그에 따르면, 하이 컴플리케이션 워크샵은 매뉴팩처 내에서 경력이 오래되고 가장 뛰어난 재능을 지닌 마스터 워치메이커들로만 구성돼 있으며,
여느 일반 워크샵과 달리, 모든 제조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1인 체제로 담당한다고 합니다.
- 무브먼트 브릿지의 측면을 정성스레 다듬는 일명 '베벨링(앵글라주)' 작업 모습.
- 저먼 실버 플레이트를 특수한 끌로 스켈레톤 가공하는 모습.
다시 말해 피니싱, 조립, 검수까지 최종 제작 과정을 한 사람이 하나의 시계를 책임지고 완성하는 시스템인 것입니다.
심지어 해당 시계의 에프터 서비스(수리, 오버홀)까지도 그 제품을 완성한 담당 워치메이커가 전담하도록 했습니다.
심플한 기능의 일반 시계는 조립하는데 보통 2시간 정도가 걸린다면, 컴플리케이션은 조립하는데 기본 2일이 소요되며(일례로 듀오미터),
가장 복잡한 그랑 컴플리케이션 계열의 시계는 한 명의 워치메이커가 조립하는데 2달에서 길게는 6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고.
- 그랑 컴플리케이션 시계를 혼자 전담해 조립하는 여성 마스터 워치메이커의 모습.
하이 컴플리케이션 워크샵에는 총 100여명의 직원들이 배치돼 있습니다.
르 상티에 매뉴팩처에 전문 워치메이커의 수가 300명 정도라면, 그중 1/3 정도가 하이 컴플리케이션 공방에서 근무하는 마스터 워치메이커들인 셈입니다.
예거 르쿨트르는 창립 이래 지금까지 400개 이상의 시계 제조 관련 특허권과 1,250여 개의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보유하고 있는데요.
이중에서 현대에 생산되는 기계적으로 가장 복잡하고 브랜드의 위상을 보여주는 시계들이 바로 이 공간 안에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예거 르쿨트르의 하이 컴플리케이션 워크샵은 브랜드에 관해 잘 모르는 이라도 한번 현장에 있게 되면 단숨에 브랜드에 매혹되게 만드는 마법의 공간입니다.
그만큼 이곳에서는 스위스 파인 워치메이킹의 정수를 볼 수 있으며, 드러내놓고 과시하지 않아도 그 가치를 대변하는 마스터피스들이 진정한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거 르쿨트르 매뉴팩처 투어는 이렇듯 첫 걸음부터 임팩트가 강한 워크샵으로 포문을 열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보게될 공간이 더욱 기대가 되었는데요.
이제 건물 2층에 위치한 메티에 다르 공방인 '아뜰리에 메티에 라르(Atelier Métiers Rares)'로 발길을 향했습니다.
아뜰리에 메티에 라르는 원래 별도의 건물에 분리돼 있었는데, 몇 달 전 하이 컴플리케이션 공방이 있는 건물 안으로 새롭게 합류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술적인 작업들이 파인 워치메이킹과 동떨어져서 진행되는 것이 아닌, 디자이너와 워치메이커, 젬세터, 에나멜러, 인그레이버 등이
다함께 서로 아이디어를 공유하면 더욱 창조적인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는 판단에서라고 하네요.
일례로 히브리스 아티스티카 컬렉션이나 최근에 발표하는 일련의 메티에 라르 버전의 하이 컴플리케이션 신작들을 보면,
예전의 기술적인 면만 강조하던 시절에 작별을 고하고 예술성과 심미성에 예거 르쿨트르가 기울이는 공을 새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메티에 라르 워크샵에서 가장 먼저 본 것은 수공 에나멜링 작업이었습니다.
순백의 점토 가루를 곱게 빻은 후 착색을 돕는 리퀴드와 컬러 안료를 섞어 배합하고 이를 얇은 붓으로 그야말로 한 올 한 올 한 점 한 점 섬세하게 그려 완성합니다.
메티에 라르 워크샵 입구 중앙에는 각 작업 과정을 확대해서 보여주는 원형의 테이블이 있었는데요.
몇몇 작업자들의 테이블 한쪽에 카메라를 설치해 해당 작업을 유리벽 바깥에서도 방문객들이 볼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여담이지만, 마침 저희가 방문했을 때 젊은 미남 에나멜러가 한창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요.
올해 SIHH 신모델 중 마스터 그랑 트래디션 미닛 리피터(Master Grande Tradition Minute Repeater, Ref. 50924E1)의 다이얼을 채색 중이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명화,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을 형상화한 다이얼을 너무나 차분하고 기민한 붓놀림으로 밑그림도 없이 색을 입히고 있더군요.
이렇게 미니어처 페인팅 작업이 완료되면, 다시 850도의 오븐에서 최소 8번을 구워내는 과정을 통해서야(대략 70~90시간 소요) 비로소 하나의 다이얼이 완성됩니다.
그런데 각각의 색이 열이 가해지는 정도에 따라 색상도 변하기 때문에 에나멜 페인터는 색채 변화를 정확히 계산해 의도했던 색상이 나오도록 작업을 조율해야 합니다.
고로 에나멜 페인팅은 섬세한 채색은 기본이고 수학적인 정확성까지 계산해야 하는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됩니다.
이렇기에 전문 에나멜러가 스위스 내에서도 많지 않은 이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