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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럿 시계 분야에서 제니스는 스위스의 여느 워치메이커와 비교해도 결코 손색없는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제니스의 파일럿 컬렉션이 대중적으로 크게 존재감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기계식 시계의 부흥과 맞물려 과거의 로망을 간직한 파일럿 시계의 명작들이 워치메이커들에 의해 복각 또는 재해석되고 있는 지금, 과히 파일럿 시계의 부흥기라고 해도 무방할 듯 한데 최초의 손목 시계이며 파일럿 시계라 자부하는 까르띠에의 산토스, 2차 세계대전의 로망을 간직한 IWC의 마크 시리즈와 빅파일럿 등 고급 시계 브랜드는 물론 해밀턴, 스토바 같은 대중적인 브랜드까지 파일럿 시계는 이미 그들의 대표적인 컬렉션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와 올해에 연속으로 선보이고 있는 제니스의 '파일럿 몬트레 디에로네프 타입 20' 시리즈는 파일럿 시계를 사랑하는 시계 마니아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니스의 파일럿 시계 역사는 19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프랑스의 비행사 루이 블레리오(Louis Bleriot)가 자신이 개발한 ‘블레리오 11호(Bleriot XI)’를 타고 프랑스에서 영국해협을 건너 영국 땅에 착륙한 것이 1909년 7월 25일 새벽 4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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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9년 최초로 비행기를 타고 영국해협을 건넌 루이 블레리오와 그가 착용했던 시계 >

37분만에 43km의 거리를 최초로 바다를 횡단하며 항공사상 위대한 업적으로 기록될 순간입니다. 이제 막 태동기에 접어 든 비행기의 역사에서 기술적 완성도가 불완전한 비행기를 타고 지상의 표식이 없는 바다를 제대로 된 항법장치 없이 건넌다는 것은 목숨을 건 도전이었습니다. 그리고 역사적인 순간에 루이 블레리오와 함께 한 것이 바로 제니스 파일럿 시계였습니다. 

루이 블레리오는 친필 문서를 통해 이 사실을 증명하는 문서를 남겼으며, 이것은 파일럿 시계의 역사에서 실제로 비행사가 그 시계를 착용하고 비행했음을 증명하는 가장 오래된 문서이기 때문에 '최초의 파일럿 시계가 제니스 시계다'라고 주장하는 역사적 근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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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 블레리오가 영국해협 횡단 비행 중 제니스 시계를 착용한 후 그 시계에 대해 “항공에 있어서 최고로 적합한 시계이며, 그 정확성에 더할 수 없는 만족도를 표한다” 라는 찬사를 남긴 서명  >

이렇듯 역사적인 순간과 함께한 제니스 파일럿 시계는 정확하고 견고한 시계로 신뢰를 쌓아갑니다. 파일럿이 탐험가와 동의어이던 시대에 제니스는 극한의 상황의 하늘 위에서 오차가 적은 완벽한 파일럿 시계를 만들기 위해 연구와 노력을 거급했고, 이런 제니스의 파일럿 시계에 대한 성과로 다이얼 윗부분에 ‘PILOT’을 표기할 수 있는 유일한 특허권을 가진 브랜드라는 명예를 얻게 됩니다. (현재 제니스를 제외하고는 어느 브랜드도 ‘PILOT’ 표기를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이런 제니스의 파일럿 시계에 대한 역사와 노력은 오늘날 대중들의 머리 속에서 많이 희석되어 버린 듯 합니다. 물론 제니스가 자신들의 전통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했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몬트레 디에로네프 컬렉션의 등장은 제니스의 잃어버린 영광을 되찾아 줄 회심의 카드가 될 듯 합니다.

프랑스 용어인 '몬트레 디에로네프'는 '탑승 시계'라는 의미로 어느 분야보다 가장 까다로운 조건들을 극복해야 하는 항공 분야에 있어 특별히 개발된 항공계기에 걸맞은 명칭입니다. 1930년대 중반에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타입 20'으로 알려진 오리지널 모델은 1938년 이후 프랑스 공군과 해군항공, 항공 시험 기관에 공식 공급되었고, 그외 수 많은 항공 계기판에 장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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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9년, 프랑스 공군 항공기와 프랑스 국제우편배송 회사인 에어블루(Air Bleu)에 공급되었던 몬트레 디에로네프 타입 20 오리지널 모델 >

물론 이때의 '몬트레 디에로네프 타입 20' 모델은 손목 시계는 아니었습니다. 이 오리지널 모델을 모티브로 현재의 손목 시계로 재탄생한 것이 지난해 바젤월드를 통해서였습니다. 이때 선보인 모델은 지름이 무려 57.5mm의 거대한 사이즈를 자랑했는데 자세한 소식은 바젤월드 2012 소식으로 대체합니다. 이 모델의 의미와 제니스의 크로노미터에 대한 노력은 타임포럼 링고칼럼의 '시계 탐험 5 : 수동 무브먼트 이야기 제 1 부 크로노미터' 도 한번 읽어 보시면 많은 도움이 될 듯 합니다.

https://www.timeforum.co.kr/3671742

https://www.timeforum.co.kr/3529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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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델은 실제로 착용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수집가들을 위한 특별판으로 봐야 할 듯 합니다. 더불어 시계 마니아들의 관심을 제니스로 돌리는데도 성공한 듯 보입니다.

그리고 올해에 보다 현실적인 사이즈의 모델들이 역시 바젤월드를 통해 선보였습니다. 역시 타임포럼 '바젤월드 2013 - 제니스' 소식을 통해 자세히 전한 바 있습니다.

https://www.timeforum.co.kr/7895415

투르비용, 애뉴얼 캘린더, GMT 모델입니다. 제니스의 컬렉션으로 확실히 완성되었지만 직경이 48mm 로 역시 실제로 착용하기에 만만한 사이즈는 아닌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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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40mm 케이스 직경에 심플한 기능을 가진 엔트리 모델이 같이 선보였는데 저를 포함한 귀족 손목을 가진 분들에게는 반가운 일입니다. 오늘 이모델을 리뷰해 볼까 합니다. (시계명은 그냥 뒤에 케이스 직경을 나타내는 40mm 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아래에서는 그냥 '40mm 모델'로 부르겠습니다. 오른쪽 같은 40mm 케이스의 모델은 여성들을 위한 파일럿 레이디 모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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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과 다른 항공 계기들로 인해 생긴 자성과 갑작스런 온도 변화, 격동적인 흔들림, 습도, 대기압 등의 극한 상황에서 견뎌내야 하는 파일럿 시계의 조건들은 파일럿 시계만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만들어 냈습니다. 40mm 모델 역시 블랙 다이얼과 대비되는 흰 색 야광 기능의 핸즈와 굵은 인덱스가 주는 뛰어난 가독성, 비행 중 편의를 위해 장갑을 낀 상태로도 조절이 가능한 커다란 크기의 크라운이 한눈에 파일럿 시계로 구분짓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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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경 40mm의 단아한 케이스 사이즈에 9시 방향의 스몰 세컨드 다이얼이나 전통미 물씬 풍기는 러그는 파일럿 시계의 계보에서도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 세대(세계 2차대전 이전)의 향수를 불러 일으킵니다. 모티브가 된 모델 역시 1930년대 모델이며, 최근의 복각되는 여러 파일럿 시계들의 원형이 초기 항공시대의 모델들을 모티브로 하는 것을 감안하면 제니스의 선택 역시 정확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파일럿 시계에서 발생하는 이런 과거지향성은 현대의 안락한 비행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초창기 파일럿 시계만 가진 로망이 녹아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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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께는 11.80 mm 입니다. 측면에서 본 케이스 역시 곡선미가 돋보이는데 전체적인 조화나 디테일한 가공 수준이 매우 뛰어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방수 성능은 100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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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레 디에로네프 타입 20 컬렉션은 다이얼만으로도 다른 파일럿 시계와 구분짓는 특별한 개성이 있습니다. 콕핏에 장착되었던 오리지널 모델을 충실히 재현해 낸 다이얼의 어느 시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핸즈의 인덱스가 그것입니다.

인덱스는 고유의 유니크한 폰트가 독특하고 묘한 매력을 발산하는데 맷 블랙 다이얼에 단차를 만들고 야광 프라스틱판 조각을 수작업으로 붙이는 공정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일반적인 프린팅 방식의 인덱스보다 작업공정이 까다로운 것은 당연한 일인데 인덱스에서 느껴지는 고급감과 입체감이 매력적입니다.

핸즈의 모양은 cathedral 형 핸즈입니다. 말 그대로 성당의 첨탑 모양을 한 핸즈로 현행 모델에서는 보기 힘들지만 포켓워치나 1900년대 초기의 시계에서 사용되던 고전적인 형태의 핸즈입니다. 그리고 루테늄(ruthenium) 도금을 한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다른 파일럿 시계의 경우 로듐 도금의 고광택 핸즈나 흰색 도료를 칠한 핸즈를 채용하고 있는데 반하여 루테늄 특유의 짙은 회색 컬러는 중후한 느낌을 진하게 발산하며 새틴 브러쉬드 처리된 표면은 강인하면서 남성적인 멋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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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광은 수퍼루미노바 SNL C1 도료로 야간에 충분한 성능을 보입니다. 하지만 다이버 시계류와 비교하면 조금 부족하다고 볼 수 있는데, 야광도료로 C1을 썼기 때문에 C3 도료를 주로 쓰는 다이버 시계의 야광보다는 성능이 떨어질 수 밖에 없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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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 모양의 커다란 크라운은 조작이 쉬우면서 손등을 자극하지 않도록 잘 가공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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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스 왼쪽 측면에는 모델의 시리얼 넘버가 패치 형태로 부착되어 있는데 고급 시계에서 볼 수 있는 형태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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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그는 두 부분이 연결된 일체형 구조입니다. 이런 구조의 러그를 가진 시계는 스트랩 교체를 할 수 있는 방법이 3가지입니다. 첫번째는 러그가 케이스에 완전히 용접되어 스트랩을 교체하기 힘든 구조입니다. 불편한 점이 크지만 고전적인 방식이기 때문에 시계의 오리지널리티를 추구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해할 부분입니다. 두번째는 단순히 겉모양만 비슷하게 만들고 실제로는 스프링바로 연결된 구조를 가진 것입니다. 세번째는 파네라이 라디오미르의 현행모델 처럼 나사를 풀어 케이스와 러그를 분리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라디오미르의 경우 러그 중간 부분을 분리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이 모델 역시 비슷하지 않을까 추측합니다. 자세한 구조에 대한 문의를 제니스에 했지만 공식적인 답변은 스트랩의 교체는 AS 센터에서 서비스해 준다는 답변입니다. 리뷰용 시계의 스트랩을 분리해 볼 수는 없었기 때문에 자세한 세부 구조를 알 수는 없어 당분간 실제 구매자의 포스팅을 기대하는 수 밖에 없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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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인 플랙시 글래스 스타일의 사파이어 크리스탈 글래스는 양방향 무반사 코팅 처리로 좋은 시인성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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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리드백 타입의 케이스백은 제니스의 파일럿 문장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전통적인 파일럿 시계의 케이스백을 이어 받고 있지만 씨스루백 타입의 케이스에서 볼 수 있는 제니스 특유의 별 로고가 각인된 로터를 볼 수 없다는 건 조금 아쉬운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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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착된 무브먼트는 제니스의 인하우스 무브먼트인 엘리트 681 무브먼트입니다. 엘프리메로와 함께 제니스를 대표하는 무브먼트로 주로 논크로노그래프 모델에 장착되고 있습니다.

직경 25,6 mm(11½ 리뉴)에 3.47mm 두께를 가진 무브먼트로 제니스에서 전방위적으로 쓰이는 무브먼트입니다. 128 개의 부품으로 27석, 28,800 vph (4 Hz), 50시간의 파워리저브를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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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랩은 굵은 스티치가 인상적인 브라운 컬러의 소가죽 스트랩을 기본 장착하고 있습니다. 경쟁 브랜드의 모델들이 대부분 악어가죽 스트랩을 기본 장착한다는 점에서 좀 아쉬운 부분입니다. 하지만 파일럿 시계의 오리지널리티를 살려냈다는 정도로 평가해 두겠습니다. 스트랩 뒤면은 고무 소재의 라이닝을 덧대어 내구성을 높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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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클은 제니스의 별 로고가 아름답게 장식된 핀버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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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용샷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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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레 디에로네프 타입 20 컬렉션은 대중들의 취향을 정확히 파악하고 제니스의 역사와 개성을 불어 넣었습니다. 특히 40mm 모델은 파일럿 시계의 전형적인 매력을 고스란히 간직하면서 제니스만의 독창성을 녹여 낸 뛰어난 완성미를 구현했습니다. 그리고 이 가격대에 찾기 힘든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장착했다는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장점입니다. 제니스가 방향을 제대로 잡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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