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발레드주를 대표하는 전통의 하이엔드 시계제조사 오데마 피게(Audemars Piguet)는 지난해 제네바 국제고급시계박람회(SIHH 2019)와 작별을 고하며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Code 11.59 by Audemars Piguet)로 명명한 새로운 컬렉션을 발표해 화제를 모았습니다.
-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 셀프와인딩 크로노그래프
이름부터 거창(?!)하기 이를 데 없는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는 오데마 피게가 모처럼 새롭게 선보이는 컬렉션이라는 사실과 메종의 아이콘인 로열 오크(Royal Oak)의 디자인 후광에서 벗어나고자 의식적으로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기준으로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의 생산량은 각 라인업 별로 극소량에 그쳤고, 그조차도 전 세계 지정된 부티크에서만 구매가 가능했기 때문에 국내 매장에서는 아예 신제품을 볼 기회조차 없었는데요. 런칭 첫 해의 반응이 고무적이었던지 올해부터는 국내 매장에서도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 주요 제품들을 만나볼 수 있게 됐습니다. 이에 타임포럼은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 셀프와인딩 크로노그래프 제품 2점을 공식 리뷰를 통해 보다 자세히 소개하고자 합니다.
- 1917년 발표한 최초의 팔각 케이스 여성 손목시계
- 1961년 발표한 비대칭형 케이스 손목시계
- 1972년 발표한 로열 오크 Ref. 5402
- 2002년 발표한 로열 오크 컨셉
ⓒ AP 헤리티지 컬렉션
약 145년 전인 1875년 시작된 오데마 피게의 유구한 시계 제조 역사를 돌이켰을 때, 이들은 초창기 시절부터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독특하고 때론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당대의 시계애호가들과 컬렉터들을 사로잡았습니다. 1917년 아르누보 스타일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팔각형 케이스의 여성용 주얼리 시계부터 1960년대 발표한 일련의 비대칭형 케이스 시계들(Asymmetrical Watches), 20세기 최고의 시계 디자이너 제랄드 젠타(Gérald Genta)의 손끝에서 1972년 탄생한 하이엔드 스포츠 시계의 대명사 로열 오크, 2002년 로열 오크 탄생 30주년을 맞아 선보인 초현대적인 디자인의 로열 오크 컨셉(Royal Oak Concept)에 이르기까지 오데마 피게는 기술적으로나 디자인적으로나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과 혁신을 추구해왔습니다. 2019년 런칭한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는 언뜻 평범한 가면을 쓴 것 같지만 시계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오데마 피게의 DNA속에 녹아있는 섬세한 파격의 디테일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 퍼페추얼 캘린더
컬렉션명 코드 11.59는 네 개의 알파벳과 시간에 해당하는 숫자를 조합한 것으로, C는 도전(Challenge)을, O는 소유(Own)를, D는 모험(Dare)을, E는 진화(Evolve)를 뜻하는 단어의 이니셜이고, 11시 59분은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자정 전의 기다림과 열망의 순간을 함축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중 절반인 3가지 라인업에 완전히 새롭게 개발한 인하우스 자동 무브먼트를 탑재했는데요. 셀프와인딩(데이트), 셀프와인딩 크로노그래프, 셀프와인딩 플라잉 투르비용이 그 주인공입니다. 새로운 컬렉션을 위해 아예 처음부터 새로운 무브먼트를 개발하는 것은 하이엔드 시계제조사의 자존심이 걸린 만큼 결코 대충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종류를 막론하고 독자적인 무브먼트를 개발하는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 일인지 우리는 여러 제조사들의 선례를 통해 어느 정도 잘 알고 있습니다. 매뉴팩처의 전통과 기술력(노하우), 그리고 제조 여건 삼박자가 딱 떨어져야만 하는 것은 물론 창의성 또한 이 조건들 속에 스며들어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해야만 합니다.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 컬렉션은 불과 1~2년 만에 기획해 뚝딱 완성한 결과물이 아니라 브랜드가 수 년간 비밀리에 야심 차게 준비한 노작(勞作)임을 알 수 있습니다.
- 새로운 자동 크로노그래프 칼리버 4401
세 종류의 완전히 새로운 인하우스 자동 무브먼트 중에서 단지 이번 리뷰 때문이 아니라 4401은 가장 주목해야 할 칼리버입니다. 4401은 인티그레이티드(Integrated, 통합) 설계를 기반으로 플라이백 기능을 지원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정확한 크로노그래프 조작을 위한 고급 부품인 컬럼 휠(Column-wheel)과 버티컬 클러치(Vertical clutch, 수직 클러치) 시스템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오데마 피게가 오랜 세월 절치부심 끝에 완성한 차세대 자동 크로노그래프라는 상징성뿐만 아니라, 무브먼트 곳곳에 담긴 섬세하면서도 기계적인 매력은 칼리버 4401에 태생적인 가치를 부여합니다.
- 칼리버 2385를 탑재한 대표적인 모델,
로열 오크 셀프와인딩 크로노그래프 38mm Ref. 26315ST
아시다시피 지난 십 수년간 오데마 피게를 대표하는 자동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는 프레드릭 피게(Frédéric Piguet, 현 블랑팡)의 1185 베이스를 수정한 2385였습니다. 두께가 비교적 얇기 때문에(5.5mm) 칼리버 2385은 로열 오크와 같은 스포츠 워치 컬렉션과도 조화롭게 잘 어울렸는데요. 애초 피게 베이스가 아니었다면 로열 오크 크로노그래프 시리즈의 지금과 같은 성공 또한 기대할 수 없었을지 모릅니다. 그만큼 피게 베이스가 시대를 앞선 뛰어난 설계의 자동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임을 방증하는 셈입니다. 오데마 피게는 최근까지도 2385를 남성/여성 라인 가리지 않고 폭넓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설계까지 100% 인하우스가 아니기 때문에 2385가 오데마 피게의 격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을 펼치곤 합니다. 물론 완전히 틀린 얘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지난 십 수년간 1185 베이스를 거듭 수정하면서 헤어스프링을 제외한 전 부품을 매뉴팩처 자체 제작하고 있는 만큼 2385를 AP 인하우스 칼리버로 간주하지 않을 근거 또한 희박해진 것이 사실입니다.
- 칼리버 3126/3840을 탑재한 대표적인 모델,
로열 오크 오프쇼어 셀프와인딩 크로노그래프 44mm Ref. 26405CG
반면 상대적으로 볼드한 사이즈를 자랑하는 로열 오크 오프쇼어 셀프와인딩 크로노그래프 라인업에는 인하우스 3120 베이스에 뒤부아 데프라(Dubois-Dépraz)의 크로노그래프 모듈을 얹어 수정한 칼리버 3126/3840이 탑재되고 있습니다. 2385 보다 칼리버 직경이 더 크고 파워리저브가 길어서 현대적인 스포츠 워치에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2385를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인하우스 혐의에서도 자유롭기 때문에 사파이어 크리스탈 케이스백을 통해 무브먼트도 당당히 노출하고 있습니다.
-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 셀프와인딩 크로노그래프 케이스백
얇고 우아한 크로노그래프 시계에 특화된 2385와 어느덧 안정기에 접어든 모듈형 크로노그래프 칼리버 3126/3840이 갖는 여러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오데마 피게는 오랜 세월 인티그레이티드 설계의 순도 100% 인하우스 자동 크로노그래프 칼리버를 향한 모종의 갈증을 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기계식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를 개발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요. 크로노그래프는 모든 컴플리케이션을 통틀어 퍼페추얼 캘린더 못지 않은(어쩌면 더욱) 고난도의 기술력이 요구되는데다 오데마 피게처럼 전 세계적으로 두터운 팬덤을 거느린 존경 받는 하이엔드 시계제조사일수록 업계의 이목때문에라도 더욱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리게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오데마 피게의 수장들은 이 원대한 프로젝트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고, 마침내 밀어붙인 결실이 바로 칼리버 4401입니다. 브랜드 관계자에 따르면 무브먼트 개발에만 약 5년이 소요됐다고!
-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 셀프와인딩 크로노그래프
여담이지만 칼리버 4401의 탄생 관련해 흥미로운 일화 하나가 있습니다. 오데마 피게 CEO 프랑수아-앙리 베나미아스(François-Henry Bennahmias)는 2013년 프로덕션 팀을 미팅 룸에 소환해 문을 걸어 잠그고 "새로운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 개발에 관한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놓기 전까지 아무도 이 방을 못 나간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카리스마 넘치는 CEO가 주도적으로 해당 프로젝트를 이끌었기 때문에 오히려 예상보다 더 빨리(!?) 새 인하우스 자동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의 개발 및 상용화까지 일사천리로 이어질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 셀프와인딩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자동 크로노그래프 칼리버 4401과 같은 해 데뷔한 쓰리 핸즈 데이트 형태의 자동 칼리버 4302가 매우 유사한 구조를 띠고 있다는 점입니다. 4302와 4401은 동일한 직경 32mm(14 라인)에, 같은 진동수(4헤르츠)와 파워리저브(70시간)도 공유합니다. 하지만 앞서도 강조했듯, 4401(4400 칼리버 시리즈)는 최초 디자인 단계서부터 통합형 자동 크로노그래프로 기획된 만큼 4302(4300 칼리버 시리즈)를 베이스로 크로노그래프 모듈을 얹어 수정한 형태가 아님을 먼저 선을 긋고 시작해야 합니다.
- 데이트 기능의 새로운 자동 칼리버 4302
반대로 4401 개발 과정에서 4302는 부수적으로 얻어진 결실로 보는 쪽이 더 이치에 맞습니다. 오데마 피게는 이미 충분히 검증된 우수한 구조의 인하우스 자동 칼리버 3120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또 다른 데이트 기능의 베이직한 자동 워크호스의 개발을 서두를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 시스루 케이스백을 통해 드러나는 4401 칼리버
4401은 칼리버 사이즈부터 2385(직경 25.6mm)와 3126/3840(직경 29.92mm) 보다 크고(직경 32mm), 두께는 2385(두께 5.5mm) 보다는 두껍지만 3126/3840(두께 7.16mm) 보다는 얇은 6.8mm입니다. 데이트 기능의 칼리버 4302과 마찬가지로 외부 충격에 강한 밸런스 브릿지 형태를 띠고 있고, 기존에 볼 수 없던 키를 연상시키는 새로운 형태의 레귤레이터를 추가했으며, 3개의 암과 관성을 조절할 수 있는 6개의 웨이트를 갖춘 상대적으로 직경이 큰 밸런스 휠을 갖추고 있습니다. 총 367개의 부품과 40개의 주얼로 구성돼 있으며, 투명 사파이어 크리스탈 케이스백을 통해 드러나는 무브먼트 좌측에 조작계 부품인 컬럼 휠을, 그리고 바로 옆쪽 하단에 전달계 부품인 복층 구조의 수직 클러치를 갖추고 있습니다.
푸셔 조작시 클러치 레버가 당겨지면서 클러치 휠과 센터 크로노그래프 휠을 연결해 4번 크로노그래프 휠에 동력을 전달하는 전통적인 수평 클러치 방식과 달리, 수직 클러치는 센터 크로노그래프 휠 밑에서 클러치 휠이 위/아래로 혹은 집게 형태로 개폐되면서 연결되었다가 분리되는 구조를 지니고 있어 휠과 휠이 맞물리는 구조보다 상대적으로 불필요한 마찰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또한 스타트시 센터 세컨드 핸드의 튕김 현상도 방지할 수 있어 작동 안정성 측면에서 유리한 점이 많지요. 롤렉스의 4130, 브라이틀링의 B01, 오메가의 9300, 예거 르쿨트르의 751, 몽블랑의 MB R200 등 현대의 유명한 매뉴팩처 자동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들이 대체로 컬럼 휠과 버티컬 클러치 조합을 선호하는 것도 이러한 작동 안정성을 의식한 결과입니다.
칼리버 4401은 리셋 해머의 구조도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보통 나무가지나 포크를 연상시키는 양 갈래의 단일 블록으로 구성된 리셋 해머 형태를 사용하는데 반해, 4401은 3개의 트윈(양방향) 해머와 해머 스프링 세트로 구성돼 있어 리셋시 (이러한 표현이 가능하다면) 마치 지네와 같은 절지동물의 움직임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건 말로는 설명이 참 난감한데, 무브먼트 상단에 위치한 여러 겹의 복잡하게 얽힌 듯한 강화스틸 부품들이 리셋 기능시 작동하는 부품들입니다. 의도적으로 복잡하게 만들어서 시각적인 흥미를 유발시키는 측면도 있지만, 센터 세컨드 핸드와 연결된 하트 쉐입 캠을 브레이크(Brakes) 부품이 건드려서 0점으로 복귀시키는 전통적인 리셋 구조와는 차별화된 구조를 선택함으로써 앞서 열거한 타사의 매뉴팩처 자동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들과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하이엔드 제조사 특유의 자긍심이 투영된 설계로 볼 수 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각 해머와 연결된 해머 스프링부터 곤충의 촉수를 연상시킬 만큼 얇고 섬세한 형태를 띠고 있어 이렇게 가공/마감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보통 이 정도의 섬세한 부품들은 미닛 리피터나 퍼페추얼 캘린더 기능을 포함한 그랑 컴플리케이션 사양의 시계들에서나 접할 수 있는 편입니다. 한편 플라이백 기능을 지원하기 때문에 스타트-스톱-리셋 3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리셋 후 재측정이 가능한 만큼 관련 부품들이 컬럼 휠을 중심으로 여러 겹으로 더욱 정교하게 맞물려 있습니다.
무브먼트의 각 브릿지 상단은 어김없이 코트 드 제네브(Côtes de Genève, 제네바 스트라이프) 마감되었으며, 각 모서리는 얕게 사면(베벨링) 처리 후 다이아몬드 파우더를 묻힌 툴로 미러 폴리시드 마감해 하이엔드 피니싱의 면모를 과시합니다. 크로노그래프 기능 관련 스틸 부품은 상단면을 새틴 브러시드 마감하고 원형의 헤드나 스크류는 폴리시드 마감했습니다. 공식 스펙상으로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3120 베이스의 3126/3840와 마찬가지로 마찰에 강한 세라믹 소재의 볼 베어링을 사용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22캐럿 핑크 골드 로터 중앙의 선버스트 브러시드 마감한 상단면에 8개의 보어 홀(구멍)을 추가한 형태도 눈길을 끕니다. AP 브랜드 로고를 강조하면서 스켈레톤 가공한 로터를 적용해 독자적인 자동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를 최대한 가리지 않고 감상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혹자는 오데마와 피게 가문의 문장을 새긴 이전 세대 인하우스 무브먼트의 장식 디자인을 선호할 수도 있겠지만, 샤프하고 모던한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 컬렉션에는 지금의 이니셜 로고 형태의 스켈레톤 로터 디자인이 훨씬 잘 어울린다는 생각입니다.
신형 무브먼트에 관한 설명이 예상보다 길어졌습니다. 이제 케이스 및 다이얼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 셀프와인딩 크로노그래프의 케이스는 핑크 골드와 화이트 골드 두 가지 소재로 선보입니다. 직경 41mm, 두께 12.5mm 크기의 케이스는 정면에서 봤을 때는 일반적인 원형의 케이스처럼 보이지만 측면에서 보면 미들 케이스 형태가 팔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쯤에서 우리는 옥타곤(Octagon, 8각형) 베젤로 유명한 로열 오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데요. 메종의 아이코닉 컬렉션을 관통하는 디자인 코드를 어떤 식으로든 차용하고자 한 열의가 엿보입니다.
다만 이런 식으로 쉐입 인 쉐입 형태를 띠게 되면 일반적인 라운드 케이스에 비해 제조 공정은 복잡해지게 마련입니다. 러그 또한 케이스에 통합된 형태가 아닌 따로 제작해 얇은 베젤부에 이어 붙인 일명 웰디드(Welded) 러그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러그 형태도 일반적이지 않아서 가운데 부분을 오픈워크 가공하고, 상단면은 새틴 브러시드, 측면은 얕게 베벨드 및 폴리시드 마감했습니다. 한편 스트랩을 연결하는 러그 양쪽의 고정 스크류는 육각형을 채택해 이 또한 로열 오크의 그림자를 느낄 수 있게 합니다(로열 오크의 팔각 베젤을 고정하는 스크류 역시 일자로 홈이 파인 육각 스크류임).
볼륨감 있는 케이스에 비해 얇은 베젤과 입체적인 러그 구조 덕분에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 셀프와인딩 크로노그래프는 스펙 보다 시계가 좀 더 커 보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계의 숨은 백미는 전면 글라스인 사파이어 크리스탈에 있습니다. 가운데가 다소 볼록한 만곡형의 케이스 라인을 따라 완만하게 아치(커브) 형태를 띠고 있는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 셀프와인딩 크로노그래프의 사파이어 크리스탈은 일반적인 사파이어 크리스탈과 달리 카메라나 현미경 속 렌즈와 같은 광학 크리스탈(Optical Crystal)과 흡사한 구조를 띠고 있습니다.
정면에서 봤을 때는 평평한 글라스처럼 보이지만 측면에서 보면 특유의 깊이감과 함께 여러 겹의 층이 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조금 식상한 표현 같지만 로마 콜로세움의 원형 극장을 연상시킬 만큼 측면에서 보는 각도에 따라 상당히 입체적인 느낌이 도드라집니다. 이러한 류의 사파이어 크리스탈을 타사 제품에서는 본 기억이 없는 것 같습니다.
멀티 피스 골드 케이스의 형태부터 세세한 마감 처리, 글라스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 컬렉션은 실물을 보면 볼수록 ‘역시 하이엔드 답다’는 표현이 절로 나올 만큼 디테일의 향연을 보여줍니다. 평범한 듯 결코 평범하지 않은, 미세한 디테일의 차이가 이 시계의 진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여기에 말끔하고 고급스러운 다이얼이 더해졌습니다. 반짝반짝 윤기가 도드라진 다이얼은 언뜻 봐서는 에나멜이나 세라믹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블랙 혹은 블루 컬러 래커 마감한 다이얼입니다.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 셀프와인딩 플라잉 투르비용 모델에는 실제 그랑 푀 에나멜 다이얼을 적용하기도 했으니 뭐 아예 동떨어진 얘기는 아닙니다만, 현실적으로 실질적인 세일즈 피스들인 데이트와 크로노그래프 라인업에까지 에나멜 다이얼을 적용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타키미터 스케일을 새긴 챕터링 역시 다이얼 바탕과 같은 컬러로 래커 마감했습니다.
블랙 혹은 블루 컬러 래커 처리 및 폴리시드 마감한 다이얼 위에 놓여진 아플리케 타입의 아워 마커(인덱스)와 카운터, 그리고 핸즈는 케이스와 동일한 18K 핑크 골드 혹은 화이트 골드 소재를 사용했습니다. 반면 12시 방향의 브랜드 로고는 24K 핑크 골드 혹은 화이트 골드 소재를 사용하면서 레이저 커팅 방식이 아닌 마이크로 전자공학에서 유래한 특수 갈바닉 공정을 활용해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정밀도로 제작, 3D 효과까지 살려 입체적으로 마감되었습니다. 오데마 피게 측에 따르면 24K 골드 베이스에 해당 갈바닉 공정을 적용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케이스 및 다이얼은 전체적으로 미려하게 마감되어 흠을 찾기 어렵습니다. 디자인적으로는 개인차에 의해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지만, 적어도 피니싱 측면에서는 이견을 갖기 어려울 것입니다. 다만 컬렉션의 캐릭터가 모호한 점은 다소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전통적인 드레스 워치 느낌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스포츠 워치 느낌과도 거리가 있기 때문에 두 경계를 명확하게 따지는 분들에겐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뻔한 드레스 워치 느낌이 아니라서 캐주얼한 차림에도 이질감 없이 무난하게 잘 어울릴 것 같아 좋다고 하실 분들도 있을 줄 압니다. 어떤 틀에 갇히기를 거부하는 듯한 이러한 디자인적인 모호함 혹은 중의성도 어쩌면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 컬렉션을 관통하는 숨은 매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상으로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 셀프와인딩 크로노그래프 리뷰를 마칩니다. 리뷰로 살펴본 두 제품, 화이트 골드 케이스 블루 다이얼 버전(Ref. 26393BC.OO.A321CR.01)과 핑크 골드 케이스 블랙 다이얼 버전(Ref. 26393OR.OO.A002CR.01) 모두 5월 현재 기준,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Tel. 02-3449-5917) 및 신세계백화점 강남점(Tel. 02-3479-1809) 오데마 피게 매장에 입고된 상태입니다. 국내 출시 가격은 두 모델 동일하게 5천 9백만 원대. 70시간 파워리저브를 보장하는 차세대 인하우스 자동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로 무장한 클래식하면서도 유니크한 디자인의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 셀프와인딩 크로노그래프 워치를 이제 국내 매장에서 만나보세요.
디자인이랑 가격 생각하면 경쟁자가 너무 많죠... 당장 랑에만 해도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