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60년대는 손목시계의 황금기라 해도 좋을 만큼 오래 회자될 명작 시계들이 많이 탄생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회중시계에서 손목시계로 대중의 취향이 완전히 옮겨가면서 스위스 시계제조사들은 다각적인 시도를 거듭하여 전례 없는 유형의 시계들을 선보이기 시작했고, 훗날 스포츠 워치 혹은 다이버 워치(다이빙 워치)로 분류되는 특별히 활동성을 강조한 시계들이 젊은 세대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차츰 업계의 주류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 1962년 제작된 오리지널 캡틴 쿡
1957년 런칭한 방수 손목시계 골든 호스(Golden Horse)를 기점으로 시계제조사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라도(Rado)는 1962년 세계 최초의 스크래치 방지 시계인 다이아스타 1(DiaStar 1)을 선보이는 등 창립 이래 가장 왕성한 창작력을 자랑했습니다. 비슷한 시기 출시한 캡틴 쿡(Captain Cook)은 스포티한 디자인을 강조한 브랜드 최초의 다이버 워치로 그리 길지 않은 라도의 시계 제조 역사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18세기 활약한 영국의 전설적인 탐험가 제임스 쿡(James Cook)의 별명에서 착안한 '캡틴 쿡'이라는 이름은 실제 탐험가들이 착용해도 좋을 만큼 튼튼하게 제작된 해당 시계의 컨셉과 절묘하게 어울렸고, 당대의 다이버 워치와 차별화한 개성적인 디자인은 캡틴 쿡을 후대에까지 잊혀지지 않게 했습니다.
그 후 무려 50여 년의 세월이 흐른 2017년, 라도가 잊혀진 모델인 캡틴 쿡을 다시 소환한 이유는 자명합니다. 현 시계 업계를 관통하는 '레트로(Retro, 복고풍)' 트렌드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그 동안 소홀히 한 영역을 헤리티지의 재발굴을 통해 보상 받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라도는 지난 30여 년간 우직하게 하이테크 세라믹 소재의 연구 및 개발을 통해 해당 시계 분야의 일인자로 우뚝 섰습니다. 차별화된 소재와 고유의 미니멀리즘 디자인을 기반으로 독자적인 컬렉션을 구축한 성취는 물론 대단히 의미 있는 것이지만, 라도의 풍성한 헤리티지를 기억하는 팬들로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는 의견이 없질 않았는데요. 그렇기에 캡틴 쿡을 포함한 역사적인 모델을 재현한 복각 에디션의 연이은 출시는 세라믹에 국한되지 않는 라도의 폭넓은 스펙트럼과 새로운 성장 가능성을 환기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고무적인 것이었습니다.
캡틴 쿡의 성공적인 부활에 고무된 라도는 올해 처음으로 42mm 버전을 대거 추가하며 본격적인 라인업 확장을 꾀하고 있습니다. 그 전까지 남성용 45mm 버전과 오리지널을 가장 충실하게 계승하면서 여성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37mm 버전만 선보였기에 그 중간에 해당하는 사이즈의 출시를 희망했던 이들에게 희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게다가 컬러 베리에이션은 더욱 다양해졌습니다. 기존의 블랙 외 그린, 블루, 브라운, 그레이 등 다이얼은 물론 단방향 회전 베젤의 세라믹 인서트까지 해당 컬러로 통일해 산뜻한 인상을 강조합니다. 몇 종의 컬러 베리에이션 중 타임포럼은 그린 컬러 가죽 스트랩 버전(Ref. R32505315)을 공식 리뷰를 통해 보다 자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 2019년 신제품, 캡틴 쿡 오토매틱 42mm
캡틴 쿡 오토매틱 42mm 신제품은 기존의 45mm, 37mm 버전과 사이즈를 제외하면 사실 크게 달라진 점은 없습니다. 하지만 시계에 있어서 사이즈는 단 몇 미리의 차이일지라도 결정적인 차이를 드러내게 마련입니다. 케이스 및 브레이슬릿 소재에 있어서도 45mm 버전처럼 티타늄이 아닌, 37mm 버전처럼 스테인리스 스틸로 선보임으로써 미묘하지만 확실한 차이를 보입니다. 그러면서 또 방수 사양은 45mm 버전을 따르고 있지요(200m 방수). 45mm는 다소 크고, 37mm는 또 너무 작고 예스럽다고 할 만한 사람들에게 42mm는 결과적으로 탁월한 선택입니다. 물론 42mm 보다 더 작은 사이즈를 희망하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특히 아시아 남성들!). 하지만 폭이 다소 넓은 회전 베젤의 직경까지 고려하면 이보다 더 작은 사이즈는 시계가 고시된 스펙 보다 더 작게 느껴질 확률이 큽니다. 그리고 기존 37mm 버전과의 차이도 크지 않기 때문에 사이즈 베리에이션을 추가하는 의미가 없게 됩니다. 이렇듯 여러 관점에서 봤을 때 새로운 42mm 사이즈는 상당히 고심 끝에 결정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클래식한 블랙과 브라운, 그리고 스포티한 그린과 블루 이렇게 4가지 컬러 버전은 전체 폴리시드 가공한 스틸 케이스에 회전 베젤에도 유광으로 마감한 세라믹 인서트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반면 그레이 컬러 버전 하나만 브러시드 가공한 스틸 케이스에 세라믹 베젤 인서트 또한 무광으로 마감해 미감의 차이를 보입니다. 왜 그레이 버전만 마감 처리를 다르게 했는지는 라도의 R&D팀 수장만이 만족할 만한 답을 들려줄 수 있겠지만, 실제 시계를 보면 여러분들도 어렴풋이 이해가 될 줄 압니다. 그레이 특유의 은은하게 고급스러운 느낌을 살리는데 유광 보다는 무광 쪽이 훨씬 적합한 선택이었음을 말이지요.
그리고 다이얼 디테일도 유광 케이스와 무광 케이스에 따라 결정적인 차이를 보입니다. 그레이 버전만 매트하게 마감하고, 다른 블랙, 블루, 브라운, 샴페인(한정판), 그린 컬러 버전은 모두 결이 곱게 새틴 선버스트(선레이) 마감 처리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62년 오리지널 모델에도 선버스트 다이얼이 적용되었으니 이쪽이 좀 더 정확한(?!) 빈티지의 재현이라 하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공감하겠지만 여러 컬러 베리에이션 중 유독 그린 버전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최근 시계 업계를 강타한 그린 컬러 트렌드를 의식한 결과물인 셈이지만, 컬러톤이나 전체적인 밸런스가 상당히 조화롭습니다. 특히 세라믹 베젤 인서트의 컬러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그린 컬러 다이얼 시계를 내놓는 회사는 많지만, 베젤까지 그린 컬러 세라믹을 적용하는 회사는 손에 꼽습니다. 왜냐면 지르코니아 베이스를 선명한 컬러로 염색하고 가공, 소결 단계에서까지 안정화할 수 있는 기술과 제조 노하우를 가진 회사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언뜻 당연시 되고 간과하기 쉬운 디테일이지만 시계를 구성하는 이러한 작은 소재의 차이가 근본적으로 그 브랜드의 기술력을 드러냅니다.
- 2019년 신제품, 트루 씬라인 레 컬러스 르 코르뷔지에
'소재의 마스터'를 자부하는 라도는 30년 넘게 축적한 하이테크 세라믹 시계 제조 기술력을 바탕으로 다채로운 컬러의 하이테크 세라믹 시계를 출시하고 있습니다. 기본 블랙, 화이트 외 그레이, 브라운, 블루, 그린, 최근에는 레드, 핑크, 베이지 등 세라믹 소재로 가히 레인보우(무지개) 베리에이션까지 소화할 수 있을 만큼 이 분야의 부인할 수 없는 권위자임을 증명해 보이고 있습니다. 타 브랜드와 달리 라도는 비단 베젤 인서트 소재뿐만 아니라 케이스 및 브레이슬릿 전체까지 해당 컬러 하이테크 세라믹 소재를 도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보적입니다. 물론 메탈 케이스로만 선보이는 캡틴 쿡은 라도의 장기이자 시그니처인 하이테크 세라믹의 장점이 크게 부각되는 컬렉션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세라믹 베젤 인서트의 선명한 컬러감과 견고한 만듦새 하나만으로도 하이테크 세라믹 시계 일인자다운 클래스를 새삼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편 그립감을 좋게 하기 위해 테두리를 요철 가공한 스틸 소재의 단방향 회전 베젤(일명 코인- 엣지 베젤)에는 스크래치 방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세라믹 인서트와 함께 안쪽에는 120 클릭 래칫을 적용하여 회전시 부드러운 조작을 보장합니다. 또한 시계를 측면에서 봤을 때 안쪽으로 살짝 기울어진 특유의 베젤 형태 덕분에 박스 형태의 사파이어 크리스탈 글라스가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불룩하게 위로 솟은 글라스 형태는 오리지널 모델의 버블형 플렉시글라스를 재현하기 위함입니다.
반면 세라믹 베젤 인서트의 마커와 눈금은 레이저 인그레이빙 후 메탈 소재를 녹여 채우는 식으로 완성했습니다. 인서트에는 야광도료를 따로 추가하지 않았으며, 다이얼에는 화이트 컬러 야광도료인 수퍼루미노바를 아워 마커와 핸즈에 두툼하게 도포해 야간 및 다이빙 환경에서 충분한 가독성을 보장합니다. 선버스트 마감해 보는 각도에 따라 컬러감이 도드라지는 다이얼은 브러시드 가공한 스틸 소재의 챕터링과 화이트 컬러 수퍼루미노바 아워 마커와도 선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그리고 12시 방향에는 라도 브랜드 로고와 함께 어김없이 닻 모양의 심볼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조 루비 플레이트 바탕에 로듐 도금 처리한 해당 닻 심볼은 시계가 작동하는 동안 천천히 움직입니다.
케이스와 다이얼의 전체적인 마감 상태는 시계의 금액대나 스포츠/다이버 워치로서의 정체성을 생각하면 딱히 흠을 찾기 어려울 만큼 준수한 편입니다. 무브먼트는 ETA의 범용 자동 2824를 기반으로 진동수를 수정하고(4헤르츠에서 3헤르츠로), 파워리저브를 2배 넘는 80시간으로 수정한 ETA C07.611 칼리버를 탑재했습니다. 워낙 오랜 세월 검증된 안정적인 자동 베이스에 파워리저브 성능까지 큰 폭으로 개선함으로써 최근 스와치 그룹 산하 브랜드들(라도, 티쏘, 미도, 해밀턴 등) 사이에서 차세대 워크호스로 가장 널리 애용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해당 80시간 칼리버에 자성에 영향을 받지 않는 실리시움(실리콘) 소재의 헤어스프링을 적용하고, 별도로 크로노미터 인증(COSC)까지 받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대중지향적인 라인인 캡틴 쿡에는 이 같은 업그레이드 옵션은 생략했습니다.
스크류다운 스틸 케이스백 형태로 무브먼트를 감상할 수는 없지만, 중앙에 세 마리의 해마와 별(혹은 불가사리?) 모양을 엠보싱 조각해 다이버 워치로서의 특색을 드러냅니다. 케이스 직경에 비해 두툼한 크라운 역시 스크류다운 형태로 200m 방수 사양에 기여합니다. 참고로 케이스 두께는 스펙에 따르면 12.1mm로, 두툼한 박스 형태의 사파이어 크리스탈을 감안하고도 다이버 모델치고는 얇은 편에 속합니다. 적당한 사이즈와 두께 덕분에 착용감도 상당히 좋은 편입니다. 그리고 퀄리티 좋은 가죽 스트랩과 브레이슬릿 역시 착용감을 좋게 합니다.
리뷰 제품에는 스웨이드 질감으로 가공한 브라운 컬러 소가죽 스트랩을 장착했지만, 라이스 그레인(쌀알) 형태 7연의 링크로 구성된 스틸 브레이슬릿 제품도 함께 출시되고 있습니다. 다른 컬러 베리에이션 역시 마찬가지로 가죽 스트랩 외 스틸 브레이슬릿을 동시에 지원하며, 각각 개별 구매가 가능합니다. 특히 링크가 조밀한 쌀알 모티프의 브레이슬릿은 착용시 손목에 찰싹 감기는 맛이 있으며, 그 자체로 시계를 관통하는 레트로 스타일을 더욱 강화하는 효과를 선사합니다. 캡틴 쿡 신제품을 좀 더 가볍고 캐주얼하게 즐기고자 하는 분들은 가죽 스트랩을, 컬렉션 본연의 빈티지한 느낌에 시너지 효과를 주고 싶은 분들은 스틸 브레이슬릿을 선택하면 될 것 같습니다.
캡틴 쿡 오토매틱 42mm 신제품의 국내 출시가는 2백 34만 원으로, 가죽 스트랩과 스틸 브레이슬릿 버전의 가격이 동일합니다. 지난 주 국내 매장에 전 컬러 버전이 입고되어 판매 중이니 관심 있는 분들은 가까운 백화점 내 라도 매장에서 직접 제품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캡틴쿡 멋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