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2년 미국 펜실베니아주 랭카스터에서 탄생한 해밀턴(Hamilton)은 1974년 스와치 그룹의 전신인 SSIH 합병을 계기로 스위스 시계제조사로 거듭나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태생적인 배경에 근거해 이들은 아메리칸 스피릿과 스위스의 정확성을 추구하는 것을 브랜드의 정체성으로 삼고, 카키, 벤츄라, 재즈마스터, 브로드웨이 등 주요 컬렉션을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젊은 감각을 투영해 성공적으로 구축하고 있습니다.
- 제10회 해밀턴 비하인드 더 카메라 어워드(BTCA 2018)에 시상자로 참석한 배우 라미 말렉
미국 태생의 시계 브랜드이기에 해밀턴과 미 영화계 특히 할리우드와의 인연은 매우 지속적이고 끈끈합니다. 지난 90여 년간 무려 500편이 넘는 영화 속에서 해밀턴의 시계가 등장했고, 2006년부터는 해밀턴 비하인드 더 카메라 어워드(Hamilton Behind the Camera Awards, BTCA)를 제정해 카메라 뒤에서 헌신하는 영화제작자들의 노력을 재조명하고 있습니다.
- 최초로 할리우드 영화 속에 등장한 해밀턴의 1930년대 플린트릿지 시계
해밀턴 시계가 최초로 등장한 영화는 1932년 개봉한 마를린 디트리히(Marlene Dietrich) 주연의 '상하이 익스프레스(Shanghai Express)'로, 당시 유행한 아르데코 디자인에 마치 헌터 케이스처럼 힌지(경첩)로 열고 닫을 수 있는 커버를 갖춘 플린트릿지(Flintridge)가 이름을 알렸습니다.
1951년 영화 '프로그맨'을 통해 데뷔한 해밀턴 밀리터리 워치 특유의 디자인은 현행 카키 네이비 프로그맨 시리즈로 계승되고 있다.
이후 미 해군 수중 폭파팀(UDT) 대원들의 전우애를 다룬 1951년 영화 '프로그맨(The Frogmen)'에서는 링크로 연결한 독창적인 크라운 잠금 장치가 돋보이는 방수 시계- 군용 수통을 연상시킨다해서 '밀리터리 캔틴(Military Canteen)'이라는 별칭이 붙음- 가 긴박한 작전 상황을 헤쳐나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함으로써 해밀턴의 명성을 알리는데 기여했습니다.
해밀턴 벤츄라는 영화 '블루 하와이'에서 엘비스 프레슬리가 착용함으로써 전설이 되었다.
그리고 10년 뒤인 1961년, 영화 '블루 하와이(Blue Hawaii)'에서 당대 최고의 청춘스타이자 로큰롤의 제왕으로 불리는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가 해밀턴의 혁신적인 전자 손목시계인 벤츄라(Ventura)를 착용합니다. 이후 벤츄라는 '엘비스 시계'라는 별명을 얻으며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1960년대 당시만 하더라도 스타 마케팅, 대중매체를 통한 PPL(간접광고)의 개념 자체가 전무했던 터라 엘비스 프레슬리와 벤츄라의 성공은 후대에 수많은 브랜드들에도 적잖은 참고 사례가 되었습니다.
- 군 복무 시절 벤츄라를 착용한 엘비스 프레슬리
1957년 런칭한 벤츄라는 미국의 저명한 산업 디자이너 리차드 알비브(Richard Arbib)가 참여한 최초의 손목시계로, 비대칭 삼각형 모양의 방패 혹은 부메랑을 연상시키는 특유의 미래지향적인 디자인만으로도 아이코닉 워치가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나아가 슈퍼스타 엘비스 프레슬리가 '블루 하와이'에서 착용한 모습이 몇몇 장면에서 클로즈업되면서 보다 확실하게 존재감을 알릴 수 있었습니다. 영화 출연 이전부터 벤츄라를 매우 좋아했던 엘비스는 1958년 미 육군에 입대해 독일에서 복무할 때도 벤츄라 시계를 항상 착용했고(그의 동료들은 카키 스타일의 시계를 선호했지만), 그가 군복 차림에 벤츄라를 착용하고 찍은 사진은 여러분들도 어딘가에서 한 번쯤은 보신 기억이 있을 줄 압니다.
- '맨 인 블랙 3'에서 벤츄라를 착용한 윌 스미스와 토미 리 존스
- 1969년 배경에서 착용한 벤츄라 미디움 사이즈 쿼츠 모델(사진 좌)과 2012년 현재 배경에서 착용한 벤츄라 XXL 사이즈 오토매틱 모델(우)
1968년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의 선구적인 SF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2001: A Space Odyssey)'에는 애초 영화를 위해 해밀턴이 커스텀 제작한 시계(클락)가 등장했고, 이후 1997년 세계를 강타한 블록버스터 영화 '맨 인 블랙(Men in Black)'에서는 제임스 에드워드/J 요원 역의 윌 스미스(Will Smith)가 해밀턴의 벤츄라 스틸 시계를 선택하는 모습이 등장해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를 계기로 2012년 개봉한 '맨 인 블랙 3(Men in Black 3)'에서는 두 요원들이 1969년과 2012년 각 시대적 배경에 따라 다른 사이즈와 디자인의 벤츄라 시계를 착용해 시계애호가들을 열광시켰습니다.
- 영화 '진주만'의 스타 벤 애플렉과 카키 필드 메카니컬 시계
영화 속에서는 데이트 창이 없는 핸드와인딩 모델을 착용했다.
그리고 2001년 개봉한 영화 '진주만(Pearl Harbor)'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극중 레이프 맥컬리 대위 역의 벤 애플렉(Ben Affleck)이 해밀턴의 카키 필드 메카니컬(Khaki Field Mechanical) 시계를 착용한 모습도 영화의 극적인 재미와 어우러져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게다가 영화 속 시대 배경이 제2차 세계대전이었기에 실제 당시 미 육군에 납품된 역사를 자랑하는 컬렉션의 기원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 영화 '마션' 속에 등장한 해밀턴의 빌로우제로
한편 2015년 개봉한 리들리 스콧의 SF 영화 '마션(The Martian)'에서는 마크 와트니 역의 배우 맷 데이먼(Matt Damon)이 해밀턴의 카키 네이비 빌로우제로(BelowZero) 올-블랙 1000m 다이버 모델을 착용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 사진 좌측부터 X-01, X-02, ODC X-03 순
또한 2017년에는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의 우주선 인듀어런스(Endurance) 호에서 디자인 영감을 얻어 '인터스텔라'의 미술 총감독 나단 크로리(Nathan Crowley)가 디자인에 참여한 ODC X-03 리미티드 에디션도 주목을 받았습니다. ODC X-03 한정판은 전설적인 SF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영감을 얻어 해밀턴이 2006년과 2009년에 각각 출시한 X-01과 X-02의 뒤를 잇는 미래지향적인 아방가르드 디자인 컨셉을 바탕으로 나단 크로리를 통해 영화 '인터스텔라'와의 접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 ⓒ Warner Bros.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의 21세기 SF 걸작 '인터스텔라' 화제를 꺼낸 김에 이제부터 본격적인 제품 리뷰에 들어가고자 합니다. 왜냐면 오늘 리뷰의 주인공이 바로 '인터스텔라'와 뗄래야 뗄 수 없는 시계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신 분이라면 후반부 나사(NASA)의 우주비행사인 주인공 쿠퍼(매튜 맥커너히)가 초차원적 공간인 테서렉트(Tesseract) 안에서 미래의 성장한 딸 머피(제시카 차스테인)에게 자신이 떠나기 전 건넨 시계를 통해 모스 부호 형태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감동적인 장면을 기억하실 겁니다. 당시 등장한 시계에 인터스텔라 팬들은 '머피(The Murph) 워치'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는데요. 오리지널 머피 워치는 영화 '인터스텔라'를 위해 해밀턴이 특별 커스텀 제작, 제공한 것이었습니다.
- 영화 '인터스텔라'를 위해 특별 제작한 '머피 워치'의 드로잉 이미지
영화 속에서 '머피 워치'는 단순 소품이나 간접광고용 액세서리가 아닌 극의 흐름마저 바꾸는 중요한 장치이자 영화의 주제의식을 집약한 결정체로까지 승화되는데요. 시계 디자인을 위해 해밀턴은 '인터스텔라'의 미술 총감독 나단 크로리와 손을 잡았습니다. 영화의 큰 성공에 힘입어 '인터스텔라'를 감명 깊게 본 팬들 중에는 영화 속의 머피 워치를 보고 왜 판매용 제품으로 출시하지 않느냐는 문의가 쇄도했다고 합니다. 이에 해밀턴은 오랜 심사숙고 끝에 4년여 만에 머피 워치를 마침내 현행 카키 컬렉션을 통해 선보이기로 결정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보고 계시는 카키 필드 머피(Khaki Field Murph)가 바로 그 결실입니다.
- 카키 필드 머피 오토 신제품 Ref. H70605731
영화와의 연계성을 강조해 ‘인터스텔라 머피 워치’라는 별칭이 붙은 카키 필드 머피는 카키 컬렉션으로 대변되는 해밀턴의 역사적인 밀리터리 워치 디자인을 계승하면서 영화 속에 등장한 머피 워치의 디자인 역시 충실하게 따르고 있습니다. 42mm 직경의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와 함께 매트한 블랙 컬러 다이얼에는 헤리티지 모델의 올드 라듐톤을 재현한 베이지 컬러 수퍼루미노바를 아라비아 숫자 인덱스와 니켈 도금 처리한 고풍스러운 커씨드럴 핸즈에 코팅해 특유의 고전적인 풍모를 자랑합니다.
42mm는 남성용 시계 사이즈로는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정한 크기입니다. 케이스는 대체로 무광으로 브러시드 가공해 군용시계의 전통을 지닌 카키만의 특징을 고수하면서 베젤과 크라운 등 일부는 폴리시드 마감해 은은하게 고급스러운 느낌도 주고 있습니다. 케이스의 전체적인 마감 상태는 1백만 원대 초반의 시계 가격을 생각하면 누구나 만족할 만한 수준입니다.
고전적이면서도 깔끔하고 가독성에 집중한 다이얼의 마감 처리 역시 딱히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그리고 사진을 확대해서 초침을 가까이 들여다 보시기 바랍니다. 초침 끝에 베이지 컬러 래커로 점을 찍듯 뭔가 알 수 없는 부호를 더했는데요. 이는 '유레카(Eureka)'를 뜻하는 모스 부호라고 합니다. '인터스텔라' 영화를 보신 분이라면 이 유레카가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채실 텐데요. 어른이 된 머피가 성간(인터스텔라) 항법의 비결을 깨달은 후 외친 바로 그 유레카를 뜻합니다. 영화 속에서 쿠퍼가 머피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초침을 이용했던 것을 상기할 때, 초침에 이러한 세밀한 디테일을 추가한 센스가 돋보입니다.
- 해당 리뷰 시계는 판매용이 아닌 샘플용 모델임을 감안해서 봐주시기 바랍니다.
무브먼트는 ETA 2824를 기반으로 진동수를 4헤르츠에서 3헤르츠(21,600vph)로 수정하고, 파워리저브를 무려 80시간까지 늘린 ETA C07.111의 해밀턴 버전인 H-10 자동 칼리버를 탑재했습니다. 무브먼트는 페를라주나 코트 드 제네브(제네바 스트라이프)를 생략해 의도적으로 피니싱을 단순화함으로써 비용 절감의 흔적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무브먼트 코스메틱은 사실 성능과는 무관하고, 군용시계의 전통을 계승한 컬렉션의 성격을 떠올릴 때 러프한 마감의 무브먼트가 흠이 될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시계의 가격대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ETA 범용 칼리버의 특징인 에타크론과 레귤레이터를 생략하고 변형된 형태의 프리스프렁 밸런스로 이를 대신합니다. 프리스프렁 밸런스는 밸런스 스프링의 자유 운동을 방해하지 않아 등시성 측면에서 이점이 있습니다. 시스루 형태의 케이스백을 통해 무브먼트를 감상할 수 있으며, 케이스 방수 사양도 100m까지 보장해 데일리 워치로 실용적입니다.
스트랩은 가운데 부분이 두툼하게 솟은 형태를 띠도록 패딩 처리한 송아지 가죽 스트랩을 사용했습니다. 블랙 컬러 외피는 크로코 패턴 처리하고 미색의 스티치로 포인트를 줬습니다. 러그 폭이 시계마니아들이 소위 말하는 '줄질'이 용이한 사이즈(22mm)라서 스트랩은 기본 제공 스트랩 외 서드파티 스트랩을 구매해 취향에 따라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다이얼의 수퍼루미노바 컬러와도 조화를 이루는 다크 베이지 컬러 나토(NATO) 스트랩도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버클은 스틸 소재의 핀 버클을 장착했습니다.
카키 필드 머피는 컬러 스트라이프 패턴이 가미된 스페셜 박스가 포함된 패키지는 2,555피스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출시합니다. 해당 스페셜 박스는 세계 유수의 영화제 수상에 빛나는 '인터스텔라'의 미술감독 나단 크로리가 영화 속에서 주인공 쿠퍼가 머피와 통신하면서 떠돌아다녔던 4차원 큐브에서 영감을 받아 매우 얇은 두께의 컬러플한 플렉시글라스 조각을 압착하는 방식으로 제작해 테서렉트의 타임라인을 형상화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보면 스페셜 박스가 상당히 예술적이고 멋스럽습니다. 그 자체로 소장 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에 카키 필드 머피 시계를 원래 구매할 계획이 있는 분이라면 스페셜 패키지의 한정 수량이 소진되기 전에 노려봄 직 합니다.
카키 필드 머피(인터스텔라 머피 워치, Ref. H70605731)의 국내 출시가는 1백 25만 원이며, 국내에는 이달 초부터 SSG 닷컴을 통해 온라인 선주문 판매를 시작했고, 백화점 매장을 통한 정식 출시 시기는 바로 오늘(4월 19일)부터 입니다.
'인터스텔라'가 개봉한지 벌써 4년을 훌쩍 넘긴 시점에서 인터스텔라 머피 워치의 출시는 사실 때 늦은 감도 없질 않지만, 어찌됐든 평소 해밀턴 시계를 좋아하는 팬들은 물론 영화 '인터스텔라'의 감동을 오래도록 간직하고픈 애호가들 모두에게 어필할 만한 매력적인 신제품임에는 틀림없어 보입니다.
어느 커뮤니티를 방문하든 사이즈 작게 새로 내달라는 무수한 요청들이.. ㅎㅎㅎ 언젠가는 나올 것으로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