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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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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I-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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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 시간 12초, 비행 거리 약 37미터. 1903년 라이트 형제는 동력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았습니다. 6년 뒤인 1909년에는 루이 블레리오가 자신의 이름을 딴 블레리오 11호기를 조종해 세계 최초로 영국 해협을 횡단했습니다. 전쟁을 거치며 항공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했습니다. 여객기는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날랐고, 강력한 공군을 앞세워 적을 제압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했습니다. 비행기의 조종석에는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장치가 들어섰고, 파일럿의 손목에는 시계가 채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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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레리오(Bleriot) 비행기를 조각한 오리스의 옛 회중시계.
 
파일럿 워치는 고성능 전자 장치가 등장하면서 쇠퇴일로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시계 제조 업체는 파일럿 워치가 사라지게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투박하고 거친 군용 시계를 단장해 시판용으로 전환한 겁니다. 파일럿 워치는 손목시계 발전에 불을 지폈다는 역사성, 강한 남성성, 내자성과 견고함으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어쩌면 유년 시절에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꿨을 파일럿에 대한 동경을 조금이나마 충족시켜줄 수 있다는 점이 많은 이들을 매료시켰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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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8년에 제작한 오리스 최초의 파일럿 워치 포인터 데이트(Pointer Date). 
 
오리스(Oris)가 처음으로 파일럿 워치를 제작한 건 설립 이후 약 30여 년이 흐른 1938년입니다. 아라비아 숫자와 화살촉 모양의 인덱스를 혼합한 검은색 다이얼 외곽에는 날짜를 의미하는 숫자가 있었고, 끝을 빨간색으로 칠한 바늘로 날짜를 가리키는 방식이었습니다. 여기에 파일럿 워치의 필수 요소인 커다란 크라운을 갖고 있었습니다. 포인터 데이트(Pointer Date)라고 불린 이 시계는 훗날 오리스의 빅 크라운 컬렉션에 영향을 끼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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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 출범한 빅 크라운 프로파일럿은 공개되자마자 오리스의 항공 컬렉션을 이끄는 중핵으로 부상했습니다. 구성원 대부분이 하나 이상의 기능을 보유했으며, 고도계(altimeter)나 알람 기능을 갖춘 특색 있는 모델과 매뉴팩처 칼리버를 실은 플래그십도 있습니다. 이번 리뷰에서 만나볼 빅 크라운 프로파일럿 크로노그래프(Big Crown ProPilot Chronograph)는 파일럿 워치의 DNA를 수혈한 전천후 시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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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름 44mm의 스테인리스스틸 케이스는 브러시드 처리해 결을 살렸습니다. 날카롭고 모난 부분 없이 적절히 다듬은 케이스는 담백하고 호방한 멋이 있습니다. 돔형으로 가공한 사파이어 크리스털 글라스는 안쪽을 무반사 코팅했습니다. 제트 엔진의 터빈(turbine)에서 영감을 얻은 베젤과 케이스백은 밋밋할 수 있는 분위기를 멋스럽게 가꿔줍니다. 무브먼트를 노출시키는 케이스백에는 강화 미네랄 글라스를 사용했습니다. 방수 능력은 100m(10ba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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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을 새긴 스크루 다운 크라운은 이름처럼 큼지막합니다. 장갑을 낀 상태에서도 무리 없이 조작이 가능해 보입니다. 잠겨 있는 크라운을 풀고 돌리면 메인스프링을 감을 수 있습니다. 크라운을 한 칸 뽑으면 날짜, 두 번 뽑으면 시간을 조작할 수 있습니다. 2시와 4시 방향의 푸시 버튼은 각각 크로노그래프 스타트/스톱과 리셋 동작을 관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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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스와 마찬가지로 브러시드 가공한 3열 스테인리스스틸 브레이슬릿은 준수한 착용감을 제공합니다. 케이스가 워낙 두껍다 보니 상대적으로 얇게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한쪽에만 있는 버튼을 눌러 접었다 펼 수 있는 폴딩 버클에는 브랜드명을 새겼습니다. 스테인리스스틸 브레이슬릿은 직물 또는 가죽 스트랩과 호환이 가능합니다. 시계가 너무 무겁거나 스타일에 변화를 주고 싶은 분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러그 사이의 간격은 22mm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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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럿 워치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검은색 다이얼은 매트한 질감으로 표현했습니다. 선레이 다이얼을 적용한 베리에이션도 있으나 양자택일해야 한다면 파일럿 워치 본연의 모습에 더 가까운 리뷰 모델의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크로노그래프 시간과 분 그리고 스몰 세컨드로 이루어진 세 개의 카운터도 같은 방식으로 처리했습니다. 마감 또는 색을 달리하거나 선을 넣는 대신 높이 차를 이용해 경계를 나눴습니다. 다이얼과 베젤 사이의 플랜지에는 측정 대상과의 거리를 확인할 수 있는 텔레미터 스케일이 들어섰습니다. 먼 곳에서 발생한 사건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크로노그래프를 작동시키고 소리가 들리는 시점에 정지한 뒤 크로노그래프 초침이 가리키는 곳의 눈금을 읽어 거리를 측정합니다. 미니트 트랙과 텔레미터 눈금이 일치하지 않는 이유는 텔레미터가 소리의 이동 속도인 343m/s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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큼지막한 아라비아 숫자와 각 시간마다 배치한 사각형 인덱스는 흰색으로 칠한 뒤 그 위에 슈퍼루미노바(BG W9)를 발라 마무리했습니다. 가까이에서 보면 반듯하거나 일정하진 않지만 이 시계의 가격과 포지션을 떠올리면 합당해 보입니다. 6, 9, 12시 숫자 인덱스는 카운터 다이얼의 영역을 침범함에도 불구하고 잘라내거나 생략하지 않고 그대로 살렸습니다. 이는 동 컬렉션의 다른 모델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특징입니다. 약간 조잡해 보이지만 빛이 사라진 어둠 속에서는 오히려 장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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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침과 분침에도 슈퍼루미노바를 발랐습니다. 시간을 나타내는 세 개의 바늘은 흰색으로, 크로노그래프와 연관된 나머지 세 바늘은 주황색으로 강조했습니다. 주황색은 검은색과 흰색 일변도의 다이얼에 극적인 효과를 가져옵니다. 모든 바늘은 다이얼과 동일하게 처리해 일관성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3시 방향에 적은 브랜드와 컬렉션의 이름은 다이얼에 안정감과 균형감을 가져다 줍니다. 그로 인해 날짜 창은 4시와 5시 사이로 옮겼습니다. 날짜 디스크도 매트한 질감에 흰색으로 숫자를 적어 구색을 맞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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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와인딩 칼리버 오리스 774의 베이스 무브먼트는 ETA 7750의 클론인 셀리타 SW500입니다. ETA의 무브먼트 공급 중단 선언 이후 오리스는 셀리타로부터 무브먼트를 공급받고 있습니다. 별 다른 장식이 없는 무브먼트는 날 것에 가깝습니다. 품질이 우수한 시계를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한다는 오리스의 경영 이념에 따른 겁니다. 오리스가 경쟁하는 세그먼트에서는 무브먼트의 장식보다는 안정적인 성능이나 외장의 마감을 중시합니다. 플레이트나 브리지에 장식을 한다고 성능이 좋아지진 않습니다. 그렇다 해도 조금 심심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다행히 2002년부터 브랜드의 트레이트마크가 된 빨간 로터가 이런 허전함을 채워줍니다. 시간당 진동수는 28,800vph(4Hz), 파워리저브는 48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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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크라운 프로파일럿 크로노그래프 스테인리스스틸 브레이슬릿 모델의 가격은 직물이나 가죽 스트랩 버전보다 조금 높은 430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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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가격 대비 성능으로 정평이 난 오리스는 파일럿 워치를 대중적으로 풀어내는 데에도 탁월한 감각을 발휘했습니다. 빅 크라운 프로파일럿 크로노그래프에 화려한 수사는 없습니다. 하지만 파일럿 워치의 늠름한 기상과 건실함이야말로 이 시계의 매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품 촬영: 
권상훈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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