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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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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로 향유하는 시뮬라크르 

시계에서 다이얼은 실재하는 사물입니다. 각각의 인덱스와 이를 가리키는 바늘(핸즈)은 시간을 물리적으로 표시하는 장치이자, 시계를 움직이는 무브먼트의 기어트레인과도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시계의 다이얼은 사람으로 치면 얼굴로 첫인상을 결정하고 시계전반의 이미지에 커다란 영향을 끼칩니다. 따라서 무브먼트의 기능을 표시하는 본질적 역할 뿐 아니라, 아름답게 보이도록 많은 노력이 요구됩니다. 검정색 다이얼 하나에도 수십 가지의 표면 패턴과 색상 군을 갖춘 그랜드 세이코나 에나멜, 기요세, 인그레이빙 등 수공예 기법을 극대화한 메티에다르를 다이얼에 집중하는 바쉐론 콘스탄틴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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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 S3가 기본 지원하는 다양한 워치 페이스


반면 스마트워치에서의 다이얼은 항상 그 원형 모습 그대로 실재하는 형상이 아닌, 사용자의 의도에 따라 수시로 가변할 수 있는 일종의 시뮬라크르(Simulacre, : 원본과 복제가 구별되지 않는 대상 혹은 영역을 칭함)적 공간입니다. 그래서 스마트워치의 다이얼은 통상적인 시계의 다이얼 개념과는 다른, 얼굴을 뜻하는 ‘페이스(Faces)’라는 표현이 어쩌면 더 잘 어울립니다. 흡사 수십 개의 마스크로 다양한 인물을 연기하는 중국 경극 속의 변검(變臉) 배우들처럼, 기어 S3는 기본적으로 다양한 페이스 디자인을 제공해 시계에서는 접할 수 없는 드라마틱한 가상의 체험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때 그때 기분에 따라 혹은 용도에 따라 원하는 시계 화면으로 쉽게 교체할 수 있는 점은 분명 스마트워치가 지닌 두드러진 강점입니다. 현대인들의 다채로운 취향을 고려한다는 측면에서는 물론, 일상에서 수시로 확인해야 하는 여러 정보들을 더 빨리, 더 많이, 더 보기 쉽게 전달하는 효용성 측면에서도 스마트워치 페이스의 진화는 당연한 수순처럼 보입니다. 


전통적 다이얼 디자인에 기반한 워치 페이스

기어 S3는 전통적인 시계를 표현하는 워치 페이스를 기어 S2에 이어 제공합니다. 시계의 다양한 기능을 워치 페이스로 구현하고 있어 기계식 시계 애호가도 친근감을 느낄 수 있죠. 이번에는 일부 페이스 옵션 바탕에 선레이 이펙트(Sunray Effect)를 추가해 보는 각도에 따라서 미묘한 음영을 드리우며 고급스러운 느낌을 선사합니다. 이는 스마트워치 페이스 디자인에는 처음 도입되어 기능적인 것이 아닌 아름다움을 위한 시도로 기계식 시계의 본질과 닿아 있습니다. 기어 S3는 무브먼트의 구조와 배열에 따라 결정되는 시계의 다이얼과 달리 레이아웃의 제약이 훨씬 적습니다. 따라서 후속 모델에서는 보다 다양한 전통적 시계 다이얼(다양한 시계 기능)을 구현해 더욱 시계다움을 드러낼 수 있으리라 기대해 봅니다.  여기 몇 가지 기어 S3의 워치 페이스를 기계식 시계의 관점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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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랑 헤리티지 크로노메트리 퀀템 애뉴얼 바스코 다 가마 리미티드 에디션(왼쪽) / 기어 S3 컴플리케이션 워치 페이스(오른쪽)


복잡한 기능의 시계를 의미하는 컴플리케이션은 기계식 시계의 꽃이라고 부를 만큼 시계 브랜드의 중요한 기술적 성취의 하나입니다. 컴플리케이션이 기계식 시계의 광고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기어 S2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며 기어 시리즈의 상징적인 워치 페이스로 자리 잡은 이것은 컴플리케이션의 기어식 해석입니다. 시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능의 하나로 손꼽히는 문 페이즈와 풀 캘린더의 형식을 따르며 전통 시계에 대한 오마쥬를 이뤄냈습니다. 다만 시계의 관점에서 봤을 때 12시 방향의 문 페이즈 배치와 전체적인 역삼각형의 구성은 불안감이 들게 합니다. 더욱이 시계는 중심축을 관통하는 가상의 동서남북에 따라 배치되며, 이는 무브먼트 구조 및 배열에 기인했기 때문입니다. 기어 시리즈가 컴플리케이션 워치 페이스를 앞으로도 대표격인 워치 페이스로 가지고 가려고 한다면, 보다 전통 다이얼 디자인에 기반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제약이 없는 장점을 살려 파격적인 구성으로 살려내는 것도 좋으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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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주의에 입각한 독일의 바우하우스(Bauhaus) 사상이 드러나는 미니멀 디자인의 워치 페이스입니다. 숫자와 바 인덱스를 번갈아 사용한 디자인은 기어 S3가 제공하는 워치 페이스 중에서도 이채롭습니다. 노모스 글라슈테나 융한스 같은 독일 바우하우스 디자인을 따른 시계를 연상시킵니다. 기어 S3의 간결한 케이스 디자인과도 잘 어울리죠. 스마트워치 페이스에 미니멀 디자인의 도입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지만, 요일과 날짜 표시를 별도의 윈도우도 없이 배치한 디테일은 다소 생경합니다. 9시 방향 블루 서브 다이얼로 걸음 수를 표시한 부분은 기능과 디자인 사이에서 고심한 흔적이지만 과감하게 생략했으면 어떨까 합니다. 기능성이 필요하다면 그것을 갖춘 다른 페이스로 제공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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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스토바의 플리거(파일럿) 워치 타입 B 다이얼(왼쪽) & 기어 S3 파일럿 워치 페이스 (오른쪽) 


가독성을 강조한 파일럿 워치에서 영감을 얻었음을 알 수 있는 워치 페이스(프론티어 페이스)는 S헬스를 포함한 3개의 서브 다이얼을 갖춘 버전, 제2차 세계대전시 독일 해,공군의 관측용 시계로 부르는 B-Uhr(Beobachtungs-Uhren) 디자인 중 ‘B-타입’ 다이얼에서 착안한 버전으로 나뉩니다. 기준점을 드러내는 12시 방향 삼각 마커, 검정색 다이얼에 하얀색 아라빅 인덱스, 굵은 핸드는 파일럿 시계 디자인의 기능적 요소를 인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어는 이것을 바탕으로 변주를 시도했으나 B-Uhr의 B-타입이라는 시계 애호가라면 단번에 알 수 있는 특정 형태를 암시하고 있어, 독창성 면에서 아쉬움이 따릅니다. 위에서 언급한 파일럿 워치의 또 다른 특징인 강력한 야광은 워치 페이스에서 표현되지 않았는데, AOD(Always On Display) 모드로 변환되는 순간 야광이 발광하는 부분만 표시를 하는 시도가 있다면 전통 디자인과 저전력 소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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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WC의 파일럿 워치 크로노그래프 (왼쪽) & 기어 S3 크로노그래프 워치 페이스 (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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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노그래프 페이스 작동 애니메이션


기어 S3의 크로노그래프 페이스는 기계식 시계 자동 크로노그래프의 베스트 셀러 무브먼트 ETA칼리버 7750의 다이얼 레이아웃과 유사합니다. 6, 9, 12시 방향 카운터, 데이데이트, 타키미터 스케일은 칼리버 7750이 판매된 숫자만큼이나 친숙합니다. 시계 사용자에게 위화감 없이 다가가려는 계산이었다면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습니다. 크로노그래프 페이스의 구성은 기계식 크로노그래프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크로노그래프 작동을 했을 때 크로노그래프 핸드의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동하는 애니메이션은 기어의 워치 페이스 중 가장 시계답게 담아냈구나 싶을 정도입니다. 또 크로노그래프 작동과 함께 다이얼 내에 스타트/스톱, 리셋 버튼이 생성되는 점 역시 같은 맥락으로, 기계식 시계를 스마트워치로 훌륭하게 표현해 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보다 나은 완성도를 위해 한가지 첨언을 하면 지금의 6, 9, 12시 카운터 배치보다 3, 6, 9시의 트리컴팩스 배치가 보다 안정적이며 고급 크로노그래프의 방식이란 것입니다. 



전통 시계는 구현할 수 없는 기어만의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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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 S3로 구현 가능한 다양한 기능


태엽과 톱니바퀴로 움직이는 시계는 시간을 표시하는 본질적 기능 이외의 시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200여 년 전 루이 아브라함 브레게가 마리 앙투아네트의 주문으로 만든 초복잡 회중시계 넘버 160의 온도계가 있습니다. 넘버 160를 현대적 기술로 복제한 넘버 1160을 발표한 자리에서 당시 스와치 그룹의 회장인 고 니콜라스 하이에크는 넘버 160을 완벽하게 복제하지 못했다고 고백(?)아닌 고백을 한 바 있습니다. 이후 온도계는 바이메탈을 이용해 기계식 손목시계로 표시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오차에서 썩 만족스럽지 못했고, 이미 충분한 대체재가 있어 더 이상 발전한 여지가 없었습니다. 기계식으로 표현하는 기능 중, 수압계가 있습니다. IWC의 GST 딥 원이 시초로 이 기능의 문을 열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단종에 이릅니다. 이유는 수압센서 역할을 하는 금속튜브 조정의 까다로움과 유지보수의 어려움이었고, 이후 멤브레인 방식의 센서로 해답을 찾았으나 시계와 격리되어 일체화라는 맛은 떨어졌습니다. 같은 시기 파네라이는 아예 전자식 센서를 들고 나오기도 했죠. 그 외에도 속도측정이나 계측시간도 오차 측면에서 보면, 기계식 시계의 하루 오차만큼이나 넉넉한 마음을 지니지 않으면 허용할 수 없는 수준인 것 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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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과 연결하지 않고 기어 S3만을 사용하는 스탠드 얼론 상태에서도 지금 30, 40대 들에게 첨단기술로 여겨지며 한 때 유행했던 만보계부터 운동거리, 심박수, 섭취한 물과 커피의 양, 소모한 칼로리를 데이터화 할 수 있는 S헬스, 음성으로 기능을 제어하고 약간의 대화가 가능한 S보이스를 비롯 고도계와 기압계까지 일상생활에서 가벼운 트래킹에서까지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이 제공됩니다. 시계의 월드타이머와 알람 기능은 물론 날씨, 뉴스, 일정 확인까지 과거에는 시계, 스톱워치, 신문, 메모장과 필기구 등 가방 한 가득 들고 다녀야 가능할까 말까 한 기능이 기어 S3 하나로 해결됩니다. 스마트 폰과 연결하게 되면 기어 S3의 확장성은 그야말로 엄청나게 커지죠.  스마트 폰과의 연결이 되지않더라도, LTE 모델의 경우 단독 통화 및 네트워크 접속이 가능하기 때문에 활용도는 배가 됩니다. 이러한 스마트워치 전용의 양질의 어플리케이션과 조작성이 개선된다면, 향후의 웨어러블 디바이스가 기대되는 부분 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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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가 아닌 스마트워치로 시각을 바꿔보면 그게 무슨 대수인가 싶을 정도로 일반적인 기능인 기압계가 기계식 시계로 구현되었을 때 시계 애호가의 환호성은 그야말로 재미있는 반응입니다. 기계식 시계는 1969년 세이코에 의한 쿼츠 손목시계가 등장하며 성능의 우열이 가려졌고, 쿼츠의 최종 진화형인 스마트워치와 비교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따라서 시계 애호가는 스마트워치를 시계의 대체제가 아니라 다른 용도의 제품으로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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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런던 셀프리지 백화점(Selfridges)과 파리 갤러리 라파예트 백화점(Galeries Lafayette) 내 애플 매장의 애플 워치 코너를 폐쇄했다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전통적 시계 다이얼에 기반한 워치 페이스와 S헬스를 내세워, 실용성과 시계에 다가가려 했던 기어 시리즈와 달리 시계의 고급스러움에만 닿으려고 했던 애플의 전략적 성패가 드러나는 예가 아니었나 합니다. 기어 시리즈는 전자제품이 태생적으로 영속성의 불가능을 알고 시계에 대한 오마쥬를 담기 노력했지만, 애플은 기계식 시계의 영속성과 쿼츠 쇼크 이후 작은 예술품 혹은 럭셔리로 성격을 바꾼 시계에서 자신들이 취하고 싶은 부분만 취했던 점이 이 같은 결과를 만들어 낸 것 같습니다. 두 번에 이은 컬럼을 통해 느낀 기어 S3는 시리즈를 이어가며 향상된 이해도를 느낄 수 있게 했고, 동시에 스마트워치라는 새로운 기기에 대한 패러다임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동참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습니다. 또 스마트워치와 기계식 시계는 하나의 손목을 두고 경쟁하는 관계가 아닌, 동반자와 같은 관계라는 점도 재확인 할 수 있었고요. 새로운 기어 시리즈가 언제쯤 공개될 수 알 수 없지만, 매년 SIHH와 바젤월드에서 새로운 시계가 나오는 것을 기다리듯 기어 S4에서도 같은 설렘을 기다려 보고자 하며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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