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TF컬럼
댓글작성 +2 Points

알라롱

조회 8372·댓글 62

seiko-Astron-401.jpg


내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크하하핫. 최초의 상용화된 쿼츠 세이코 아스트론


때는 1969. 대하 소설 토지가 첫 연재를 시작한 해이자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던 해라고 합니다. 시계 쪽에서는 자동 크로노그래프가 나온 해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스위스에는 암울한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하게 된 해이기도 하죠. 왜냐? 세이코가 손목 시계용 쿼츠의 상용화에 성공하게 되었으니까요. 초기 컴퓨터가 그랬듯 컴퓨터나 다름없었던 쿼츠의 초기에도 그 크기 아니 규모가 엄청났습니다. 아이패드 같은 태블릿 PC가 대중화된 마당에 뭐가 그리 놀랍겠습니까만은 처음 쿼츠는 방 하나를 가득 채웠을 만큼의 거대한 물건이었습니다. 비록 시보를 알려야 하는 방송용 쿼츠라 매우 정확해야 한다는 조건이 따르긴 했지만 말이죠.


IE001121495_STD.jpg


경제 위기가 계속 되면 사람들 삶은 고달프다. 영화 거리의공황(1950) <오마이뉴스>

 

방 하나를 차지하던 물건이 비약적인 소형화를 이루자 스위스는 직격탄을 맞습니다. 지금은 시계라고 해도 분명하게 다른 지향점을 나타내지만, 그 때에는 시계는 시간을 보여 주는 게 목적 그 자체였기 때문에 열등한 성능을 가진 기계식이 쿼츠를 이길 제간이 없었고 또 도태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스위스는 시계 산업이 주저 앉으며 상당히 심각한 수준에 빠지게 됩니다. 이 때에 대한 증언은 쿼츠 등장을 직접 겪은 여러 인물들에 익히 알려져 있는데, 라 쇼드 퐁 쥬라 아파트(라 쇼드 퐁에서 아파트를 본 기억은 없습니다만…)에 살던 10가구 중 8가구의 가장들이 직업을 잃었다고 가정해 보세요. 요즘 같은 불경기 실업률은 저리가라 할 만큼의 심각한 상황이었을 겁니다. 쿼츠 등장에 대해 스위스가 위기(crisis)’라고 하는데 반해 쿼츠를 만든 쪽은 혁명(revolution)’이라고 극명하게 상반되는 표현만 봐도 어떤 감정인지 충분히 알만합니다.


 

IWC with 커트 클라우스


Hochzeit.jpg


젊었을 때가 훨씬 멋지십니다. 지금도 뭐 멋지긴 하지만 가가멜 필이....


이 무렵 커트 클라우스는 IWC 개발팀의 유일한 인원이었습니다. 알버트 팰라톤에서 커트 클라우스로 이어지는 IWC의 대표 엔지니어 계보죠. 힘에 부쳐 거친 숨을 몰아시던 IWC JLC를 인수한 LMH의 균터 블럼라인은 이들이 먹고 살아야 할 앞길을 틔워줘야 했고, 커트 클라우스에게 내린 막중한 지령은 바로 퍼페추얼 캘린더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기계식 시계의 경이로움을 보여주면 다시 팔릴 것이라는 계산에서이죠. 지금처럼 컴퓨터나 CAD 같은 설계 툴이 변변하게 있지도 않았던 때에, 커트 클라우스는 제도기 하나와 계산기를 들고 설계를 시작합니다.


iwcDaVinci_RA_PL.jpg


2003년 버전 다빈치 퍼페츄얼 크로노그래프. 라운드가 중심이 되는 디자인으로 지금의 다빈치랑은 많이 다르죠


iwcPort_PC_Group.jpg


인 하우스 베이스를 사용한 포르투기즈 퍼페츄얼 캘린더. IWC가 컴플리케이션을 만들 수 있도록 기반이 된 것이 다빈치 퍼페츄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완성된 시계가 다빈치 퍼페추얼이었고 ETA의 칼리버 7750을 베이스로 만들어집니다. 이 모델의 가장 특징적인 것은 2000년 문제를 앞두고 혼란이 예상되던 있던 무렵, 그것을 넘어 2499년까지 연도를 표시할 수 있는 기능이었습니다. 5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어떠한 문제도 없이 움직일 것이라는 자신감으로 대를 이어 물려받는다면 몇 대나 계속 물려받아서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를 그런 걸작이었습니다. 이 후 1999년 다빈치 퍼페추얼에 투르비용을 더한 모델이 등장했고 서서히 기계식 시계는 회복세에 들어가게 됩니다.


iwc_pellaton.jpg


IWC 특유의 와인딩 메커니즘. 이것을 개발한 엔지니어였던 알버트 펠라톤의 이름에서 펠라톤 와인딩 메커니즘이라고 합니다


Pellaton.jpg

이거슨 칼리버 5000 시리즈에 탑재된 현대판 펠라톤 와인딩 메커니즘. 갈고리 두 개가 씐나게 태엽을 감습니다


Cal_80110_Explosion.jpg

칼리버 80000시리즈. 커트 클라우스옹까지 나와서 진화에 나섰는데 7750의 기어 트레인을 차용한 부분에서 아주 가열차게 까였죠


Shock_Absorber.jpg

칼리버 80000시리즈의 특징은 이 쇼크 옵저버에 있습니다. 로터가 받은 충격을 흡수하기 위한 장치로 IWC의 선대 엔지니어가 남긴 유산이죠.

요즘에는 뭐 오버 엔지니어링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물건이긴 한데...이런 없는 애들도 부지기수니까 고맙게 쓰면 되긴 됩니다

 

IWC JLCLMH의 산하에 있을 때 JLC로부터 무브먼트를 공급받았습니다. 마크 12나 스몰 포르투기즈에는 JLC의 칼리버 889이 탑재되었죠. 가성비 쩔던 시계로 시계 좀 안다면 IWC를 사지 않고 베길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JLC 버전은 로터 끝에 골드로 된 웨이트를 붙일 때 IWC는 그냥 쇠를 달았고, 피니싱도 살짝 떨어졌지만 가성비 하나로 다 용서가 되었던 무렵입니다. 그 이후(마크15)로부터는 주력 무브먼트를 ETA에 의지하게 됩니다. 2000년에 포르투기즈 2000을 선보이면서 우울했던 ETA 시대를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조금 지난 현재에는 인 하우스의 체계가 잡히게 되죠. 여전히 ETA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점차 비율이 줄고 있습니다. (생산량으로 따지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스타트를 끊은 칼리버 5000은 원 배럴로 7데이즈 파워리저브에 펠라톤 와인딩 시스템을 갖춘 IWC의 대표적인 자동 무브먼트이고, 인제니어를 부활시키며 탑재한 칼리버 80000시리즈(ETA 7750의 기어트레인을 차용했다고 하여 말도 많았던)에는 내충격성 기능이 있는 갖춘 로터를 채용하는데 이들은 과거 IWC의 인하우스 무브먼트에서 차용해 온 것 들이죠. 특히 펠라톤 와인딩 시스템은 이것을 고안한 알버트 펠라톤의 이름을 딴 것으로 두 개의 갈고리를 이용한 독특한 메커니즘으로, ETA의 시기에서 끊어진 인 하우스의 역사를 다시 살리기에 아주 좋은 꺼리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 들 개발에는 IWC의 엔지니어와 그 중심에커트 클라우스가 서 있었음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pr_07_Mood_KuKl_p00324_4c_m_ROver1_Zoom_285.jpg


425234.jpg


영감님 오래오래 사세요

 

라운드 케이스였던 다빈치 라인을 리뉴얼할때 이례적으로 엔지니어 에디션이 나오는데 그것이 커트 클라우스 에디션입니다. 여전히 홈페이지에서 소개되고 있는 것을 봐서는 계획한 1000개를 아직 채우지 못했기 때문일 텐데(100개도 아니고 욕심은…)케이스 백에 클라우스의 얼굴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또 다른 퍼페추얼 캘린더가 다빈치 라인에서 나오는데 이것에는 윤년을 표시하는 인디케이터만 있을 뿐 다빈치 퍼페추얼의 특징인 년도 표시가 생략되어 있는데 뭔가가 많이 빠져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무튼 엔지니어로서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시계가 나올 만큼 커트 클라우스는 IWC에서 상징적인 존재였을 뿐더러 어려운 시기를 함께 해온 동반자였습니다.

 


율리스 나르덴 and 루드비히 오크슬린


Oechslin.jpg


또 다른 천재. 루드비히 오크슬린. 이탈리아 태생. 원래는 고고학, 고대사, 천문학, 이론물리학을 전공했습니다. 이들은 시계와 전혀 관련이 없는 학문 역시 아니었죠


1982, 율리스 나르덴을 인수한 롤프 슈나이더 역시 균터 블럼라인과 같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인수는 했는데 뭔가 확실하게 먹고 살 꺼리가 있어야죠. 이런 고민을 안고 돌아다니던 슈나이더는 우연히 애스트로비움 클락이라는 대형 시계와 조우합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이거 누가 만든거임? 그것을 만든 사람은 Dr. 루드비히 오크슬린으로 슈나이더는 오크슬린에게 이것을 손목 시계 용으로도 만들 수 있겠냐고 재차 물어봅니다. 루드비히 오크슬린의 대답은 ‘Yes’ 아니 프랑스어로 ‘Oui’라고 말합니다.

 

groupe_trilogy_amb.jpg


1-Trilogy-set-PT.jpg 

UN을 먹여살리게 해준 천문 3부작


UNASTRO-01-01.jpg


UNASTRO-04-01.jpg

이게 올드 버전입니다. 장식 가공이 되어있지만 이 친근하기 이를데 없는 모습은 영락없는 ETA 2892입니다


천문 3부작의 시작된 계기가 위 단락의 그것으로 1985년 애스트로비움 갈릴레이 갈릴레오, 1988년 플레네타리움 코페르니쿠스, 1992년 시리즈의 마지막인 텔루리움 요하네스 케플러를 선보입니다. 시계를 작은 우주라고 관용구처럼 말하는데 작은 손목 시계의 다이얼 위에 나, 지구, 해와 달, 태양계와 우주라는 세계를 실물로 그려낸 걸작이죠. 더 대단한 건 베이스 무브먼트가 ETA 칼리버 2892입니다. 고작 ETA냐 하겠지만, 1980년대라면 ETA 외에는 대안이 없었을 겁니다. ETA 2892가 참 잘 만들어진 무브먼트라는 반증이기도 한데, 이런 초 고난이도의 컴플레케이션을 무리 없이 구연케 했습니다.


029-89_espace_fb.jpg


029-89_det_dos.jpg


Freak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2007년도에 다온 다이아몬실


a2f9296811acc2238643cb6ca77136fd.jpg


다이아몬실 이전에 나온 인공 다이아몬드로 만든 이스케이프먼트 휠. 다이몬실이 나온 이유가 이것의 생산단가가 너무 쎄서 였다고 합니다

 

오크슬린은 연이어 대박을 칩니다. 율리스 나르덴 내부에서는 랩(Lab.)으로 부른다는 프릭을 2001년에 런칭합니다. 프릭은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계속 새로운 모델이 등장합니다. 그저 따분한 베리에이션이 아니라 크라운, 핸즈가 없는 괴상한 시계로 시작된 프릭은 정말 랩처럼 온갖 실험이 이뤄집니다. 실리시움, 인공 다이아몬드로 만든 듀얼 이스케이프먼트 휠, 실리시움과 다이아몬드 코팅을 더한 다이아몬실 등등이 적용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320-60-8_62.jpg

아무런 걱정없이 맘대로 사용하세요. 루드비히 퍼페츄얼


오크슬린하면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제 맘대로) 오크슬린 루드비히 캘린더라고 하는 날짜를 앞 그리고 뒤로도 자유롭게 보낼 수 있는 모델입니다. 퍼페추얼 캘린더는 풀 오토 데이트 메커니즘을 가진 시계라고 생각하면 쉬운데, 좀 까탈스럽습니다. 날짜, 요일, , (+문 페이즈, E.O.T) 등의 많은 정보가 연동되기 때문에 세팅을 완료하고 시계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되도록 멈추기 않는 것이 좋습니다. 와인더가 패키지에 함께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시계가 비싸서 주는 서비스라 아니라 멈추는 것을 가능한 한 방지하려는 의도가 더 큽니다. 한번 멈추면 날짜 세팅이 곤란한 경우가 생길 수도 있어서죠. 예를 들어 시계가 이틀 전에 멈춰서 새로 1 27일에 맞춰 세팅하려고 하다가 실수로 28일로 하루를 더 돌려버리면 답이 없습니다. 보통의 시계라면 귀찮더라도 크라운을 계속 돌려서 날짜를 27일로 다시 맞추면 그만이지만, ()등의 다른 인디케이션과 연동이 되어 있는 퍼페추얼 캘린더는 이것이 불가능합니다. 앞서 말한 보통의 시계처럼 돌렸다간 다른 정보까지 엉키게 될 수 있으니까요. 이런 경우라면 꼼짝없이 28일이 오기를 기다려서 다시 세팅하는 게 최선입니다. 루드비히 퍼페추얼은 그럴 염려가 없습니다. , 뒤 마음대로 날짜를 돌릴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크라운 하나로 조작이 됩니다. 전용의 툴 같은 것도 필요 없이죠.말은 굉장히 간단한 것 같지만 퍼페추얼 캘린더에서는 골치 아픈 문제였죠. …였죠가 아니라 루드비히 퍼페추얼을 빼면 여전히 문제입니다.


Ludwig-Oechslin.jpg

조만간 은퇴하실거라고 하는데....


die9teile.jpg


dieuhr.jpg

MIH 워치. 미니멀리즘의 극치죠. 디자인 뿐 아니라 메커니즘까지요

 

오크슬린은 현재 시계 박물관 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원래 율리스 나르덴에 고용된 관계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아이디어를 주고 받고, 많은 조언을 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시계 박물관에서 시계 복원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MIH라는 시계를 만듭니다. 오크슬린을 비롯한 AHCI의 멤버인 폴 거버등이 함께한 시계는 ETA 7750꼴랑 고작 9개의 파트를 더해 만든 심플한 애뉴얼 캘린더였습니다. 루드비히 퍼페추얼에 비하면 애뉴얼 캘린더는 일도 아니었을까요? 그의 천재성이 빛나는 모델의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 쿼츠 시대를 이겨낸 인물은 아니지만 2개만 쓰자니 아쉬워서 넣는

 

(SINN) with 로터 슈미트


sinn.jpg

로터 슈미트


파일럿 출신의 오너 헬무트 진으로부터 1994년 회사를 인수한 로터 슈미트는 이 때부터 완전히 새로운 회사로 탈바꿈 시킵니다. 많고 많은 파일럿 워치 메이커 사이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로터 슈미트의 철학 덕분이었습니다. 우주 공항을 비롯 다양한 기술을 시계에 접목시키게 됩니다. 진에서 일하는 인원 중 엔지니어가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이유가 로터 슈미트가 엔지니어 출신이라서 일겁니다.

 

진은 대표적인 다음과 같은 기술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아르곤-디휴미디티(1995)

아르곤 가스의 주입과 물먹는 하마와 같은 원리의 작은 캡슐을 이용하여 케이스 내부의 수분을 억제하는 기술. 오일과 수분이 반응하여 열화를 일으키는 것을 차단하려는 목적. 결과적으로 기존보다 오버홀 주기의 연장.

 

HYDRO_engl.jpg

하이드로 기술이 있으면....아래 같은 걱정은 접어두세요


IMG_0535.jpg


제목 : 물속에서는 안 보이는 섭마의 굴욕



하이드로(Hydro)(1996)

완전 절연체인 실리콘 오일을 다이얼에 주입하여 외부 수압에 대한 저항성 및 의한 수중 굴절에 의한 가시성 저하를 방지.

 

다이아팔(DIAPAL)(2001)

이스케이프먼트 휠에 다이아몬드 코팅을 하여 실리시움과 유사한 기능을 얻어냄. 오일 프리.

 

테지먼트(2003)

케이스 코팅 기술의 하나로 1200비커스의 경도를 얻어냄. 세라믹과 유사한 경도.

 

이들 기술을 통해 진은 차별화 된 캐릭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높은 성장도 가능했고요.

 

 


맺음말을 길게 썼다가 지우고 이것으로 대체할까 합니다.

 

한 명의 천재가 시계 메이커 하나를 먹여 살린다’ 


타임포럼 뉴스 게시판 바로 가기
인스타그램 바로 가기
유튜브 바로 가기
페이스북 바로 가기
네이버 카페 바로 가기

Copyright ⓒ 2024 by TIMEFORUM All Rights Reserved.
게시물 저작권은 타임포럼에 있습니다. 허가 없이 사진과 원고를 복제 또는 도용할 경우 법적인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