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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영광

KIMI-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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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시계의 역사를 들춰보면 종종 이질적 존재와 마주칩니다. 그것은 치밀한 계획하에 태어난 야심작일수도, 시대의 흐름에 편승한 결과물일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탄생한 시계들은 엇갈린 운명에 처합니다. 창조주로부터 외면 받는 사생아가 되거나 훗날 재평가를 통해 융숭한 대접을 받습니다. 

 

 

수백 년 전 이미 현대 시계의 공식 대부분을 정립한 아브라함-루이 브레게(Abraham-Louis Breguet). 그의 시계는 아름다움을 넘어 경이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세련된 서체와 디자인, 반복되는 패턴으로 장식한 엔진 터닝 다이얼 등 다양한 요소를 조합해 일찌감치 독자적인 스타일을 완성했습니다. 브레게 시계를 정의하는 여러 디테일은 작금의 브레게 시계에 여전히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동종업계 종사자들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주었습니다. 드레스 워치를 제조하는데 있어 브레게의 레퍼런스를 참고하는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드레스 워치는 곧 브레게라는 명제는 지금도 유효합니다. 

 

 

그렇기에 브레게 타입 XX는 어딘가 낯선 이방인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브레게 타입 XX가 고급 시계 시장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파일럿 워치이기 때문일지도, 브레게 = 드레스 워치라는 고정관념이 뿌리 깊게 박혀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브레게 타입 XX는 파일럿 워치의 발전을 논함에 있어 빠질 수 없는 시계이자 시계 애호가라면 혹할 수 밖에 없는 흥미로운 배경을 지닌 시계입니다. 무엇보다 브레게 타입 XX는 위태로웠던 메종의 역사를 온 몸으로 지탱했던 시계입니다.

 

브레게와 항공

- 루이 샤를 브레게

 

루이 16세가 즉위한 지 1년 뒤인 1775년, 아브라함-루이 브레게는 프랑스 파리 시테섬에 퀘드올로지(Quai de l'Horloge) 공방을 엽니다. 프랑스 혁명의 화를 피해 스위스로 피신했다가 다시 파리로 돌아오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귀족과 명사들의 사랑을 받으며 명성을 쌓았습니다. 사업이 성공궤도에 오르자 아브라함-루이 브레게는 아들인 루이 앙투안 브레게(Antoine-Louis Breguet)를 파트너로 영입했습니다. 아브라함-루이 브레게가 유명을 달리하고(1823년), 10년 뒤인 1833년에는 루이 앙투안 브레게마저 은퇴하자 루이 앙투안 브레게의 아들인 루이 프랑수아 클레망 브레게(Louis François Clément Breguet)가 가업을 잇습니다. 루이 프랑수아 클레망 브레게는 다방면으로 재주가 많았습니다. 과학기기, 전자장치, 의료기기, 기록계, 통신기기 등을 제작한 발명가이자 과학자였던 루이 프랑수아 클레망 브레게는 각종 장비를 생산하는 메종 브레게를 설립했습니다. 혼란을 막기 위해 시계 사업은 브레게라는 이름으로 진행했습니다. 나날이 발전하는 과학과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브레게 가문으로 하여금 시계를 향한 열정과 비전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루이 프랑수아 클레망 브레게의 자녀들은 가업을 잇지 않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릅니다. 1870년 루이 프랑수아 클레망 브레게는 공방의 총책임자였던 에드워드 브라운(Edward Brown)에게 한 세기를 이어온 사업을 물려줍니다. 그렇게 브레게는 브레게 가문으로부터 떨어져 나옵니다. 그로부터 약 두 달 뒤 보불전쟁이 발발하고 유럽 정세가 불안정하게 흘러갑니다. 그 여파로 브레게는 급격한 판매저하를 겪으며 긴 쇠퇴기에 접어듭니다. 

 

- 파리에서 뉴욕까지 무착륙 비행에 성공한 브레게 XIX

 

아브라함-루이 브레게의 5대손이자 루이 프랑수아 클레망 브레게의 손자 루이 샤를 브레게(Louis Charles Breguet)는 1880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전기 공학 학교(École supérieure d'électricité)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한 그는 그 무렵의 다른 위대한 모험가들처럼 푸른 창공을 누비고 싶었습니다. 하늘을 정복하겠다는 일념은 자연스럽게 항공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습니다. 루이 샤를 브레게는 헬리콥터의 전신인 자이로플레인(Gyroplane), 브레게 타입 I로 명명한 고정익기(Fixed-wing aircraft), 브레게 듀퐁(Breguet Deux-Ponts) 등을 제작하며 항공 업계의 거물로 거듭났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공군을 비롯해 연합군의 정찰기 겸 폭격기로 맹활약한 브레게 XIV는 루이 샤를 브레게의 가장 큰 업적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1911년 루이 브레게 항공 공방(Societé des Ateliers d’Aviation Louis Breguet)을 설립한 루이 샤를 브레게는 종전 후 민항사(Compagnie des messageries aériennes)를 세우고 브레게 XIV를 우편과 화물 배송을 위한 용도로 재활용합니다. 이 항공사는 다른 기업과 합병을 거쳐 오늘날 프랑스의 국적 항공사인 에어 프랑스(Air France)로 거듭납니다. 한편, 루이 브레게 항공 공방은 1966년 항공기 개발자이자 다쏘 그룹을 설립한 마르셀 다쏘(Marcel Dassault)에 의해 인수되고 몇 년 뒤에는 아비옹 마르셀 다쏘-브레게(Avions Marcel Dassault-Breguet)라는 회사로 합병됩니다. 아비옹 마르셀 다쏘-브레게는 이후 다쏘 항공(Dassault Aviation)으로 사명을 변경합니다. 

 

- 프랑스 항공 기술 서비스(Service technique de l'aéronautique, STAé)가 인증한 브레게 타입 11의 도면

 

하늘을 나는 거대한 물체를 다루는 파일럿은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활용해야 합니다. 전자 장비가 전무했던 20세기 초반에 시계는 파일럿에게 없어서는 안 될 도구였습니다. 비행 시간이나 방향, 연료 소모량 등 비행에 필요한 정보를 습득하고 계산하기 위해 파일럿은 시계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두말할 필요 없이 시계에 요구되는 조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성이었습니다. 정확성이 담보되지 않은 시계는 파일럿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고 이는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루이 샤를 브레게도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의 뇌리를 스쳐 지나간 것은 가문의 손을 떠난 시계 사업이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두 가문은 1923년 아브라함-루이 브레게 서거 100주년을 추모하기 위해 모일 만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루이 샤를 브레게는 브라운 가문으로부터 비행기 계기판에 통합되는 크로노그래프를 비롯해 파일럿이 착용할 수 있는 시계를 구입했고, 브라운 가문은 실제 파일럿의 요구 사항을 반영해 시계를 제작했습니다. 

 

- 계기판에 브레게의 크로노그래프 장비를 장착한 브레게 Br-1050 알리제(Breguet Br.1050 Alizé) 항공기

 

항공 시대의 여명이 밝아오자 여러 브랜드가 비행기에 장착할 계측 장비와 파일럿 워치 제작에 뛰어들었습니다. 미래를 이끌 항공 산업이 개화하고 거대한 시장이 열리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브레게도 흐름에 동참합니다. 때마침 시계 산업의 성장추도 회중 시계에서 손목 시계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브레게의 시계는 뛰어난 성능으로 항공 산업 관계자와 파일럿에게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에 힘입어 브레게는 1930년대부터는 실버 케이스를 사용해 항자성을 높인 크로노미터부터 스플릿 세컨드 크로노그래프, 자동 온도 조절기, 조명, 사이드로미터(Siderometer)까지 특수한 장비들을 전문적으로 생산합니다. 이 장비들은 프랑스 군대와 민간을 가리지 않고 두루 공급됐습니다.  

 

- 브레게 761 듀퐁의 홍보용 책자

 

브레게는 거래처의 다양한 요구 조건을 수용하면서 파일럿 워치 제작에 필요한 경험을 차곡차곡 쌓았습니다. 이때의 경험은 브레게 타입 XX 탄생의 훌륭한 밑거름이 됩니다. 1949년 프랑스 항공부(French Air Ministry) 산하 비행 테스트 센터(Centre d'Essais en Vol, 이하 CEV)는 브레게로부터 4개의 손목 시계를 구입합니다. 르마니아(Lemania)의 14리뉴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를 탑재한 이 시계는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 타키미터 스케일을 새긴 블랙 다이얼, 야광 도료를 칠한 바늘과 인덱스 등 파일럿 워치가 지녀야 할 요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후로도 브레게의 실험은 계속됩니다. 30분 카운터와 회전 베젤을 비롯해 크로노그래프 작동 중 리셋 버튼을 누르면 초침이 원점으로 돌아가 곧바로 측정을 재개하는 플라이백 기능을 추가하며 파일럿 워치의 완성도를 끌어올렸습니다. 

 

- 프랑스 항공부에 공급한 타입 20 밀리터리(Nº 7211)

 

1953년 4월에 완성된 3개의 파일럿 워치(Nº 1530, Nº 1531, Nº 1532)에 처음으로 타입 20라는 명칭이 따라붙습니다. 타입 20는 프랑스 항공 기술 서비스(Service technique de l'aéronautique, 이하 STAé)가 파일럿을 위한 손목 시계를 군용 장비로 분류하며 지정한 코드였습니다. 타입 20의 기술 사양을 정리한 공식 문서는 작성되지 않았으나 STAé는 독일의 시계 제조사 한하트(Hanhart)의 크로노그래프 파일럿 워치를 참고했다고 알려졌습니다. 타입 20의 사양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 케이스 지름 38mm

- 12시간 인덱스가 있는 양방향 회전 베젤

- 다이얼 3시와 9시 방향에 두 개의 카운터를 갖춘 검은색 다이얼

- 야광 도료를 칠한 바늘과 아라비아 숫자 인덱스

- 플라이백 크로노그래프(retour en vol)

- 하루 오차 8초 이내 

- 파워리저브 35시간 이상

- 최소 300회 이상 크로노그래프를 작동해도 문제 없는 내구성

 

브레게 타입 20는 루이 샤를 브레게의 항공사, CEV 등에 판매됐으며 알려진 바에 의하면 베트남의 황제 바오 다이(Bao Dai)에게도 한 점(Nº 519)이 흘러 들어갔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브레게가 판매한 시계 가운데 어떤 것은 타입 20로, 어떤 것은 타입 XX로 표기됐다는 겁니다. 이름을 구분한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타입 20와 타입 XX를 체계적으로 분류하기 시작한 것은 대략 1955년부터입니다. 브레게는 프랑스 항공부에 납품한 시계는 타입 20로(7 또는 8로 시작하는 숫자를 병기), 그 외 나머지는 타입 XX로 표기했습니다(주 : 유일한 예외로 1957년 9월에 제작한 8개의 시계는 타입 20로 표기했다).

 

출사표

타입 20 밀리터리(Nº 7211). 케이스백에 브레게의 이름을 비롯해 다양한 정보가 새겨져 있다. 7211은 고유 번호, 5101/54는 계약 번호이다. FG(Fin de garantie)는 보증 만료의 약자다. 예를 들어, FG 15 11 68은 1968년 11월 15일에 보증이 만료된다는 의미다. 군용 시계의 경우 점검 이후 1년의 보증 기간이 주어졌다. FG 각인의 유무로 군용과 민간용을 구분할 수 있다. 

 

- 타입 20에 탑재한 밸주(Valjoux)의 14리뉴 칼리버 222. 12시간 토털라이저를 추가한 칼리버 225도 있다. 시간당 진동수는 18,000vph(2.5Hz). 파워리저브는 약 35시간. 스크루 밸런스로 미세 조정이 가능했으며,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오버코일 밸런스 스프링을 사용했다. 이후 밸런스 주얼에 잉카블록을 추가한 무브먼트로 교체됐다. 와인딩 스템과 연결된 레버가 약해 종종 고장을 일으켰는데 브레게는 충격에 취약한 배 모양의 커다란 크라운 대신 납작한 크라운을 사용해 문제를 해결했다. 

 

1952년, 브레게는 STAé의 요청에 의해 프로토타입 파일럿 워치 3개를 공급했습니다. STAé가 주관하는 테스트에 참가하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3개의 시계는 각각 1200, 1201, 1202라는 번호를 부여 받았습니다. 브레게의 프로토타입 파일럿 워치는 파일럿으로부터 호평을 얻으며 테스트를 통과합니다. 1953년 STAé는 브레게의 파일럿 워치를 정식으로 승인했고, 이듬해인 1954년 브레게와 공식 계약(5101/54)을 체결했습니다. 무려 1100개의 시계를 프랑스 항공부에 납품하는 대규모 공급 계약이 성사된 겁니다. 브레게는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 전사적 역량을 집중했습니다. 1955년부터 1959년까지 4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1100개의 타입 20 밀리터리(Nº 7211)를 프랑스 항공부에 전달했습니다. 이때 제작된 타입 20는 크로노그래프 30분 카운터, 브레게 로고가 없는 다이얼, 공식 문구가 새겨진 케이스백, 눈금을 생략한 베젤, 장갑을 낀 채로도 조작을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가공한 배(pear) 모양의 크라운이 특징이었습니다. 브레게는 군사용 타입 20와 함께 민간용 타입 XX 개발을 병행했습니다. 덕분에 테스트 파일럿, 민간 파일럿, 업계 종사자 모두가 브레게 타입 XX를 손목에 올릴 수 있었습니다. 

 

- 시험 비행 센터(CEV)에 납품한 타입 XX N° 2499. 다이얼 3시 방향에 15분 토털라이저가 자리한다.

 

1949년 브레게로부터 플라이백 기능이 누락된 크로노그래프 파일럿 워치를 구매한 전적이 있는 CEV는 업그레이드된 브레게 타입 XX에 관심을 표명했습니다. CEV는 1956년 브레게로부터 80개의 타입 XX(N° 2499)를 추가로 구입했습니다. 80개의 시계에는 1부터 80까지 순차적으로 번호가 매겨졌습니다. 1~50번은 카운터가 3개, 51~80번은 카운터가 2개였습니다. 브레게 타입 XX(N° 2499)의 가장 큰 특징은 크로노그래프 분 카운터가 측정할 수 있는 최대 시간이 30분에서 15분으로 변경된 것이었습니다. 보다 빠르게 시간을 확인할 수 있도록 크로노그래프 15분 카운터의 크기를 조절한 것도 빠트릴 수 없는 변화였습니다. 

 

- 프랑스 해군 항공대에 납품한 타입 XX N° 4100

 

1958년 프랑스 항공부와 CEV가 주문한 물량을 소화한 브레게에게 프랑스 해군 항공대(Aéronautique Navale)가 찾아옵니다. 새로운 고객이 요구한 물량은 500개였습니다. 타입 XX 아에로노티크 나발로 불리는 이 시계는 브레게 타입 20 밀리터리(Nº 7211)와 브레게 타입 XX(Nº 2499)를 섞어놓은 듯한 디자인이 특징입니다. 프랑스 해군 항공대는 브레게에 크로노그래프 카운터를 15분으로 교체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비행기 이륙 전 점검 시간이 15분이었던 것이 이유였습니다. 브레게 타입 XX(N° 2499)에 이어 커다란 크로노그래프 15분 카운터를 가진 덕분에 빅 아이(Big eye)라는 별명이 생겼습니다. 한편, 위조 방지를 위해 브레게는 케이스백에 고유 번호를 각인했습니다.

 

- 프랑스 국가 전신 연구 센터(Centre national d'études des télécommunications, CNET)가 주문한 타입 XX N° 2988

 

브레게 타입 XX가 프랑스 국가 기관과 저명한 민간 비행 테스트 센터의 시계로 낙점되자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군사 및 민간 항공 단체는 물론이고 일반 애호가까지 앞다투어 타입 XX를 주문했습니다. 이들은 브레게 타입 XX를 구입하기 위해 파리 방돔 광장 28번지에 있는 메종의 부티크를 방문했습니다. 브레게 타입 XX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심지어는 타입 XX를 우주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엔지니어에게 제공하거나 레이싱 스포츠 워치로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일례로 각종 레이싱 대회의 주최사이자 파트너사였던 정유사 쉘(Shell)과 에쏘(Esso)는 우승자들에게 브레게 타입 XX를 수여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브레게 타입 XX가 어떤 환경에서도 임무를 다하는 탁월한 성능의 시계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었습니다.

 

- 1955년에 제작한 브레게 타입 XX N° 1780. 브레게 1세대 타입 XX 중 단 3개만 존재하는 골드 케이스 모델 가운데 하나다. 나머지 2개는 N° 1408과 N° 1781이다.

 

브레게 타입 XX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브레게는 의뢰인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하는 고객 친화적 정책을 고수했습니다. 수량이 적어도 원하는 사양이 있다면 그에 맞춰 시계를 제작하는 융통성을 발휘했습니다. 바늘의 형태나 다이얼 디테일을 달리하는 경우는 다반사였습니다. 일부는 매우 특별했는데 컬러 다이얼을 사용하거나 브장송 천문대 크로노미터 인증을 받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골드 케이스로 제작했고, 베젤 혹은 다이얼에 타키미터 스케일을 추가하기도 했습니다(주 : 1세대 타입 XX 가운데 골드 케이스 모델은 3개, 타키미터 베젤 모델은 2개에 불과하다). 1970년까지 브레게는 약 4000개의 타입 XX를 제작했습니다. 지름이 14리뉴에서 13리뉴로 줄어든 밸주 칼리버 230(투 카운터) 또는 칼리버 720(스리 카운터)로 무브먼트를 변경하고 바늘, 다이얼, 베젤의 디자인을 조금씩 다르게 적용했지만 타입 XX 고유의 디자인은 유지했습니다. 

 

변화

1870년 브레게를 인수한 브라운 가문은 100년 뒤인 1970년 파리의 보석상 쇼메(Chaumet) 형제에게 브레게를 양도합니다. 쇼메 형제의 손에 넘어간 브레게는 디렉터 프랑수아 보데(François Bodet)와 워치메이커 다니엘 로스(Daniel Roth)의 활약에 힘입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합니다. 화려한 비상을 준비하던 1971년 브레게는 새로운 타입 XX를 발표합니다. 2세대 타입 XX는 1세대 타입 XX와는 완전히 달라진 인상으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형태가 기능을 따르던 우직한 모습에서 벗어나 보다 대중적이고 스포티한 이미지를 추구하고자 했습니다. 

 

- 1975년 10월 모로코 공군에 납품한 2세대 타입 XX N° 21326

 

케이스 소재는 스테인리스 스틸을 유지했으나 폴리시드 가공으로 화려함을 강조했습니다. 지름은 38mm에서 40mm로 키웠습니다. 무브먼트는 1세대 타입 XX에서 사용했던 13리뉴 칼리버 720을 그대로 사용했지만 케이스 지름이 늘어난 탓에 무브먼트를 고정하기 위한 케이싱 링을 설치했습니다. 러그도 두툼해지면서 존재감이 전보다 부각됐습니다. 크라운에는 그리드 패턴을 새겨 장식적인 면모를 부각시켰습니다.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는 베이클라이트로 제작한 베젤이었습니다. 디자인은 확연히 복잡해졌으며 현대적인 면모를 갖췄습니다. 결정적으로 다이버 워치에서 볼 수 있는 단방향 회전 베젤로 바뀌었습니다. 케이스백에 5자리 고유 번호를 각인한 것도 전작과의 차이점이었습니다. 

 

- 폴리시드 가공한 케이스와 단뱡향 회전 베젤을 장착한 2세대 타입 XX의 측면. 크라운에 패턴을 넣어 장식했다. 

 

1971년부터 1986년까지 생산된 2세대 타입 XX의 수는 770개였습니다. 이중 364개는 투 카운터, 406개는 스리 카운터로 제작됐습니다. 2세대 타입 XX의 생산량이 1세대 타입 XX에 비해 현저히 줄어든 것은 1세대 타입 XX이 여전히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정기적으로 점검을 받은 1세대 타입 XX가 팔팔한 성능을 발휘했기 때문에 브레게는 대규모 물량을 수주하지 못했던 겁니다. 게다가 시장에는 브레게 이외에도 타입 XX를 공급하는 경쟁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고객들은 여전히 브레게에 굳건한 신뢰를 보냈습니다. 2세대 타입 XX 가운데 일부는 모로코와 코트디부아르 공군에 공급됐고, 나머지 대부분은 민간용으로 판매됐습니다. 헬리콥터 기업 헬리 유니온(Heli-Union), 아에로스파시알(Aérospatiale, 현 에어버스 인더스트리)도 브레게의 고객이었습니다. 엘리제 궁 역시 프랑스 공화국 대통령의 이름으로 6개의 브레게 타입 XX를 구매했습니다. 프랑스 정부가 브레게 시계를 구입한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타입 XX를 선택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 빅 아이 등 1세대 타입 XX의 흔적이 남아 있는 2세대 타입 XX N° 20799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브레게 타입 XX의 판매량은 완연한 하락세에 접어들었습니다. 브레게는 아브라함-루이 브레게의 유산을 재해석한 클래식 워치와 컴플리케이션에 집중했습니다. 마진이 좋은 골드 케이스 드레스 워치나 컴플리케이션과 비교하면 타입 XX는 매출 기여도가 낮았습니다. 자연스럽게 타입 XX는 브레게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게다가 쿼츠 시계가 스위스 시계 산업을 집어삼키면서 브레게에게는 더 이상 타입 XX를 돌볼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결국 브레게는 타입 XX의 생산을 중단했습니다. 1986년 재고로 남아 있던 38개의 타입 XX가 이탈리아의 에이전트에게 판매되면서 타입 XX의 여정은 잠시 중단됩니다. 

 

비행 재개

1987년 쇼메 형제가 경영권을 포기하면서 인베스트코프(Investcorp S.A)가 메종의 새로운 주인이 됩니다. 인베스트코프는 휘정거리던 브레게에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때마침 파인 워치메이킹을 강조한 기계식 시계는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인베스트코프 체제 하에 브레게의 매출은 10배 가까이 상승했습니다. 인베스트코프는 1992년 발레 드 주의 로리앙에 위치한 무브먼트 제조사 누벨 르마니아(Nouvelle Lemania, 현 브레게 로리앙 매뉴팩처)를 인수하며 브레게가 매뉴팩처로 발돋움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합니다. 인베스트코프는 사업이 안정화되자 타입 XX라는 매력적인 자산을 재조명하기로 결정합니다. 타입 XX의 정신은 계승하되 일반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새로운 감성과 디자인으로 되살린다는 복안을 강구했습니다.  

 

- 3세대 타입 XX 에어로나발 크로노그래프 Ref. 3800ST

 

- 3세대 타입 XX 트랜스아틀란티크 크로노그래프 Ref. 3820ST

 

1995년 브레게는 한 동안 멈춰있던 타입 XX에 출격 명령을 내립니다. 폴리시드 가공한 지름 39mm 케이스의 3세대 타입 XX는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케이스 측면에는 브레게의 클래식 워치처럼 플루티드 케이스 밴드를 추가했습니다. 블랙 다이얼과 큼지막한 아라비아 숫자 인덱스는 그대로였지만 소비자의 입맛에 맞게끔 세련되게 다듬었습니다. 3개의 카운터로 균형을 도모했으며, 전통을 따라 크로노그래프 카운터의 계측 한도를 각각 12시간과 15분으로 설정했습니다. 눈금을 새긴 양방향 회전 베젤은 더욱 세련된 형태로 바뀌었습니다. 무브먼트는 이전까지 사용했던 밸주 칼리버를 대신해 플라이백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탑재한 셀프와인딩 칼리버 582(르마니아 칼리버 1340)로 교체했습니다. 최초의 3세대 타입 XX는 날짜 기능이 없는 에어로나발(Ref. 3800)과 날짜 기능이 있는 트랜스아틀란티크(Ref. 3820)라는 이름으로 출시됐습니다. 에어로나발(Aéronavale)은 브레게가 오래 전 타입 XX를 공급했던 프랑스 해군 항공대에서 유래했고, 트랜스아틀란티크(Transatlantique)는 1930년 파리-뉴욕을 무착륙 비행한 브레게 XIX를 기념하는 의미를 지녔습니다. 3세대 타입 XX는 스테인리스 스틸은 물론이고 골드와 플래티넘 같은 귀금속으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이후에는 로제, 화이트, 블루 등 컬러 다이얼 모델도 등장했습니다. 이는 타입 XX가 더 이상 특정 고객만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닌 일반 대중을 위한 시계로 탈바꿈했음을 의미하며 동시에 브레게가 타입 XX를 럭셔리 스포츠 워치로 재정의했다는 사실을 반증합니다. 

 

- 90개 한정 생산한 플래티넘 케이스의 타입 XX 트랜스아틀란티크 크로노그래프 Ref. 3827PT(출처 : 크리스티)

 

- 티타늄 케이스로 제작한 타입 XX 트랜스아틀란티크 크로노그래프 Ref. 3820Ti(출처 : 소더비)

 

- 알람 기능을 추가한 타입 XX 트랜스아틀란티크 Ref. 3860ST(출처 : 크리스티)

 

- 여성용 타입 XX 트랜스아틀란티크 크로노그래프 Ref. 4820ST. 플라이백 기능을 삭제한 칼리버 550을 사용했다. 

 

1999년 브레게는 니콜라스 G. 하이에크(Nicolas G. Hayek) 전 스와치 그룹 회장에게 발탁되어 세계 최대 시계 그룹의 일원이 됩니다. 스와치 그룹의 풍부한 자금력과 거대한 유통망에 힘입어 브레게의 인기는 나날이 높아졌고, 자연스럽게 생산량과 가짓수도 늘어났습니다. 티타늄 모델, 보석으로 치장한 여성용 모델, 알람 기능을 더한 컴플리케이션 등 다양한 타입 XX가 연이어 출시됐습니다. 

 

- 크로노그래프 초침과 크로노그래프 분침을 같은 축에 설치한 타입 XXI 크로노그래프 Ref. 3810TI

 

2000년대에 접어들며 커다란 시계가 시장을 휩쓸자 브레게는 타입 XX를 앞세워 트렌드에 대응하기로 합니다. 이와 동시에 기존의 타입 XX와는 차별화되는 요소를 도입하기로 합니다. 그리하여 타입 XXI(Ref. 3810)이라는 브레게 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시계가 탄생합니다. 타입 XXI은 타입 XX를 기반으로 개발한 시계입니다. 1956년 STAé가 작성한 공식 문서에 따르면 타입 XXI은 수리 비용 절감을 위해 고장이 잘 나지 않는 튼튼한 무브먼트 사용, 충격 흡수 장치 추가, 문구 삽입, 카운트다운 베젤, 향상된 방수 성능 등 일부 사양에서 타입 XX와 차이가 있었습니다. 타입 XX와 타입 XXI을 모두 생산했던 도데인(Dodane)과는 달리 브레게는 타입 XX에만 집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메종의 역사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파일럿 워치 역사 전체로 본다면 타입 XXI의 등장은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 아라비아 숫자 인덱스의 크기를 대폭 확대한 타입 XXI 크로노그래프 Ref. 3817ST

 

- 2021년에 출시한 마지막 3세대 타입 XXI 크로노그래프 Ref. 3815TI

 

브레게 타입 XXI은 타입 XX와 외모는 유사했지만 성격은 분명히 달랐습니다. 케이스 지름은 42mm로 커졌고 다이얼에는 플라이백을 의미하는 문구를 적었습니다. 크로노그래프 카운터의 배치도 타입 XX와 달라졌습니다. 크로노그래프 분침과 크로노그래프 초침이 다이얼 중심으로 이동했고, 24시간 인디케이터를 다이얼 3시 방향에 설치했습니다. 르마니아 칼리버 1340의 설계를 변형해 크로노그래프 분침을 다이얼 3시 방향으로 옮긴 타입 XX의 칼리버 582와는 달리 타입 XXI의 칼리버 584는 르마니아 칼리버 1340의 설계를 그대로 따랐기 때문입니다. 타입 XX의 전통과는 분명 거리가 먼 레이아웃이지만 르마니아 칼리버 1340의 설계 철학에는 충실한 다소 흥미로운 행태를 엿볼 수 있습니다. 

 

- 케이스백에 있는 창을 통해 실리콘 밸런스 스프링과 이스케이프먼트의 움직임을 감상할 수 있는 타입 XXII 크로노그래프 Ref. 3880ST

 

타입 XXI 이후 브레게는 또 하나의 변주곡을 발표합니다. 타입 XXII(Ref. 3880)라는 타이틀을 내건 이 시계는 시간당 진동수가 72,000vph(10Hz)에 달하는 고진동 셀프와인딩 칼리버 589F를 탑재했습니다. 실리콘 이스케이프먼트를 이용해 안정성과 효율을 높이면서 플라이백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놓치지 않은 무브먼트였습니다.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갖춘 고진동 무브먼트의 장점은 시간의 단위를 더 작게 쪼개어 보다 정밀한 측정이 가능하다는 데에 있습니다. 타입 XXII도 이러한 장점을 십분 살렸습니다. 다이얼 중앙에 꽂힌 빨간색 크로노그래프 초침은 1/10초까지 측정이 가능했습니다. 크로노그래프 초침은 30초에 한 바퀴를, 끝을 마름모 형태로 가공한 크로노그래프 분침은 1시간에 한 바퀴를 회전하며 시간을 셌습니다. 

 

예고편

- 브레게 타입 20 온리 워치 2019

 

3세대 타입 XX의 시대가 저물어갈 무렵 브레게는 온리 워치(Only Watch) 경매에 출품할 타입 XX를 공개합니다. 2년에 한 번 열리는 온리 워치 경매에 참가하는 브랜드는 특별 제작한 시계 1점을 출품해야 합니다. 브레게는 2015년 온리 워치 출품작으로 타입 XXI을 선정한 전적이 있기 때문에 타입 XX의 등장은 새삼 놀랍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디테일이었습니다. 2019년 온리 워치에 출품한 타입 20는 1955년 프랑스 항공부에 공급한 타입 20 밀리터리(Nº 7211)를 쏙 빼 닮았던 겁니다. 케이스백, 베젤, 러그를 비롯해 크라운과 푸시 버튼의 형태까지 원작의 특징을 고스란히 재현했습니다. 하이라이트는 엔진이었습니다.

 

- 새단장한 밸주 칼리버 235

 

케이스백 너머에는 2세대 타입 XX에 사용했던 밸주의 13리뉴 플라이백 크로노그래프 칼리버 235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브레게는 매뉴팩처의 창고에 잠들어 있던 밸주 칼리버 235에게 복귀 명령을 내린 뒤 새로운 임무에 투입했습니다. 하룻밤 일탈에 그칠 줄 알았던 브레게의 행보는 2년 뒤에 열린 온리 워치 2021에서도 계속됐습니다. 온리 워치 2021에 출품한 브레게 타입 XX 역시 2년 전과 마찬가지로 1세대 타입 XX을 모티프로 삼았습니다. CEV에 공급한 타입 XX(Nº 2499)와 1960년에 판매된 컬러 다이얼의 유니크 피스 타입 XX(Nº 5096)을 절묘하게 섞어놓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무브먼트는 2년 전처럼 밸주 크로노그래프 칼리버 235를 기용했습니다. 

 

- 브레게 타입 XX 온리 워치 2021

 

브레게는 두 유니크 피스 제작에 앞서 아카이브를 철저하게 조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온리 워치 2019 출품작을 타입 20, 온리 워치 2021 출품작을 타입 XX로 부른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브레게는 이미 이 시점에서 4세대 타입 XX 개발에 착수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4세대 타입 XX에 탑재된 칼리버 728를 개발하는데 4년이 소요됐으니 시기도 얼추 맞아떨어집니다. 2019년과 2021년의 온리 워치 출품작은 4세대 타입 XX의 탄생을 예고하는 복선이었던 겁니다. 

 

원점으로의 회귀

- 4세대 타입 XX

 

메종이 완성한 3개의 파일럿 워치가 처음으로 타입 20이라는 이름으로 불린지 꼭 70년만인 2023년, 4세대 타입 XX가 출정식을 가졌습니다. 거래 상대에 따라 이름을 분류했던 초기 역사에 근거해 군용인 2057은 타입 20로, 민간용인 2067은 타입 XX로 표기했습니다. 타입 20 2057은 프랑스 항공부에 공급한 타입 20 밀리터리(Nº 7211)처럼 투 카운터(30분 토털라이저)로, 타입 XX 2067은 CNET가 주문한 타입 XX(Nº 2988)처럼 빅 아이 스리 카운터(15분 토털라이저)로 제작했습니다. 지름 42mm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와 양방향 회전 베젤, 블랙 다이얼, 라듐 컬러를 재현한 슈퍼루미노바 등 고풍스러우면서도 근사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노력했습니다. 외관은 타입 XX의 역사를 충실하게 고증했다면 내면에 해당하는 무브먼트는 메종의 최신 워치메이킹 기술을 아낌없이 투입했습니다. 

 

- 칼리버 7281

 

타입 20 2057에는 인하우스 셀프와인딩 칼리버 7281, 타입 XX 2067에는 칼리버 728이 들어갑니다. 12시간 카운터의 유무와 크로노그래프 분 카운터의 측정 시간이 다를 뿐 나머지 사양은 동일합니다. 블랙 DLC 처리한 컬럼 휠과 수직 클러치 메커니즘을 조합해 아름다움과 안정성을 동시에 추구했습니다. 실리콘 밸런스 스프링과 이스케이프로 파일럿 워치가 응당 갖춰야 할 내자성도 확보했습니다. 모노톤으로 마감한 무브먼트는 차분하면서 세련된 인상을 제공하며 비행기의 모습을 묘사한 골드 로터로 시계의 정체성을 에둘러 나타냈습니다. 고진동인 36,000vph(5Hz)로 설계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입니다. 파워리저브도 60시간까지 확보하여 소비자들의 기대에 크게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스트랩을 손쉽게 교체할 수 있는 인터체인저블 시스템까지 도입하며 타입 XX의 현대화를 성공적으로 완수했습니다. 

 

 

현재 파일럿 워치를 출시하는 제조사는 널렸지만 오랜 전통과 풍부한 유산을 간직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고급 시계로 범위를 축소하면 브레게와 동렬에 설 수 있는 브랜드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파일럿 워치와 파인 워치메이킹이라는 다소 어색해 보이는 조합은 브레게 타입 XX를 이방인으로 둔갑시킵니다. 하지만 브레게가 항공 산업과 파일럿 워치의 발전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챈다면 그 이방인이 실은 가문의 영광임을 비로소 깨닫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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