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에 관심이 있다면 컴플리케이션은 친숙한 용어입니다. 복잡함을 뜻하는 컴플리케이션은 말 그대로 복잡한 시계를 의미합니다. 복잡한 시계라는 것은 기능이 많고 구조가 복잡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통적 개념으로 통용되는 컴플리케이션은 투르비용, 퍼페츄얼 캘린더, 스플릿 세컨드, 리피터(소너리)와 이들의 복합형태를 말합니다. 시계 기능이 발전하면서 전통적 컴플리케이션의 개념을 확장 또는 새로운 형태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여러 개의 축으로 구동하는 다축(Multi Axis) 투르비용, 캘린더 기능의 원점인 천체의 운행을 시각화 한 셀레스티얼처럼 기존 개념을 확장한 것에서 부품을 수직으로 연결했거나 비정형적인 구조의 무브먼트, 극단적인 두께의 울트라 씬까지도 컴플리케이션의 범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발전한 시계기술과 만나 실현되면서 컴플리케이션의 정의는 전처럼 쉽지 않지만, 분명한 사실은 시계의 정점을 지향하는 브랜드라면 컴플리케이션을 빼놓고 그곳에 도달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1969년 쿼츠 손목시계가 등장한 이후 기계식 시계는 막강한 대체제의 등장으로 시계의 본질인 기능을 넘어서는 요소를 요구 받았고 그 대답은 아름다움이나 미적 가치였습니다. 시계의 아름다움은 다이얼과 케이스에서도 발견할 수 있지만 기계식 시계라면 기계식 무브먼트에서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기계식 시계에 있어 정점인 컴플리케이션은 기능하는 무브먼트의 복잡성,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 무브먼트 각 부품의 정밀한 가공과 피니싱,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한 무브먼트의 장식적 피니싱을 필수적으로 동반합니다. 따라서 컴플리케이션은 가장 아름다운 기계식 시계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1997년 몽블랑의 첫 시계인 마이스터스튁
1997년 몽블랑은 마이스터스튁으로 대표되는 만년필 라인의 이미지를 투영한 시계를 발표합니다. 견실하게 다져온 마이스터스튁의 긍정적인 이미지는 시계에서도 동일하게 작용했고 빠르게 몽블랑을 지지하는 축의 하나로 성장합니다. 마이스터스튁을 시작으로 스타, 타임워커와 같은 라인업을 확장하는 한편, 워치메이킹을 한 단계 이상 성장시키기 위해 매뉴팩처 미네르바를 인수해 편입시킵니다. 1858년 문을 연 미네르바는 150년이 넘는 업력을 기반으로 시계 제작의 노하우를 축적해 왔고, 인 하우스에서 생산한 크로노그래프 장르에서 뚜렷한 자취를 남겼습니다. 몽블랑은 미네르바를 품에 안으면서 빌르레 매뉴팩처로 새 단장합니다. 그곳에서는 인 하우스 무브먼트와 컴플리케이션을 생산해 몽블랑 워치메이킹을 성장시키고 미래를 제안하게 됩니다.
빌르레 매뉴팩처 (위 과거 / 아래 현재)
미네르바를 계승하는 빌르레 매뉴팩처는 볼륨 모델의 상위에 위치하는 자동 크로노그래프 칼리버 MB R200 시리즈부터 1930, 40년대를 방불케 하는 수동 크로노그래프, 투르비용, 퍼페츄얼 캘린더 및 스페셜리티 모델을 담당합니다. 컴플리케이션의 생산적 관점에서 특성, 즉 소량생산이 기본이기 때문에 높은 개발비용, 소량 다품종의 부품 생산과 활용의 제약, 숙련된 고급 생산인력의 확보를 감내해야 합니다. 이는 몽블랑처럼 미드 레인지를 타겟으로 설정한 브랜드에게 모험과도 같은 일입니다. 또 굳이 시도하지 않는다면 안정적인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몽블랑은 빌르레 매뉴팩처 체제를 꾸린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플리케이션을 선보이며 몽블랑 컴플리케이션의 세계를 구축해오고 있습니다.
메타모포시스
메타모포시스 II
스타 레거시 메타모포시스 리미티드 에디션 8 (위 : 변신 전 / 아래 변신 후)
클래시컬한 스타레거시 메타모포시스의 무브먼트와 피니싱
몽블랑 컴플리케이션의 서막은 2010년 선보인 메타모포시스(Metamorphosis)가 열었습니다. 변신을 뜻하는 이름처럼 시계는 두 가지 얼굴을 자유롭게 오갑니다. 변신 전 메타모포시스의 얼굴은 레귤레이터 방식의 시, 분, 날짜 표시를 합니다. 미닛 리피터처럼 케이스 왼쪽의 슬라이드 레버를 내리면 변신이 시작됩니다. 다이얼이 좌우로 갈라지며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수행하는 새로운 얼굴이 나타납니다. 다이얼 6시 방향에서는 크로노그래프 카운터가 솟아 오르는 시계에서 유래없는 동작까지 보여줍니다. 메타모포시스는 다이얼의 바뀌는 동작 그 자체로도 놀라웠지만 시간 표시에서 크로노그래프로로 기능이 전환되는 부분에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로부터 4년 뒤인 2014년, 홍콩에서 열린 워치스 앤 원더스에서 기요세 다이얼의 클래식 디테일로 치장한 메타모포시스 II를 선보이며 다시 한번 변신의 흥분을 상기시켰습니다. 메타모포시스 잠시 휴식기에 접어든 뒤, 2019년 스타 레거시로 재 등장합니다. 이번에는 변신이라는 테마를 다른 기능에 적용합니다. 엑소(Exo) 투르비용, GMT, 셀레스티얼을 담아낸 스타레거시 메타모포시스는 다이얼 12시 방향에서 크고 클래식한 스크류 밸런스와 대칭을 이루는 6시 방향에서 GMT 기능을 수행합니다. 전작처럼 변신을 시작하면 반전이 나타납니다. 변신 후의 시계는 다이얼에 가려던 엑소 투르비용의 케이지, 지구를 둘러 싼 밤 하늘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전작들과 테마는 같지만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합니다. 특히 변신 후 밸런스 아래에 감춰졌던 투르비용 케이지가 드러나는 광경은 압권입니다.
빌르레 엑소 뚜르비옹 라트라팡테
스타 레거시 서스펜디드 엑소 뚜르비옹 리미티드 에디션 18
스타레거시 메타모포시스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엑소 투르비용은 몽블랑이 투르비용 컴플리케이션에서 보여준 새로운 시각의 결과물입니다. 이름에서 바깥을 뜻하는 엑소를 투르비용 앞에 붙인 이유는 밸런스가 투르비용 케이지의 바깥쪽에 있는 구조에서 기인하기 때문입니다. 보통 투르비용의 구조를 보면 케이지 안에 밸런스와 이스케이프먼트가 수납됩니다. 몽블랑은 어퍼 케이지를 생략하고 언더 케이지만 사용하는 방법으로 굉장히 클래시컬한 밸런스의 투르비용을 만들어냅니다. 요즘 보기 드문 커다란 밸런스 휠은 현대 투르비용의 본질적 의의인 시각적 만족감을 극대화합니다. 이것은 투르비용 메커니즘에 대한 몽블랑의 관점이 어떠한지 드러냅니다. 엑소 투르비용은 미네르바의 장기인 크로노그래프와 라트라팡테와 결합해 개성적인 컴플리케이션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2018년에 접어들며 순수한 타임온리 구성의 투르비용인 스타 레거시 서스펜디드 엑소 투르비용으로도 선을 보입니다. 투르비용 케이지를 양쪽에서 고정하는 브릿지 방식이 아닌 싱글 암으로 고정해 시각적 만족감을 더욱 자극합니다. 회중시계를 떠올리는 무브먼트 구조와 아름다운 무브먼트 피니싱을 발휘해 몽블랑 컴플리케이션의 높은 수준을 보여줬습니다.
듀얼 타임과 24시간 표시, 날짜 뒤로 돌리기가 가능한 보헴 퍼페추얼 캘린더 리미티드 에디션 100 (위)과 헤리티지 퍼페추얼 캘린더 리미티드 에디션 100(아래)
헤리티지와 여성용 보헴 라인업의 기함으로 투입한 퍼페츄얼 캘린더는 다이얼에서 정석적인 퍼페츄얼 캘린더 구성을 드러냅니다. 다이얼 12시 방향을 제외한 3, 6, 9 시 방향에는 날짜, 요일, 월, 문 페이즈, GMT (24시간 표시) 기능을 올렸고 칼리버 MB 29.22가 구동을 담당합니다. 남성용인 헤리티지 퍼페추얼 캘린더는 빈티지 디테일을 느낄 수 있는 클래식 퍼페츄얼 캘린더처럼 보이지만, 현재도 소수에 불과한 ‘날짜 뒤로 돌리기’를 지원하는 모델입니다. 퍼페츄얼 캘린더는 4년에 1번 꼴로 돌아오는 윤년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보통 4년을 주기로 프로그램 되어있습니다. 31일 주기의 데이트 기능의 조작법을 상기해 보면 ‘날짜 뒤로 돌리기’ 기능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 수 있습니다. 시계의 날짜를 맞추다가 내일 날짜로 맞췄다면 날짜를 앞으로 30일 돌려 수정해야 합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데이트 기능에서 가능한 수정 법으로 4년을 주기의 퍼페츄얼 캘린더에서 통용되기 어렵습니다. 근성을 가지고 4년에서 하루가 모자란 날짜만큼 돌릴 수는 있겠지만, 이마저도 년도 표시 기능이 없는 퍼페츄얼 캘린더에서나 가능합니다. 퍼페츄얼 캘린더 사용에서 가장 빈번한 사고인 날짜 조정은 ‘날짜 뒤로 돌리기’로 완전히 해결됩니다. 이것은 메커니즘상 GMT 기능을 수반하며 그 덕분에 퍼페츄얼 캘린더의 부가 기능으로는 보기 드문 듀얼 타임을 갖출 수 있습니다.
몽블랑은 빌르레 매뉴팩처로 전환한 미네르바에서 컴플리케이션 생산의 기술적 기반과 영감을 얻으며, 어떤 자세로 워치메이킹에 임하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탄생시킨 메타모포시스, 전통 컴플리케이션의 개념을 다시금 고찰한 엑소 투르비용과 퍼페츄얼 캘린더로 컴플리케이션 세계에 새로움을 선사했습니다. 전통적인 컴플리케이션에 해당하는 수동 라트라팡테와 크로노그래프는 티타늄이나 골드는 물론 라임 골드나 브론즈 같운 다양한 케이스 소재로 다채롭게 변주합니다. 자동 크로노그래프 시대로 접어든 이후 수동 크로노그래프는 점차 줄어들어 희귀종처럼 여겨지고, 소량 생산이라는 특성 때문에 이제는 하이엔드 브랜드의 앞마당과 같은 장르입니다. 몽블랑이 이들과 필적하는 수준의 수동 크로노그래프를 내놓고 있다는 사실은 상당히 고무적입니다. 특히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고수하는 수동 크로노그래프의 생산은 워치메이킹의 높은 지향점과 뚜렷한 의지를 실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울러 컴플리케이션 장르에서 더욱 뚜렷하게 다가오는 기계식 시계 본질인 아름다움과 미적 가치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입니다.
ㅇㅏ 무브먼트 진짜 예쁘네요.
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