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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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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말 제작된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포켓 워치 

스위스 발레드주의 하이엔드 시계제조사 오데마 피게(Audemars Piguet)는 1875년 창립 이래 퍼페추얼 캘린더, 미닛 리피터(차이밍 워치)와 같은 오뜨 오를로제리(Haute Horlogerie)의 영역에 속하는 하이 컴플리케이션 시계 제조에 남다른 열정과 재능을 보여줬습니다. 1882년 당시로서는 흔치 않은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포켓 워치를 선보인 것도 두 창립자 줄스 루이 오데마(Jules Louis Audemars)와 에드와르 오귀스트 피게(Edward Auguste Piguet)의 넘치는 자신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20세기 초중반 손목시계 시대로 접어들면서도 오데마 피게의 컴플리케이션 시계 제조 열정은 식지 않았습니다. 1930~70년대에 걸쳐 제작된 셀 수 없이 많은 종류의 컴플리케이션 손목시계들은 캘린더, 리피터, 크로노그래프 크게 세 갈래로 나뉘었고, 이중 일부 특별한 모델은 오픈워크(혹은 스켈레톤) 무브먼트 및 화려한 젬세팅 기술을 접목해 격조 있는 모습을 완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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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데마 피게 빈티지 광고 비주얼 

반면 투르비용 기능의 손목시계는 다소 뒤늦은 1980년대 중반에 들어서야 컬렉션에 최초로 등장했는데, 공식 아카이브 기록에 따르면 1986년 제작된 투르비용 오토마티크(Tourbillon Automatique, 영문 표기는 오토매틱 투르비용) 모델(Ref. 25643BA)이 그 주인공입니다. 해당 자동 투르비용 칼리버 2870은 무게가 고작 0.134g에 불과한 초경량 티타늄 투르비용 케이지를 탑재한 것으로도 화제를 모았는데요. 또한 자동 투르비용 칼리버임에도 슬림한 두께를 자랑해 케이스 두께가 4.8mm 정도에 그쳐 출시 당시 세계에서 가장 얇은 자동 투르비용 시계 기록을 수립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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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6년 제작된 브랜드 최초의 오토매틱 투르비용 모델

아브라함-루이 브레게(Abraham-Louis Breguet)가 ‘회오리바람(프랑스어로 투르비용)’에서 영감을 얻어 1801년 발명한 투르비용은 시계에 미치는 지구의 중력과 착용 위치에 따라 변하는 무게 중심의 영향을 상쇄하고 등시성을 확보하기 위한 원리를 기반으로, 기계식 무브먼트의 핵심 조절 부품들(Regulating organs)- 밸런스, 밸런스 스프링, 이스케이프먼트 관련 부품들- 을 작은 케이지(Cage) 안에 넣고 축을 중심으로 회전시키는 현재의 형태로 진화를 거듭해왔습니다. 하지만 쿼츠 위기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1980년대만 하더라도 고도로 정교한 기계식 컴플리케이션, 특히 당시엔 캘린더나 크로노그래프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마이너(!?)했던 투르비용 기능의 손목시계를 선보이는 하이엔드 시계제조사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던 게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오데마 피게는 당시나 지금이나 파격적인 울트라-씬 사양의 오토매틱 투르비용 칼리버와 시계를 자체 개발 제작해 과감하게 시판까지 했던 것입니다. 시계 디자인적인 측면에서도 이 시계는 그 시절의 어느 시계와도 달랐는데요. 오픈워크 가공한 다이얼 상단 좌측면에 투르비용 케이지를 노출하는 방식이나 다이얼 6시 방향에 절개된 어퍼처(창)를 통해 AP 로고를 새긴 오토매틱 칼리버의 골드 로터 일부를 노출시킨 컨셉도 파격적인 것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시계는 그 전까지 회중시계 시대에 머물러 있던 골동품과도 같은 유산인 투르비용 메커니즘을 가장 모던하고 아방가르드하게 재해석한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 훗날 오데마 피게의 컬렉션뿐만 아니라 여러 하이엔드 시계제조사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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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 제작된 로열 오크 투르비용 

20세기 최고의 시계 디자이너 제랄드 젠타(Gérald Genta)의 스케치를 기반으로 1972년 탄생한 로열 오크(Royal Oak) 컬렉션에도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하이 컴플리케이션 모델이 속속 추가됐습니다. 그 중 투르비용 모델이 등장하기 시작한 건 1996년부터입니다. 로열 오크 투르비용(Royal Oak Tourbillon)이 그것으로, 독자적으로 개발한 자동 투르비용 칼리버를 기반으로 캘린더와 파워리저브 표시 기능을 추가해 나름대로 색다른 시도를 보여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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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데뷔한 로열 오크 투르비용 엑스트라-씬 Ref. 26510OR

이후 로열 오크 40주년을 맞은 2012년, 오데마 피게는 몇 종의 새로운 투르비용 모델을 선보였습니다. 특기할 만한 점은 전 세대의 자동 투르비용 칼리버가 아닌 완전히 새롭게 개발한 수동 투르비용 칼리버로 무장하고, 일부 스페셜한 모델에는 전체 세심하게 오픈워크 가공한 투르비용 칼리버를 탑재해 디자인적으로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또한 다른 부수적인 기능을 생략하고 타임온리 형태에 투르비용 케이지만 노출함으로써 오롯이 투르비용 메커니즘에 집중하고 있는 점도 이전 세대의 로열 오크 투르비용과 차별화되는 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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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발표한 로열 오크 투르비용 엑스트라-씬 Ref. 26510ST (사진 좌) 
& 로열 오크 오픈워크 엑스트라-씬 투르비용 Ref. 26511PT (사진 우) 

그리고 제품명도 조금 바뀌었는데요. 로열 오크 투르비용 엑스트라-씬(Royal Oak Tourbillon Extra-Thin) 혹은 로열 오크 엑스트라-씬 투르비용으로 통칭하기 시작했습니다. 두께 4.46mm의 비교적 얇은 수동 투르비용 칼리버를 탑재해 9mm가 채 되지 않는 슬림한 케이스 두께를 의식한 작명입니다. 일반 클래식 케이스보다 조금 더 두께감이 있는 로열 오크 케이스에 ‘엑스트라-씬’을 함께 병기할 정도면 얇은 수동 투르비용 칼리버에 갖는 브랜드의 자부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1986년 선보인 브랜드 최초의 오토매틱 투르비용 손목시계를 계승하는 의미 또한 담고 있는 셈입니다. 역사적인 모델에 담긴 상징적인 의미와 오뜨 오롤로제리의 가치를 메종의 가장 아이코닉한 로열 오크 컬렉션을 통해 계승해 나간다는 취지에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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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출시한 로열 오크 투르비용 엑스트라-씬 Ref. 26521PT
플래티넘 케이스 베젤부에 총 32개의 바게트 컷 사파이어(약 3.65캐럿)를 세팅했다.

이어 2018년, 오데마 피게는 기존 레퍼런스(Ref. 26510) 모델들을 단종하고, 새 레퍼런스(Ref. 26522)를 부여한 새로운 로열 오크 투르비용 엑스트라-씬 시리즈를 전개하기 시작합니다. 스테인리스 스틸(Ref. 26522ST), 핑크 골드(Ref. 26522OR), 플래티넘(Ref. 26521PT) 버전은 물론, 이듬해인 2019년에는 로열 오크 투르비용 라인업 최초로 케이스 및 브레이슬릿까지 블랙 세라믹을 적용한 버전(Ref. 26522CE)까지 출시하고, 다이얼 컬러도 블랙과 블루 외 일부 부티크 에디션에는 기존에 볼 수 없던 퍼플 컬러까지 선보여 전례 없는 확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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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열 오크 투르비용 엑스트라-씬 Ref. 26522CE

새롭게 리뉴얼(?)한 로열 오크 투르비용 엑스트라-씬 시리즈(Ref. 26522)는 전 세대 시리즈(Ref. 26510)와 스펙상으로는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동일한 케이스 직경(41mm)에 무브먼트도 기존의 수동 투르비용 칼리버 2924를 이어 그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19년 리뉴얼 론칭한 뉴 로열 오크 셀프 와인딩 시리즈(Ref. 15500ST)가 성공적인 전 세대 시리즈(Ref. 15400)를 계승하면서도 다이얼 디테일 및 무브먼트에 큰 변화를 준 것과 사뭇 비교되는 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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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피스리 에볼뤼티브 패턴 다이얼 접사 모습 

하지만 한 가지 눈에 띄는 큰 차이점이 있는데요. 전 세대 로열 오크 투르비용 엑스트라-씬 시리즈에서 볼 수 있던 쁘띠 타피스리(Petite Tapisserie) 패턴 다이얼을 대신해 타피스리 에볼뤼티브(Tapisserie Evolutive)로 명명한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엔진턴 기요셰 패턴을 적용한 것입니다. 6시 방향의 오픈워크 투르비용 케이지를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퍼지면서 사각 패턴이 점차 커지는 특유의 디자인이 시계에 보다 역동적인 인상을 부여합니다. 여기에 모델에 따라 다크 블루, 스모키 블루(그라데이션 블루), 퍼플 컬러까지 입혀지면 한층 더 유니크한 느낌을 발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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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열 오크 투르비용 엑스트라-씬 Ref. 26522ST 

케이스 소재 및 젬세팅 여부에 관계없이 뉴 로열 오크 투르비용 엑스트라-씬의 케이스 직경은 41mm, 두께는 9mm이며, 방수 사양은 50m를 보장합니다. 이전 시리즈(두께 8.85mm)보다 케이스 두께가 미묘하게 조금 두꺼워졌지만 여전히 얇은 편입니다. 전후면 반사 방지 코팅 처리한 사파이어 크리스탈을 사용, 오픈워크 다이얼뿐만 아니라 시스루 형태의 케이스백을 통해 인하우스 수동 투르비용 칼리버 2924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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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4 칼리버는 직경 14리뉴(약 31.5mm), 두께 4.46mm 크기에 총 216개의 부품과 25개의 주얼로 구성돼 있으며, 밸런스는 시간당 21,600회 진동하며(3헤르츠), 파워리저브는 약 70시간을 보장합니다. 싱글 배럴을 사용한 전통적인 설계의 투르비용 칼리버치고는 제법 긴 파워리저브가 장점이라 할 수 있으며, 무브먼트 사이드 즉 사파이어 크리스탈 케이스백으로 보이는 브릿지 한쪽에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도 추가해 사용자 친화적인 요소도 돋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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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대 시리즈(Ref. 26510)와 같은 베이스 무브먼트를 사용함에도 한 가지 또 가시적인 차이점이 있는데, 바로 톱 브릿지의 가공 상태입니다. 구형은 투르비용 케이지를 노출하는 공간을 제외하곤 쓰리 쿼터 플레이트로 가려 다소 답답한 느낌을 줬다면, 신형은 주요 휠을 지탱하는 브릿지를 중심으로 입체적으로 오픈워크 가공해 기어트레인을 노출함으로써 무브먼트의 미적인 측면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해당 브릿지의 모서리는 또한 수공 베벨링(앵글라주) 작업을 거쳐 아름답게 마감되어 하이엔드 무브먼트의 격을 드러내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브릿지 한쪽에는 더불어 오데마 피게 브랜드명을 엠보싱 각인해 2924 칼리버 전체적으로 심심한 구석이 없이 오밀조밀한 장식미를 엿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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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열 오크 투르비용 엑스트라-씬 Ref. 26522CE

로열 오크 투르비용 엑스트라-씬은 전 모델 브레이슬릿 버전만 지원합니다. 케이스와 동일한 소재의 브레이슬릿을 확인할 수 있으며, 특히 하이테크 블랙 세라믹 버전(Ref. 26522CE)의 경우 라인업 최초로 브레이슬릿까지 전체 모스 경도 9에 달하는(참고로 다이아몬드가 10) 블랙 세라믹 소재를 사용했습니다. 세라믹 소재 특성상 스틸이나 골드에 비해 마감 처리가 어렵기 때문에 새틴 브러시드 및 폴리시드 피니시를 번갈아 적용하는 로열 오크 컬렉션의 특성을 제대로 살리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참고로 일반 스틸 케이스와 브레이슬릿에 비해 평균 약 5배 정도의 시간이 더 소요된다고(케이스는 약 14시간, 브레이슬릿은 약 30시간 정도)! 가공 및 마감이 까다로운 만큼 단 100피스 한정 제작되어 전 세계 지정된 오데마 피게 부티크에서만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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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열 오크 투르비용 엑스트라-씬 Ref. 26522OR

부티크 한정 에디션인 블랙 세라믹 버전(Ref. 26522CE)과 스틸 퍼플 다이얼 버전(Ref. 26522ST), 그리고 베젤에 3.65캐럿 상당의 사파이어를 세팅한 플래티넘 스모키 블루 다이얼 버전(Ref. 26521PT)을 제외한 핑크 골드 블루 다이얼 버전(Ref. 26522OR)은 현재 국내 매장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현대백화점 본점(Tel. 02-3449-5917), 신세계백화점 강남점(Tel. 02-3479-1809)에 위치한 오데마 피게 직영 매장에 입고되었다고 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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