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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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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르로끌을 대표하는 매뉴팩처 제니스(Zenith)는 지난 2017년, 기계식 무브먼트를 구성하는 전통적인 핵심 부품 설계를 완전히 탈피한 혁신적인 단일 구조의 오실레이터(Oscillator)를 개발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최초로 적용한 시계, 데피 랩(Defy Lab)을 발표해 시계 업계에 새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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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발표한 데피 랩 

지난 몇 년간 세계 시계 업계는 글로벌 외환 위기 및 중국, 홍콩 등 주요 시장의 정치적 불안정의 여파로 혁신적인 제품 개발보다는 기존의 베스트셀링 컬렉션을 수정, 보완하거나 과거의 유산을 재현하는 수준의 소극적인 행보가 만연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제니스는 사전 예고도 없이 데피 랩처럼 예상치 못한 극적인 결과물을 내놓았기에 당시 시계애호가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 해 연말 시계 업계의 오스카상으로 통하는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Grand Prix d’Horlogerie de Genève, GPHG)에서 '혁신상(Innovation Prize)'을 수상했을 때도 별다른 이견이 없을 만큼 데피 랩의 성취는 단연 독보적으로 빛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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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PHG 2017 ‘혁신상’을 수상한 데피 랩 
제니스 CEO 줄리앙 토나레(Julien Tornare)가 단상에 올라 수상 소감을 하고 있다. 

하지만 데피 랩은 몇 가지 컬러 버전을 포함하고도 총 10피스 정도만 한정 생산된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그마저 순식간에 사전 판매가 완료됨으로써 일반인들은 실물을 접할 기회조차 없었는데요. 제품 컨셉 자체가 혁신적인 만큼 본격적인 상용화에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예상보다 훨씬 빠른 1년 반 만인 2019년 마침내 첫 양산 모델인 데피 인벤터(Defy Inventor)를 출시하기에 이릅니다. 타임포럼은 이번 스페셜 컬럼을 통해 제니스의 새 시대를 여는 따끈따끈한 신제품, 데피 인벤터를 집중적으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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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리지널 엘 프리메로 칼리버 3019 PHC
기계식 시계 무브먼트를 구성하는 전통적인 부품들을 확인할 수 있다. 

340여 년 전 네덜란드의 천문학자이자 물리학자였던 크리스티앙 호이겐스(Christiaan Huygens, 1629-1695)는 스프링에 추를 매달아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왕복 운동하는 장치인 펜듈럼(Pendulum, 진자)과 이를 통해 시간을 조절하는 메커니즘을 발명했습니다. 나아가 진자의 등시성의 원리를 기반으로 시계를 개발하기 시작했고, 이에 영향을 받아 차츰 소형화한 밸런스와 밸런스 스프링이 고안되어 현재까지 거의 모든 기계식 시계를 구성하는 기본 조절 부품들(Regulating organs)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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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신적인 단일 구조의 오실레이터를 적용한 데피 랩의 칼리버 ZO 342
전통적인 밸런스 및 밸런스 스프링을 제거하고, 이스케이프먼트의 구조와 형태도 차별화했다.   

흔히 오실레이터(진동자)로 통칭되는 밸런스와 밸런스 스프링, 그리고 18세기 중엽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레버 이스케이프먼트(Lever escapement)는 현 기계식 무브먼트를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자 하나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21세기 중엽에 접어들면서부터 3세기 넘게 이어진 전통적인 오실레이터 및 이스케이프먼트 소재와 형태를 벗어난 창의적인 시도가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라드 페리고의 콘스탄트 이스케이프먼트 L.M.과 율리스 나르당의 플라잉 오실레이터, 그리고 제니스의 제니스 오실레이터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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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새롭게 탄생한 데피 인벤터 

기계식 시계 무브먼트의 작동을 관장하는 메인스프링, 기어트레인으로 이어지는 기본적인 구성은 데피 인벤터에서도 물론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통적인 오실레이터(밸런스, 밸런스 스프링) 부품을 제거한 자리에 두께 0.5mm에 불과한 단일 구조의 초박형 오실레이터가 약 30개 이상의 제조가 까다로운 부품들을 완전히 대체하고 이를 연결하는 피봇이나 마모를 방지하는 주얼 또한 생략함으로써 기계식 무브먼트의 영원한 딜레마인 마찰, 윤활 문제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16년 파르미지아니 플러리에가 스위스 전자 및 마이크로테크놀로지 센터(Swiss Center for Electronics and Microtechnology, CSEM)와의 협업을 통해 발표한 센피네(Senfine) 역시 이와 비슷한 시도를 보여준 적이 있지만, 컨셉 프로젝트에 그친 센피네와 달리 제니스는 데피 랩에서 데피 인벤터까지 단숨에 상용화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기술력이 돋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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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결정 실리콘 기반의 제니스 오실레이터 

일명 제니스 오실레이터(Zenith Oscillator)로 명명한 해당 부품은 소재 자체도 첨단 반도체 기술에서 유래한 신소재인 모노크리스탈 실리콘(Monocrystalline Silicon, 단결정 실리콘)으로 매우 가벼우면서 단단하고, 온도변화 및 자기장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제조 특허 출원 중). 또한 관련해 제니스는 자기장 민감성(Magnetic insensitivity, ISO-764) 테스트 및 열 민감성(Thermal insensitivity, ISO-3159) 테스트 국제 기준을 훨씬 상회한다고 자신감을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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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스 오실레이터는 직경 32.8mm, 두께 8.13mm 크기의 새 인하우스 자동 칼리버 9100에 탑재되어 오픈워크 가공한 프로펠러 혹은 제니스의 상징인 오각별 모양을 연상시키는 다이얼과 함께 시계 전면에 노출됩니다. 제니스 오실레이터는 무려 18헤르츠(시간당 129,600회)의 진동수를 자랑합니다. 전작 데피 랩의 진동수가 15헤르츠였으니 이보다 더 빠르게 진동하는 겁니다. 기계식 무브먼트의 대다수가 4헤르츠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제니스의 엘 프리메로는 5헤르츠), 실로 엄청난 고진동입니다. 또한 박진감 넘치는 특유의 움직임을 다이얼 면을 통해 항시 볼 수 있기 때문에 데피 인벤터 시리즈만의 뚜렷한 개성으로도 어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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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엘 프리메로 50주년 스페셜 로고 

올해 50주년을 맞은 엘 프리메로로 인해 하이비트(고진동) 무브먼트/시계 제조사로서 확고한 명성을 얻게 된 만큼 브랜드 입장에서는 이를 전략적으로 끌고 갈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을 터입니다. 더불어 기술적인 부분은 우주항공 엔지니어 출신으로 앞서 태그호이어의 마이크로타이머 플라잉 1000(1/1,000초까지 측정 가능)과 마이크로거더(5/10,000초까지 측정 가능) 등 수많은 하이비트 무브먼트/시계 개발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해당 분야에 정통한 현 LVMH 그룹 워치 부문 R&D 부서(LVMH Watch Division Research & Development Department)의 수장 기 세몽(Guy Sémon)의 자문이 실질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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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전작 데피 랩 버전과 마찬가지로 제니스 오실레이터는 +/-6도의 진폭을 유지합니다. 전통적인 밸런스 휠의 진폭이 300도를 상회하는데 반해, 18헤르츠의 고진동과 +/-6도의 진폭은 등시성 유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전작 데피 랩 기준으로는 일오차가 48시간 동안 단 +/-0.5초대를 유지할 만큼 고도의 정확성을 자랑했고, 프랑스 브장송 천문대(Besancon Observatory)를 통해 공식 크로노미터 인증까지 받았습니다. 신형 데피 인벤터는 데피 랩처럼 브장송 천문대 인증까진 받지 않았지만, 대신 타임랩 - 제네바 시계 및 마이크로공학 연구소 재단(Timelab – Foundation of the Geneva Laboratory of Horology and Micro-engineering)을 통한 까다로운 크로노미터 인증을 통과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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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형 데피 랩(사진 좌)과 신형 데피 인벤터(우)
오각별 모양의 오픈워크 다이얼 구조와 6시 방향에 노출한 이스케이프 휠의 형태가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데피 인벤터의 엔진인 신형 칼리버 9100에는 또한 얇고 유연한 블레이드 형태의 이스케이프 휠이 탑재됐습니다. 역시나 실리콘 소재로 제작한 해당 이스케이프 휠은 전작 데피 랩과는 형태부터 조금 다른데요. 데피 랩의 그것이 더 투박하고 전통적인 이스케이프 휠을 변형한 듯한 과도기적 형태를 띠고 있다면, 신형 데피 인벤터의 그것은 곤충의 촉수를 연상시키는 여러 개의 긴 블레이드와 함께 이를 지지하는 직선형 블레이드가 한 세트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로써 에너지 전달 효율을 더욱 높일 수 있게 되어 전작의 15헤르츠에서 18헤르츠로 한층 증대된 하이비트 설계도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반면 파워리저브는 전작 데피 랩 보다 다소 줄어든 50시간 정도를 보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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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경 44mm, 두께 14.5mm 크기의 케이스 중 미들 케이스와 케이스백은 티타늄 소재를 사용하고, 상단 베젤부는 알루미늄계 베이스(Alu 6082)를 가열 단계에서 특수한 폴리머와 함께 배합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에어로니스(Aeronith)라는 완전히 새로운 합금 신소재를 사용했습니다. 폴리머로 굳히는 과정에서 기공이 형성되어 스티로폼을 연상시키는 특유의 우둘투둘한 형상과 질감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일반 티타늄 보다 약 3배, 알루미늄 보다 1.7배 정도 더 가벼우면서도 매우 단단해 스크래치를 예방할 수 있는 장점도 갖고 있습니다. 에어로니스를 시계 외장 소재로 사용한 건 제니스가 최초이며, 심지어 전작 데피 랩에서는 베젤 뿐만 아니라 케이스 전체를 에어로니스로 제작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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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 글라스는 양면 모두 반사 방지 코팅 처리한 돔형의 사파이어 크리스탈을 사용했으며, 케이스백 역시 투명 사파이어 크리스탈을 삽입해 독자적인 울트라 하이비트 자동 칼리버의 다른 면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제니스의 상징인 별 모양을 형상화하고 블루 도금 마감한 특유의 로터 장식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참고로 케이스 방수 사양은 50m. 스트랩은 블랙 러버 바탕에 블루 앨리게이터 가죽을 덧댄 형태로 실용성과 고급스러움을 동시에 챙겼습니다. 버클은 티타늄 소재의 탈착이 용이한 더블 폴딩 버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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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 넘게 이어진 전통적인 오실레이터와 이스케이프먼트 설계를 과감하게 탈피하면서 첨단 신소재와의 접목을 통해 기계식 무브먼트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한 제니스의 걸출한 신작, 데피 인벤터(Ref. 95.9001.9100/78.R584)를 이제 곧 국내에서도 만나볼 수 있을 예정입니다. 공식 출시 시기는 내년 1월이며, 출시가는 2천 500만 원대로 전작 데피 랩보다 가격대도 훨씬 낮아져 데피 인벤터에 담긴 가치를 아는 시계애호가 및 컬렉터라면 충분히 노려봄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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