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시계 역사를 돌이켰을 때 오메가(OMEGA)의 스피드마스터(Speedmaster)만큼 드라마틱한 배경을 자랑하는 시계가 또 있을까요? 미항공우주국(NASA)의 유인우주선 아폴로 11호와 함께 역사적인 달 탐사 여정에 동행해 훗날 문워치(Moonwatch)로 불린 스피드마스터의 스토리는 시계애호가들의 가슴에 영원히 꺼지지 않을 불씨처럼 타오르고 있습니다.
올해 인류 최초의 달 착륙 50주년을 맞아 타임포럼은 오메가의 타임리스 클래식인 스피드마스터의 역사와 NASA와의 특별한 인연을 재조명하는 일련의 컬럼을 게재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시간에는 현행 스피드마스터 컬렉션에서 가장 원형의 모습을 잘 간직한 스피드마스터 문워치 프로페셔널 크로노그래프(Ref. 311.30.42.30.01.005)을 스페셜 리뷰를 통해 보다 자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워낙 유명한 시계이고, 수십 년 넘게 외관상으로는 크게 바뀌지 않은 클래식 스테디셀러인 만큼 이번 리뷰가 컨텐츠적인 측면에서는 그리 신선하게 와 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리뷰가 문워치를 아직 경험하지 못한 분이나 문워치의 보다 다양한 매력을 발견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모쪼록 유용한 참조 자료가 되길 바랍니다.
참고로 이번 리뷰에서는 스피드마스터 문워치 프로페셔널 크로노그래프의 탄생 배경 및 역사적인 진화 과정 등을 구구절절 하게 기술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문워치 관련한 보다 밀도 있는 이야기는 앞서 공유한 해당 아카이브 컬럼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1957년 탄생한 최초의 스피드마스터(Ref. CK2915)부터 2세대 스피드마스터이자 1962년 미 우주비행사 월터 쉬라(Walter Schirra)와 함께 최초로 우주에 간 스피드마스터(Ref. CK2998)를 거쳐 3세대 스피드마스터이자 NASA의 테스트를 받은 첫 스피드마스터 모델(Ref. ST105.003)까지 스피드마스터는 런칭 10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 안에 빠르게 컬렉션에 안착해 초창기부터 전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어 1964년 제작된 4세대 스피드마스터이자 다이얼에 '프로페셔널(Professional)' 프린트를 처음으로 새긴 모델(Ref. ST105.012)에 이르러 우리는 마침내 문워치라는 이름을 붙이기 시작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바로 이 스피드마스터 프로페셔널 모델이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의 착륙선 조종사 버즈 올드린(Buzz Aldrin)이 달에 착륙할 당시 착용한 유일무이한 시계이기 때문입니다.
- 1964년 제작된 오리지널 문워치 Ref. ST105.012
4세대 스피드마스터이자 1세대 문워치로 통하는 특정 모델(Ref. ST105.012)이 오메가 역사를 통틀어 가장 아이코닉한 크로노그래프 손목시계로 손꼽히는 데는 비단 우주 항공 역사와 어우러진 엄청난 배경 스토리 때문만은 아닙니다. 바로 이 오리지널 문워치에 이르러서야 현행으로까지 이어지는 스피드마스터 문워치 프로페셔널 크로노그래프만의 특징적인 디자인이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최초의 스피드마스터 모델부터 조금씩 변형과 개선을 거듭한 끝에 4세대 스피드마스터에 이르러서야 진정한 클래식의 탄생을 알리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시의 적절하게 달 탐사와 관련한 전례 없는 스토리텔링까지 더해짐으로써 오리지널 문워치는 불멸의 아이콘이 될 수 있었습니다.
- 1세대 오리지널 문워치(좌)와 현행 문워치(우)
현행 스피드마스터 문워치 프로페셔널 크로노그래프(Ref. 311.30.42.30.01.005) 역시 오리지널 문워치의 시그니처 디자인을 오롯이 계승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빼고 더할 것도 없이 '이것이야말로 궁극의 클래식이다!'라고 외치는 것만 같은 변함없는 외형에서 문워치 특유의 강력한 디자인 파워를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1964년 제작된 오리지널 문워치부터 이어진 42mm 크기의 비대칭형 스틸 케이스, 살짝 안쪽으로 비튼 트위스트 러그, 크라운 및 푸셔를 보호하는 가드 장식, 특정 구간의 평균속도를 계측할 수 있는 타키미터 스케일이 새겨진 블랙 알루미늄 인서트 베젤, 3세대 스피드마스터부터 채택된 얇고 길쭉한 펜슬 타입 핸즈, 매트한 블랙 다이얼과 시각적 대비를 이루는 화이트 컬러 코팅(프린트, 야광 컬러까지 포함), 시계에 한층 고풍스러운 멋을 더하는 돔형의 헤잘라이트 크리스탈 글라스 등 케이스 및 다이얼의 디테일 하나하나까지 오리지널 디자인에 충실합니다.
몇 가지 차이점이라면, 오메가 심볼 로고 형태와 아플리케(오리지널)-프린트(현행) 타입의 변화, 야광 도료 종류(수퍼루미노바), 그리고 스틸 브레이슬릿의 형태 정도만이 다를 뿐입니다. 현행으로까지 이어지는 클래식 라인업 제품에 이 정도까지 오리지널 디자인을 철저하게 고수하는 제조사도 필자가 기억하는 한 오메가가 유일합니다.
클래식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 반 세기 넘도록 지속한 성취는 결과적으로 오메가에 큰 영광을 안겨 주었습니다. 현행 스피드마스터 컬렉션 안에 비교적 다양한 종류의 시계가 출시되고 있음에도, 한가지 단언할 수 있는 점은 오리지널 문워치의 디자인만은 앞으로도 결코 훼손되지 않고 이어질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하면서도 원형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는 시계, 클래식 시계애호가들은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문워치를 사랑합니다. 가브리엘 코코 샤넬(Gabrielle Coco Chanel)이 남긴 명언, '패션은 변하지만 스타일은 남는다(Fashion changes, Style remains)'는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기억합니다. 어느 분야든 트렌드는 끊임없이 바뀌지만, 아이코닉한 디자인과 고유의 스타일을 지닌 시계의 가치는 빛을 잃지 않고 오히려 나날이 더욱 밝게 빛나게 마련입니다.
현행 스피드마스터 문워치 프로페셔널 크로노그래프(Ref. 311.30.42.30.01.005)의 케이스 및 브레이슬릿 가공 상태는 전체적으로 준수한 편입니다. 프로파일의 하단 엣지 부분과 버클 덮개 부분의 마감 상태가 혹자에 따라서는 다소 거칠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6백만원 초반의 시계 가격대를 생각하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직선과 곡선이 조화를 이룬 케이스의 라인은 날렵하면서도 우아하고, 단순한 듯 하면서도 각각의 디테일이 뚜렷하게 살아 있어 입체감을 더합니다.
직경 42mm의 케이스 사이즈는 오리지널 문워치의 그것과 동일합니다. 남성용 시계 사이즈로는 적당한 편으로, 타키미터 스케일을 더한 베젤과 아래 경계를 이루는 얄쌍한 케이스 프로파일, 비교적 짧은 러그 길이 덕분에 실제 손목에 올렸을 때의 느낌은 고시된 스펙 보다 조금 더 작게 느껴집니다. 클래식한 디자인뿐만 아니라 사이즈까지 그대로 유지한 점이 오랫동안 사랑 받은 비결이 아닐까 싶습니다.
매트한 질감의 블랙 컬러 다이얼에 3-6-9시 방향의 쓰리 레지스터(카운터) 서브 다이얼은 마치 달의 분화구처럼 안으로 움푹 파인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후대의 수많은 제조사들에 영향을 미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안정적인 배열이 돋보입니다.
망치 형태의 푸셔와 케이스에 가깝게 붙은 뭉툭한 크라운 역시 오리지널 문워치를 따르고 있습니다. 혹자는 크라운의 길이가 짧아 와인딩이 다소 불편하다는 지적도 제기하는데, 과거 NASA의 우주비행사들에겐 오히려 이점으로 작용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탐사 활동 도중 자칫 크라운이 빠져 시간을 잘못 가리키거나 와인딩 스템에 손상을 입혀 와인딩을 제대로 못하게 되는 불상사를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케이스백은 스크류 케이스백 형태로 무브먼트를 드러내진 않습니다. 1세대 문워치 역시 스틸 케이스백이었던 점을 상기하면 당연한 선택입니다. 컬렉션에 사파이어 크리스탈 케이스백 형태가 처음으로 등장한 건 1980년 옐로우 골드 케이스로 제작한 300피스 한정 모델부터입니다. 물론 현행 스피드마스터 문워치 프로페셔널 크로노그래프 라인업에는 스틸 케이스로도 사파이어 크리스탈 버전(Ref. 311.30.42.30.01.006)을 지원합니다. 어찌됐든 뒤가 막혀 있는 스크류 케이스백 형태가 오리지널 문워치의 특징임은 분명합니다. 또한 케이스 내부에 안티 마그네틱 커버를 갖추고 있어 일상 수준의 자기장으로부터 무브먼트를 보호하는 성능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두 유형의 케이스백을 비교하기 위해 촬영용 모델 옆에 필자의 문워치(시스루백 모델)를 나란히 놓아봤습니다. 위 사진을 보면 두 모델이 확실하게 구분이 가지요?!
다시 촬영용 제품(Ref. 311.30.42.30.01.005)로 돌아와, 케이스백 중앙에는 오메가 컬렉션의 상징인 해마 메달리온이 컬렉션명과 함께 인그레이빙돼 있습니다. 또한 그 위에는 NASA로부터 공인 받은 '모든 유인 우주 미션을 위한 비행에 적합한 장비(Flight Qualified for all Manned Space Missions)'라는 문구를, 그 아래에는 '달에서 착용된 첫 시계(The first watch worn on the moon)'라는 문구를 새겨 스피드마스터 프로페셔널 문워치에 담긴 역사성과 상징적인 가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문구는 1세대 문워치가 아닌, 달 착륙 성공 직후인 1970년대 출시된 2세대 문워치부터 추가된 것입니다.
- 1968년 제작된 2세대 문워치 Ref. ST145.022
- 오메가 칼리버 861
무브먼트는 유서 깊은 수동 크로노그래프 칼리버 1861를 탑재했습니다(진동수 3헤르츠, 파워리저브 약 48시간). 오리지널 문워치에는 스위스 발레드주의 크로노그래프 스페셜리스트 르마니아(Lemania, 훗날 스와치 그룹에 인수됨)의 전설적인 수동 명기 2310(CH 27 시리즈)을 베이스로 수정한 321 칼리버를 탑재했는데요. 1968년 출시된 2세대 문워치(Ref. ST145.022)부터 르마니아 1873을 베이스로 수정한, 321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이라 할 수 있는 861 칼리버로 교체되기 시작했습니다. 컬럼 휠 방식의 321과 달리 861은 대량생산에 용이한 캠 구동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크로노그래프 기능 관련 핵심 전달 부품이 바뀌었고, 브릿지의 형태나 가공 상태도 보다 단순해졌습니다. 또한 브레게 오버코일 헤어스프링과 전통적인 스크류 밸런스를 채택한 321과 달리, 861은 일반적인 스무스 밸런스(글루시듀어 밸런스)와 니바록스 플랫 헤어스프링을 적용한 것도 차이입니다(밸런스 진동수도 2.5헤르츠에서 3헤르츠로 바뀜). 861은 196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핑크 골드 도금 처리한 형태로 주로 선보였고, 1990년대 중후반부터 지금의 로듐 도금 마감으로 바뀌면서 861 대신 1861로 칼리버명도 변경돼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 오메가 칼리버 1861
6번의 달 착륙 미션에 동행한 1세대 문워치의 엔진 321 못지 않게 이후 등장한 861/1861 칼리버 역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오랜 세월 속에서 검증된 수동 크로노그래프 명기들입니다. 최근 들어 1861의 설계를 기반으로 오메가 매뉴팩처 칼리버의 상징인 코-액시얼 이스케이프먼트와 실리콘 헤어스프링을 장착하고 스위스 계측학 연방학회(METAS)로부터 마스터 크로노미터 인증 및 15,000가우스 이상의 높은 항자 성능을 인정 받은 3861과 같은 업그레이드 사양의 칼리버가 등장하긴 했지만 한동안 레귤러 에디션에는 1861 혹은 1863(시스루백 모델 전용)이 계속 탑재될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스피드마스터 문워치 프로페셔널 크로노그래프는 프레젠테이션 박스 세트부터 존재감이 남다른데요. 여느 컬렉션과 차별화해 오직 스피드마스터 문워치 프로페셔널 크로노그래프 제품에만 2014년경부터 바뀐 해당 박스 세트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촘촘하게 직조한 블랙 컬러 직물(혹은 나일론 소재?)로 감싼 박스를 개봉하면 시계를 고정할 수 있는 쿠션을 비롯해, 해마와 브랜드 로고를 엠보싱 각인한 대형 스크류 케이스백 샘플, 확대경(루페), 여분의 나토(NATO) 스트랩과 NASA 우주비행사를 위해 줄이 길게 특수 제작한 패브릭 스트랩, 브레이슬릿/스트랩 교체에 필요한 드라이버 도구 등이 보증 카드, 컬렉션 브로슈어, 스트랩 교체 책자와 함께 담겨 있습니다. 국내 시계애호가들 사이에서 소위 '덕후 박스'로 통하는 신형 박스 세트는 문워치를 소장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컬렉션에 더욱 애착을 가질 수 있게 합니다.
국내 리테일가 기준으로 1천만원대 미만에서 풍부한 역사성과 시계마니아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스토리텔링, 오랜 세월 검증된 성능과 변치 않는 클래식 디자인까지 갖춘 단 하나의 크로노그래프 시계를 꼽으라면 필자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주저 없이 오메가의 스피드마스터 문워치 프로페셔널 크로노그래프를 꼽을 것입니다. 주로 하이엔드 브랜드에서 볼 수 있는 수동 크로노그래프 시계를 이 정도의 가격대에 선보이는 제조사도 오메가가 거의 유일합니다. 달 착륙 미션에 성공한 상징적인 시계에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크로노그래프 시계로 거듭난 스피드마스터 문워치 프로페셔널 크로노그래프의 전설적인 스토리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입니다.
가슴이 웅장해집니다. 정말 경험해야 할 모델이네요. 구성도 알차고 뭐 하나 빠지는게 없는...혜자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