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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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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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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메이커는 수많은 시계를 세상에 내놓습니다. 그 중 가장 심플한 기능을 지닌 시계를 엔트리 모델이라고 부르곤 하죠. 메이커에 따라 엔트리 모델이 시간만 표시하는 타임 온리가 될 수 도 있고, 데이트 기능이 더해질 수도 있습니다. 무브먼트 또한 수동일 수도 있고 수동이 없다면 자동이 될 수도 있죠. 엔트리 모델은 말 그대로 해당 메이커에 발을 디디는 시계이기도 하기 때문에 메이커가 지향하는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없기도 합니다. 때로는 운 좋게도 엔트리 모델이 어떤 메이커의 매력을 함축적으로 담아내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라면 성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상식을 뛰어넘는 컨셉과 이것을 어떻게든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 비일상적인 소재로 시장에 진입하자마자 초 하이엔드 시장을 접수한 리차드 밀은 역시나 컴플리케이션으로 향할수록 그 색채가 강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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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M 010 (왼쪽), RM 023(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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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리차드 밀의 매력은 RM 010 같은 엔트리 모델에서도 분명하게 발견됩니다. RM 010에는 리차드 밀의 디자인 정체성 혹은 캐릭터를 케이스와 다이얼, 무브먼트의 유기적 작용으로 만들어 내는 원칙을 준수합니다. 기본형이라 할 수 있는 커벡스 토노 케이스에는 베젤, 케이스, 케이스 백으로 쉽게 나눌 수 없는 특유의 공통적 비정형성이 베어나오며, 오픈 워크 기법을 표출하는 투명 다이얼과 그 주변에서 입체감을 불어넣는 플린지, 부품을 한껏 노출하는 무브먼트가 한데 어우러지며 독창적인 형태가 펼쳐집니다. 물론 RM 010은 엔트리 모델에 해당하는 만큼 기능에서는 심플합니다. 센터세컨드와 7시 방향에 세로 모양으로 창을 내어 날짜를 표시하죠. 디자인이 주는 비범함을 쉽사리 무시할 수 없지만 기능만 본다면 세로 형태의 날짜 창을 빼면 크게 부각하기 어렵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작은 반전은 시스루 백을 통해 발견되는데요. 가변 지오메트리 로터라고 부르는 방식의 로터가 그것입니다. 사용자의 움직임을 고려해 로터 웨이트의 위치를 여섯 단계로 조절할 수 있는 이것은 로터의 회전을 사용자 생활패턴에 맞춰 최적화 할 수 있습니다. 움직임이 많은 사용자라면 로터의 회전력을 줄이고 그 반대면 회전력을 향상시켜 와인딩 효율 및 적정 수준의 와인딩을 유지하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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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스 무브먼트 소재는 비교적 널리 쓰이지만 각 부품의 특성에 맞춰 순 티타늄인 그레이드 2, 합금인 그레이드 5를 나누고 있고, 리차드 밀의 특기(?)인 공들여 무브먼트 피니시를 한 뒤 코팅으로 표면을 덮어버리는 구성은 엔트리 급에서도 여지없이 발휘 됩니다. 절대적인 가격대를 고려했을 때 사실 엔트리라고 하기에는 다소 어폐가 없지 않으나, 심플 기능이라는 관점에서는 틀리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재미있게도 리차드 밀의 라인업은 여느 스위스 시계와 달리 베이스 무브먼트에 기능을 더해 베리에이션 넓혀 라인업을 구축하는 방식을 그리 선호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데이트 기능이라고 해도 모델 자체의 독자성이 강합니다. RM 010의 경우 베리에이션이라고 해도 24시간 인디케이터를 더한 모델이 잠시 존재했던 정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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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 구성상의 형제 모델로 RM 023이 있습니다. RM 010과 같은 시계로 볼 수 있지만 리차드 밀에서는 흔치 않게 로만 인덱스를 사용한 모델입니다. 클래식한 로만 인덱스는 리차드 밀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선입견이 떠오르지만, 오버사이즈의 인덱스를 타원형으로 잘라내 동적인 감각을 부여하고, 공중에서 유영하듯 배치한 다이얼은 예사롭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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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M 033(왼쪽), RM 016(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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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밀이 기계식 시계의 한계 또는 불가능의 타파. 예를 들어 투르비용과 같은 컴플리케이션은 충격에 취약하다는 명제를 테니스, 골프, 육상 선수. F1 드라이버가 자신의 손목에 시계를 착용하고, 실제 경기에 임하면서 한계와 불가능을 넘어서는 과정은 텔레비전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하며 깨트렸고 자연스럽게 스포츠 워치 메이커라는 인식이 자리잡습니다. 이는 메이커의 전반적인 성향으로 봤을 때 크게 벗어난 말은 아니지만 드레스 워치에서도 리차드 밀 다운 시각을 던진 바 있습니다. 엑스트라 플랫 오토매틱이라는 부제가 붙은 RM 033과 같은 부제를 단 RM 016이 이에 해당합니다. 토노 케이스가 득세하는 리차드 밀의 라인업에서 라운드 케이스의 RM 033은 되레 이색적입니다. 러그의 경계가 뚜렷하다는 점 역시 그러하죠. 하지만 그 외의 디테일에서는 다른 리차드 밀과 다르지 않습니다. 투명 레이어를 이용해 RM 023과 다른 방식으로 공중에 띄운 로만 인덱스가 인상적이죠. 아무래도 드레스 워치적 접근은 케이스의 두께로 확인 됩니다. 두께 6.30mm는 리차드 밀은 물론 다른 시계와 비교했을 때도 인상적인 수치에 해당합니다. 수트 차림에서는 종종 셔츠 손목 밖으로 돌출할 수 밖에 없는 토노 케이스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들 모델은 이와 달리 셔츠 소매 속 리차드 밀이라는 새로움 경험을 줍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요인은 RM 033에 탑재된 무브먼트로 파르미지아니 산하의 보우쉐가 공급한 칼리버 RMXP1덕입니다. 마이크로 로터 방식으로 두께를 최소화한 두께 2.60mm의 자동 무브먼트입니다. 같은 베이스 무브먼트가 파르미지아니에 탑재되나 디테일, 전체적인 외관은 태생의 연관성을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각각의 색채를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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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M 033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RM 016은 렉탕귤러 케이스입니다. 케이스 위, 아래를 손목 안쪽으로 구부린 곡선으로 러그를 대신합니다. 라운드 케이스만큼이나 레탕귤러 케이스가 도드라지는 리차드 밀 라인업의 독특함이 새삼 떠오르는데요. 직사각형의 케이스 형태를 따라 그대로 배치한 오버사이즈 아라빅 인덱스는 쉽게 지나칠 법 하지만, 특유의 캐릭터를 형성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합니다. RM 016에는 RM 010, RM 023과 같은 무브먼트를 탑재됩니다. RM 010, RM 023처럼 7시 방향의 날짜 창이 재미있는데 아라비아 숫자의 디자인을 이용해 날짜 창을 녹여냈기 때문입니다. 역시 RM 033과 지향점이 같은 만큼 얇은 두께를 드러내며, 명칭과 구분이 모호한 특유의 케이스 구조를 렉탕귤러 케이스로도 한번 확인시켜 줍니다. 케이스 백에서 봤을 때는 라운드 무브먼트를 렉탕귤러 케이스에 넣어 고정하면서 나타난 특유의 디테일이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강렬한 컨셉트, 독특한 메커니즘으로 무장한 모델이 즐비한 라인업이지만 RM 010, RM 023 같은 개성적인 엔트리 모델과 어쩌면 의외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얇은 두께를 내세워 드레스 워치임을 주장하는 RM 033, RM 016 같은 모델 덕분에 리차드 밀이 재미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촬영 : 포토그래퍼 권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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