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블랑 컴플리케이션의 정점으로 꼽는 엑소투르비용(몽블랑의 표기는 엑소뚜르비옹)은 다른 투르비용과 비교하면 상당히 큰 밸런스 휠을 지녔고 또한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 18,000vph의 느긋한 로우 비트가 주류를 이루던 시절, 상징처럼 여겨지던 커다란 밸런스가 보여주었던 클래시컬한 아름다움이 오버랩 되는데요. 보통 투르비용이라면 이렇게 큰 밸런스 휠을 만드는 데에 무리가 따릅니다. 케이지의 무게는 구동할 수 있는 동력의 한계 이내여야 하는데, 밸런스 휠이 크면 범위를 초과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종종 케이지 소재로 티타늄을 사용하기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따라서 프랭크 뮬러의 기가 투르비용처럼 아주 작정하고 도전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엑소투르비용처럼 큰 밸런스의 투르비용은 쉽게 볼 수 있는 형태가 아닙니다.
빌르레 투르비용 실린더리크 스카이나이트 지오스피어 리미티드 에디션의 전통적인 투르비용의 케이지
투르비용의 기본 원리는 밸런스, 이스케이프먼트를 케이지 안에 넣고 천천히 돌려서 밸런스를 구성하는 헤어스프링에 걸리는 중력을 상쇄하고자 위함입니다. 따라서 밸런스 휠은 구조상 케이지에 수납되므로 케이지 보다 큰 지름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 같은 전통적인 투르비용 구조를 타파한 모델이 엑소투르비용입니다. 이름의 엑소(Exo)는 그리스어로 바깥을 뜻하며 밸런스 휠이 케이지 지름의 바깥까지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케이지에서 상단부를 제거하고 하단만 기능하도록 하면 커다란 밸런스 휠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케이지 상단부가 삭제되면서 무게 부담도 상당 부분 덜게 되므로, 밸런스 휠의 지름을 넓히는데 여력도 늘어납니다. 그 결과물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클래식한 아름다움과 개성 넘치는 엑소투르비용인 것이죠. 요즘 중력의 상쇄라는 투르비용의 기능적인 목적은 쇠퇴하고, 시각적인 즐거움의 향유가 새로운 목적이라고 한다면 충실하게 부합하는 셈이죠.
칼리버 MB 29 시리즈의 간결한 구조
최근 새롭게 내놓은 엑소투르비용은 빌르레 라인업에서 높은 가격으로 인해 제한적으로 선보였던 점과 달리 4810, 타임워커, 보헴 같은 대중적인 라인업을 통해 소개됩니다. 빌르레 라인업의 엑소투르비용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밸런스 휠이 소형화되어 구분해 부를 필요가 있지만, 둘을 구분하지 않고 둘 모두 엑소투르비용이라고 부릅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밸런스의 지름 차이는 있지만 엑소투르비용의 구조적 특징이 같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새로운 엑소투르비용도 케이지 상부를 삭제하고 밸런스 휠을 강조하는 구조로 얼핏 보면 ‘하트비트’ 타입의 시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자세히 보면 밸런스가 좌우로 진동하는 동시에 회전하는 투르비용의 움직임을 드러냅니다. 빌르레의 엑소투르비용은 밸런스 휠의 크기만큼의 커다란 아름다움이 있지만, 이것의 면적이 상당하므로 대형의 케이스 지름에도 다이얼이 빡빡하다는 인상이 듭니다. 물론 컴플리케이션의 복잡함이라고 해석해야 옳지만 다이얼 구성에 제약을 야기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에 비해 새로운 엑소투르비용은 상대적으로 작은 지름의 밸런스로 시각적 임팩트는 줄었지만 간결한 구조를 얻었습니다. 이는 의도적인 설계가 아닐까 하는데요. 투르비용 구조의 간략화와 모듈러 방식을 택하면서 좀 더 합리적인 가격의 설정이 가능해집니다. 근 몇 년간 몽블랑 워치의 움직임은 라인업의 확대와 함께 스토리 텔링을 시작했고, 가격에서는 가격 합리성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엑소투르비용도 예외는 아니었을 텐데요. 전 CEO인 제롬 랑베르가 예거 르쿨트르 시절 마스터 투르비용으로 대중화 시도를 한데에 이어 몽블랑에서도 다시 한번 대중적인 접근을 꾀한 결과가 아닐까 합니다.
덕분에 엑소투르비용은 4810 컬렉션의 리뉴얼에 맞춰 4810 엑소투르비용 슬림, 올해 타임워커의 리뉴얼에 내놓은 타임워커 엑소투르비용 미닛 크로노그래프 리미티드 에디션, 여성용인 보헴에서 보헴 엑소투르비용 슬림이라는 모습으로 여러 라인업에서 등장합니다. 이름에 슬림이 들어간 4810과 보헴 라인업에서는 두께를 줄이기 위해 효율적인 방식인 마이크로 로터 방식의 자동 무브먼트인 칼리버 M29 시리즈로 등장했고, 타임워커에는 인 하우스 자동 크로노그래프인 칼리버 MB R200을 베이스에 투르비용을 더한 칼리버 MB R230으로 변신합니다. 마치 레고 블록처럼 다른 무브먼트에 쉽게 옮길 수 있는 모듈러 구조의 장점을 보여주는 대목인데요. 상부 케이지가 없는 구조 덕분에 쉽게 스톱 세컨드를 구현할 수 있습니다. 1분에 1회전 하는 원미닛 투르비용이므로 케이지에 빨간색 삼각형 마커를 두고 초침으로 활용하고 있죠. 케이지를 멈출 수 있다면 핵(Hack) 기능처럼 더욱 정확한 시간 세팅이 가능해지는데요. 엑소투르비용은 밸런스 측면에 스토퍼를 직접 접촉시키는 방법으로 스톱 세컨드를 구현합니다. 핵 기능을 갖춘 보통 시계처럼 크라운을 시간 조정하는 포지션에 맞추면 스토퍼가 밸런스에 접촉하면서 케이지를 정지시킵니다. 스톱 세컨드가 가능한 투르비용은 소수에 불과하므로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엑소투르비용 라인업
4810 엑소투르비용 슬림
몽블랑의 해발 4810m에서 이름을 가져온 4810 라인업은 ‘증기선의 도입으로 대서양을 오가는 상인과 여행자들에 의해 황금기에 접어든 역사의 한 장면’를 새로운 이야기의 주제로 잡았습니다. 월드타이머가 새롭게 소개되며 주제를 기능으로 뒷받침하기도 했는데요. 플래그 십 모델에는 4810 엑소투르비용 슬림이 투입되며 4810 라인업을 선두에서 이끄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몽블랑의 심벌인 화이트스타를 기요세 패턴으로 응용해 은근한 화려함과 단정한 케이스의 조화는 4810 엑소투르비용 슬림에서도 드러납니다. 여기에 플래그 십답게 아름다움이 더해졌는데요. 6시 방향의 케이지와 다이얼 부분을 단차로 구분하고, 다이얼보다 낮게 위치하는 케이지의 영역에서는 코트 드 제네바 패턴이 배경이 되어 투르비용을 더욱 강조하게 됩니다. 엑소투르비용답게 상단의 케이지가 없어 밸런스 휠이 고스란히 노출됩니다. 스톱 세컨드 상태에서는 밸런스 휠에 부착한 웨이트 스크류의 개수를 셀 수 있을 정도이며, 클래식함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적인 디테일입니다. 반면 타임워커 엑소투르비옹 미닛 크로노그래프 리미티드 에디션에서는 이 디테일을 생략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4810 엑소투르비용 슬림은 다이얼을 보는 재미가 있지만 심플한 타임 온리에 가깝습니다. 3시 방향 기능 인디케이터는 타임 온리라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주지만, 다이얼에서 포인트가 되면서 크라운 조작 시 명료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증기선의 엔진 텔레그래프에서 영감을 얻은 이것의 디자인은 주제를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효과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탑재된 무브먼트 칼리버 MB 29.21은 마이크로 로터의 덕분에 두께가 4.5mm에 불과하며, 파워리저브는 50시간으로 비교적 여유 있는 구동시간을 제공합니다.
타임워커 엑소투르비용 미닛 크로노그래프 리미티드 에디션
스포츠성의 강화와 클래식 모터스포츠로 라인업의 방향성을 재정의한 타임워커는 2016년 발표한 타임워커 엑소투르비용 미닛 크로노그래프 리미티드 에디션을 한 차례 리뉴얼해 내놓습니다. 기본은 2016년에 완성이 되어 있었는데요. 다이얼 속 스몰 다이얼에 시, 분침과 날짜를 두고, 중심축을 관통하는 중앙선에서 아래로 배치된 카운터 같은 베이스 무브먼트의 독특한 구성을 유지한 채 보통의 밸런스를 엑소투르비용의 케이지로 교체했습니다. 케이지는 다른 엑소투르비용과 마찬가지로 6시 방향에 배치되었지만, 크로노그래프의 카운터와 절묘하게 높이를 나눠가졌습니다. 기존의 칼리버 MB R200을 수정한 묘미(?)랄까요. 카운터의 작은 바늘이 케이지 위를 지나가는 광경은 조금 아찔해 보이기도 합니다. 2017년 버전은 케이스를 까맣게 물들이고 빨간색을 포인트 색상으로 활용해 더욱 강렬한 이미지를 전달합니다. 특히 글라스 방수용 링을 빨간색으로 사용해 다이얼 바깥쪽으로 붉은 띠가 번지도록 한 연출은 인상적입니다. 케이스와 마찬가지로 칼리버 MB R230도 검정색 코팅을 해 스포츠성과 강한 이미지를 주는데요. 몽블랑은 타임워커 엑소투르비용 미닛 크로노그래프 리미티드 에디션이 감상용이 아닌 일상적 용도의 투르비용이 되기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하이엔드 브랜드의 심플 워치 가격과 비슷한 가격 설정이나 디자인에서 이를 읽을 수 있습니다.
보헴 엑소투르비용 슬림
많은 브랜드들이 여성용 시계의 라인업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남성용 시장의 포화가 원인일 텐데, 과거와 달리 여성용 모델을 많이 내놓으면서 기계식 무브먼트를 탑재하는 비율이 높아진 점이 특기할 만합니다. 문 페이즈, 천체의 움직임을 구체적으로 표시하는 셀레스티얼 기능이 여성용에서 선호되곤 했는데요. 몽블랑은 정공법으로 투르비용을 투입했습니다. 4810 엑소투르비용 슬림과 같은 베이스 무브먼트를 보헴에 탑재했습니다. 4810 엑소투르비용 슬림처럼 기능 인디케이터가 보헴에도 있었으면 손톱에 민감한 여성들에게 더 호응을 얻었을지도 모르겠군요. 크라운을 당기다가 손톱 손상이 가끔씩 일어나기 때문인데요. 기능 인디케이터를 제외하면 동일한 무브먼트지만, 케이지의 브릿지 형태를 변형해 여성스러운 취향을 반영합니다. 케이지 브릿지는 남성용의 경우 끝이 뾰족한 화살모양이나 보헴 엑소투르비용 슬림은 원형으로 라운드 케이스의 전체적인 느낌과도 잘 어우러집니다. 여성 선호도가 높은 브랜드에서도 잘 볼 수 없는 과감한 투르비용의 투입은 좋은 반응으로 나타났으면 하는데, 가능성이 적지 않은 이유는 남성용과 마찬가지로 투르비용의 가격접근성 측면에서는 경쟁자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골드 케이스가 아닌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로도 선택할 수 있다는 점도 크게 작용하지 싶습니다.
몽블랑은 이쁘긴 한데 서비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