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SIHH와 바젤에서 공교롭게도 흥미로운 균시차 기능을 갖춘 시계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비슷한 듯 다른 균시차 기능 시계였는데요. 주인공은 바로 바쉐론 콘스탄틴의 '셀레스티아 애스트로노미컬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3600'과 브레게의 '마린 에콰시옹 마샹 5887'입니다. 균시차 기능은 컴플리케이션 중에서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기능이라 역시 슈퍼(!) 하이엔드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브랜드에서 선보였습니다.
균시차, 즉 이퀘이션 오브 타임(equation of time)은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 평균태양시와 실제 태양의 시와 분을 의미하는 진태양시 사이의 차이를 의미합니다. 사실 고대에는 태양을 시간의 기준으로 사용했지만, 태양시는 (해시계가 그려내는 형태에서 알 수 있듯) 불규칙한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시간 계측의 정확성이 진화했고, 시계가 시간을 확인하는 기준이 되면서 하루를 24시간으로 간주하는 평균태양시가 진태양시를 대체하게 되었습니다. 평균태양시는 진태양시와 비교했을 때 -16분에서 +14까지의 차이를 보이며, 1년간 정확히 일치하는 날은 1년에 4일밖에 없습니다.
보통 균시차 기능을 갖춘 시계를 살펴보면 이 평균태양시와 진태양시간의 차이를 다이얼 일부, 혹은 별도의 서브 다이얼을 통해 보여주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것을 보고 시계를 착용한 이가 그 차이를 확인한 후 약간의 암산을 통해 진태양시를 계산해내는 것이죠.
그럼 이 새로운 시계들은 균시차를 어떻게 표시하고 있을까요?
VACHERON CONSTANTIN - Les Cabinotiers Celestia Astronomical Grand Complication 3600
시계 앞뒤에 자그마치 23개의 천문 관련 컴플리케이션을 담아낸 바쉐론 콘스탄틴의 레 캐비노티어 셀레스티아 애스트로노미컬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3600. 탄생 260주년을 맞이해 57개의 컴플리케이션을 탑재한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시계 Ref. 57260의 뒤를 잇는 등장한 후계자(!)라고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5년의 개발 기간, 2년의 디자인 작업을 통해 탄생했습니다.
탑재한 컴플리케이션 리스트를 간략하게 훑어볼까요? 캘린더와 문페이즈 관련 기능을 살펴보면 요일, 날짜, 월, 윤년, 퍼페추얼, 낮/밤 표시, 문페이즈, 월령(moon age) 등이 있습니다. 태양과 관련한 기능을 살펴보면 균시차, 진태양시, 일출/일몰 시간, 낮/밤 길이, 하지/동지, 춘분/추분, 황도십이궁 표시 등이 있죠. 이외에도 밀물과 썰물을 확인할 수 있는 조류 인디케이터, 태양-지구-달의 위치, 천체도 등도 이 시계 안에서 모두 확인 가능합니다. 투르비용이나 3주 파워리저브(자그마치 6개의 배럴로!) 기능은 상대적으로 평범하게(!) 느껴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스펙을 자랑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하나의 시계에서 세 개의 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바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시와 분 개념의 평균태양시, 실제 태양이 움직이는 궤도를 기준으로 하는 진태양시, 그리고 고정되어 있는 별의 거리를 기준으로 계산하는 항성시가 그것입니다.
그 중 여기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기능은 균시차입니다. 평균태양시와 진태양시가 만들어내는 이 차이를 꽤나 우아한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명 '러닝(running)' 균시차 기능으로 진태양시를 평균태양시와 동일한 방식으로 바늘을 통해 표시합니다. 좀더 사용자에게 직관적이고 편리한 방식인 '바늘'을 채택한 것입니다(이것은 손목 시계에서는 정말 보기 힘든 방식이죠). 태양을 조각한 핑크 골드 바늘로 진태양시를 표시해 분을 표시하는 바늘 2개가 계속해서 균시차만큼 벌어지게 됩니다. 특히 분을 표시하는 화이트 골드 바늘과 컬러까지 차별화를 둬 가독성을 더욱 높였습니다. 일명 '태양년(tropical year, 천구 상에서 태양이 춘분점을 경과한 후 또다시 춘분점을 경과할 때까지 기간으로 회귀년이라고도 부릅니다. 이 1년은 항성년보다 약간 짧은 평균 365.2421898일입니다)'을 기준으로 한 트로피컬 기어 트레인을 구동하는 이 균시차 기능은 당연히 기존 균시차 표시 방식에 비해 제작하기는 훨씬 복잡하지만 즉시 쉽게 진태양시를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추고 있습니다.
23개라는 어마무시한(!) 기능을 갖췄다는 것을 감안할 때 이를 꽤나 조화롭고 나름 간결하게 담아낸 점 역시 눈길을 끄는 데다가 514개 부품으로 이뤄진 칼리버 3600이 두께 8.7mm에 불과하다는 사실 또한 매우 인상적입니다.
VS
BREGUET - Marine Équation Marchante 5887
올해 유달리 '와우'한 제품이 눈에 띄지 않았던 1월 SIHH에서 독보적인 위엄을 뽐냈던 바쉐론 콘스탄틴의 셀레스티아 애스트로노미컬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3600을 만난 감동이 채 가시기 전 3월 바젤에서 이와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균시차를 표시하는 새로운 시계를 만났습니다. 23개의 컴플리케이션으로 완전 무장한 바쉐론 콘스탄틴 제품과 비교하면 브레게의 마린 에콰시옹 마샹 5887은 이 같은 '화려한' 스펙을 자랑한 것은 아니지만 균시차를 비롯해 퍼페추얼 캘린더(날짜, 요일, 월, 윤년), 그리고 브레게를 대표하는 시그너처라고 할 수 있는 투르비용에 중점을 두어 새롭게 시도하는 균시차 기능을 강조했습니다.
브레게의 창립자 아브라함-루이 브레게는 역사에 길이 남은 뛰어난 워치메이커인 동시에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습니다. 1814년에는 루이 18세가 브레게를 파리 경도국(Bureau des longitudes) 위원회 일원으로 임명했는데, 그는 기하학자, 천문학자, 선원 등이 포함되어 있는 파리 경도국에서 천체학 뿐 아니라 이를 지리, 항해 부문에 적용시키는 방법을 함께 연구했습니다. 바다에서 선원들의 목숨과 직결되는 배의 정확한 위치를 측정하는 데 있어 뛰어난 노하우를 보여준 브레게는 이를 인정받아 1815년 프랑스 왕정 해군을 위한 크로노미터 메이커로 공식 임명되기도 했습니다(이를 기념하기 위해 탄생한 컬렉션이 바로 마린이었죠).
왕정 해군을 위한 크로노미터를 제작할 수 있도록 공식 임명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워치메이커로서는 최고의 영예였습니다. 그것이 정확한 시계를 만든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타이틀이기도 했으니까요. 이같은 브랜드 고유의 유산을 기리기 위해 브레게는 올해 마린 컬렉션에서 특별한 마린 에콰시옹 마샹 5887을 소개했습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균시차 기능을 담고 있는 시계입니다.
브레게 역시 바쉐론 콘스탄틴과 유사하게 평균태양시와 진태양시를 두 개의 독립적인 분침을 이용해 동시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역시 끝에 태양 모티브가 달린 바늘이 태양시의 분을 표시합니다. 사용자에게는 매우 직관적이고 편리한 방식이긴 하지만 이를 정확하게 계산해 반영하기까지 고난도 설계 과정이 요구되었습니다.
창립자 아브라함-루이 브레게가 발명한 상징적인 투르비용은 5시 방향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투르비용 캐리지 안에 자리하고 있는 '곡선'이 눈에 띕니다. 일명 아날렘마 커브(analemma curve)로 매우 의외의 장소에 놓은 점이 눈길을 끕니다. 아날렘마 커브는 같은 시각, 같은 위치에서 1년간 태양의 위치를 기록했을 때 8자 모양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기울어진 황도와 지구의 타원형 공전 궤도가 서로 맞물리며 생기는 현상입니다.
43.9mm 사이즈의 시계 다이얼 위에서는 이 시계만을 위해 특별 개발한 바다를 연상시키는 파도 패턴 엔진-터닝 장식을, 투르비용 바에서는 인그레이빙으로 새긴 'Marine royale' 문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파이어 케이스백을 통해 보이는 브리지에는 프랑스 왕정 해군의 최고 함대 로얄 루이(Royal Louis)의 모습을 양각으로 새겨 넣어 바다와 해군을 연상시키는 다양한 디테일들을 구석구석 가미했습니다.
공교롭게도 같은 해 균시차(equation of time) 컴플리케이션 기능을 기존과 차별화되게 표시한 바쉐론 콘스탄틴의 셀레스티아 애스트로노미컬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3600과 브레게의 마린 에콰시옹 마샹 5887은 '독립적인 바늘'이라는 매우 유사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지만 그 이외의 부분에 있어서는 전혀 다른 면모와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각각 나름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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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계 모두 정말멋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