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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스탄트 지라드와 마리 페리고 부부. 

지라드 페리고는 두 유구한 스위스 시계 가문의 결합을 보여줍니다.  




올해로 창립 225주년을 기념한 지라드 페리고(Girard-Perregaux)는 명실공히 스위스 라쇼드퐁를 대표하는 매뉴팩처 브랜드입니다.  


1791년 유능한 워치메이커였던 장-프랑소와 보떼(Jean-François Bautte)에 의해 창립한 지라드 페리고는 초창기 60여 년간은 보떼 가문에 의해 운영되며 얇은 두께의(울트라 씬 계열의) 회중시계와 뮤직박스를 주로 제조 판매하면서 성장했습니다. 이후 1852년 라쇼드퐁 출신의 시계제작자이자 사업가인 콘스탄트 지라드(Constant Girard)가 회사를 인수하며 사세를 확장했고, 4년이 흐른 1856년 르 로끌의 부유한 시계 가문의 딸인 마리 페리고(Marie Perregaux)와 결혼을 하게 되면서 회사 이름을 마침내 자신의 이름과 아내의 이름을 결합해 현재의 지라드 페리고로 공식 변경하게 됩니다. 


시계제작자로서 긍지와 열의가 남달랐던 콘스탄트 지라드는 1867년 3개의 평행 브릿지 형태의 무브먼트를 탑재한 첫 투르비용 회중시계를 제작해 프랑스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첫 선을 보입니다.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가 1801년에 발명한 투르비용 메커니즘을 독자적인 기술로 재응용해 상용화 할 수 있을 만한 브랜드는 당시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는데, 지라드 페리고는 그 극소수의 메이커 중 하나였습니다. 


이렇듯 19세기 말 지라드 페리고는 이미 유럽에서 가장 저명한 시계 제조사 중 하나였습니다. 1880년 독일 황제 빌헬름 1세가 자국의 해군 장교들을 위한 특수 시계 제작을 친히 부탁했을 정도였고, 지라드 페리고는 시계의 전면 다이얼을 보호할 수 있는 격자 형태의 틀을 부착한 독특한 컨셉의 손목시계를 완성해 호평을 받기도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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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84년 특허를 획득한 오리지널 쓰리 골드 브릿지 무브먼트 디자인 도면




그리고 마침내 1889년에는 기존의 니켈 소재 대신 골드 브릿지로 제작한 쓰리 골드 브릿지 투르비용(Tourbillon with Three Gold Bridges) 회중시계를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쓰리 골드 브릿지란 태엽을 감는 배럴부터 기어트레인, 그리고 투르비용 케이지를 지탱하는 세 개의 골드 소재 브릿지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그해 파리 만국 박람회에 출품돼 우승인 골드 메달을 거머쥐고 뇌샤텔 천문대 크로노미터 경연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것만 보더라도 그 높은 성취를 어림할 수 있습니다. 


'라 에스메랄다(La Esmeralda)'라는 별칭으로도 더욱 널리 알려진 이 회중시계는 당시 그 화려한 외관과 기능적인 완벽함 때문에 유럽의 귀족들을 중심으로 전설적인 명성을 획득하게 됩니다. 라 에스메랄다에 얽힌 흥미로운 일화 중 하나로는, 멕시코의 대통령이었던 포르피리오 디아즈가 라 에스메랄다를 개인 소장했는데 그 사후 대를 이어 내려오다가 1960년대 말 디아즈의 손자에 의해 기증되어 현재는 지라드 페리고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습니다. 



19세기 말에 제작된 초창기 쓰리 골드 브릿지 투르비용, 라 에스메랄다.jpg


- 1889년 제작된 라 에스메랄다 투르비용 포켓 워치 



라 에스메랄다 투르비용이 특별했던 점은 19세기 중후반에는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투르비용을 전면에 부각한 점과, 그 어느 브랜드나 제작자의 시계에서도 본 적이 없는 3개의 병렬 브릿지 구조의 무브먼트를 선보였다는 데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구조적인 독창성이 단지 미적인 장치로서만이 아니라, 기능적으로도 가장 정확한 시계를 지칭하는 당시의 크로노미터 기준을 너끈히 충족했을 만큼 우수했다는데 있습니다. 설계의 특별함과 기술적인 진보가 조화를 이룬 흔치 않은 성공작이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브릿지의 소재를 골드로 사용한 것도 당시엔 드문 경우였습니다. 이는 시계의 고급스러움에 일조함은 물론 오랜 내구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시계사를 통틀어 그 무브먼트의 형태만 보고도 어느 제조사의 것임을 바로 가늠할 수 있는 시계는 그 종류가 제한적인데, 지라드 페리고의 쓰리 골드 브릿지 투르비용(라 에스메랄다 투르비용)은 그런 점에서 태생적으로 브랜드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될 운명을 타고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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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라드 페리고는 쓰리 골드 브릿지 형태의 투르비용 회중시계를 20세기 초반까지도 꾸준히 한정 제작했습니다만, 1940년대 런칭한 씨호크를 비롯, 1960~70년대 뇌샤텔 크로노미터 경진대회를 석권한 일련의 하이비트 손목시계들(ex. 자이로매틱 Gyromatic HF을 필두로, 1970년 출시된 쿼츠 시계 엘크론 Elcron 등이 대표적)의 등장을 계기로 회중시계 시대를 마감하고 본격적으로 손목시계 제조에 매진하게 됩니다. 예견된 결과지만, 손목시계 시대의 도래와 함께 아쉽게도 지라드 페리고의 가장 아름다운 유산이라 할 수 있는 쓰리 골드 브릿지 형태의 시계 역시 한동안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지요.  


이후 1991년에 들어서야 쓰리 골드 브릿지 투르비용을 손목시계 형태로 리메이크한 최초의 복각 시계를 선보이게 됩니다. 19세기 말의 회중시계 디자인과 설계를 고스란히 빌려오면서도 현대적인 부품들과 함께 한층 정교하게 마감된 시계는 제법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지요. 회중시계 시대의 걸작이 현대 손목시계의 걸작으로 재탄생하는 순간이자, 지라드 페리고의 역사적인 유산을 앞으로도 계속 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해였습니다.

 

이어 1999년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고급시계박람회(SIHH)에는 플래티넘 소재의 마이크로 로터를 장착한 첫 오토매틱 버전의 쓰리 골드 브릿지 투르비용 시계를 선보여 또 한 차례 도약했습니다. 그리고 2006년에는 기존 골드 소재 대신에 브릿지를 사파이어 크리스탈로 채택한 로레토 에보3 투르비용(Laureato Evo 3 Tourbillon with three Sapphire Bridges) 시계를 발표, 2008년에는 기존의 3개 대신 2개의 브릿지에 다축 투르비용을 적용한 시계로도 화제를 낳았습니다. 또한 2011년에는 브랜드 창립 220주년을 기념하며 전설적인 라 에스메랄다를 완벽하게 복각한 새로운 회중시계를 선보였으며, 파리·뉴욕·싱가포르 등 세계 주요 도시를 순회하는 성대한 전시행사도 개최했습니다. 



현행 손목시계로 이어진 쓰리 골드 브릿지 투르비용.jpg


- 41mm 직경의 핑크 골드 케이스에 쓰리 골드 브릿지 형태를 갖춘 자동 투르비용 무브먼트를 탑재한 2014년 출시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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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모델로, 아이코닉 쓰리 브릿지 구조는 계승하고 있지만, 골드가 아닌 블랙 DLC 코팅 마감한 티타늄 소재를 사용해 독특함을 더한 네오-투르비용 쓰리 브릿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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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리 골드 브릿지 형태는 아니지만 고유의 DNA를 공유하고 있는 2015년 모델, 지라드 페리고 미닛 리피터 투르비용 골드 브릿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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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드 브릿지 투르비용을 심플하게 변주한 2016년 여성용 신모델, 캣츠 아이 투르비용 골드 브릿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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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신모델 라 에스메랄다 투르비용 




그리고 올해 발표한 라 에스메랄다 투르비용(La Esmeralda Tourbillon)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1889년 제작된 오리지날 라 에스메랄다 투르비용에 바치는 헌사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라 에스메랄다 투르비용은 지난 11월 10일 스위스 제네바 레만극장에서 열린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GPHG)에서 투르비용 부문(Tourbillon Prize)을 수상하기도 했지요. 또한 올해 여성용 컴플리케이션 신모델인 캣츠 아이 투르비용 골드 브릿지(Cat’s Eye Tourbillon with Gold Bridge)는 GPHG 하이 메카니컬 레이디 워치 부문(High Mechanical Ladies Watches Prize)을 수상해 브랜드의 위상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지라드 페리고의 쓰리 골드 브릿지 투르비용은 브랜드의 여러 컬렉션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브랜드의 시그너처이자 한 해 몇 점 밖에 제작되지 않는 최고급 모델 중 하나입니다. 시계 한 점에도 역사성과 장인정신, 브랜드의 철학이 올곧이 반영돼 있기에 쓰리 골드 투르비용 혹은 라 에스메랄다 투르비용을 가리켜 이 시대의 진정한 아이코닉 워치로 부를 수 있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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