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0여 년 전 ETA 베이스의 무브먼트를 탑재하며 가격을 억제한 합리성. 고급스러운 드레스 워치의 디자인 화법으로 주목 받기 시작한 프레드릭 콘스탄트는 하트비트로 결정타를 날리며 뚜렷한 존재감을 발하게 됩니다. 이 무렵 프레드릭 콘스탄트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의외의 한 수를 두게 되는데요. 바로 인 하우스 무브먼트의 개발과 탑재였습니다. ETA 무브먼트에 전적으로 의존해도 나쁘지 않을 만큼 시장은 호의적인 상황이었고 또 당시 인 하우스 무브먼트는 하이엔드가 아니면 굳이 필요하다고 생각지 않던 때였습니다. 때문에 프레드릭 콘스탄트에서 하트비트를 위해 선보인 칼리버 FC-930 시리즈나 이후 등장한 보다 범용적인 칼리버 FC-710 시리즈는 화제를 불러 모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프레드릭 콘스탄트의 인 하우스 무브먼트는 당시로서는 작은 규모의 메이커로서 역량과 활용 가능한 자원을 극대화 한 결과입니다. 설계와 부품 생산을 인 하우스에서 진행했지만, 기어처럼 직접생산을 할 경우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부품 일부는 ETA의 칼리버 2824 같은 범용 무브먼트와 공유해 생산비용을 절감합니다. 매뉴팩처링의 순도 측면에서 본다면 다소 약해지지만 합리성 측면에서 오히려 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퍼페추얼 캘린더 스케치
2016년 발표한 매뉴팩처 퍼페추얼 캘린더는 투르비용에 이은 또 하나의 컴플리케이션이면서 인 하우스 무브먼트를 만들어낸 철학의 연장선입니다. R&D 디렉터인 마누얼 다 실바 마토스(Manuel Da Silva Matos), 테크니컬 디렉터인 핌 쿠스라흐(Pim Koeslag)가 2년에 걸쳐 개발한 퍼페추얼 캘린더 모듈은 요즘 대두되는 퍼페추얼 캘린더의 대중화라는 방향성에도 구체적인 대답을 한 셈인데요. 기능성, 가격 합리성을 중시한 퍼페추얼 캘린더이기 때문입니다.
퍼페추얼 캘린더(모듈)을 구동하는 부품은 다이얼면에 배치됩니다. 시스루 백으로 보이는 무브먼트와 달리 분해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죠. 이들은 퍼페추얼 캘린더 모듈의 단순화와 함께 생산의 용이함을 꾀했습니다. 즉 CNC로 만들어낸 부품에 코스메틱 피니시를 가급적 배제하고 작동을 위한 기능적인 피니시를 거쳐 완성도를 추구합니다. 코스메틱 피니시에 소요되는 비용은 많을 경우 전체 생산 비용에서 15-20%를 차지하기도 하므로, 여기서 비용을 줄일 수 있다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일입니다. 물론 이것은 프레드릭 콘스탄트가 스스로의 포지셔닝을 명확하게 인지 했기에 가능한 것이죠.
이런 관점에서 완성한 매뉴팩처 퍼페추얼 캘린더는 칼리버 FC-710을 베이스로 퍼페추얼 캘린더 모듈을 올린 칼리버 FC-775를 탑재합니다. 금빛을 살짝 머금은 실버 다이얼 위에 올라간 많은 날짜정보는 칼리버 FC-775의 풍부한 기능성을 드러냅니다. 12시 방향은 월과 윤년, 3시 방향은 날짜, 6시 방향은 문 페이즈, 9시 방향은 요일로 퍼페추얼 캘린더의 기본 구성과 거의 일치합니다. 12시 방향의 창에는 긴 바늘로 월, 짧은 바늘로 윤년을 표시하며, 문 페이즈는 달 표면의 텍스처나 얼굴을 그려 의인화한 디테일 없이 밤하늘의 별과 더불어 담백하게 풍경을 그려냅니다. 42mm의 케이스 지름은 동서남북으로 배치된 날짜 정보를 여유롭게 수용하고도 남습니다. 풀 사이즈의 입체적인 바 인덱스까지 배치하고도 충분하군요. 바 인덱스는 상단 면을 살짝 접은 심플한 형태지만 이미지처럼 빛에 따른 명암으로 입체감을 드러냅니다. 그와 함께 다이얼 바깥쪽 수직형태의 플린지에서 살짝 떨어져 있어 반사광으로 나타나는 은근한 디테일이 고급스럽습니다. 바늘을 포함한 인덱스, 다이얼의 가공, 질감과 색상은 상당한 수준급으로 프레드릭 콘스탄트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하리라 봅니다.
이들 날짜 정보는 케이스 측면의 커렉터로 변경합니다. 따라서 크라운 포지션은 0과 1 뿐이며 포지션 0에서 수동 와인딩, 한 칸 당긴 포지션 1에서 시간 조정입니다. 와인딩시의 감각은 초기 칼리버 FC-710 시리즈와 비교하면 매우 부드러워졌습니다. 초기형은 풀 와인딩에 임박하면 크라운 요철이 느껴질 만큼 힘을 줘야 했던 기억이 납니다. 포지션 1에서 크라운을 계속 돌리면 날짜를 비롯한 모든 정보들이 연동하여 변경됩니다. 시계가 멈췄을 경우 가장 안전한 변경 방법인데요. 하지만 시계가 멈춘 지 제법 경과했다면 커렉터를 이용하는 편이 훨씬 편리합니다. 5시 방향 커렉터로 문 페이즈, 8시 방향은 요일, 10시 방향은 날짜이나 요일과 연동, 11시 방향 커텍터로 월을 바꿀 수 있습니다. 커렉터는 그리 힘주지 않고 살짝 누르기만 해도 즉각적으로 한 칸씩 전진하며, 누른다라는 입력감이 명확해 변화를 다소 가늠하기 어려운 문 페이즈의 변경 시 유용합니다. 커렉터가 두 개가 10시와 11시 방향으로 집중되어 있는 점이 독특한데요. 메커니즘의 레버 동선(?)과 간결화를 우선적으로 고려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케이스는 하트비트 컬렉션과 달리 심플하고 평평한 베젤입니다. 러그 역시 같은 인상을 받습니다. 따라서 전반적으로 심플한 케이스이며 케이스 대비 약간 오버사이즈의 양파모양 크라운이 포인트가 되지 싶네요. 케이스 백은 시스루 방식이며 전통대로 무브먼트 테두리 쪽 케이스 백에는 필기체 음각으로 멋을 낸 브랜드명과 모델명 등이 담겨있습니다. 케이스는 측면에서 볼 때 베젤에서 시작해 약간 부풀다가 케이스 백으로 향하며 지름이 줄어드는 라인을 그리며 곡선미와 볼륨감을 드러냅니다. 케이스 표면은 로즈 골드 도금으로 처리했고 기본 소재는 스테인리스 스틸입니다. 케이스는 두 가지 베리에이션으로 도금을 하지 않은 스테인리스 스틸을 선택 가능합니다. 위 이미지처럼 케이스와 다이얼 색상, 인덱스 베리에이션을 제시해 다양한 선택지를 제시하고도 있습니다.
탑재한 칼리버 FC-775의 특징적인 요소로는 커다란 밸런스이며 무브먼트 지름에 대비 큰 지름이 시원시원합니다. 밸런스는 브릿지 방식으로 고정하며, 기어트레인을 덮은 브릿지 위로 와인딩 메커니즘을 수용한 브릿지를 한 층 더 배치했습니다. 가장 중심에는 로터축이 있으며 로터는 표면 질감과 무브먼트를 최대한 드러내기 위해 형태에 신경을 쓴 모습입니다. 무브먼트 표면은 코트 드 제네브와 페를라주 가공으로 장식했는데, 상단 브릿지에 전자, 하단 브릿지와 메인 플레이트에 후자의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페를라주는 브릿지와 메인 플레이트에서 크지 차이를 드러내며 후자가 작은 패턴입니다. 전체적으로 크게 화려하지는 않으나 정돈된 느낌을 주는 피니시이며, 블루 스틸 스크류를 사용해 루비, 금색 로터와 대비를 이뤄 보는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스트랩은 악어 가죽 소재로 로즈 골드 색상의 케이스에 잘 어울리는 진하고 풍부한 갈색을 띕니다. 악어가죽의 패턴은 약간 뽑기운이 작용하지만 큼지막한 사각형 패턴이 고급스러워 보입니다. 버클은 일반적인 탱 버클이며 프레드릭 콘스탄트의 로고가 각인되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무난하며 그 중 깊이가 느껴지는 스트랩이 인상적입니다.
매뉴팩처 라인의 심플하며 차분한 케이스, 밸런스 좋은 다이얼과 퍼페추얼 캘린더의 풍부한 정보량. 마지막으로 퍼페추얼 캘린더로서 소비자가 인식하는 평균적인 가격대보다 훨씬 낮은 가격표가 매뉴팩처 퍼페추얼 캘린더의 매력이자 명확한 지향점입니다. 2100년까지 멈추지 않는다는 가정하(그레고리안력에 기반한 달력을 사용하고 있고 퍼페추얼 캘린더 또한 마찬가지로 2100년은 규칙상 윤년이어야 하나 평년이 되어, 이 때 퍼페추얼 캘린더도 수정이 필요합니다)에 언제나 정확한 날짜를 표시할 수 있는 기능을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은 기계식 시계 마니아에게 더욱 와 닿는 매력일 것입니다. 전자기반이 아닌 톱니바퀴와 레버, 스프링으로 만들어 낸 작은 경이, 즉 컴플리케이션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니까요.
도금 보다는 스틸이 나은 것 같습니다.